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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긴급출동 이너뷰 제 1탄 - 정범구(1)

2003.10.27.월요일
딴지총수

여당이, 뿜빠이 됐다.


우리 정당사에서 야당이 쪼개지는 경우야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집권 여당이 쪼개지는 건 딱 한 번 있었다. 1960년, 4.19로 무너진 자유당 이후 2/3의석을 차지하며 집권했던 민주당, 그 민주당의 분당이 유일한 케이스다. 내각책임제하의 국무총리 장면의 신파와 대통령 윤보선의 구파가 권력다툼을 하다 결국 윤보선의 구파가 떨어져 나와 신민당을 창당한 사건으로, 이후 정국은 결국 5.16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여당이 복수의 당으로 쪼개진 적이 한 번 더 있긴 했다. 95년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에서 떨어져 나온 김종필의 자민련 창당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땐 자발적으로 당을 쪼개고 나간 것이 아니라 3당 합당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이 김영삼에 의해 용도폐기 되어 팽 당한 것이니 굳이 따지자면 분당이 아니라 출당이 맞겠고, 무리가 애초 당을 따로 만들 요량으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개인이 팽당한 후 창당한 것이니 경우가 전혀 다르다 하겠다.


이렇게 집권하고 있는 쪽이 쪼개지는 자체가 극히 드문데다, 쪼개져 떨어져 나와 새로 만들어진 당이 오히려 실질적인 여당인 경우는 더군다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당을 박차고 나온 쪽이 여당이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당 뿜빠이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세계 정당사에서도 매우 드문 케이스 일게다. 


이거 도대체 뭔 일인가. 우리 정치가 그 근본부터 뒤집어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여태 수없이 있어 왔던 정치적 이합집산의 변주에 불과한 건가. 그 속사정을 한 번 들여다보려 한다. 그 첫 번째 시도로 정범구다. 왜 정범구냐. 그건 진도 나가면서 알아보자. (본 이너뷰는 김근태 의원의 이너뷰와 함께 분당 정국에 관한 긴급출동 이너뷰로 9월 중 이뤄졌으나 재신임 돌발사태로 지금 업데한다)





 


이너뷰는 9월 초 딴지 ZN바의 이너뷰룸에서 맥주 몇 병 깔고 보좌관 배석 없이 독대로 이뤄졌다. 그는 앉자마자 왜 하필 자기를 이너뷰하냐고부터 물었다. 수많은 이너뷰를 해왔지만 이렇게 묻기부터 하는 정치인은 또 처음이다. 실제 사정이야 어떻건 사람들이 자길 찾을 이유가 언제나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도취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며, 이유가 어쨌건 일단 자신을 알릴 기회가 오면 머리보다 몸이 더 먼저 나대는 걸 본능으로 하는 족속이 바로 정치인인지라, 대뜸 왜 하필 나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신선했다. (전반적 이너뷰 분위기 이해를 위해 밝혀 두건 데, 당선 이후 대면은 처음이었으나, 그와는 국회의원 이전부터 이런저런 연으로 개인적 안면이 있었다.)





총: 사실은 예전부터 인터뷰를 한 번 하려 했었습니다. 국회의원 되셨으니까.
정: 그 동안은 봐줬구만.(웃음)
총: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다가.(웃음)
정: (웃음)
총: 해설하시다가 선수가 되신 거잖습니까.
정: (끄덕끄덕) 네, 네.


총: 해설하시다 선수로 뛰시니 틀림없이 그 차이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느끼실 거 같고, 더 많이 설명을 해 내실 수 있을 거 같고.. 국회의원 끝날 때쯤 되면 인터뷰를 한 번 해야지..
정: (끄덕끄덕) 음..


총: 국정감사 끝나면 아무래도 재선모드로 정렬이 될 것이고.. 또 최근 분당도 있고 해서 아, 바로 지금이 타이밍이다.. 게다가 이번 분당 때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해서 한 쪽을 선택을 하셨고.. 근데 그 선택이 일반적인 예측하고는 좀 다르고.. 이쯤 되면 정치인으로서 여러 소회가 많을 것이다..
정: (웃음)


총: 밖에서 보던 것하고 실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예를 들면 청탁이 있으면 어떻게 해결을 하는지, 돈은 모자랄 때 어떻게 해결을 하는지, 지역구 관리는 어떻게 하고.. 우선 정치인의 속사정이 궁금합니다. 괴로울 때, 또 뭐 야속할 때도 많을 텐데, 그리고 억울할 때도 있고. NHK 사건 같은 것도 터지고.. 으허허.


정: 허허, 좋아요, 좋아요, 내가 다른 매체 같으면 괜히 돌려서 얘기하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오늘이야 뭐, 김총수 만나는 게 일이지 뭐..
총: 겸사겸사..
정: 서론이 되게 기네..
총: 으하하하



그를 통해 두 가지가 알고 싶었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인가. TV에서 쌈박질 하는 장면에 등장하지 않을 땐 어디서 뭐 하는 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대표로 선출해야 하는 총선을 이제 또 다시 앞두고, 유명 정치평론가였던 이의 입으로 그 속사정을 듣고 싶었다. 개인적인 부분까지.


그리고, 그가 그렇게 정치평론가였기에 그리고 아직 초선이기에 기존의 정치논리로부터 상대적으로 객관적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사이더라는 점에서, 그가 바라본 신당 사태가 어쩌면 가장 본질에 근접한 것일지 모른다는 기대.. 그런 기대를 전제하고 그를 통해 분당의 사정을 들어보려 했다.


총: 예상과 가장 다른 점이 뭔가요? 스포츠에서는 밖에서 선수하다가 해설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는 잘 없는 데 말이죠. 해설하다 선수가 되시니까..


정: 그러니까... 일단 관전하다가 지금 선수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저를 중심으로 얘기하면, 제 성격과 관련해서 얘기하면 제일 어려운 건, 그.. 고독한 솔로가 가능한 직업을 하다가 이제 패거리 속에 묶여 있어서 헤치고 나가야 되는 게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고.. 그게 가장 힘들죠. 평론가라는 거는, 우선 솔로여야 하고, 철저하게 프리랜서라야 되고.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김총수도 잘 이해하겠지만, 사회를 분석하고 자기 얘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고독할 필요가 있죠. 너무 많은 인간관계나, 한국사회 같은 데서, 연고주의에 휩쓸려도 힘들고.. 자신의 깨어있는 지성과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솔로일 필요가 있었어요. 실제로 내가 방송 진행하면서 가졌던 원칙 중 하나는, 관계를 만들지 말자. 인간관계 복잡하게 하다 보면 평론하는데 지장이 많으니까. 외롭게 나 혼자 있는 대로 보고..


총: 할 말 못하니까..


