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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영화] 해머 영화사를 아시는가?

2003.6.12.목요일
딴지 추억영화 우원회


왔돠, 공포의 계절 여름이 돌아왔돠. 후덥지근성 짜증이 팍팍이는 여름에 등골오싹 머리쭈빗하게 해주는 공포영화만큼 시원한 게 모가 있을까?


팥빙수도 있고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도 있다고 지금 니덜 반박하는 거 눈에 선한데 영화처럼 오랫동안 션하게 해주는 건 없잖어... 에어콘 틀어주는 은행? 그럼 거기로 가시덩가...


우짰든, 쎄바닥 늘어지는 여름이 돌아온지라 지금 영화계는 공포영화를 줄줄이로 대기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본지도 유행을 쫓아 이 대열에 과감히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모,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소리는 아니고 훌륭한 공포영화 아니 공포영화 장르를 니덜에게 소개해주겠다 이 소리다. 바로 영국의 해머 공포 영화다.



 
해머 공포 영화의 시작


1950년대 중반까정 영국 영화가 강세를 보인 부문은, 당시 세계대전을 재료 삼아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구라 깐 도큐멘터리와 이와 같은 추세에서 더욱 확장된 사회성 깊은 사실주의 영화 등 주로 대중의 대구빡에 스팀을 가동시키는 무거운 주제의 것들이었다.


이러다 보니 영국 영화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널부러져 꼬추 쪼물딱거리며 볼 수 있는 오락영화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 때, 이 두 가지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저 혜성과 같이 등장한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짜잔!









해머 공포 영화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해머 공포 영화란 뭐시냐? 해머에 맞은 것처럼 충격적으로 무섭게 해줘서 그렇게 부르냐, 하면 건 오바고. 에.. 그 모냐, 긍까 해머 영화사가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정 제작했던 일련의 공포영화를 일컬어 부르는 용어다.


1934년에 가게 문을 연 해머영화사는 첨부터 공포영화를 만들어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라디오나 테레비에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와 이야기를 빌려와 싼 값(전문용어로 저예산)에 찍어 배급하는 일종의 B급 영화를 주로 만드는 회사였고, 이 전략은 그럭저럭 맞아 떨어져 40년대 후반까정 해머 영화사의 이름을 영국 내에 알리는데는 성공하였으나 흥행 면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차기작을 준비하는데 금전적으로 애려움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 영국에 들어와 있는 미국 영화사들이 지원사격했던 탓인데 흥행이 신통치 않았던 해머 영화사에 관심을 보인 건 1년에 벌어들인 소득을 천칠백만 달러 이상씩 자신의 나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는 영국의 법조항 때문이었다.


이러한 난조건을 미국의 영화사덜은 영국 영화사와의 공동제작이라는 꼼수로 돌파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 결과, 저예산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해머 영화사가 가장 투자하기에 굿~한 파트너였다.


해머 영화사에게도 안정된 자금이 확보되는 이런 미국 영화사덜의 미끼를 덥썩 안 받아먹을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윗썰에서 밝혔듯 점차 오락성이 희박해지는 영국 영화계에 미국 영화사덜이 계속해서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왜, 관객이 안 모이니까 쩐이 안 되잖어...









<The Quatermass Xperiment>


50년대 중반이후 많은 미국 영화사들이 빠져나가게 되었고 자금줄을 잃게된 해머 영화사는 덩달아 시련의 시간을 맞는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자신들의 특기를 십분 발휘하여 B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시리즈 물인 <The Quatermass Xperiment>를 1955년에 제작하였고 이게 터져 자국 박스오피스 기록을 깨는 것은 물론 미국에까정 침공, 거서도 인기를 모으게 된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해머의 수괴 제임스 카레라(James Carrera)는 자신의 영화사가 단순히 TV 인기물을 끌어와 B급 영화로 제작하는 마이너 수준의 회사로 남아 있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때마침 공포소설의 엄마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큐라>의 판권이 소멸된 상태라는 소식을 접했고 그는 이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곧 테렌스 피셔 감독을 고용하여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The Curse of Frankenstein>를 완성하였다. 이 영화는 제임스 카레라의 바램대로 해머 영화사를 영국영화와 공포영화 역사를 언급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를 시발로 제임스 카레라는 좀 더 자신감을 얻었고 해머영화사는 계속해서 <드라큐라 Dracula>, <늑대인간의 저주 The Curse of the Werewolf> 등 해머 공포 영화로 묶여지는 작품들을 줄줄이 사탕으로 내놓기 시작한다.



