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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부쉬야, 중동에서 손 떼라!

2003.6.16.월요일
딴지 국제부


2003년 6월 4일,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만큼이나 온화한 희망의 기운이 감도는 어떤 회담이 요르단의 온천 휴양지인 아카바에서 열렸다.


이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부쉬는 이스라엘 총리인 아리엘 샤론과 올해 초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총리로 새롭게 등극한 마흐무드 압바스를 한 자리에 초대해 놓고 중동 평화 계획안을 함께 마련하면서 활짝 웃는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게 했다.









아카바에서 만난 압바스, 부쉬, 샤론


수 천년 전부터 비옥한 초승달지역의 한쪽 젖줄이 이어져 내려오는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약속의 땅이니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니 하면서 죽음의 싸움을 벌여왔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대표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하에 또 다시 화해의 자리에 함께 앉은 것이니 중동 평화 정착의 역사상 오슬로 평화협정(1993)에 버금가는 진일보한 역사적인 자리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이 화해의 모임을 주선한 인물이 그 누구도 아닌 전쟁광 부쉬였다는 점에서 전 세계는 적잖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부쉬는 그동안 대 중동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있어서 트루만 대통령 이후 보수 우익 정권이 불문율처럼 지켜오던 친이스라엘적 성향과는 달리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의 편에서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이를 두고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소속으로 일했던 리 파인스타인(Lee Feinstein)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쉬 대통령이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도 않은 현안에 직접 뛰어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평가했고, 슈피겔(Spiegel)은 그간 보여준 미국 정부의 태도와는 달리 부쉬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하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랍인들 또한 새삼 놀라워하고 있다는 표정을 전했다.


실제로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압력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전에 없던 것이었다. 부쉬가 지난 5월,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과 점령지로부터의 군대 철수의 내용을 담고 있는 로드맵 초안을 이스라엘에게 제안했을 때 샤론 총리는 곤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선포하면서 일어난 1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를 획득하며 얻어낸 팔레스타인 땅에서, 2000년동안 그 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던 40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영구히 추방시키고 유대 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여지껏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로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다시 귀환시킨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들의 신앙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샤론 내각은 비록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해서 이 평화안을 승인하기는 했지만, 로드맵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에 앞서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16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킨 바 있다. 이것은 시오니즘을 공식 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에 대해 부쉬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문제와 이스라엘 점령지 철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이스라엘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샤론에게 전했다. 이러한 부쉬의 단호한 태도는 그동안 미국의 친이스라엘 편향 정책과 이라크 전쟁으로 분노하며 허탈감에 잠겨 있던 주변의 아랍 국가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샤론과 압바스가 팔짱을 끼고 로드맵이 펼쳐진 붉은 양탄자 위를 걸어가는 자리에 초대된 중동의 아랍 국가들은 부쉬가 중재한 이 평화안을 지지하는 데 아낌없는 성원을 던지면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당사국들도 따로 따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 평화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다짐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바야흐로 중동 지역에 평화의 봄날이 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고 기립 박수를 치려고 일어선 이가 있다면 잠시 좌정해 주기를 바란다. 아직 찬사를 날려주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그 평화안의 내막을 살펴보자면 겉보기와는 달리 이상한 점이 한 가지 발견된다. 그것은 평화를 논의하고 계획안을 발의하는 이 자리에 그동안 그렇게도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어왔던 한쪽 편 당사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스라엘의 반대편에 팔레스타인의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가 앉아 있지 않았느냐고? 설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그렇게 질문할 사람이야 있겠냐마는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압바스가 누구인가?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이었던 아라파트의 힘을 무력화시킨 후에 새롭게 세운 꼭두각시에 불과한 인물이다. 국제적으로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내부에서조차 지명도가 별로 없는, 미국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물이란 말이다.









Where are you?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수도 없이 괴롭혔던, 그래서 진정한 중동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았어야 할 파트너는 압바스가 아니라 샤론의 숙적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 뿐 아니라 시리아와 레바논과 같은 팔레스타인의 후견국들이자 반미 아랍 국가들마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이는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물론 그 이유는 폭력을 휘두르는 강경파들은 모두 살인자들이라면서 부쉬가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데 있다. 이렇게 해서 이곳에는 오로지 미국에 협조를 약속한 아랍인들로만 가득했을 뿐 정말 평화를 위해 손을 맞잡아야 할 상대편들은 없었다.