정: 어..어. 그거였는데 지금 이 정치라는 직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가 않아요. 전부 당이라든가, 이 패거리 속에 묶여서 같이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기본 구조가. 그게 개인적으로는 제일 어렵구요. 그 무슨 얘기냐 하면, 수시로 매일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씩 결단을 내려야 된단 말이에요. 어디까지 타협을 해야 되고,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해야 되고, 내 주장을 어디까지 밀고 나가야 하나. 이게 큰 문제죠. 그리고 관련된 문젠데, 두 번째로 어려운 거는.. 평론가의 임무는 자기가 문제를 쭉~ 고민을 통해서건, 자료분석을 통해서건 정리해서 자기입장을 발표만 하면 끝나죠.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본다. 세상사람들이여, 들을지어다.. 듣기 싫으면 말고. 딴지식으로.(웃음) 거기까지가 내 임무고 내 임무는 거기서 끝나는데..


근데 현실정치인이 된 다음에 제일 어려운 건, 사실상 무한책임이라는 거죠. 내가 어떤 말을 하면, 뭐 예를 들어서 이라크파병은 안된다 라는 내 입장을 가지면 파병반대가 실현될 수 있도록 까지 해내야 내 책임이 완수되는 거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뭐 언론과 작업을 하거나 때론 언론과 싸우기도 해야 하고, 동료의원들을 규합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고, 또 당내에서도 만약에 우리 당이 이라크파병을 찬성하는 입장이라면 그 안에서 내가 반대입장을 가졌을 때는.. 그걸 관철해내야 하는 거죠. 하여튼, 아주 어려운 게 평론가는 자기가 발언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정치가의 책임은 발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하는 거죠.


총: 멋진 멘트였습니다.(웃음) 발언에서 끝나는 것과 시작하는 것의 차이라.
정: (웃음)
총 : 좀 다른 능력이 요구되지 않나요. 평론가하고 정치가하고는.
정: 다른 뭐?
총: 그러니까, 각 직업이 요구하는 능력이 좀 틀릴 것 같은데.. 정치인에겐 어떤 게 필요합니까.


정: 아, 그렇죠, 네. 그러니까 정치에서.. 평론가는 내가 아까 고독한 솔로가 가능한 직업이라고 그랬잖아요. 평론가는 누구와 타협할 필요는 없죠. 세상 모든 일에 귀를 열어놓을 필요는 있지만, 자기 입장을 갖고 누구와 타협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정치, 현실정치인이라는 건 끊임없이 타협을 통해서 뭔가 그, 차선을,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만들어 내고, 그게 안되면 차악이라도 만들어내야 되기 때문에 참을성 또.. 다른 사람들과, 우리말로 번죽이 좀 좋아야 된다든가 쉽게 지치지 않고.. 사실, 내가 정치에 들어오길 끝까지 거부했던 게, 내가 바로 그런 걸 잘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치를 못하겠다고 거부했던 건데..


총: 예상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점은 뭡니까? 아무리 이미 잘 알던 판이라 해도...


정: 아니 근데 정치라는 게 그게, 아무리 내가 명색이 정치평론가로 먹고 살았지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굉장히 있어요. 인터뷰 취지를 내가 지금 못 맞추고 있는 지 모르겠는데 나는 내가 정치를 들어올 때 꼭 하겠다는 그런 강한 의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흐름에 좀 밀려서 들어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정치에 들어가서 꼭 (허공을 향해 주먹을 결연히 휘두르며)이렇게 이렇게 해서 성공할 것이다.. 라고 남한테 얘기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나는 상당히 (좀전과 똑같이 주먹을 휘두르며) 실패할 것 같다..(폭소) 그런 예감을 안고 정치에 들어왔거든..


총: 예상과 가장 다른 부분은..


정: 많은 부분은 예견을 할 수 있었던 거고.. 다시 말하지만 집단, 패거리 속에서 내가 내 칼날을 지켜내면서 왕따도 되지 않으면서, 내가 내 생각대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참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하고 왔어요. 그런데, 초기엔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단 환경이 좋았어요. 소위 386들, 여야를 막론하고 386들하고 이렇게 규합하고 그런 분위기가 일어났고. 그래서 초기에는 비교적 좋았는데 근데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옛날에는 야.. 정치 이전에 인간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국회를 한 4년 가까이 보고 나서는, 정치인은 인간 이전에 정치인인 것 같아요.. 요새 인제 우리당이 분당이 되고.. 이런 걸 겪잖아요. 인간적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고요. 뭐 어제까지 가깝게 지내고 속내까지 다 털어 보이고 같이 고민하던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빠이빠이 하고 간다든가.. 일반 사회에서 같았으면 참 그게.. 이거 인간적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라고요..


총: 배신이죠..
정: 어. 배신이고, 뭐 아주 복잡한..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어떻고..
총: 울고불고 난리 나야 되는데.


정: 아, 그런데 이 바닥은 아니란 알이야. 냉혹하단 말이야. 그리고 뭐 그렇게 찢어져도 이제 오늘같이 국감장 같은 데서 만나면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악수하고 겉으로 허허거리고.. 요새도 신문을 보면 우리당 분당된 걸 가지고 여러 가지 가십거리를 만들어내잖아요. 어, 이 사람이 왜 여기 가 있나 하는 것도 있고 허허.. 또 옛날에 어느 신문인가는 그런 표현도 썼습디다. 옛날에 주군관계가 지금 적대관계로 됐다는. 뭐 우리당에 지금 대변인으로 유종필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애초에는 노무현 후보시절 공보특보를 했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뭐, 언론으로선 재미있는 가십거리는 많죠. 일반 인간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긴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데, 정치판에서는 그게 가능한 거죠.


총: 쉽게..


정: 그렇죠. 권력이라고 하는 게 매개가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옛말에 권력은 부자간에도 안 나눈다고 그랬는데, 그런 말 제가 밖에 있을 때도 많이 들었는데, 막상 그 절실함은 정치권 안에 들어오면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권력이라는 게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그게 가장 큰 판단기준이 되는 겁니다. 의리라든가 친소관계라든가 이런 거는 상대적으로 하위개념이 되는 거고.


총: 일반인들이 중시하는 가치들은 무시되고..
정: 꼭 그런 건 아닌데, 국회의원들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차이 나는 건 권력.. 권력을 맛보고, 또는 그걸 구경하면서 권력을 꼭 잡고 싶어하고, 그게 통상적인 인간관계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총: 이젠 정치인이니 그 속성이 이해도 가고 또 익숙해지고..
정: 내가 뭐 이해는 하지만.. 익숙해진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총수가 너무 초장부터 진지하게 몰아 부치니까.(웃음) 내가 긴장을 하는데, 예를 들면 뭐 이런 거야. 우리가 처음에 국회의원 될 때 그런 말을 하잖아요? 국회의원이 되면 백 몇 가지가 달라진다..