  
해머 공포 영화의 특징


해머 공포 영화를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작품은 당근당빠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출발부터 헐리웃 유니버셜의 30년대 호러 클래식의 대표작인 제임스 훼일의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었다. 그래서 해머의 목표는 유니버셜의 작품들과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차별을 두느냐였다.


감독을 맡은 테렌스 피셔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주>가, 인간의 오만함이 빚어낸 과학의 위험성에 더 중점을 둔 유니버셜의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메리 J. 셸리의 원작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테렌스 피셔의 영화는 미친넘 빅터 프랑켄슈타인(피터 쿠싱 분)이 서서히 악에 물들어 가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영화의 이야기적 관점은 단지 상대적인 차원에서의 차이점 일뿐이고 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대신 유니버셜의 호러 클래식과 해머 공포 영화와의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면 이는 전자가 흑백이었다면 후자는 컬러란 사실이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구 하실 독자덜도 있을테지만 이거 두 영화의 차이를 언급하는데 있어 존나게 중요한 거다. 흑백필름인 <프랑켄슈타인>은 명암의 차이를 이용한 촬영으로 원작소설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기보다 오히려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에 더 가까웠던 반면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컬러 촬영 덕에 원작이 가지고 있는 고딕 이미지를 제대로 살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머의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유니버셜의 <프랑켄슈타인>


이 영화 이전 프랑켄슈타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중에 컬러로 촬영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사실도 <프랑켄슈타인의 저주>가 기념비적인 작품 대접을 받는데 한 몫 단단히 하였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의 성공에 고무된 해머 영화사는 테렌스 피셔 감독과 피터 쿠싱 그리고 괴물(the creature)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리, 이 트리오를 다시 기용하여 고딕 이미지와 핏빛 색채가 강렬한 작품, 브람 스토커의 원작소설 <드라큐라>를 영화화하였다.


테렌스 피셔 감독은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와 달리 소설 <드라큐라>를 대폭 수정, 무대를 드라큐라의 성에 짱 박아놓고 반 헬싱 박사와 드라큐라가 일대일 맞짱을 뜨는 형식으로 영화를 구성하였다. 게다가 소설이 가지고 있던 야리야리한 적인 이미지를 대부분 삭제하였는데... 아~ 소설의 백미 에로스적인 요소를 뺐다는 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우쩌겠나, 감독이 빼겠다는데...


각설하고, 이는 다시 말해 드라큐라의 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소설 <드라큐라>가 고딕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고 특히 드라큐라의 성이 이런 특징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탁월한 해석이었다.









유니버셜의 <드라큐라>와 목이 같다는 이유로 미 개봉시 <Horror of Dracura>라는 이름으로 간판에 걸림.


결국 테렌스 피셔의 <드라큐라>는 고딕풍의 재현이란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를 넘어서는 작품이었다. 해머 공포 영화를 해머 고딕 영화라고도 바꿔 부르는데 <드라큐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자명한 사실이고.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와 <드라큐라> 역시 <The Quatermass Xperiment>처럼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해머는 배급권을 넘긴다는 조건으로 유니버셜로부터 호러 클래식 리메이크 권한을 넘겨받을 수 있었고 곧이어 <미이라>, <늑대인간의 저주>, <오폐라의 유령> 등을 쏙쏙 발표하며 탄탄대로를 펼치는 듯 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와 <드라큐라>의 인기에 너무 도취됐던 것일까... 해머는 별 고민없이 이 두 캐릭터를 쥔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물을 구성하여 속편을 양산하는 를 범하였고 또한 싼값에 언넝 찍어야한다는 주의 땜에 같은 배우에 심지어는 같은 세트에서 찍다보니 팬들은 점차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려 해머는 나름대로 새롭다면 새로울, 성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한 뱀파이어 시리즈로 이 난관을 극복하려 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처음의 참신함을 깍아먹으며 결국 해머 공포 영화의 화려했던 시절은 1970년대 후반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고 해머는 테레비 시리즈 물을 영화화하던 초창기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해머 공포 영화의 스타


