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내가 슬픈 이유

2009.5.25.월요일

역대 대통령 중에 누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수백수천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수천억의 돈을 챙긴 이들은 아직도 세상을 굽어보며 살고 있는데, 아마도 그는 전혀 다른 이유로 죽음 직전에 한번 벼랑 끝에서 세상을 굽어봤을 것이다.

그렇게 낯이 두꺼운 인간들이 세상에 널려있는데, 왜 하필 그는 그렇지 못했을까 싶어서 슬프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전두환, 노태우가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여전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고, 사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뭔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삶의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와 즐거움과 희망의 정체가 돈인지, 살인의 추억인지, 여전히 유효한 권력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이 여전히 장수하고 있는 이유는 아주 드라이하게 얘기해서 일반 국민들의 어떠한 반응과 감정에도 자신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만한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독특한 가치관의 국가지도자들이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들의 안중에는 애초에 국민이고 민족이고 나발이고가 없었기 때문에 청문회를 받건, 구속을 당하건, 학살당한 이들의 유족이 가슴을 쥐 뜯건 말건 그렇게 일반 국민들의 지탄과 저주와 증오 속에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을 게다.

이는 지탄과 저주와 증오를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이나 낯 두께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을 국민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근본적 사고능력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내가 마지막 담배 한 개비보다 서글픈 게 이것이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살아야 할 이유와, 사는 즐거움과, 삶의 희망이 다른 것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는 그 무엇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말의 회생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온 몸을 바위더미에 짓이기는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일반 국민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전직 대통령이라면 살아 있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 그런 사람을, 어쩌면 우리는 일반 국민과 교류하고 일반 국민에게 사랑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존재이유로 여겼던 그런 대통령을 현실에서 진짜로 가져봤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랬다 하더라도 지금은 하나도 기쁘지 않지만. 

딴지 편집장 너부리(newtoil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