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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국음악의 미국공습 -
British Invasion 40주년

2003.2.13.금요일
딴따라 딴지


 서처스(The Searchers)


비틀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 그들의 사운드는 출신지역인 리버풀에 흐르는 머지(Mersey)강의 이름을 따 머지비트(Merseybeat)라 불렸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최초 양상은 바로 이 리버풀 출신 머지비트 계열 밴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은 대부분 비틀즈의 후광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서처스(The Searchers)는 이 경향의 대표격 밴드였다.


 


서처스는 미국진출 첫해인 1964년에만 4곡의 40위권 히트싱글을 배출하며 선전했는데, 비틀즈 덕을 많이 봤고 그나마 이들만의 오리지널 곡도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들이 곡을 다루는 솜씨만큼은 매우 매끄러웠으니, 덕분에 이들의 사운드는 40년이 지난 지금의 귀로 들어봐도 충분히 깔끔하고 상큼하다. 이들이 처음 결성된 시기는 1957년이라니, 따지고 보면 다른건 몰라도 이들의 연주력만큼은 비틀즈보다 떨어질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Sweets For My Sweet - The Searchers (1963)
 


서처스의 최대 히트곡은 당근 [Love Potion No. 9]이다(1965년 3위). 서처스의 히트곡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곡도 클로버스(The Clovers)가 이미 1959년에 발표해 히트시킨 바 있었지만, 서처스의 단정하고도 명쾌한 곡해석은 이 곡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를 헷갈리게 만들 정도다. 서처스는 1965년에도 이 곡을 포함 3곡을 히트시키며, 비틀즈가 부럽지 않은 인기행진을 이어갔다.
 


 Needles and Pins - The Searchers (1964)
 


1966년 드러머 크리스 커티스(Chris Curtis)가 탈퇴한 이후, 그들의 인기행진에도 제동이 걸렸다. 1966년부터 이들은 미국시장에서 단 하나의 싱글도 히트시키지 못했는데, 이는 독창성을 보유하지 못했던 다른 머지비트 그룹들에게도 거의 똑같이 해당되는 일이었다.
 


 Love Potion No. 9 - The Searchers (1965)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The Spencer Davis Group)




일련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흑인취향에 가까운 팀이 아니었을까 싶다. 밴드 이름에서 드러나듯 기타리스트 스펜서 데이비스(Spencer Davis)를 중심으로 결성되긴 했지만, 밴드내 최고의 스타는 기타와 오르간을 번갈아 쳐댔던 멀티플레이어 스티브 윈우드(Stevie Winwood)였다. 윈우드는 사실상 밴드의 사운드를 좌지우지하는 존재였으며, 그가 탈퇴한 1967년 이후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은 단 한곡의 히트곡도 배출하지 못했다. 한가지 충격적인 사실은, 탈퇴 당시 윈우드의 나이는 겨우 19세였다는 거다. 천재는 어딜 가나 표가 난다니까...
 


 Keep on Running - Spencer Davis Group (1965)
 


이미 영국에서 [Keep on Running]을 대히트시킨 이들의 미국시장 진출은 1965년에 이루어졌는데, 미국에서는 그보다는 [Gimme Some Lovin]의 인기가 더 좋았다(7위). 이 두 곡은 스펜서 데이비스 그룹의 또다른 미국내 탑10 히트곡 [Im A Man]과 더불어 아직까지도 이들의 대표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특이한 건 [Im A Man]이 블랙 싱글(Black Singles)차트에 오르기도 했다는 건데, 전원 백인(그것도 영국출신)으로 구성된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흑인취향이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 되겠다. 특히 재지(jazzy)한 취향까지 묻어나는 스티브 윈우드의 오르간에서는 검은색이 물씬 풍긴다.
 


 Gimme Some Lovin - Spencer Davis Group (1967)
 


밴드는 윈우드의 탈퇴와 함께 예전만한 위용을 회복하지 못하고 급격히 약화되고 말았다. 결국 밴드가 완전히 유야무야된 이후 데이비스는 1970년 솔로앨범을 발매했는데, 현재 이 음반은 무지하게 구경하기 힘든 희귀반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 일 욕심에 끝이 없었던 윈우드는 이후 트래픽(Traffic),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 등 전설의 밴드들을 거친 뒤 견실한 솔로활동을 벌였으며, 80년대에는 2곡의 넘버원 히트곡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Im a Man - Spencer Davis Group (1967)
 


 뎀(Them)




뎀(Them) 역시 흑인취향, 특히 블루스의 색채가 농후한 밴드였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인 이들은, 리드싱어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강력한 영도하에 활동하였다. 그의 이미지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밴드 해산 이후 발매된 앨범에서는 밴드명이 Them featuring Van Morrison으로 표기된 경우도 종종 있다.
 


