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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유관순 누나 vs 블러디 메리

2003.6.16.월요일
딴지일보 미스테리 조사반


 유관순 누나


어린 시절,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신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땡땡땡 울리면 화장실에 불끄고 혼자 들어가 거울을 쳐다보면서....


"3월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파란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라는 유관순 노래를 10번 반복해서 부르면 거울에 유관순 누나의 얼굴이 스~윽 나타난다는 얘기 말이다.







그리고 그 유관순 누나의 얼굴을 보고 나면 백이면 백 다 죽거나 미쳐 버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당시 기억을 되살려 보면 유관순 누나에 얽힌 괴담이나 전설이 참으로 많이 떠돌아 다녔던 것 같다. 얼굴 반쪽은 남자고 반쪽은 여자라는 둥, 손이 늑대 발이라는 둥, 그리고 이런 류의 유관순 누나의 비밀 10가지를 전부 다 알게 되면 죽는다는 썰도 있었다.


유관순 누나의 비밀에 대해 괜히 선생님한테까지 물어봤다가 "그거 전부 일본놈들이 만들어낸 소문이다."라고 쿠사리 먹고서야 괴담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그 이야기들.


그 중에서 오늘은 딴 거 다 제쳐두고 유관순 누나의 거울 괴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잼있는 것은, 서양에도 이거랑 아주 비슷한 스토오리가 떠돌아 다니고 있다라는 거다.
 


 블러디 메리


"욕실로 들어가서 불을 끄고 완전히 깜깜하게 만든 다음에, 거울을 쳐다보고 블러디 메리(Bloody Mary)를 열 세 번 말해 봐라. 웬 뇨자가 나타나서 얼굴을 할퀼 거다."


"깜깜한 방 거울 앞에서 헬 메리(Hell Mary)라고 일곱 번 말하면 거울 속에서 악마의 형상을 보게 될 거라고 들었다. 이것도 사람들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틀려서, 어떤 사람은 헬 메리를 세 번 말하면 거울이 벌건 색으로 바뀌고 다섯 번을 말하고 나면 흐릿한 얼굴이 거울에 나타난다고도 했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이거다. 거울이 있는 방에 들어가서 불이란 불은 모조리 끈다(화장실에서 하는 게 약빨 젤 잘 받는다). 처음에는 속삭이듯이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라고 읊는다. 읊으면서 목소리 볼륨을 조금씩 키우다가 나중에는 고함 소리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읊으면서 동시에 제자리 돌기를 해야 되는데 거울 앞으로 서게 될 때마다 한번씩 쳐다봐라. 13번째쯤 읊었을 무렵이면..... 그뇨가 나타날 거고.....흠흠....


내 친구가 그러는데, 지 룸메이트가 요걸 해보더니 고함을 지르면서 욕실을 뛰쳐나오더란다. 걔는 사시나무가 되어 있었고 완전히 쫄아갖고 그 일에 대해 말도 못 꺼내게 되었단다. 근데 걔가 뛰쳐나오던 그때 본 애들은 걔 손이 피로 덮혀 있었다고 그러더라."


외국 인터넷 괴담 게시판에 떠돌아 다니는 증언들 되겠다. 세 개의 증언 내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찾아보면 훨씬 더 다양한 내용으로 본 괴담이 떠돌고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다.


주문으로 외는 이름도 블러디 메리가 가장 많긴 하지만, 블러디 본즈(Bloody Bones), 헬 메리(Hell Mary), 메리 월쓰(Mary Worth), 메리 월딩턴(Mary Worthington), 메리 웨일즈(Mary Whales), 메리 존슨(Mary Johnson), 메리 루(Mary Lou), 메리 제인(Mary Jane), 샐리(Sally), 케이시(Kathy), 아그네스(Agnes), 블랙 아그네스(Black Agnes), 애기(Aggie)....까지 해서 허벌나게 많은 이름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내용과는 상관없다만 블러디 메리라는 칵테일도 있다. 보드카랑 토마토 쥬스를 섞어서 만든다. 꼴깍....