총: 아, 그런 게 있습니까.
정 : 아.. 그러니까 저기 무슨, 공항에서는 어떻게 되고 그런.. 그런 게 백 몇 가지가 있대요. 떠도는 말로. 근데 나는 국회의원 당선되고 한 한 달이 지나도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먼저 국회의원 한 사람들한테 뭐가 좋냐고 물어보니까 뭐 신통한 게 없어. 근데 내가 겪어보니까,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어디 외국 갈 때 공항에서 수속 같은 거 복잡하게 안 거치고 의전실 통해서만 나가고.. 그런 건 참 편합디다. 근데, 국회의원 오래 한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라도, 국회의원 떨어지고 난 다음에 전쟁겪는다고 그러는데..(웃음)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공항 수속.. 뭐 그런 수준에서 아.. 이런 게 달라진다.. 그냥 그러지만, 가만 보면 이걸 권력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권에 개입한다든가, 또는 행정부에 압력을 넣어가지고 뭘 한다든가.. 근데 만약에 그런 걸 경험해보고 거기서 파워를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이걸 잡고 있는 것과 안 잡고 있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해가시나?


총: 음. 그게 일반인이 돈 있고 없고를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차이로 느껴지나요?


정: 예를 들어.. 내가 만약 국회의원이 아니면 어디 무슨 행정부 쪽 국과장 만나기도 힘들고.. 또 지가 뭘 하려고 해도 자기 얘기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국회의원이 되면 국장 과장, 장관 차관한테도 뭘 부탁을 하거나 하면 그 쪽에서도 무시는 못한다든가. 그런 걸 경험하다가 만약에 어느 날 떨어져 가지고 완전히 흑사리 쭉대기가 되면, 또 주변에 그렇게 흑사리 쭉대기로 노는 사람들 보면, 그게 참 끔찍한 거야. 권력에서 떨어지고 만다는 게..


총: 중독성이 대단한가 보군요.
정: 중독성이 크죠.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중독되기 전에, 내가 지금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다시 회귀할 수 있을 능력이 있을 때, 관두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요새 심각하게 합니다.


총: 그 말은, 재선출마 안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정: 엉?
총: 그게 아니라면, 이번 총선에 나가겠다 안 나가겠다 라기 보다는 재선이든, 3선이든 어떤 시점까지만 일반인으로 회귀할 수 있겠다 싶은 만큼만 가겠다.. 그런 생각이신 겁니까?


정: 이거 딴지일보에 처음 공개적으로 하는 얘기지만, 지금 심각하게 불출마를 고려하고 있거든요.
총: 이유는..


정: 음.. 우선, 내가 할 일은, 내가 정치 들어오기 전에 하겠다고 했던 역할은, 어느 정도 했다는 거죠.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그게 사회에도 보탬이 되고 자기한테도 플러스가 되는데, 내가 보기에 한국 현실정치라는 건 나로서 아주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총: 소질이 이 쪽이 아닌 것 같으십니까?


정: 음..(끄덕끄덕)
총: 얼굴 두터운 사람이어야 되죠?
정: 얼굴 두터운 사람이어야 되고.. 아까 내가 맨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고독한 솔로기질이 편하고 강한 사람인데..
총: 그거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웃음)



정: 뭐 그렇긴 한데(웃음) 그런 거를 떠나서 생각도 혼자 이렇게 좀 하면서 사물을 보면서 느낀 걸 갖고 얘기하고 싶은데, 이 난잡한 저자거리에서 그냥 묻혀 어울려가면서.. 내 체질과 안 맞아요. 정치에 적합한 스타일은 아까 내가 설명했던 것처럼 끈질겨야 되고 오래 참아낼 줄 알아야 되고 그냥 시정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도 익숙한 사람이어야 되는데..


총: 그런 유형이 따로 있군요. 연예인, 사업가 유형이 따로 있듯이.
정: (끄덕끄덕) 정치인에게도. 적어도 한국정치에선. 난, 스웨덴 정치라면 다른 정치인의 유형이 요구된다고 봐요. 뭐 얼마 전에도 외무부 장관이 죽었고, 86년도에는 올로프 팔메가 부인하고 저녁에 공연 보러 가다가 길거리에서 죽었지만.. 그런 정도의 시민성이 없으면 뭐.. 아니, 암살은 아니고(웃음).. 그 정도 시민성이나 개인주의가 성숙돼 있고 정치인에게까지도 사적인 영역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라면, 할 수도 있겠죠.


난 정치에 들어오라고 해서 영입된 경우인데, 아까 말한 것처럼 이제 첫째, 내가 솔로기질이 강한 사람이라 집단에서 못 버틴다는 거. 둘째는 평론가의 임무는 발언으로 끝나지만 이런 무한책임을 내가 질 수 있을까. 그 담에 세 번째로 내가 자신이 없었던 건, 난 그렇게 애국심이 투철하진 않단 말이야. 그러니깐, 딴지식으로 얘기하는데, 정치인이 된다면 공익을 위해서 나를 헌신하는 건데, 백퍼센트 다를... 내 삶을. 근데, 내 온 전체를 공익을 위해서 바칠 정도로, 내가 그렇게 애국심이 투철하진 않다고.


옛날, 뭐 칠 십 년대, 팔 십 년대는 좀 달랐겠지. 그때는 상황이 엄혹하고, 누구든지 자기를 던져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시대였으니 나도 그런 생각을 충분히 했지만 이제 뭐 이해관계가 다원화되고 어떤 절대 권위도 존중 안 되는 사회에서 백프로 헌신할 자신은, 난 없지. 나도 내 시간 소중하고 나만의 느낌 같은 걸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런 저런 걸 다 감안할 때, 사주팔자가 이렇게 돼서 내가 버텼지만.. 처음부터 난 정치에서 실패할 예감을 안고 들어간 거 라고.. (맥주 벌컥)



" 난 그만큼 애국심이 투철하진 않다. 난 내 시간과 느낌도 소중하다. "


이 말은 한국 정치인에게서 가장 듣기 힘든 유형의 발언이다. 쿨하다.


총: 뭐.. 실패까진..


정: 아니, 이쯤이 내가 나와야 될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쨌든, 선거에 나서면서 공약했던 것은.. 흙탕물의 정치에, 내가 한 구석에 연꽃을 피워 올리겠다. 정치 개혁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둘째는 지금까지 내 정치구호가 언제나 처음처럼이에요. 정치했다고 또 그 쪽 문화나 그 쪽의 논리에 물들지 않고 정치를 시작하던 처음 초심을 내가 끝날 때까지 갖겠다는 게 중요한 유권자와의 약속이었는데..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건, 어느 정도 역할을 했고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요.


정치 내부에서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데 당내의 비민주적인 구도가 완전히 깨졌죠. 제왕적 총재니 하는 것도 우리가, 말 만들어서 DJ한테 게기고 그랬던 거고.. 그 다음에 당내 비민주적인 구조, 무슨 선수(選數) 중심으로 의사 결정되고 그렇게 되던 거 이거 완전히 우리가 깨버렸죠. 우리가 16대지만 들어가면서, "이제 밀레니엄 선수야, 우리 앞에 선수는 다 무시야." 그래 가지고 허허.. 농담 같지만, 그렇게 깨버린 거.


