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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봉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서야 왔습니다...


2009.5.26.화요일


서울에서 봉하까지 가는 길은 분명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상상만큼 멀지도 않았다.


KTX로 2시간 남짓이면 어느덧 경남 밀양에 도착하고, 거기서 진영까지 무궁화호로 고작 30분이다. 열차에서 내려 아담한 역사로 들어설라치니, 거기서부터 상복 입은 이들이 안내를 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상가가 된 듯한 이 기묘한 느낌. 아. 내가 이제 정말로 봉하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역 광장에는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외버스터미널에도, 승용차 주차장이 마련된 진영공설운동장에도 다닌다. 기차 시간에 맞춰 끊임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이 버스들. 진영역에서부터 걸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했던 나의 우려는 한참 기우였을 뿐이다. 내가 서울에서 혼자 슬퍼하고 상상하고 걱정하는 동안 누군가는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버스로 10분도 못 가서 마을 입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티비에서 보던 끝없는 조문객의 행렬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그 흐름 속에 끼어들어, 수많은 플래카드들을 지나치며 논두렁 같은 길을 따라 걸어간다. 분노의 글도 있지만 감사와 사과의 글들이 더 많다. 딱 저만큼의 분노, 그리고 저만큼의 감사와 죄스러움이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입구에 설치된 생가 표지판. 고인의 귀여운 만화 캐릭터가 밝게 웃고 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잠시 웃음이 났다. 그 순간, 그가 죽었다는 것이 떠 오른다. 젠장...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건데.


하지만, 그래서 저 그림이 내게 절망만을 느끼게 해야 하는 걸까? 또 쳐다 봤다. 다시 한번 살짝 웃음이 난다. 나를 보며 왜 이제서야 왔는지 책망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망자의 한 맺힌 원망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선생님이 제자를 힐난하는 그런 책망일 뿐이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그렇게 한마디 하면 그냥 웃고 넘어갈.


 


계속 걸어 들어와 이제 분향소 근처다. 그런데 이쯤까지 와서 보니 봉하마을의 전체적인 상황이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나라당 당직자나 의원, 조중동 기자들이 봉변당하고 쫓겨나는 모습을 티비에서 봤던 터라 일종의 요새처럼 관리되고 있을 줄 알았다. 아마도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이 웅성웅성 몰려다니면서 증오와 복수의 서슬퍼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심지어 식사도 물도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지 싶어, 집 떠나 개고생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정반대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질서정연하고 평화롭다. 마치 오랜 세월 이런 역할을 하던 곳인 양, 조금의 어설픔도 불편함도 없다. 여느 상가처럼 천막을 치고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요(문상객이 무진장 많다는 점 외에는 똑같다), 사람들이 더위에 지칠세라 차가운 생수도 무료로 준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이동 화장실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응급환자를 위한 의료 센터마저 완비되어 있다.





여기서 분주히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급조된 자원봉사자들이다. 누가 강제로 시킨다면, 혹은 돈을 주고 고용한다면 과연 이 시골에까지 와서 이렇게 한 뜻으로 열심히 일해 줄까. 고인이 늘 강조했던 진정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떠오른다.


암흑 같은 절망의 구덩이가 되어 있을 줄만 알았던 이 죽음의 장소가, 이렇게 모두의 힘으로 슬픔 속에서나마 한줄기 희망의 빛이 반짝거리는 그런 곳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오바인 걸까. 그가 그토록 만들고자 꿈꿨던 그 세상이, 이제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작은 축소판으로나마 이렇게 여기 봉하에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과장인 걸까.




분향소에 가까이 가기 전에 먼저 고인의 집부터 찾았다. 저기서 노무현 대통령이 살았구나. 공사 중이라 높은 담장이 가로막혀 잘 보이진 않지만 그는 저 집 안에서 먹고 자고, 또 그 앞에서 매일같이 찾아온 많은 보통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며칠은 식사도 거르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며, 무한한 외로움 속에서 생사를 고민했던 바로 그 곳. 희망과 절망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는 저 집을, 나는 차마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었다.