주문의 형식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버전에서는 "나는 메리 월쓰를 믿슘미다(I believe in Mary Worth)"라고 해야 된다고 하고, 어떤 거는 "케이시, 나와라!(Kathy! Come Out!)"라고 외쳐야만 된다고 한다. 어떤 소문은 영적인 약빨이 올라서 얼굴 형상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거울앞에서 "블러디 메리"를 반복해야 된다고도 한다.


준비물이 필요하다는 것도 있다. 촛불 하나를 켜 놔야 된다는 넘도 있고 거울 양쪽에 촛불을 하나씩 켜놔야 된다는 넘도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메리의 얼굴이 보고싶어 환장한 자원자로서 반드시 소녀가 수행해야만 한다고 못박은 것도 있다.


거울속의 마녀가 등장하는 방법 또한 구구하다. 나타나서 불러낸 사람을 쳐죽인다는 말도 있고, 미치게 만든다는 말도 있다. 아니면 얼굴을 썌리 할켜버린다는 말도 있다. 거울을 통해 심술궂게 흘겨본다는 설도 있고 여자애 중 하나를 그녀가 살고 있는 거울 세계로 데려가버린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요 블러디 메리란 과연 누구인가?


괴담과 전설에 대한 연구로 꽤나 이름을 날린 민속학자 재닛 랑글루아(Janet Langlois)에 따르면 70년대 무렵부터 블러디 메리 거울 괴담은 미국 전역에 걸쳐 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도시 근교 가옥들의 욕실 거울은 꽤나 큰 게 유행이었으며,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아 낮 동안에도 쉽게 어두워져서 애들은 수시로 그 짓거리를 했다고.


특히 호들갑스런 계집애들이 밤샘 수다떨면서 한번씩 해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머스마들 역시도 한번씩 거울 앞에 서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고 했다. 재닛의 조사에 따르면 메리는 백여년 전에 흑마술에 몰두했다는 죄로 처형당한 마녀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교통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갈려서 죽은 어떤 여자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의 메리 1세가 그 기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시다시피 메리 1세의 별명 역시 "블러디 메리"였으니까 말이다. 메리 1세 썰이 널리 퍼지게 된데에는 그뇨가 어린 여자애들을 죽여서 그 피를 욕조에 풀어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부미용에 좋다나 뭐라나....









메리 1세의 초상화. 여왕의 초상화인 만큼 예쁘게 그린다고 그린 걸 텐데도....


근데 실제 메리 1세(즉위기간 1553~1558)는, 자신의 미모를 잃는게 너무도 싫을 만큼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다. 뭐 그냥 40대 아주머니마냥 풍채좋게 생긴 외모였단 거다. 그러니까 자신의 사랑스런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처녀들을 죽여서 피로 목욕을 했다 어쩌구는 좀 말이 안되는 소리고 역사적인 기록도 전무하다.


그뇨의 아버지였던 헨리 8세는 일생동안 6번 결혼했는데 교황이 예전 마누라들이랑 이혼하도록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개신교를 국교로 삼아 버린 인물되겠다. 그렇게 개인의 여성편력을 위해 국교까지 바꾸어 버린 헨리 8세가 죽고, 메리의 오빠인 에드워드 6세가 잠깐 즉위하지만 약골이라 16살에 죽어버린다.


다음에 바통을 받아서 즉위하게 된 메리 1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여서 아부지가 한 일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영원한 파멸로부터 영혼들을 구원하겠다는 대의명분으로 엄청난 수의 개신교도들을 처형시킨다. 그러니까, 그뇨가 "블러디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거는 재임기간 동안 카톨릭을 국교로 바로 세우기 위해 수많은 개신교도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시중에 떠도는 일부의 이야기처럼 영국 여왕이 바로 거울 속에 나타난다는 그뇨라는 썰도 정답이라고 보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거다. 심지어 메리 1세의 본명은 메리 튜더(Mary Tudor)로, 위에 나열된 블러디 메리의 다른 이름들과도 확연하게 다르다.