또 이제 밖에 분들은 잘 모르지만, 16대 국회가 처음으로 제 날짜에 국회의장 선임해 가지고 평화적으로 개원을 했어요. 예전엔 매번 국회의장 선임할 때 여야가 싸우고 몇 달씩.. 그걸 원구성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몇 달씩 미뤄지고 그랬는데 우리가 16대 들어가면서 한나라당의 젊은 의원들하고 의기투합해가지고 국회의장을 크로스보팅으로, 절대 당론으로 강요하지 말고 당 내부에 자체 투표절차를 거쳐서 평화적으로 하자. 아주 어려웠지만 만들어냈다구. 새로운 정치를 위한 기존의 구태의연한 관행을 깨는 데, 16대 들어와서, 소위 젊은 386들하고 상당부분 우리가 이뤄냈어요. 그 와중에서 노무현 후보도 상향식 공천에 의한 국민후보로 탄생하기까지 온 거예요. 고기까지가 내가 보기엔 우리 역할이었다고 봐.


총: 우리라고 하시면...
정: 개혁을 주장했던 사람들.. 우리 민주당이 이렇게 분당되고 하는 걸 보면서, 제가 이런 얘기를 언론에 했어요. 우리의 역할과 한계는 이거다. 우리는 앙시앵 레짐을 깨는 데까지는 역할을 했고 또 상당한 부분 이루어 냈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데는 우린 역부족이다..


총: 여기서 우리는 또 누굴까요?
정: 그때는 이제.. 소위 여야를 넘나드는 개혁, 386..
총: 통합..


정: 아니, 그런 협소한 범위가 아니라.. 옛날에는 정개모란 것도 있었어요. 정치개혁을 위한 여야의원모임. 또 우리당에서는 내가 창조적개혁연대라는 걸 만들었고, 그런 와중에 새벽21이란 걸로 좀 확대 발전시켰죠.. 그러나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우리말이 나, 우리라는 걸 섞어 쓰다보니..


총: 아.. 그 정도 우리요.
정: 네. 뭐 우리를 나라고 바꿔 써도 되고. 어쨌든 내가 해왔던 역할, 또 능력도 여기까진 것 같고. 구체적으로 깨부시는 데까지는.. 내가 기득권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나 하나로 계속 깨져가면서 길을 만든 거니까. 거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었고 또 해냈는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 그거는 정치를 오래 한 노련한 사람들의 여러 가지 기법도 익혀야 되고, 수많은 주변사람들을 규합해내야 되고, 뭐 이래야 되는 거 아닌가..


총: 기법이라면, 각종 권모술수..
정: 아, 권모술수.. 음.. 정치공학이라고 해야지 이 사람이.. (폭소)
총: 하하. 근데 말씀하시는 게.. 아무래도 환멸 같은 게..
정: 뭐 그런 게 바닥에 깔려있겠죠. 이 바닥에서말야 내가...
총: 이꼴 저꼴 다 봤고 인제 난 할만큼 했다, 씨바..(폭소)


정: 진짜 내 속 깊은 말은 아 정말 내가 현실정치를 하면서 진흙 묻힐 각오는 했지만, 똥물까지 뒤집어쓰고 싶진 않다.. 나는 살아서.. 살아서 나가고 싶다. 그게 요새 불안해요. 내가 뭔가 큰일 해낼 것도 아닌 거 같고, 꼬라지 보니까. 이 정도까지가 내 역할이고, 능력이다.. 근데 요새 뭐 어영부영하다가 완전히 내가 똥바가지 쓰고, 똥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봐.. 그게 내 밑바닥에 아주 깊은 불안감이에요..


총: 음.. 그 정도인가요, 요즘 돌아가는 게? 오늘 두 번째로 물어 볼 주제가 바로 요즘 돌아가는 사정입니다만.. 아직 거기까진 진도가 덜 나갔고. 다시 돌아가서.. 그러니까.. 돈이 모자라잖습니까..



여기서 정치인에게 가장 민감한 주제, 돈에 대해 물었다.


정: (마시려던 맥주병 내려놓고) 돈이 모자라는 것도 상대적인 얘기예요. 그러니까, 돈이 모자라는 건 돈 쓸 데가 많은데 모자라는 게 하나 있고. 그건 돈을 어디다 쓰느냐 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돈이 어차피 모자라기 때문에, 남들 쓰는 것도 안 쓰는 경우가 있고. 같은 말 같지만 좀 달라요. 얼마 전에 내가 신문을 보다 충격을 받은 게 뭐, 특정인을 얘기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니까. 원희룡 의원이 신문인터뷰를 하면서 자기고백을 하고 자기가 홈페이지에다 매달 자기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올린다고 그래요. 그거 보니까 지구당 운영비 뭐 해서 한 달에 3천 2백 만 원인가, 하여튼 3천 만 원이 넘는 돈을 쓴다는 거 같더라구요. 나 그때 상당히 충격 받았어요. 그러면 그렇게만 해도 1년에 3천 6백 아니, 저...


총: 한 4억 가까이 되죠.
정: 그러니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만 3억 6천이면 뭐 이렇게 저렇게 하면 4억 이상을 쓴다는 건데. 그러면 4억 이상을 또 만들어 낸다는 건데.
총: 생활비는 빼고.


정: 그 4억을 어떻게 만드나.. 저도 원희룡의원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의 소장파, 개혁파. 누가 기업이 돈 갖다 줄 일도 없고 그럴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하면 한 달에 한 천 만원, 천 이백 만원을 써요. 지구당 관리하고 뭐 회원까지 하는데.. 그렇게 해도 거기엔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빠져 있으니까. 그래도 늘 허덕거리거든.


총: 음.


정: 나 같은 경우는 1년에 후원회 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주는 것도 다 신고를 하니까, 대략 한 1억 6천에서 1억 8천 정도 돼요. 그게 인제 더군다나 야당 됐으니까 그나마 개털이겠지만. 그래 뭐 하여튼 주어진 세입세출 범위 내에서 쓰면 한 달에 천이나 천이백이라는 게, 어떤 수준이냐면 지구당 사무실 임대료 내고 지구당에 있는 직원들 월급 주고. 고 정도 수준이라고. 근데 실제로 지역관리를 한다는 사람들 보게 되면 뭐냐면, 지역에 무슨 통반까지 그 통반책 정해놓고, 아파트 같은 경우엔 아파트 동대표들까지 다 조직을 하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씩은 그 사람들이 조직원임을 느낄 수 있게 어떤 형식으로든지 뭐.. 관리를 하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럼, 내가 한 달에 천에서 천 이백 만원 쓰면서 사무실만 유지한다고 하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지역관리는 전혀 안 하고 있다는 얘기라구요. 안하니깐 그냥 1억 6천, 8천 들어오는 돈 가지고 또 버텨요. 역으로, 남들 하는 대로 선배들 하는 대로 따라서 하려면, 내 지역에 유권자들이 한 23만 명 정도 되는데, 정말 1년에 몇 억, 몇 십 억이 들어갈지 모르지. 난 그럴 능력도 없고, 또 내가 옛날 평론가 때부터 주장해온 것처럼 그런 식으로, 구태의연한 정치를 해서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이거는...


총: 딜레마군요.