자료사진


부엉이 바위는 집과 정말 너무 가까웠다. 생각보다도 훨씬 크고 웅장하고 높은, 바위 한 덩어리로 된 절벽. 저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날 텐데 거기서 뛰어내릴 결심을 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런 마음을 먹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젠장.


부엉이 바위를 노려보고 있노라니 자꾸 떨어지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떠 오른다. 이런 상상을 해도 되는 건가... 죄책감이 들지만 그 일이 불과 며칠 전에 저기서 정말로 일어났다. 저 높고 무정한 절벽에서 그는 스스로 떨어져 죽었다.


하지만 저 바위는 아무 죄도 없다. 원래 죄는 오직 인간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니.


 


부엉이 바위를 실제로 보면 그가 성격처럼 딱 부러지는 자살을 계획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3일간의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후, 새벽에 따라나서는 권 여사를 따돌리고 일부러 경호관 한 사람만을 대동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미리 점찍어 둔 장소인 부엉이 바위에 오른다. 이어 아무 주저함도 없이, 마지막 담배도 마다하고 죽음 직전의 자기연민 섞인 넋두리 한 마디 않은 채, 순식간에 마음먹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이곳은 일단 떨어지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예컨대 음독 쇼를 벌이고 병원 가서 살아나는 식의 계산된 자살극과는 거리가 먼 그런 곳이다. 증인 한 명을 대동했으니 실종과 수색 같은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또 바위의 바닥이 거의 지면과 연결되어 있어서 시신을 찾고 옮기는 작업마저 비교적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참으로 노무현다운 담백하고도 직설적인 죽음. 남에게 가급적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군더더기 없는 죽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지만, 한편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우리는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의 비명을 들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위 위의 경호관도, 지상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마을 주민도, 사저의 경호원도 가족도 아무도 없다. 그 새벽 저곳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면 분명히 마을 전체가 들었을 것이다. 40미터가 넘는 긴 절벽에서 지상을 마주보고 떨어지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은 거다.


나는 누구나, 자살 하려는 사람조차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공포와 후회로 인해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게 된다고 읽었었다. 이 분은 정말, 가슴 시리도록 독하고 그만큼 곧은 사람이다. 아니면 그토록 절망과 외로움이 깊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본인의 유언처럼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한 상태에 도달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아는 것은 인간 노무현,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비굴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허풍쟁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의 그 의연함. 지금 권좌에 있는 그 양반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있는 분향소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어떤 이는 흐느끼고, 어떤 이는 큰 소리로 울고, 또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무표정한 이들도, 조금씩 웃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는 상가집에서 웃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례하고 냉혹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다. 사람의 감정이 그만큼 각양각색이고, 웃음의 의미도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안다. 죽은 이를 조문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박장대소를 터뜨려도, 그 맘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도 아빠의 등에 업혀 잠든 채 분향을 한다. 여기에 온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이 이야기를 아빠에게서 전해 듣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그가 한 줌 아쉬움이나 슬픔도 없이, 어린 시절 이 곳에 와서 위대한 대통령 할아버지를 뵈었던 것을 밝고 자랑스럽게만 여길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이 되어 있어야 할 텐데.




분향소 옆에는 수많은 조화들이 줄지어 서 있다. 첫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문익환 목사 가족’. 아마도 이곳에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서 있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화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는 ‘이건희’ 라는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그리고 또 그 옆에는 삼성물산 임직원 일동.


왜 이건희와 삼성이 여기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장면이 그 극적인 부조화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에 너무 잘 어울리는 많은 의미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이걸 봤다면 특유의 위트로 통쾌하게 한마디 했을 것 같다. 그리고는 꼴통들한테 또 욕 한 바가지 얻어 먹었겠지.



제길. 그 모습이 그립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그리워하게 될 줄은 차마 몰랐다. 2029년도 2019년도 아닌 겨우 2009년에, 봉하마을에서 영정 사진을 보고 서서는.


그래서, 하릴없지만 속으로 중얼거린다. 게으른 제가 여기 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똑 같은 마음을 갖고 왔습니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평생 몸으로 보여주신 분. 하지만 우리도 대통령님을 그만치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표현하는 데는 너무 인색했었나 봅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리고 안녕히 가세요.




글 - 파토(patoworld@gmail.com), 사진 - 신짱(woolala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