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서울에 프로축구팀을 만들자 2003. 6.15 토요일
2000년 봄에 잠실주경기장에서 한일전을 본 적이 있었다. 전날부터 밤잠 설치면서 경기날을 목빠지게 기다렸건만 막상 경기 볼 땐 실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맨 꼭대기에 앉아서 그런 건진 몰라도 백넘버 식별은 고사하고 선수들이 풀숲의 개미떼처럼 조그맣게 보여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하석주가 결승골 넣은 것도 일제히 함성이 터진 후 반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잠실주경기장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거늘 그 이후로 잠실주경기장은 본 기자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 그런데 상암월드컵경기장 한 번 가보구 나선 첫눈에 반해 버렸다. 처음 상암월드컵경기장 전경을 바라본 순간, 그 웅장함에 할 말을 잃었다. 경기장 안에 들어선 순간, 그 가슴 벅참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1등석부터 3등석까지 다 앉아봤지만 다 잘 보여서 너무 좋았다. 축구도 축구지만 실은 상암월드컵경기장 시설에 뿅 갔던 거다.
그럼 뭐하냐. 이렇게 훌륭한 시설을 썩히고 있으니 말이다. 왜냐?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이 없기 때문이지. 며칠 전 인천시가 시민구단 창단을 공식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은 그런 낌새조차 안 보인다. 작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잠깐 이러한 논의에 불이 붙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누구나 서울에 프로축구팀이 생겨야 한다는 것엔 공감하지만 진행상황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왜 서울에는 프로축구팀이 없는 걸까. 왜 세계인이 극찬한 문화유산을 온전히 써먹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상암월드컵경기장은 어떤가? 올 한해 상암월드컵경기장에는 축구경기 8경기, 문화종교행사 5건이 잡혀 있다. 해질녘 탁 트인 경기장에서 애인과 나란히 앉아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클래식 선율에 흠뻑 빠져본다.. 음, 좋다. 이런 문화행사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 10개 구장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기도 하다.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사용료 수입만 10억이다.근데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뭐하는 곳? 그렇지. 축구전용구장이다. 축구하라고 돈 쳐들어서 지어놨더니만 축구는 딸랑 8경기밖에 안 한다. 한 달에 한 번 꼴도 채 안 되는 것이다. 반면 연고 프로팀이 있는 다른구장에선 K-리그 경기가 있기땜시 최소한 22경기는 볼 수 있다. 무지무지 불공평하고, 무척 열받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왜? 서울에는 프로축구팀이 없으니깐. 하지만 본 기자, 넋놓고 가만있자니 좀이 쑤시고 어째 기분도 꾸리꾸리해서 대체 서울 연고 프로팀 창단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뭔지 알아봤다. 휴우~ 어딜 가나 결정적인 순간 발목 붙드는 건 돈인가부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구단을 만들려면 상암월드컵경기장 건설분담금을 내야 되는데, 그게 자그마치 250억원이나 된다. 당근 궁금증이 생길 꺼다. 건설분담금을 왜 내야 돼?, 대구FC 창단할 땐 그렇게 많이 없어도 되던데 서울은 왜 그렇게 비싼거야?. 한마디로 분담금은 서울 입성 프리미엄 되겠다. 그리고 250억원이라는 돈이 어떻게 생겼냐면, 잠시 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울시 : 경제도 어렵고.. 지금 막대한 돈 들여서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지을 때가 아닌 거 같아. 결국 앞으로 창단할 서울 연고 구단은 그때 축구협회가 진 빚 250억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되는 거구,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부담해야 되니깐 기업들이 서울에 팀 창단하겠다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담 첨부터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이 없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한때는 세 개 팀이 서울 한 곳에서 복작복작 거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 팀이 동대문구장 한 곳을 나눠쓰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마침 축구전용구장 건설이라는 숙원 과제를 안고 있던 서울시는 세 팀 모아놓구서 결단을 내린다. 모두 서울을 떠나시오. 다만 복귀하고 싶으면 축구전용구장 만드시오.전용구장 만들려면 돈이 얼만데 별 수 있겠어? 96년, 세 개 팀은 모두 서울이랑 빠이빠이하고 봇따리 챙겨서 각각 안양, 부천, 천안으로 제 살길 찾아 떠났다. 몇 년 후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떡하니 생겼지만 세 개 팀은 250억원이라는 돈과 다른 이유들로 인해 감히 서울로 복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저렇게 놀리도록 그냥 놔둬야 하는가? 그럴 순 없다. 물론 돌파구도 있다. 우선 서울시는 건설분담금을 일부 탕감해주는 게 어떻겠는가. 솔직히 너네, 상암월드컵경기장 덕분에 떼돈 벌었잖아. 앞으로는 돈을 갈퀴로 끌어모으다 시피 할꺼구. 물론 애초에 250억원 받기로 약속했었지만 돈이 프로축구팀 창단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삭감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 서울시의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과 아량에 감동 받아서 모두 박수 쳐주고, 틈만 나면 서울찬가 불러줄 꺼다. 대한축구협회도 대책없이 건설분담금 깎아달라고 조르지만 말고 해법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보아하니 서울시가 250억원에서 100억 깎아주면 우리도 100억 지원하는 거 고려해 볼께. 이런 생각인 거 같은데 지금 눈치 보면서 기 싸움할 때가 아니잖아. 따지고 보면 250억원이라는 돈도 니들 때문에 생긴 거구. 무턱대고 100억 탕감해달라고 떼쓰지만 말고, 100억 깎아주면 대신 뭘 해줄 건지.. 이런 저런 구체적인 방안들을 맹글어 갖구서 협상 테이블에 앉으라는 거다.
끝으로 시민구단이냐, 기존구단의 서울 입성이냐.. 이 문제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한데 본 기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하루 빨리 서울에 프로축구팀이 생겨야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 구단의 형태는 반드시 시민구단이어야 한다. 이유? 대전 시티즌이나 대구FC 홈구장 한 번 가보시라. 안 되면 TV중계(요즘 지역민방에서 K-리그 중계 많이 해준다)라도 함 봐라. 그럼 바로 무릎팍 탁 칠 꺼다.
지방팬: 우리 동네에도 월드컵 경기장 있는데 왜 A매치는 맨날 서울에서 하냐? 경기할 때마다 서울 왔다 갔다 하는 것두 장난이 아니야. 타격이 너무 커. 서울팬: 그래도 넌 프로축구는 자주 볼 수 있잖아. 우린 가끔씩 하는 A매치밖에 못 봐. 서울에는 연고팀이 없으니깐. 지방팬: 그럼 수원, 안양, 성남, 부천 같은 수도권 도시 가서 보면 되겠네. 서울팬: 차라리 대전을 갔다 오겠다. 우리 집이 서울 북부 끄트머리잖아. 저번에 수원월드컵경기장 갔었는데 왕복 6시간 걸리더라. 지방팬 : ??? 서울 사는 팬들은 서울에 팀이 없으니까 그나마 지리적으로 가까운 성남, 부천, 수원, 안양 등을 응원하는데 서울 강북 사는 한 팬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쉬운 일 같지만은 않았다. 본 기자도 좋아하는 선수 따라서 이 팀, 저 팀 기웃거려 봤지만 아직 딱 내 팀이라고 생각되는 팀을 만나지 못했다. 뭐니뭐니해도 스포츠는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보는 맛이 나는데.. 서러워도 할 수 없지 뭐. 오늘도 서포터스석 옆자리에 슬쩍 끼어 앉아서 응원하는 수밖에. 대전 vs 수원전 갔다오고 난 후 더 우울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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