정: 허. 그러니까. 참 이런 얘기를 동업자들한테 하면 "어... 좋은 얘기이긴 한데.. 웃기는 소리..." 이렇게 되더라고. 그러니까 이게 현실이에요. 일산 같은 경우가 비교적 지역구민들의 수준이 높다고 하는데, 그래도 한국 선거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자유롭지가 않다고. 내가 의정활동 열심히 하고, 또 지역에도.. 특히 교육이나 환경, 교통문제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하느라고 하고 중앙 정부 보조금 갖고 오는 일도 하지만, 지역에서 하는 얘기는 어떻게 의원이 지역구에 코빼기도 안 보이냐.. 뭐 그런다고 하더군요. 코빼기 안 보인다는 거는 통반조직까지 의원들이 관리하는 기존의 관행에 비춰 볼 때, 아니라는 거죠.


총: 돈 부족한 건, 안 쓰는 걸로 해결하셨군요.
정: 안 쓰고, 또 돈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총: 실제로는..
정: 아, 없으니까 안 쓰는 거지.(폭소) 나 같은 경우가 어떻게 보면, 나중에 케이스 스터디로 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새 해봐요.


총: 왜 노대통령이 가끔 "국민들이 야속하다" 정도로 이해될 발언을 가끔씩 하는데, 저는 그게 이해 갈 때가 있습니다. 잘했다 못했다는 두 번째 문제고, 이해는 갑니다. 이해는 가는데.. 여하간 그런 경우나.. 희노애락을 강하게 느낄 때.. 정치인으로 그런 타이밍이 있습니까.


정: 제가 길에 나갈 때, 저는 이제 민주당 의원이기도 하고 민주당이 주로 서민측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또 제 정치 칼라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길을 다닐 때도 보면 특히, 우리 지역에도 못 사는 사람들 지역이 있는데, 그 양반들이 저를 권위로서가 아니라 참 가까운 육친을 대하듯이 반갑게 대해주고 정말 친밀함을 보여줄 때.. 어떤 때는 눈물이 이렇게 올라올 때 있어요. 아,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이렇게 믿고 의지하는구나.. 런 걸 느낄 때에는 아, 이제 이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해야 되겠구나, 공익을 위해서 해야 되겠구나 하는 걸 깊이 느끼게 되는데.. 사실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죠. 우리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 정치에 대한 혐오주의. 제 지역은 이제, 내가 민주당 의원이지만, 제 지역은 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지역이요. 강남지역 비슷한 거죠. 그것도 인제.. 그게 영남 문화하고도 같이 가는데..


: 좀 사는 동네가 다 그렇죠.
: 그래요. 재미있는 거는, 아파트 평수하고 지역하고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간다니까.
: 맞습니다, 신기하게도.


: 우리 표가, 민주당 의원 표는 대개 32평이 기준이예요. 그 밑으로는 민주당이 많고, 그 위로는 압도적으로 한나라당이 많은데.. 직접 그 지역을 다녀보면 32평 이하 지역으로는 호남 사투리를 많이 듣게 되고, 32평 위에 가면 영남 사투리를 많이 듣는데.. 뭐 그런 지역구도 속에서 내가 반쪽 국회의원 하는 느낌을 가질 때..


: 자괴감 느끼십니까?
: 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이거 참, 3D업종이예요. 지역구 관리라는게.
: 3D업종. 하하.
: 어, 아냐. 그러니까 해봐야 아는데..
: 발로 뛰어서?
: 어.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어떤 직업인지 정말 제대로 취재를 한번 하려면, 몇 시간 맥주 마시면서 이렇게 할 게 아니라.
: 24시간 풀, 밀착.


: 맞아요. 그렇게 해봐야 된다고. 지역행사 있을 때 다니다 보면 술을 많이 받아마시게 돼요. 근데 무슨 지역에 체육대회라든가 이런 행사 있을 때면 미리 겁나는 게 안 갈 수도 없고 가면 인제 술이 떡이 되거든. 한번 내가 소주를 몇 잔까지 받는가, 세어본 적이 있어요. 동네 무슨 체육대횐데, 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예요. 그 초등학교가 한 40회 이상 졸업생을 배출했으니까, 기수별로 텐트를 치면 최소한도 텐트가 한 30개 정도는 돼요. 그럼 텐트마다 다니면서 일단, 악수하고 눈도장 찍거든요. 그럼 체육대회고 하니까, 반갑다고 소주 한잔씩 주는 거예요. 아, 처음에 인제 한 두 번 사양해 보죠. 그럼 별로 오는 말이 곱지 않단 말이야. 아, 의원이 말이야, 정범구 생긴 것도 뺀질뺀질해가지고.. (웃음)


: 그거 자뻑이심까? 아님 원래 듣는 소리심까?(웃음)
: 자뻑도 있고. (웃음) 하여간 내가 인제 술을 못마시면 끝까지 버티는데, 좀 마실 줄은 알고 그러니까, 그런 소릴 몇 번 듣다 보면 에이 씨발, 그래 한번 마셔보자. 그런다고. 그렇게 하다가 내가 한번 세어봤어요. 그랬더니 소주로 한.. 56잔까지 내가 세어보고서는 그담에 그만뒀는데.


: 휴 몇 병입니까, 그게?
: 음.. 56잔이면 한 8병 정도 되죠.
: 그 자리에서 서서 그냥 쫙?


: 그렇지, 그거 뭐 한 시간도 안돼. 보세요, 아까 말한대로 텐트가 한 2~30개 되는데, 한 텐트에 들어가면 2~30명 있다고. 그 사람들이 한 잔씩, 한 텐트에서 2~3잔씩만 받아도. 그리고 내가 "쪼금, 쪼금 됐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따른다고, 이 사람들이.(웃음) 그러면 거 한시간에 소주 7병, 8병 마셔요. 그런데, 재수가 없는 날은 그런 행사가 하루에 2건 이상 있는 날도 있어요. 한 건만 있으면 거기서 한 번 딱 돌고 나서 목욕탕 가서 한 2시간 자고 일어나면 되는데, 뭐 아주 떡이 되는 날도 있다고. , 좋아요. 그것도 지역구민과 그렇게 해서 또 스킨쉽을 나누는 것도 좋은데 문제는 국회의원의 하루 일상을 보면, 거 누가 옆에서 지켜보면 꼭 미친놈 널뛰는 것처럼 할 때가 있어요. 뭐 예를 들어서, 내가 한번 가상해서 하루를 구성을 해보자구. 여당의원이니까, 아침에 일곱시에 당정회의 한다고 문화관광부 장관하고 같이 조찬을 해요. 아 그럼 그래도 우아하지. 정책에 대해서 뭐 얘기하고 뭐하고 하니까.


: 폼도 좀 나고.


