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판 전체에 미치는 긍정의 물결
이번 글을 끝으로 건설노조 편을 마무리하련다. 1편이 Why, 2편이 How에 대한 대답이었다면, 마지막 3편은 What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무얼 쟁취했는가에 관한 이야기.
2편에서 묘사한 것처럼, 우리는 뭉치는 것으로써 우리의 요구를 관철한다. 전국 조합원이 모두 모이는 총파업 결의대회는 물론이고, 지역본부 차원에서도 수시로 집회를 이어간다. 그렇게, 지난 십 수년간 빨간 띠 둘러가며 투쟁한 결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라고 하는 거대한 벽을 조금은 허물었다고 답할 수 있을 거 같다. 그 벽을 허무는 첫걸음이 바로 ‘직고용’ 투쟁이었다.
계속 얘기한 것처럼, 형틀목수인 내가 현장에서 일하려면 오야지가 꾸린 도급팀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이후 오야지가 하청 건설사와 계약하면 일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지 말자는 거다. 오야지 없이, 하청 건설사에서 직접 노동자를 고용해달라는 거다. 새로운 현장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하청 건설사가 생길 때마다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그 결과, 현재는 대부분의 큰 현장에서 직고용 형태로 노동자를 채용한다. 물론, 아주 낮은 비율이다. 예를 들어 현장에 형틀목수팀이 세 팀 필요하다고 하면, 두 팀은 도급팀, 한 팀은 노조팀(정확하게는 1개 분회)을 받는 식이다. 대략 15~25명가량의 노조팀 목수가 직고용으로 현장에 들어가는 거다.
직고용으로 현장에 들어가는 것. 이게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느냐. 아주 쉽게 말하자면, 개개인이 오야지와 일당 올려주네 마네 하면서 입씨름할 필요가 없어졌다. 건설노조 차원에서 매년 하청 건설사와 단체교섭을 하니까.
이게 핵심이다. 직고용 투쟁과 단체교섭권. 이를 통해 노가다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당 문제를 해결한다. 조합원으로서 피부에 가장 와 닿는 건 역시 임금과 일자리다. 2020년 기준, 건설노조 소속 목수 일당은 22만 원이다. 도급팀 목수는 18~20만 원 받는다. 제법 차이가 크다. 미국이나 유럽 등 소위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생활임금을 보장받는 거다.
또한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설날, 추석, 어린이날 등 국가 공휴일에 유급으로 쉰다.(오랜 투쟁 끝에 2020년부터 처음 적용한 유급휴가제다.) 상상이나 해봤나. 노가다꾼이 일당 받고 쉰다니!! 크고 작은 안전사고를 당했을 때도 투명한 절차를 거쳐 보상받는다.
이 밖에도 건설노조 조합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실은 당연한 권리지만)이 상당하다. 지난 세월, 교육하고 연대하고 투쟁한 끝에 조금씩 조금씩 얻어낸 결과다.
이 모든 결과가 더욱 의미 깊은 건, 조합원뿐만 아니라 일반 노가다꾼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주 쉬운 예로, 건설노조에서 선행적으로 투쟁해 임금인상 하면 일반 노가다꾼 일당도 자연스레 따라 오른다. 네 삶뿐만 아니라, 네 덕분에 내 삶도 바뀌는 걸 느끼는 거다.
그 덕에 건설노조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노조라면 학을 떼던 노가다꾼들이 하나둘 건설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의 경우, 7~8년 전에 불과 10여 명이 지역본부를 만들었다 한다. 지금은 조합원이 약 1,000명이다. 놀라운 변화다.
귀족노조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면
그렇듯, 지난 세월 선배들 노력은 대단했다. 생각해보라. 100만 명이 촛불 들어야 겨우 바뀌는 나라다. 10여 명이 투쟁한다 한들 하청 사장들이 콧방귀나 꼈을지. 우리 지역뿐 아니라 거의 모든 지역이 그런 과정 거쳤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역사가 참으로 길다만, 그 많은 얘길 여기서 어찌 다 할까.
그렇게 노동자 권리를 찾아왔다. 모든 민주주의 역사가 그러하듯, 오늘에 이르기까진 앞선 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날 포함한 조합원들이 그걸 좀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구 덕분에 명절에 일당 받고 쉬게 되었는지, 누구 덕분에 일당 22만 원씩 받으며 일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건설노조 들어오기 전까지 나름 이상향이 있었다. ‘노조’를 떠올렸을 때 함께 생각나는 단어들 말이다. 정의랄지, 이타적인 마음이랄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가치랄지 하는 것들. 솔직히 말하자면 건설노조에 들어와 좀 실망했다. 조합원 상당수가 눈에 보이는 혜택, 말하자면 안정적인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높은 일당 때문에 건설노조에 들어왔고, 여전히 그런 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심지어 집회 때 이렇게 말하는 조합원까지 봤다.
“에휴 이놈의 빨갱이 단체!! 뭔 놈의 집회를 이렇게 자주 해. 괜히 노조 들어왔어.”
옆에 있던 사람이 한마디 하지 않았더라면 나라도 한마디 할 판이었다. 옆 사람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어이어이!! 그놈의 빨갱이 단체 덕분에 당신 같은 사람까지 먹고사는 거니까 자꾸 빨갱이 빨갱이 하지 마슈!!”
노조의 역할을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는 건지, 난 잘 모른다. 건설노조 역할에 관해 조합원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만 신경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거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한번 되물어보고 싶다. 우리가 집회하기 위해 도로를 점거하고, 확성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엄청난 사운드로 울려 퍼질 때, 그리하여 주변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게 될 때, 혹은 지나가는 차가 경적 울리며 쌍욕 퍼부어댈 때, 무어라고 말할 건가.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집회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으슈.”라고 할 텐가.
많이 들어봤을 거다. 귀족노조라는 말. 우리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우리 이익만 위해 움직인다면, 스스로 명분을 위축시키는 거다. 저들이 늘 비난하는 것처럼 귀족노조 프레임에 갇힐 수밖에 없다. 지나가는 차가 경적 울리며 쌍욕 퍼부어댈 때, “우리는 건설산업 전반이 개선되길 바라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모든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회하는 중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양해해주세요. 우리 모두 같은 노동자잖아요.”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고. 그런 줄 몰랐습니다. 우리 몫까지 파이팅해주세요.”라는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거다.
하물며, “에휴 이놈의 빨갱이 단체!! 뭔 놈의 집회를 이렇게 자주 해. 괜히 노조 들어왔어.”라는 조합원들을, 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둘이 아니다. 제법 많다. 내 까짓 게 뭐라고 그들에게 한 마디 더하자면, 그런 심보는 앞선 자들의 노력까지 짓밟는 거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면 좋겠다. 좋은 시절에 뒤늦게 들어와 혜택만 누리는 새내기 조합원 주제에, 말이 많았다. 건설노조 시리즈, 이걸로 끝이다.
덧붙여,
건설노조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기보다는, 해야만 할 것 같은 얘기가 참으로 많았다. 그게 부채감 때문이었는지, 사명감이나 책임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고민 끝에, 많은 내용을 생략했다. 자리에 어울리는 옷이 있듯, 글에도 그에 걸맞은 분위기라는 게 있을 거다. 그 분위기를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해서, 이 정도로 글을 마무리한다. 혹여, 선배들 노력을 너무 가볍게 다룬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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