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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Seong 추천0 비추천0

 

 

 

 

[근조] 우리에게 필요한 것

 


2009.5.27.수요일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중에 <더 리플레이스먼트>를 혹시 기억하시는가?

 

요 며칠간 정신없던 과정에 조금은 뜬금없이 이 코미디물이 생각났다.

 

왜? 영화속의 대사 하나가 딱 지금 상황에 맞는거 같아서.

 

마지막 경기에서 복귀한 쿼터백이 팀원들을 리드하지 못하고 전반전을 말아먹자, 기자는 감독에게 지금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

 

Heart. Miles of Miles of Heart!

 

 

 

 

  의미없는 논쟁들

 

사실 소통능력이 부족한 것은 현 청와대 세입자 하나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능력이 탁월한 사람들, 사실 아주 찾아보기 힘든게 한국사회거든. 이런 판에 감정적으로 다들 격앙되어 있으니 아와 어 차이 때문에 치고받고 싸우는 현장들을 참 많이도 목격하게 된다.

 

시민기자단이 폭행당한 사건도 그렇고, 그를 조문하는 글을 쓴 진보적 필자들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엄밀히 따지면 타살설을 흘리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먼저 타살설. 아니... 고인이 자살에 이르게되는 과정이 사회적 타살이 아니고 뭐였나? 깻잎 한 장도 차이가 안 나는 걸 두고 굳이 의미부여를 할 것이 있을까?

 

두 번째.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이 곳은 전임 대통령을 죽이는 사회다. 전임대통령을 죽이는데 누군들 못 죽일거 같은가? 그래도 조문이 말이 되는거냐고? 그런 분들께 다시 돌려드릴 내 대답은 이거다.

 

Heart. Miles of Miles of Heart!

 

세 번째. 고인은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공화국이 뭔가? 환대와 우정의 공동체 아니던가? 고인이 가시는 길을 경찰들이 막아 불편하기 그지 없음에도 사람들이 굳이 가는 곳은 대한문에 있는 분향소다. 그곳이 완장을 찬 이들이 통제하는 곳이 된다는 것만큼 고인을 욕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들의 본능, 욕망.

 

가끔 직접 얼굴을 보게 되는 갑제옹. 평소에도 알던 거지만 참 찌질하더라.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뜬금없는 국어교육의 실체는 살아서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죽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에 대한 추도 열기도 싫다는 그의 본능이었다.

 

입 닫고 조의를 표해야 하는 와중에 튀어나오는 삑사리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추모제를 행사라고 써서 사람들 황당하게 만들었던 남대문 경찰서장님이나, 닭차로 둘러싸니 아늑하다는 분들도 계시더라는 옥음을 남기신 서울경찰청장님. PD들과 데스크가 싸우느라 아노미 상태인 KBS,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광명시장님. 단 7일간에 불과한 애도기간에도 자신들의 본능을 거침없이 내보이는 이들.

 

이 분들 뿐인가? 대한문에 분향소가 처음 만들어졌을때 경찰은 이걸 두 번이나 뽀겠을 뿐만 아니라 위협했었다. 별 같잖은 이유 붙여서 연행하겠다고. 거의 20년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긴 한다만, 두환이때도 안하던 짓거리다.

 

이 분들, 참지 못해서 삑사리 내고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사실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 딱 하나다. 원작자의 허가 없이 챙겨왔지만 용서해주실 거라 믿고 공개한다.

 

 

(출처 링크는 http://capcold.net/blog/?s=%EC%83%81%ED%99%A9%ED%8F%89%EC%A0%95)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작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저항들이 있었음에도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원저작자인 capcold허가 없이 공개하자면 요 때문이었다.

 

 

(출처 링크는 http://capcold.net/blog/?s=%EC%83%81%ED%99%A9%ED%8F%89%EC%A0%95)

 

사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오롯한 분노를 갈무리해두는 것이다.

 

비장할 필요도 없고 과격해져서도 안된다. 나름 왼쪽에서 20대를 보내면서 깨달았던 것을 언젠가 현 편집장이 지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너무 진지해지면 결국은 그게 코미디가 된다는 것.

 

그렇기에 7일도 못 참는 저 분들의 찌질함에 일일히 반응하면서 짜증내기 보다는 조금 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주 주간조선과 조선일보의 월요일 만평을 출력해 놓으시기 바란다. 참기 어렵겠지만 그 둘을 가능한한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두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잊지 않고 와신상담하지. 주간지들의 특성상 인쇄를 마쳤을 즈음에 소식을 들었을텐데도 그 특집을 내보낸 그들의 간땡이 사이즈는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거든. 더불어 그 후안무치도 반드시 기억해둬야 한다.

 

우리가 노무현을 뽑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무엇이었던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힘은 감동이었다.

 

지역감정이라는 기상천외한 이데올로기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걸 깨겠다고 온 몸을 던졌던 것. 국회의원 후보가 유세를 하는데, 날아다니는 파리가 사람보다 더 많아도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그에게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공화국일 수 있도록, 그래서 국민들이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시민임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데 고인 만큼 평생을 바친 인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퇴임 후에 평범한 촌로로 돌아온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하겠는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하위 법으로 가로막는, 아니 헌법 자체를 휴지 취급하는 그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분노해야 하고, 그 분노를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고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한민국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분노다.

 

PS. 변희재 너는 세금 내는 직장 다닌 적도 없잖아?

 



그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이유를 망각했기에 통탄하는
전임 수석논설우원 Samuel Seong(swsung6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