: 폼도 좀 나고. 그담에 뭐 아홉시쯤엔, 국회에 들어가서 당에 의총에 가서 뭐뭐라고 하고.. 여기까지도 폼나. 또 열시에 우리 지역에 무슨 저 경로잔치가 있는데 거기 오라고 하면 가서 또 노인네들 손잡아 주고. 이것까진 괜찮아. 그담에 뭐, 열 한 시에 어디 향우회 개관식 하는데 오라고 하면 점심시간 끼어 있고, 또 향우회가 표밭이니까 거기서 소주 한 잔씩 하고, 그러고 말이야. 또 아줌마들 반갑다고 삽겹살 고기에다가 저, 새우젓 묻혀가지고 입에 떡 넣어주면 또 좋다고, 먹고 밴드 있으면 또... (직접 댄스시범. 폭소)


아 그럼 또, 오후 두시에 국회 본회의 있다고 하면 본회의 가서, 술도 오르고 하지만 TV카메라 계속 돌아가니깐 근엄하게 앉아있다고.. (폭소) 깜빡 졸면 이제 국회 여직원이 와 가지고 "저 의원님, 졸리시면 나가서 커피 한잔 하고 오시죠" 그렇게 앉았다가 또 뭐 사무실에 민원인들 와 있다고 해서 가면, 아 민원도 여러가지지. 여러 가지가 있어.. 이사람들 얘기할 때,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아 의원님, 이것만 해결해주시면 다음 선거는 틀림없이 저희들이 밀어드리겠습니다"(폭소).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는 해결되고 나서 찾아온 사람은 없어.


그렇게 하다가 아 여기, 또 지역에 초상집 났다고 하면 흐.. 또 저녁에 들어가지. 들어가긴 싫지만. 그래서 웬만하면 우린 초상집을 낮에 가려고 그래요. 근데 낮에 가려고 그러면 지구당 사무국장이나 이 친구들이 막는다고. "아 의원님, 그래도 저녁에 오셔야 주민들하고 막걸리라도 한잔 하시고..." 근데 병원 영안실 가는 건 뭐 괜찮아. 가서 그냥 인사하고, 영안실에서 소주 한두잔 마시고 오면 되는데. 내 지역에도 농촌지역이 있어요. 거기 가면 아직도 곡을 하고 그런다고. 이거, 굴건 쓰고. 옛날 농촌 주택 그 좁은 데, 문지방 있는 데 앉고 넘어가 가지고. 날씨 맑은 날은 괜찮은데 장마철 같은 때, 비오는 날 꾀죄죄한 날 밤에 그런 때 가면 말야. 아 향도 그냥 눅눅하고 사람들한테 문상하고 그러면 저쪽에 차일 처진 데로 사람들이 끌고 간단 말이야. 비 주룩주룩 오고 여름이라 이거 어떨지도 모르는데 돼지고기 갖다놓고, 초고추장에다 찍어갖고 찢어서 입에다 넣어주고 그런다고.(웃음) 게다가 비는 주룩주룩 오고, 아, 끈끈하지.. 거기서 내가 티낼 수 있어?


: 3D 맞군요.


: 아니.. 3D뿐만 아니라, 어떤 때 보면 이게 마음 약한 사람은 정신분열증 생기지 싶어. 이게 냉탕 온탕을, 뭐 아침에 내가 장관 만나러 국회의원 된 것처럼 폼 잡고 가다가, 저녁에 지역에 들어가서는 가장 낮은 자가 돼 가지고 빡빡 기다가.. 그러니 뭐, 집에 와 가지고 내가 옛날에 정치평론가 할 때는 그래도 라디오방송, 생방송 2시간 준비하려면 하루 6시간 정도는 자료도 읽고 책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준비를 하잖아요. 국회의원 하면서 그거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보좌관들이 많은데, 보좌관들이 자료를 만들어 주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차분하게 읽을 시간이 없어. 읽는 동안에도 전화 오고 생각은 머릿속에 엄한 딴 데 가 있고 당이 이렇게 뒤죽박죽 되고 하면 또 뭐 그것도 있고.. 그러니깐,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진짜 정신분열 안 걸리기가.. 우리 직업은 좀 집중을 해야 되는 직업인데, 집중을 하게 놔두질 않지.


총: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한다는 게..
정: 음.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닐 거예요. 딴 사람들하고는 좀 얘기가 다르면 다르겠지.


총: 어떤?
정: 어떤 차이가 있냐면, 일단 문제가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단 본인들이 하고 싶어서 이걸 시작을 했을 겁니다. 그건 중요한 차이죠. 자기들 각오도 있었을 거고. 근데 나는 팔자라고 생각을 해서 이걸 시작했어요.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지만 팔자라고 생각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총: 그럼 정치인 되길 원하지 않으셨단 거네요.
정: 그럼요, 그럼요. 내가 그래서 미디어오늘에 내 입장까지 발표를 했었다고. 자꾸 정치권에서 몇 차례 이미 거부를 했는데도.. 아, 정치권은 집요해요.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어. 난 그래 다 됐다고 해서, 더 이상 끈끈이 못 들어오게 내가 미디어오늘에까지 내 입장을 발표했다고. 난 절대로 정치 안 할거라고. 그런데도 끝까지..


총: 마지막에 넘어가게 만든 카드가 뭐였나요?
정: 그러니까 그, 중간과정이 아주 복잡한데요. 어쨌든 1999년 12월 25일인가 26일날, 당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마지막으로 날 한번 좀 만나자고 해서. "아니 내 입장은 충분히 얘기했는데 또 나갈 필요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이, 그래도 또 한번 만나자" 그래 가지고... 만나서 그 자리에서도 마지막으
로 거절하고, 그러고 끝냈다고. 난 그래서 이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을 했는데, 일은 묘한 데서 터졌어요.


총: 여자를 보냈습니까?(웃음)


정: (웃음) 아니. 그 민주당과는 전혀 관계없이 몇 사람이, 지명도도 있고 이미지도 좋은 사람들끼리 무소속으로 개혁벨트를 한번 구성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이 와서, 아 그래서 조금 관심 가졌는데.. 우여곡절을 거쳐서 다 도망가 버리고, 나중에 나만 남았어. 근데 그때 나를 끊임없이 DJ한테 얘기를 하고 소개를 하고 연루를 시켜주려고 하던 재야출신 목사님이 한 분 계셨어요. 이분한테도 내가 여러 차례 고사의 뜻을 밝혔는데, 이분이 어느 날 DJ하고 나하고 아침식사를 하는 걸 어레인지를 했다고. 그래 DJ가 나하고 둘이서만 아침식사를 하자고 그랬어요. 그게 1월 8일인가 그런데.. 청와대를 들어갔지. 아침 8시 반에 시작해서 10시까지 한 시간 반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근데 그때 내가 운명이란 걸 받아들였죠. 내 12월 26일까지, 그 한광옥 비서실장의 제안을 내가 거절하기까지 한 1년에 걸친 그런 줄다리기를 했었거든.