 Gloria - Them (1965)
 


이들은 미국에서 그리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편은 아니다. 하긴 그럴 새도 없었다. 1965년 데뷔앨범 이 발매되고 작품성을 인정받긴 했지만, 이듬해 발매된 2집 의 성과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자 밴 모리슨이 밴드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뎀이라는 밴드의 인기 요인이 대부분 모리슨의 광기어린 보컬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작곡도 대부분 모리슨의 몫이었다) 이 사건이 밴드에 초래한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결국 뎀은 지지부진한 활동을 얼마간 지속하다 1971년 해산해 버리고 만다.
 


 Here Comes the Night - Them (1965)
 


뎀은 블루스에 대한 집착이 각별한 밴드로, 레코딩한 커버곡들도 존 리 후커나 지미 리드 등의 정통 블루스 넘버가 대부분이었다. 뎀의 성향은 이후 솔로로 독립한 밴 모리슨의 음악에서 더욱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니, 오늘날 그의 이름은 가장 위대한 백인 재즈락 싱어 중 한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최근 그는 재즈명문 블루노트(Blue Note) 레이블과 계약하며 또 한번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Mystic Eyes - Them (1965)
 


 스몰 페이시즈(The Small Faces)




60년대, 단정한 머리에 스쿠터를 타고 다녔던 모드(mod)족은 당시 영국 청년문화의 큰 흐름 중 하나였다. 이 모드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그룹으로는 오늘날까지도 후(The Who)가 첫손에 꼽히고 있으나, 스몰 페이시즈(Small Faces) 역시 후와 비슷한 레벨로 거론되기에 손색이 없는 재능을 갖춘 밴드였다. 안타깝게도 후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지는 못했고, 활동기간도 워낙 짧았던 탓에 후만큼 막강한 명성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하다.
 


 Sha-La-La-La-Lee - Small Faces (1967)
 


혈기 왕성한 스물 안팎의 젊은이들로 1965년 구성된 이 밴드(특히 리더인 스티브 매리엇(Steve Marriott)은 당시 18세에 불과했다)는 1966년 [Sha-La-La-La-Lee]를 영국 차트 3위에 올리는 등 단시일만에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들은 1967년 이미디에이트(Immediate) 레이블로 이적해 그 이듬해 앨범 를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는 그들의 유일한 미국내 히트싱글(16위)인 [Itchycoo Park]이 수록되어 있었다.
 


 Itchycoo Park - Small Faces (1968)
 


그 해가 채 가기도 전에, 이번엔 란 또다른 앨범이 발표되었으니, 이 앨범은 커버가 아예 원형으로 제작되어, 보관하기에는 졸라 안좋지만 디자인만큼은 매우 독특했던 것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 두 앨범은 스몰 페이시즈의 양대 명반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는 100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할 정도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Lazy Sunday - Small Faces (1968)
 


이들의 뛰어났던 음악성에 비하면 당시 미국시장이 이들을 외면했던 건 참으로 의아한 일이지만, 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모드 계열 그룹들이 미국에서 고전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얼마후 스티브 매리엇은 험블 파이(Humble Pie)라는 새로운 밴드를 만들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와 론 우드(Ron Wood)를 영입해 페이시즈(Faces)란 이름의 밴드를 출범시켰다.
 


 Stay with Me - Faces (1971)
 


 좀비스(The Zombies)




좀비스(자미스라고 읽어줘야 될지도 모르겠다만...)는 음악성에 비해 미국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대표적 케이스이다. 활동기간도 5년에 불과했거니와, 3곡의 히트싱글 말고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성과도 없다. [Shes Not There]를 2위까지 올려봤던 혁혁한 전과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초라했을꼬.
 


 Shes Not There - The Zombies (1964)
 


그렇다 보니 이들은, 공습(invasion)에서 낙오된 채 그저 승전국의 일원이었다는 자긍심 말고는 건질 게 없는 존재였던 것처럼 보일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상업적인 차원에서는. 그러나 키보디스트인 로드 아젠트(Rod Argent)와 베이시스트 크리스 화이트(Chris White)는 유난히 탁월한 작곡가가 많았던 60년대에도 최상위권에 들만한 재능을 소유한 작곡가들이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곡들은 시공을 초월하는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 모두를 빛내는 리드싱어 콜린 블런스톤(Colin Blunstone)의 호소력 강한 목소리 또한 주목해 마땅하다. 재즈와 사이키델릭 성향을 적절히 버무려 팝으로 반죽해낸 이들의 사운드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으며, 그 완성도도 탄탄하기 이를 데 없었다.
 


 Tell Her No - The Zombies (1965)
 


좀비스라는 이름으로 한창 활동하던 시절 이들이 올린 성과는 초라했지만, 해산 후 이들의 가치는 출중한 역량을 보유한 멤버들의 왕성한 각개활동에 힘입어 재평가될 수 있었다. 로드 아젠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 아젠트(Argent)를 결성했으며, 블런스톤은 성공적인 솔로 가수로 활동했다. 여담이지만,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의 대히트곡 [Old and Wise]에서 우수에 찬 목소리를 제공한 객원보컬이 바로 콜린 블런스톤 되겠다.
 