샤름 알셰이크에서 논의되고 아카바에서 발표된 이 중동 평화안은 그래서 불행하게도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비단 코흘리개 아이들의 우격다짐 싸움에도 화해를 시킬 때는 직접 당사자 아이들을 불러서 잘 타일러 악수를 하게 하는 법이다. 이건 상식 차원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중동 평화안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도대체 한쪽 당사자가 빠진 상태에서 누구와 평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하는 것인지...


사실 미국은 중동 평화 로드맵의 기본 구상을 작년 12월에 이미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부쉬는 팔레스타인에 새로운 총리 정부 체제가 공식 출범하면 그 이후에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누차 밝히면서 그동안 6차례나 발표를 연기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당시 로드맵의 성공적 실천을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수장으로 실세를 쥐고 있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눈엣가시로 작용한다는 판단을 부쉬가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부쉬는 올해 4월 아라파트가 실질적인 헤게모니를 잃어버리고 압바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자마자 계획안의 초안을 유엔을 통해 압바스에게 넘겼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압바스는 여러 고민도 않고 군말도 없이 그 계획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부쉬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장애물들을 이리 저리 피해가며 쉽게 쉽게 평화 정착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년에 있을 대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짓이기며 굴러왔던 무거운 핏빛 수레바퀴는 그렇게 몇 사람만의 결단으로 마음먹은 대로 손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목과 갈등으로 구르고 굴러 이미 갈기갈기 상처나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화해란 있을 수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덧난 상처의 아픔을 치료하지는 않고 피해가기만 할뿐 용감하게 대면하지 못하는 화해란 거짓 화해일 뿐이다.


이러한 거짓 화해는 그들에게 더욱 큰 실망과 상처만 남길 뿐이다. 그런데 아카바의 평화안이 불행히도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중동 평화안은 오히려 또 하나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 평화안으로 인해 드리워진 암울한 미래... 그것은 바로 이 계획안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강력한 폭력성에서 그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나만의 착시 현상이었으면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이 평화안에서 평화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오로지 폭력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로드맵의 전체 시나리오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처음 1단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즉각적으로 이행해야 할 사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팔레스타인은 무조건적으로 팔레스타인 내부의 테러 조직을 소탕해서 폭력을 종식시킬 것, 그리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고 더 이상의 유대인 정착촌의 건설을 동결시킬 것.


이러한 토대가 이루어지면 이제 2단계 시나리오로 돌입하는데, 그것은 2005년까지 잠정적 국경과 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팔레스타인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구를 안정화시키고 두 국가 사이의 국경 문제나 난민과 정착촌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최종적인 결의안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 측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두 번째 단계, 바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이다. 이스라엘로서는 곤혹스러운 바로 그 부분이다. 반면에 고향을 잃고 유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주권국가를 창설해 주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그 동안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앞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것이 이제 손을 뻗으면 곧 닫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성큼 다가섰다는 희망으로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가디언(Guardian)에 따르면 콜린 파월도 자국이 이끄는 이 로드맵을 가리켜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로드맵이라고 자랑스럽게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미국이 이 계획안을 주도하고 기획하면서 가장 비중을 두고 중요하게 여긴 부분을 꼽자면 그것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이 아니라 단연 폭력의 즉각 중단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중동 평화안은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백미러의 역환상에 그칠 수도 있다. 만약 양측이 첫번째 단계에서 실패한다면 2단계와 3단계의 계획들은 자연적으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미국의 약속은 평화안의 거울 속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저 멀리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일단 샤론과 압바스는 이 로드맵을 수용하면서 최우선적으로 모든 테러 행위를 중단시킴으로써 폭력 근절에 나서기로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서약은 중동 평화안이 통과된 직후에 터진 하마스의 자살테러와 이스라엘군의 반격으로 허무하게도 완전히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만약 이런 위기 상황을 제대로 극복해 내고 이 평화안의 1단계 시나리오가 어쨌든 충실히 지켜진다고 가정한다면 어쩌면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앞으로 근동 지역에 폭력이 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화해의 자리에 한쪽 화해 당사자가 빠진 것과 마찬가지로 폭력 또한 한쪽의 폭력만 빠질 것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 하면 폭력의 원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현상만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폭력으로 아래로부터의 폭력을 진압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여기저기 폭탄이 터지는 일은 공권력으로 점점 줄어들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정착촌 구획의 이유로 강제로 축출하는 군인들의 군화발 아래 짓눌려 끙끙대는 민초들의 신음소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음소리를 크게 확성해서 대변하는 단체들은 모조리 과격 급진단체로 몰려 입막음을 당할 것이고.