뭐 그랬어요. 그런데 인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이제 DJ가 아침 먹자고 하니까 아.. 이제 선택은 둘 중에 하나 밖에 없어. 그것까지 거부하거나, 뭐 밥 먹으러 들어가면 그거야 잡힌 거고. 아니면, 대통령이 아침 먹자는 걸 거부하고 원수 되는 거고. 난 DJ를 그래도 좋아했던 사람인데 참...이것도 쉽지가 않더라고. 또 한쪽으로는, 아.. 이 양반이 나에 대해서 이런 정도까지 관심을 갖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끝에 가서는 그랬어요. 이게 팔잔가 보구나. 나로서는 이렇게 정말 끝까지, 거부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랬는데. 또 나는 약간, 나이롱 예수쟁이란 말이에요. 그런 때 또, 그런 때 또 하나님 갖다 팔지. 이게 지금 하나님이 날 보고 가라고 하는 길인가, 미션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인제 청와대에 들어간 거예요. 청와대 들어갈 땐 이미, 마음정리를 하고 들어간 거지.


90분 동안 얘기하는데 처음에 내가 DJ한테 몇 가지 물어봤더니, 이 양반이 또 특유의 스타일로 길게 설명을 해주잖아. 그런데 나도 마음먹고 들어간 거기 때문에, DJ 얘기를 탁 잘랐어. 그리고, 오늘 말씀 드리는 동안에 제가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웃으면서.. 말씀하시고 설명하시고 그런 거, 원래 익숙하게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마음먹고 들어온 날이니까 제 얘기를 좀 들으시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러라고 하라고 그러더라고. 그래 내 얘길 쭉 들었어. 그때 내가 DJ한테 했던 얘기 중에 하나는, DJP 공조하는데 이거 웬 뜨내기하고 같이 연합하다가 말이야, 단골손님 다 놓치고 말이지. DJ설렁탕 옛날에 먹던 사람은 DJ설렁탕 맛 때문에 딴 집 안가고 있던 사람들이 30%인데, 어설프게 무슨 충청도 깍두기 집어넣고 해가지고 뜨내기도 놓치고, 단골손님도 놓치고 이런 식으로 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때 무슨 언론개혁이니 뭐 이런 거 DJ가 초기에 가졌던 그런 개혁들이 지지부진하고 그랬어요. 이것도, 타협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전제에서 타협을 하는 거지 이건 뭐, 타협이 아니라 포기나 후퇴로까지 비쳐지는데...


그래 그런 저런 얘기가 다 끝난 다음에, 자기 어려움을 설명합디다. 소수정권으로 개혁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마지막에는, 내 예기를 다 듣고 난 다음에 DJ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자기가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지만, 그러나 개혁을 위한 열정에서 정박사보다 절대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래 내가 대통령한테, 돕겠습니다. 어차피 들어올 때 각오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혁을 하신다면 돕겠습니다. 이러고서 나왔어요. 그리고 내가 인터뷰를 한 다음에 민주당에 입당을 했는데...


그러나 나는, 대통령과 그런 약속을 했었기 때문에 그 후에 내가 민주당에 들어와서도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 그 당 지도부라든가.. 아, 진짜 지나놓고 보면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는 짓들을 많이 했어요. 끊임없이 당 지도부의 결정에 대해서 혼자 게기고, 비판하고, 판을 바꾸고. 근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는, 내가 무슨 특별한 깡다구나 이런 게 있는 게 아니라 적어도 대통령이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나하고 약속을 했다고 생각을 했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개혁을 돕는 일이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소위 동교동계, 권노갑, 박지원, 이 실세들하고 각을 세우면서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에요.


나중에 나도 사실 DJ한테 대해서, 그 뭐, 정말이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뿌리깊은 실망과 혐오감을 표현했는데.. 박지원이를 다시 비서실장으로 앉힐 때.. 완전히 오기의 정치구나.. 그러면서부터는 이제 DJ에 대해서 좀, 내가 열 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가 민주당에 들어와서, 16대 국회에 들어와서 당내개혁, 당내민주화, 그런 걸 끊임없이 주장했던 데에는 좀전에도 얘기했지만, DJ가 나하고 약속을 했고, 그게 내가 정치에 들어오는 전제조건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걸 할 수 있었어요. 그걸로 인제 내 할 역할은 다 했다고 보고. 뭐 마르고 닳도록 이 판에 붙어있고, 몇 선을 하고, 장관을 하고.. 그럴 욕심은 내가 전혀 없으니까.


총: 권력욕이 별로 없으신 거군요.


정: 뭐 그런 거지. 우린 권력을 그 주변에서 구경도 해봤잖아. 근데 그건 선택의 문제라고 봐요. 난 그 권력이라는 게 허망한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 권력이라는 거는 남을 압제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을 관철시키는 건데.. 난 이 평론가 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일리가, 모든 사람의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거든. 또 그러한 게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욕구가 사실 없어요.


총: 정치는 그런 게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정: 한국사회가 정말 체코라든가, 스웨덴이라든가.. 이상을 갖고 비전을 가진 사람이 비전만 갖고도 시스템이 그런 사람들을 떠받쳐서 나갈 수 있는 사회라면, 나 같은 사람도 가능하겠지만.. 아니면 노통처럼 태어날 때부터 사주팔자가, 자기가 아무리 개판이 쳐도 거기까지 가게 되어있는 팔자면 모르는데.(폭소)




총: 같잖은 정치인들도 있잖습니까.
정: 어?


총: 아무래도 인사이더가 되면 사정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저 개새끼 하다가도 저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해되는 점도 있겠지만, 그래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놈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 이름까지 말해주시면 좋은데..(웃음)


정: 이렇게 얘기하죠. 밖에서 볼 때는 왜 정치가 저렇게밖에 안되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안에 들어와서 보니까 아,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그런단 말이야. 이런 말 나도 해요. 그런 측면이 있지만, 또 다른 한쪽은.. 그렇게 내부자논리로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설명 못할 사안이 어딨어. 알고 보면 다 불쌍한 놈이고, 알고 보면 다 딱하지...(웃음) 근데, 앞에 국회도 내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아주 이해 안 되는 게 많아요. 이게, 사안은 하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은.. 이제 남북교류라는 사안, 하나죠. 근데 동일한 사안을 놓고 정당간에 그렇게 시각이 다를 수가 없어요. 그게 참 적절한 설명이 될지 모르겠는데.. 오늘도 우리가 그 문광위 국감을 가서 보니까 참,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떻게 저렇게 볼 수 있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총: 갭이 너무 크다.
정: 음... (끄덕) 갭이 너무 큰데, 어떤 때 이런 생각이 든다구. 아 저 친구는, 저 친구의 경력이나 이런 걸 보면 참 합리적인 생각을 할 만한 친군데, 진짜 지 생각이 저래서 저러는 건가, 아님 당론이 저렇기 때문에 총대 메고 저러는 건가. 거참 의아할 경우가 많거든. 근데 어떤 의미로는 고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거 내가 타당 의원들이기 땜에 참 얘기하기가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 보면,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참 그 포지션이 진짜 무대뽀인 거야. 당에서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하고(허공에 잠시 주먹질). 완전 지역주의에 매몰돼 가지고.


