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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했던 취업준비생 시절 스펙

 

“아들 저번에 면접 본 곳은 잘 되었나?”

 

“최종까지 갔는데 머 소식이 있겠지. 미안하다.”

 

“우리 아들 얼마나 똑똑한데, 걱정 말고 기다리봐라. 전에 보내준 김치는 다 뭇나?”

 

“아직 마이 있다. 내 도서관 가야 해서 끊는다.”

 

2009년도 겨울, 나는 한창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시완.jpg

출처-<영화 '변호인'>

 

서울 소재 대학교 4학년생

3.5 정도의 평균 학점 

문과

토익 900

 

내 스펙이었다. 그런대로 서류는 잘 통과되었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대기업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나는 집안 환경이 녹록지 않아 방학 때는 단기 노가다, 마트, 전단 등 일당이 빨리 나오는 직관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학비는 입학금부터 졸업까지 학자금 대출로 충당했다. (취업하고 대리 시절까지 계속 갚았다. 줸장)

 

녹록지 않은 집안 환경을 조금 설명하자면, 당시 아버지가 연락이 끊겼다가 폐인으로 집에 돌아온 상태였고, 어머니는 생활보장 대상자여서 정부에서 준 거주처에 거주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부모 없는 친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른 학생들보다는 어려웠던 사정이었다고 해두겠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내 친구들도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다. 어떤 친구의 아버님은 노름하다 손이 잘리셨고, 또 어떤 친구 아버님은 어머님 때리는 가정 폭력을 저지르는 분이었다. 어쩌다 실수(?)로 사귀었던 부자 친구 한 명 빼고는 친구들 집안 사정이 형편없었다.

 

내가 취업 활동을 한 해는 09년도 겨울이었다.

 

실업률 역대 최고.jpg

 

“수출 및 경제 상황 올해가 최악입니다.”

 

“대졸자들 취업난, 대기업⋅공기업은 바늘구멍입니다.”

 

사기가 팍팍 떨어지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물론 글을 쓰는 2024년 지금도 흘러나오는 뉴스는 변하지 않았다.

 

취업 활동 초반에는 대기업 계열사 그룹에 지원하고 SSAT(삼성직무적성검사)도 공부하며 잘 나가는 대기업 취업을 꿈꾸었다. 그러나 결과는 지독하게 이어지는 탈락 메일과 문자뿐이었다. 

 

시골에서 나름 박 터지게 공부해서 ‘인 서울’ 대학에 들어왔는데, 어떻게든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다못해 모 대기업의 그룹 계열사에서 가장 약한 편의점 사업 파트, 면세점 파트 등 전공과는 무관한 곳에도 다 지원해 봤지만 전부 낙방했다.

 

임시완 지침.gif

 

나는 지쳐버렸었다. 졸업은 다가오고, 매일매일 몸에 흐르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당장 졸업하면 기숙사 생활부터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나는 생활보장 대상자 특례라서 기숙사 비용이 거진 무료였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기업 공고

 

그러던 중 교내 취업센터 벽면에 붙어있던 한 기업의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xx금속 주식회사

 

일본계 한국 지사. 일본어 가능한 자 모집. 경기도 XX소재

 

내가 지원했던 대기업 모집 공고는 몇 페이지를 꼼꼼히 읽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회사의 구인 광고는 A4 한 장에 공고 내용이 시원시원하게 들어왔다.

 

그날 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그 회사에 이력서를 쓰고 지원 메일까지 보냈다. 그냥 한번 여기도 써보자는 심정으로 저장해 둔 이력서를 몇 개 짜깁기해서 지원했다. 소규모 기업이라 성에 차진 않았지만, 많이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 외국계 기업이라는 문구에 자위하면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메일을 던지고 잊어버렸다.

 

며칠 후 식당에서 CC(캠퍼스 커플)였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밥을 먹고 있는데 낯선 지역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임시완 통화.PNG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XX금속 인사지원 담당 변XX라고 합니다.”

 

예의 바른 목소리의 인사 담당이었다. 

 

‘어떻게 알고 지원하셨냐’

 

‘1호선으로 올 수 있기는 한데 위치가 경기도 끝자락이라서 정말 오실 수 있겠냐’

 

등의 질문을 했다.

 

전화를 끊으니 여친이 물었다.

 

“저번에 말한 거기 말하는 거야?”

 

“어. 면접까지는 한번 봐보려고.”

 

“거기 중소기업 아니야? 아직 은행이랑 이것저것 발표 남은 곳 있는데 기다려보지....”

 

“근데 외국계라고 하니까. 우리나라 중소기업이랑은 다르겠지.”

 

“맘대로 해. 나는 그냥 걱정돼서...”