이 평화안에서 우려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폭력을 근절하는 과정에서 생길 또 다른 폭력. 부쉬 대통령은 아카바 연설 중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살인자와 테러리스트들의 손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도록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만약 이 말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처단한다는 말이라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빈 라덴과 후세인은 살려두고 민간인 수 만 여명을 죽음으로 몰아갔듯이 이번에는 죄 없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또한 그렇게 테러리스트들 대신 무참히 짓밟아버릴 것이다. 또한 "테러가 미국을 위협하고 아랍국가를 위협하고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을 위협하고 있으니 테러를 진압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중동 평화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평화안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행한, 평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적이고도 섬뜩한 어투들...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 이 평화안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보여질 평화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결론적으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번 아카바 회담이 진정 그 땅에서 고통받는 자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고 지금처럼 오로지 미국의 입맛을 맞추는 사람들끼리 모여 평화안을 마련한 것에 그치고 만다면 그들이 바라는 평화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돌파리 의사 미국이 얼렁뚱땅 처방해 던져준 그들만의 평화안, 이 처방전으로는 현재 수 천년의 상처가 그대로 곪아 붙어 있고 지금도 여전히 상처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그 땅의 쓰라림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의 한 극우파 원로 정치인이 샤론에게 "이 로드맵은 절대로 삼키면 안 되는 설탕 발린 청산가리 알약"이라고 쓴 소리를 했던 것처럼 오히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에게는 죽이는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동 평화 로드맵을 펼쳐 놓은지 딱 열흘이 흘러간 14일 현재, 아이러니칼하게도 이전보다 더 많은 인혈들이 거리에 쏟아지고 있다.


6월 8일 이스라엘군이 가지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 하마스 대원들이 탄 차량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에 대해 무장한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 지구 접경지역에 있는 이스라엘 도시 스데로트에 로켓을 발사했다.


6월 10일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지도자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목표로 미사일을 발사해서 3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 그 다음날 하마스는 예루살렘에서 러시아워의 만원버스에서 자살테러를 감행해서 17명이 숨졌다. 한 시간 뒤 이스라엘군은 이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 근처에서 아파치 헬기를 동원해 7명의 팔레스타인 인명을 사살했다.


이것이 미국이 주도하면서 한쪽 당사자를 일방적으로 배제시켰던 그들만의 평화안이 가져온 가시적인 결과이다. 하마스는 지금 중동 평화안에 아라파트와 자신들의 입장이 철저히 배제된 섭섭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만이 아니라 압바스에게까지 대화상대자가 아니라 박멸대상자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저항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도 이스라엘 나름대로 로드맵의 2단계 시나리오까지 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단호한 신념을 가지고 하마스의 폭력에 맞장구치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살테러 따위가 아니라 같은 땅덩어리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영원히 공존하는 것이다. 중동 지역의 평화는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지만 상대방을 대화상대자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일을 벌이면 평화는 올 수 없고 그 결과는 지금처럼 처참할 수밖에 없다.


부쉬는 지난 11일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있은 후 연이은 복수혈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들은 피의 복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그의 발언을 굳이 풀어 보자면, "피의 복수를 비난하지 말라"는 말은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전을 비난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고,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은 테러 집단을 몰살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부쉬의 말대로 중동 평화를 해치는 근본 원인이 하마스의 테러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하마스의 테러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원인을 따지고 해결하자면 좀 더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쉬의 이같은 발언은 중동 평화안 제 1단계 계획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전세계를 뒤흔드는 초강대국의 지도자 부쉬의 인식이 바로 여기서 그치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건드리지나 말지 말이다.
 


딴지 국제부 전임 논설위원
한누리빛 (taeg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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