 Time of the Season - The Zombies (1968)
 


 킹크스(The Kinks)


앞서 비교적 소소한 존재감을 갖는 밴드를 중심으로 다루겠다고 언급했지만, 킹크스는 아무리 박하게 봐도 절대 소소한 밴드는 아니다. 위에서 거론한 밴드들이 소소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지만, 킹크스는 사실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와 동격으로 취급되어도 좋을 거대한 밴드이다. 국내에서의 지명도가 워낙 바닥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킹크스의 히트곡은 아마 [You Really Got Me]가 아닐까 싶다. 헤비메틀의 발생에 중대한 단서가 되는 곡 중 하나로 꼽히고 있고, 실제로 밴 헤일런(Van Halen)에 의해 리메이크된 적도 있는 이 공격적인 곡에는 60년대식 어설프게 반항적인 밴드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겨있다(아, 곡은 절대 어설프지 않다). 하여 킹크스의 이미지를 이 곡만으로 인식하는 팬들도 이따금 눈에 띄곤 하는데... 물론 [You Really Got Me]의 탁월함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래도 킹크스는 그렇게 기억될 밴드는 아니다. 그보다는, 비틀즈와 맞짱을 떠도 꿀리지 않을 천재작곡가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의 재능으로 빚어진 주옥같은 팝송들로 기억하는 편이 옳다.
 


 You Really Got Me - The Kinks (1964)
 


그들의 대표곡이 [You Really Got Me]라면, 그들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앨범으로는 가 첫손에 꼽힌다. 그들의 히트곡 28곡을 2장의 디스크에 눌러담은 이 앨범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You Really Got Me]는 실려있지 않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발표된 곡들만을 대상으로 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대신 [Victoria], [David Watts], [Sunny Afternoon], [Lola] 등 킹크스의 음악적 색채를 좀더 잘 드러내 주는 곡들이 참으로 살뜰하게도 담겨 있다. 이들의 음악에서 어마어마하게 혁신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는 없지만, 그런 아쉬움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을만큼 정말 매력적인 멜로디가 그득그득하다. 그것도 화려하기보단 은근한 매력이 돋보이는, 그런 멜로디다. 그런 곡들을 1년에 20~30곡씩 꼬박꼬박 써댔으니, 레이 데이비스의 창조력에는 이의를 달 구실이 없다.
 


 Sunny Afternoon - The Kinks (1966)
 


그러나 이들은 업적에 비해 그리 정당한 대접을 받아온 편이라 볼 수 없다. 비틀즈의 영향력 덕에 미국시장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쳐도, 킹크스의, 아니 레이 데이비스의 멜로디메이킹마저 비틀즈의 아류 취급을 받았던 건 암만 생각해도 너무 심한 처사라고 여겨진다. 비틀즈의 탁월한 대중성과 롤링 스톤즈의 끈질긴 생명력을 겸비한 밴드였다고 봐주면 좀 어디가 어때서. 뭐 최근 들어선 브릿팝(Britpop) 계열의 스타들이 킹크스를 사부급 존재로 추앙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그렇게 봐주는 경향도 꽤 눈에 띄긴 한다.
 


 Lola - The Kinks (1970)
 


그 명성과 창작력에 비하면 미국내에서 단 5곡의 탑10 싱글과 12곡의 40위권 이내 히트싱글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만족스럽지 못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도 1990년 락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수십년간의 빛나는 활동에 걸맞은 영광을 누린 바 있기는 하다. 얼마전 레이 데이비스가 뉴올리언스에서 노상강도의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는데, 생명엔 지장이 없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Shangri-La - The Kinks (1969)






물론, 이들 외에도 기억해야 할 밴드들과 명곡이 너무 많다. 아마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면서도 풍성한 경향이었을 이 대규모 공습에서, 아무렴 기억할 만한 밴드가 저 정도밖에 안 될리 엄따. 지면(?)한계로 부득이 본 기사에서 다루지는 못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쩝...


이왕 내친김에 당시의 열기를 능히 짐작케 하는 귀중한 음원 하나 들어보면서, 그 최소 40년에 달하는 유효기간을 절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히 예술적인 번안의 경지란 바로 이런 것임을 절감할 수 있을거다. 아울러 이 곡을 마지막으로 본 기사, 엄벙덤벙 마무리지을란다. 혹시 나중에 좀더 구체적인 썰을 풀어볼 계기가 생기거들랑, 그때 다시 얘기해보도록 하자. 이상.
 


 사랑의 향수 제9번 - 이태신 (연도불명)



 
60년대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괜히 그때가 그리운
안전빵(comblind@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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