그런 걸 볼 때 야.. 아무리 쟤들도 뭐 형식적으로는 투표를 통해서 몇 만 명 유권자 지지를 받고 왔다지만, 저게 도대체, 역사의 흐름이라든가.. 이 나라를 끌고 가는데... 저게 어떤 개인의 사병이지.. 저게 무슨 국가의 이익을 위하는 그런 거일 수 있나... 이런 환멸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리고 또, 또라이들도 많고. 내가 보기엔.


총: 하하하
정: 괜찮은 사람도 많지만, 어떤 놈들은 정말 또라이같은 놈들 많아요.
총: 하하하


정: 근데 국회의원 오래 하면 또라이 기질이 강화될 수도 있는 게, 국회의원이 좋다는 게 뭡니까. 뭐라고 남들한테 아무리 지랄해도 저는 아무 책임 안 져도 되거든. 국회의원, 정말 책임 안 지고서 뭐든지 말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그니깐, 인격에 문제가 있는 친구가 만약에 이런 직업을 오래 하면, 그건 정말 변태가 되는 거지. 그런 걸 일상에서도 많이 느껴요. 그 행정부, 단체장 불러내놓고 야단치고 그럴 때도 보면 상식선이, 상식선이란 게 있잖아요? 뭐 일을 잘못해서, 부처업무와 관련해서 야단치는 경우는 그건 쎄게 해도 통쾌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런 걸 정치적인, 또는 자기 어떤 지역과 이해관계가 있어 가지고 하는 거 보면.. 거 일반사회 같으면 용납이 안 되지. 그런 건 도태가 되거나 시장원리에 의해서 차단이 되는데, 국회의원은 일단 권력을 쥐었기 때문에..


총: 그런 대표적인 의원을 한두 명 말씀하시라고 하면..
정: 뭐, 이름까지 얘기하면 인신공격이 되니까.. 하여간 그런 의원들이 있어요.
총: 그 한나라당하고는 체질적으로 같이 정치하기 힘든...


정: 모르겠어요. 뭐 민주당 내에 일부 의원들 내각제 얘기를 하고 하는데.. 물론 내각제도 다른 정파끼리 하는 건 좋은데.. 난 저 한나라당이, 다른 무엇보다도 대북관계에서 인제, 극우꼴통 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참 어렵다고 봐요. 근데 한 가지 내가 조금, 한나라당도 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느끼는 거는, 지금 이제 사회보호법 폐지운동이 일고 있잖아요. 저도 그 사회보호법 폐지에 지금 앞장서고 있는데. 어제 청송감호소에서 70여명이 가출소했습니다. 그 사람들 나왔다고 그래서 내가 저 민주노동당 사람들하고 만났는데, 한나라당에서도 뭐 인권위원장이 그 사람들을 한나라당사로 초빙해가지고 사회보호법 인권악법이니까 뭐 폐지하기로 했다. 이런 얘기가 나와요. 한나라당도 이제 조금씩, 그런 면에서 변화하고 있는데.. 그런 유의미한 변화들을 빼면 아직도 이게, 기득권에 집착하고, 그 어떤 규격 논리보다는 당파성 논리에 더 매몰돼 있고..


총: 이제 내 역할을 다했다..라는 한 축의 갈등이 있는데, 만약에 결국 다시 나가신다면..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에 다시 나가실까요?
정: 다시 나간다면 아마 떠밀려서 나가거나, 먹고 살 게 없어서 나가거나 그런 쪽일 것 같아요.
총: 하하


정: 왜냐하면, 딱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든. 정치권에 남아서.
총: 안 하신다면 방송프로.. 그런 쪽으로 풀릴 공산이..


정: 글세, 그것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미 순결을 버렸기 때문에. 내가 그 동안에 방송평론에서 나름대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정치적 순결성이랄까(웃음).. 내 나름대로 솔리스트로서 그렇게 해온 건데, 그런 면에서 한 번 몸을 버렸잖아. 여관 가자고 그럴 때 끝까지 따라가지 말고 버텼어야 되는데(폭소) 한번 대주고 난 뒤가 이게..(계속 폭소)


아무래도, 일반 국민들이.. 물론, 그렇게 얘기하면 아, 옛날에 봉두완이도 뭐 국회의원하다 테레비젼, 라디오 나왔고, 홍사덕이도 뭐..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데. 근데 그거는 인제, 시청자들이나 수요자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더 두고 봐야 되겠죠. 내가 만약에 정치를 그만 둔다 하더라도, 바로 무슨 뭐 방송평론에 나간다.. 그런 상황은 내가, 내가 원하지 않아요. 좀 떠돌고 싶어, 당분간은. 자유롭게, 여행도 좀 하고..



이쯤에선 취기도 올랐고 입도 풀렸고.. 무엇보다 답변해줄 것 같아서.. 애초 계획에는 없었으나 정치인에게 두 번째로 민감한 주제 그러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 사생활에 대해 슬쩍 물었다.


총: 연애도 좀 하시고..
정: 뭐, 연애는,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거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화장살에 갔다 와서 하기로 하고, 그 사이에 맥주를 하나씩 더 시켜 놓자구.. (화장실 다녀옴)


총: 연애는 어떠십니까?
정: 아니 지금, 그러니까 그 연애가 진정한 사랑? 아니면 그.. 원나잇스탠드?
감: 이건 답변에 따라선 안 쓰겠습니다.(웃음) 얼굴이 알려지면 연애가 힘든데..


정: 그러니까 그 연애란 게 어떤 연애냐.. 사이드디쉬로서냐?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거는 그런 연애냐..
총: 그러니까, 정치인이 된 다음에 다가오는 연애의 기회가 예전하고는 틀릴 것 같은데..
정: 아니 근데, 질문자의 참 진의를 내가 지금 정확하게 파악을 못 했는데.. 
총: 질문은 그런 겁니다. 세인들이 흔히 궁금해 하는 거. 도대체 정치인들은 누구랑 만나나.


정: 뭐 정치인들이 누구랑 꼭 만나야 되나. 아니 근데 그 이전에 난 내 본질적인 사랑관을 얘기하고 싶은데.. 그 내 옛날부터 소신인데. 우리 뭐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또 결혼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뭐 대충 사랑하든지, 아님 여관비 아끼기 위해서든지.. 어쨌든 뭐 그런 충동이 있어서 결혼을 하지만, 결혼 사실이 유지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건 아니거든.
총: 전혀 상관없죠.


정: 여기서 많은 비극이 싹튼다고. 이게 무슨 하늘에서 떨어진 천부권력처럼 말이야. 결혼 자체를. 아, 나도 그래 갖고 마누라한테,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으니까.. 헤어지자.. 이랬다가 아주 작살이 났지. 작살이 나고(폭소) 뭐 3류 잡지처럼 이제 또 굴러가다가..

총: 야.. 이거 저희가 좋아하는 주제입니다. (폭소)
이거 남로당에서 제대로 한 번 인터뷰를 해야 되는데..(웃음)



그에게는 어떤 주제든 긴 말 필요 없이 그냥 화두만 던지면 된다.
그럼 에둘러 가는 일 없이 직선으로 답이 돌아온다.
어찌나 직선인지, 묻는 사람이 다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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