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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신(新) 기타스토리 1



2009.6.18.목요일 



안녕하신가덜.  


그간 역사, 사회, 정치 등 무겁고 어려운 글들로만 찾아 뵈었던 필자, 이제 다시 기타를 들고 돌아왔다.


아시는 넘은 아시겠지만 기타스토리는 대략 2000년부터 2002년경까지 본지를 통해 연재된 기타 강좌 및 칼럼 연재다. 대략 50회 이상 쓴 것 같다. 첨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장기 연재로 이어지고, 뜻밖의 인기를 끌게 되어 이 블로그 저 카페 많이도 퍼들 가셨다.


그렇게 많이 썼으면 됐지 뭘 다시 할라고... 싶으신 넘들 있을 거다. 솔직히 별 생각 없었는데, 우울한 세상 이런 것도 좀 해 보자는 편집부의 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도 맘이 동한다. 왜.


그건 열분들이 잘 모르는 동안 필자가 영국에 가서 4년제 기타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재수없게도 자랑하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옛날에 쓴 기타스토리 중 어딘가 보면 외국 음악학교에서는 하루에 17시간 연습도 하고... . 이런 대목이 있었다. 솔직히 말로만 들은 거지, 그걸 쓸 때도 인간이 실제로 그게 가능할지는 몰랐다. 그런데 내 자신이 그렇게 4년을 보내고 왔다. 하루 17시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기타 인생은 before/after 유학으로 나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옛날 그 기타스토리는 대략 before에 해당한다(막판에 살짝 걸치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이제 after의 입장에서 신(新) 기타스토리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아마 중복되는 내용도 없지는 않을 거다. 새로 쓴다고 예전에 쓴 거 다 뒤져보고 안 다룬 것만 요리조리 쓰는 그런 귀찮은 짓은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새로 읽는 분들이 많을 와중에, 또 읽었어도 대부분 잊어버렸을(쓴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여러분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맞지 싶다.


다만 그만큼 업그레이드해서.







이 편은 머리말에 해당하니 일단 자기 고백부터 펼쳐 보자. 많이들 궁금하실 거다. 파토 니는 대체 기타를 얼마나 잘 치는데? 얼마나 잘 치길래 이리 떠들어 쌌는데?


모르겠다! 그게 솔직한 대답이다. 사실 영국 가기 전에는 한 가닥 하는 줄 알았다. 유학을 간 것도 배우고 싶은 바램도 있었지만, 본바닥 실력자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직접 보고 가능하다면 함 견주어 보고 싶은 맘도 있었다.


그러나 청운의 꿈을 안고 간 영국에서의 4년은 철저한 자기 부정과 자기 파괴의 시간이었다. 학생들 수준이야 머 천차만별이었지만, 선생들 중에는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초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야 학생으로 갔으니 학생들하고 견주어야...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선생들이 나와 비슷한 또래니 그런 변명은 성립될 수 없다.


잉베이 맘스틴을 찜쪄먹을 테크닉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론, 지식, 음악에 대한 이해, 해석력, 창조력... 도대체 왜 저 사람이 녹림에 묻혀 학교 선생질을 하고 있나. 왜 강호에 나아가 경쟁자들을 척살하고 기타계의 대마두로 군림하지 않는가(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런 선생들에게서 일주일에 두세 시간씩 3,4년을 수업을 듣다 보면, 내 실력이 어디쯤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어지게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다 비슷한 상태에 빠져 들었다.


나의 모든 내공과 외공을 담은 필살기가 초식을 펼칠 틈조차 없이 무화되고 마는 현실. 촌에서 칼 좀 쓴다는 넘들이 진짜 무림고수를 만나 칼은 뽑아 보지도 못하고 머리에서 가랑이까지 갈라져 죽는 그런 경우다. 천외천(天外天)이라 하던가.


그런 느낌 속에서 몇 년을 지내 보면 그저 진도 따라가기에 급급할 뿐, 내가 얼마나 합네 어쩌네는 머리 속에서 말끔히 사라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일 17시간 연습은 그저 생존(졸업)을 위한 투쟁이다. 연습 벌레도 아닌 연습 기계가 되어, 이동하는 시간과 밥 먹는 순간 외에는 모조리 연습, 주말에 한 시간 정도 장 보러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 정신질환자가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어느새 4년간의 학교 생활은 막을 내렸다(그 와중에 딴지에 유럽이야기 등을 쓰고 있었으니 신기할 뿐).


암튼 영국 4년 살면서 스코틀랜드 함 못 가보고, 캠브리지도 못 가보고,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못 들어가 보고, 타워 오브 런던도 못 가보고, 관광객이면 다 탄다는 런던 아이도 함 못 타고... 그렇게 4년을 두들겨 맞고 왔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2년 반이 흘렀다. 그 중 학교의 데미지에서 벗어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들의 압도적 실력에 대한 주눅에서, 또 학생이라는 입장이 가지는 소극성을 벗어나 기타리스트로 나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데만 그런 세월이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두들겨 맞던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생겨난 내공과 외공들... 사실은 때린 게 아니라 막힌 혈맥을 뚫어 준 건데 그저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이제 다행히도 그것들이 이제 조금씩 내 것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암튼간에, 그래서 나는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고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다. 사실 밴드 활동도 안 하고 있으니 프로연주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마추어라고 말하기에는 지난 25년이 우습다.


나는 그저 늘 기타를 칠 뿐이다. 조금씩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익히다 보면 매일 매일이 새롭다. 어제까지 20년간 안되던 것이 오늘 갑자기 마술처럼 될 때의 기분은 가히 초현실적이다. 그리고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심신이 피곤할 때, 기타라는 것이 내 손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기타는 바둑과 같아서 정복하고 마스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친구 삼을 수 있을 뿐이다. 단지 얼마나 친밀하게 관계하고, 얼마나 내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의 문제다. 연주의 예술적 성과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기타로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은 바꿀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초인들도 실은 나와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 같다. 결국 언제나 오늘부터 시작. 이제부터 시작. 기타란 그런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나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지도. 큰 바위 얼굴처럼.


다음 시간에 제대로 시작해 보자꾸나.



딴지 전임 오부리 파토(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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