어떤 넘들은 거울에서 불러들이는 "블러디 메리"가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메리(즉위기간 1542-1567)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근데 요 메리는 역사적으로도 살인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으며 시시하고 띨띨한 여자라서 괴담의 주인공이 될 건덕지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결국 서양의 어린애들은 블러디 메리 블러디 메리 하고 불러대지만, 울나라의 유관순 누나와는 달리 그 메리가 어떤 메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답이 안 나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거울 괴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우원은 유관순 누나의 거울 괴담 역시 서양에서 건너온 유행의 하나라고 본다. 왜냐하면, 거울을 통해 영혼을 불러낸다는 주술 자체가 서양에서는 꽤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거기 때문이다.


몇백년 전부터 서양에서는 어린 소녀들 사이에서 미래의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한 주술법이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어떤 날을 점지받아서, 그날 밤에 어두운 방에서 정해진 주문을 반복적으로 외다가 거울을 보면 미래의 신랑 얼굴이 두둥실 뜬다는 게 바로 그 주술의 내용되겠다. 여기에서 여러가지 변형된 형태의 놀이가 나왔는데, 블러디 메리 거울 괴담 역시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거울이 현실과 영혼의 세계 사이에 놓인 관문이라고 믿고 있는 문화 또한 꽤나 광범위하게 존재한다고 한다. 집안의 사람이 죽으면 매장되기 전까지 집구석의 모든 거울들을 덮어놓는 풍습도 있다는데, 그러면 영혼이 거울속에 갇혀 있게 되어서 훗날 주술을 통해 부를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거다.


이와 같은 주술의 형식, 그리고 거울을 대하는 서양 사람들의 인식을 놓고 볼 때 블러디 메리와 유관순 누나 거울 괴담은 결국 서양 문화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거울 괴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나 오랜 시간동안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괴담을 소비하는 연령층이 사춘기가 되기 직전의 소년 소녀들 중심이라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9살에서 12살까지의 연령대를 "로빈슨 시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때의 아이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놀이와 밤에 노는 거에서 특별한 스릴을 느끼는 걸 즐기는 경향이 강하다고. 끊임없이 흥분과 공포에서 어떤 재미를 찾아내기 위해 모험을 일삼는 게 마치 탐험가 로빈슨 크루소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되겠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저 나이때는 그렇게 놀았던 듯 싶다. 탐정놀이에, 간첩 찾아 다니고, 동네 흉가 같은데 기웃거리면서 말이다. 그때는 뭔 소문도 그리 많았고 친구넘들의 과장과 대뽀는 왜 그리도 심했던지.... 물론 어느 시기부턴가(고추에 털이 나기 시작하던 시기와 비슷하게 맞물리는 듯) 그같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씩 사라져갔었다.
 






런던에 계신 파토님의 제보에 따르면 어두운 방에서 5분동안 거울 속의 자기랑 눈싸움을 해서 이기면 죽는다는 괴담도 있다고 한다. 파토님은 실제로 그걸 시도해 보았으나 2분여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만두고 말았다는데, 점점 자신의 모습이 기괴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5분을 그 상태로 있다가는, 죽지는 않더라도 미칠 정도의 쇼크를 받았을 거라고 증언했다.


거울에 대고 유관순 노래를 10번 부르건, 블러디 메리를 13번 부르건 결국 거기서 나타나는 무서운 형상은 결국 감출 수 없었던 자기 내부 공포감의 일그러진 표출이 아니었을까? 군대에서 환각을 느낄 수 있으니 한 곳을 지나치게 오래 응시하지 마라며 경계근무법을 가르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아니, 정말 거울 속에는 영혼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그렇다면 오늘 밤 자정을 기하여 직접 한 번들 해 보시라.


<참고 자료>


1. Urban Legends Reference Pages © 1995-2003
by Barbara and David P. Mikkelson
2. Brunvand, Jan Harold.  <The Mexican Pet>
New York: W. W. Norton, 1986.
3. Brunvand, Jan Harold. <Urban Legends>
The San Diego Union-Tribune. 1988
4. de Vos, Gail.   <Tales, Rumors and Gossip>
Englewood: Libraries Unlimited, 1996.


 


 
딴지일보 미스테리 조사반 선임연구원
카오루
(meanjune@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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