해머 공포 영화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 이 장르는 두 명의 중요한 스타배우를 배출하였다.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가 그 장본인이다. 그 중 피터 쿠싱은 해머 공포 영화가 하나의 하위장르로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피터 쿠싱


특히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연기한 피터 쿠싱의 매력을 간파한 해머 측은 미친넘스런 캐릭터를 쥔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줄줄이 비엔나로 제작하여 피터 쿠싱에게 추파를 던졌고 이럴 때마다 피터 쿠싱은 놀라울 정도로 미친넘스럽게 연기를 펼쳐 미치광이 박사 역은 이후 해머 공포 영화를 말하면 빠지지 않는 중요 특징이 되부렀다.


그렇다고 그가 항상 미친넘 역을 맡은 것은 아니고 <드라큐라>나 <바스커빌의 개>에서는 그나마 정상적인 반 헬싱이나 셜록 홈즈와 같은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피터 쿠싱은 1957년의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를 필두로 1971년에 만들어진 <Twins of Evil>까정 거의 매번 비슷한 역할만을 되풀이하다보니 관객들에게 호러 전문배우로 인식이 되었고 피터는 이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다.


하지만 피터 쿠싱은 해머 공포 영화로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라섰고 후에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서 나쁜넘 편 사령관 타킨으로 출연하는 등 해머의 명성을 발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니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의 사악대장, 사루만으로 잘 알려져 있는 크리스토퍼 리는, 연극무대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던 피터 쿠싱과 달리 해머 공포 영화에 출연하기 이전부터 B급 영화에 단골로 출연한 배우였다.


그의 강점은 190cm가 넘는 큰 키와 말랑말랑함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차가운 면상이었다. 그래서 주로 괴물이나 악역을 맡았으나 프랑켄슈타인은 어쩌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유니버셜의 <프랑켄슈타인>이 발표된 이래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은 바로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고정되었는데 잘 바바, 위압적이기보다 잠이 덜 깬 눈이 다소 멍청해 보이고 회칠한 하얀 얼굴이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 크리스토퍼 리와 어울려?











요 얼굴이... 요거랑 어울려?


그러나 유니버셜은 오리지날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모방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상태였고 그로 인해 해머 영화의 프랑켄슈타인은 크리스토퍼 리의 인상을 한껏 활용한 흉악한 인상의 괴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요렇게.




그로 인해 크리스토퍼 리는 보리스 카를로프, 벨라 루고시에 이어 드라큐라 전문배우로 악명을 떨치며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도 구축하였으나 그는 드라큐라에만 배역이 묶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크리스토퍼 리는 해머가 그렇게 바지 가랭이 잡고 늘어졌음에도 드라큐라 시리즈에 계속 출연하는 것을 포기했고 대신 자신의 길이라 판단된 악역전문 배우 Way로 돌아와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매력적인 나쁜넘 스카라망가 역에 출연하는 등 악역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는, <반지의 제왕>...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을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제작자가 고딕풍의 공포영화를 만들어 볼 의향이 없느냐고 의견을 타진하길래 앞뒤 잴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단박에 하겠다고 했단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색깔 있는 공포영화가 되려다 끝내 좌초해 버리고 만 <장화, 홍련>인데 딴 건 제껴두고 정말이지 이 영화가 보여준 무대라든지 미술은 무척이나 인상 깊은 것이었더랬다. 그 때문에 참신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 역시도 의식하고 있었든 아니든 해머 공포 영화에 영향을 받은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음이다.


다시 말해 해머 공포 영화가 영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색깔 있는 시각적 이미지가 후배 공포 영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 해머 공포 영화가 왜 중요한 지 이제 알겠지.


현재 해머 공포 영화 작품으로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주>가 유일하게 국내에 출시되어 있으니 시간이 되시면 한 번들 보시길. 그럼 여기서 마친다. 이상!



 
딴지 추억영화 우원회
나뭉이

(namung@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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