 

훗날 와이프에게 왜 그때 더 격하게 말리지 않았냐고 했다가 귀가 뚫릴 정도로 욕을 처먹었다. 여자의 감은 대단하다. 가까운 여친이나 와이프가 뼈 때리는 조언하면 제발 듣길 당부한다.

 

면접 당일

 

면접 당일이 되었다. 악몽을 꾸었다.

 

너무 병X 같은 내용이라 아직도 기억하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타고 있던 유람선이 타이타닉처럼 침몰했다. 나는 작은 보트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거리 조절을 못 해서 물에 빠졌고 허우적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다. 유람선과 구조 보트의 거리가 내 인생의 미스 포인트라고 하늘에서 계시를 내려준 것이었다. 당시 나는 개꿈이라고만 여기며 1호선을 타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지하철을 탄 지 2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다. 1호선이 이렇게 끝없이 달리는 열차라니!

 

지하철 사진.jpg

출처-<헤럴드경제>

 

뫼비우스의 띠를 계속 기어가는 개미처럼 열차는 하릴없이 달렸다.

 

“다음 역은 XXX역입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서울로 상경해서 가장 오래 타 본 지하철 운행 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단정히 옷매무시하고 약속 장소인 1번 출구로 내려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니트를 입은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나에게 와서 정중하게 물어봤다.

 

“혹시 오늘 면접 보는 분이신가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뭐지, 임원인가? 엄청나게 프리스타일 한 근무 복장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회사 운전기사님이셨다. 아직도 일하신다.)

 

“타셔요.”

 

오오... 카니발이다. 회사 면접 갈려고 지하철역에서 내렸는데 운전기사와 카니발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심 많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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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카니발로 데려다주다니! 

 

훗날 인사과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창립 이래 최초의 신입사원이라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 준 극진한 대우라고 한다(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경력자들만 뽑는다).

 

지하철역에서 카니발을 타고 회사로 이동했다.

 

“서울에서 왔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디여”

 

“여기 공장장이랑 팀장들은 다 서울에서 대학 나왔어.”

 

기사님은 사투리와 TMI를 남발하며 쉴 새 없이 이야기하셨다. 운전하는 품새는 터프했다. 과속방지턱은 시원하게 쿵- 하고 넘어가 주셨다.

 

20분 정도 시골길을 계속 달려 심슨 가족의 마을 입구에 있는 것처럼 여러 개의 팻말이 보이는 공단 입구에 도착한다. 누가 보아도 이 섹션은 공단 부지이며 크고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산업 센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단 거리를 돌고 돌아 내가 면접 볼 회사에 도착했다. 콘크리트벽의 새하얀 건물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공장의 이미지는 공구와 드럼통 같은 잡동사니들이 입구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상상했건만 오피스 건물처럼 정돈되고 외벽은 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이리 올라가면 디야”

 

기사님은 나랑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인상이 좋아. 잘 될거여.”

 

“감사합니다.”

 

손을 흔드는 기사님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가니 경리 누나가 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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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이신가요?”

 

“아. 넵”

 

“이쪽 방에 대기하세요. 커피 드릴까요 녹차 드릴까요?”

 

“녹차로 부탁합니다.”

 

‘제1 응접실’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는 회의실에 가서 대기했다. 미리 천장 히터를 틀어 놓았는지 방 안이 따뜻했다. 회의실 안은 3~4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으며 대기하는 인원은 나 혼자였다. 솔직히 열심히 면접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1분 자기소개 정도는 너무 많이 해서 익숙했다. 

 

똑똑.

 

“따라오세요.”

 

경리 누나를 따라서 긴 통로를 지나서… 가 아니라 바로 두 칸 옆의 방으로 들어간다.

 

면접

 

방에는 4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두 명,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분 두 명.

 

압박하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 천장 히터에 매달아 둔 끈이 일정한 간격으로 사뿐히 나풀거렸다.

 

“서울에서 음... 일본어 전공하셨네요?”

 

“네. 일본어과에 재학 중입니다.” 

 

질문하던 면접자가 갸우뚱하는 표정을 지었다.

 

“학교 다니고 있다는데? 변 팀장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게 졸업반입니다. 졸업반.”

 

갑자기 어수선해진다.

 

“흠흠....”

 

“다음 달이라도 일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 이 사람들아! 자기소개라도 듣고. 출근 의사를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닌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대답했다.

 

가능합니다.PNG

 

“네, 졸업 전에 취업 증빙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변 팀장”

 

또 부른다. 변 팀장이라는 사람이 인사과장임이 틀림없다.

 

“그거. 뭐? 증명서 그거 하나 빨리 준비해 봐.”

 

“앗 넵. 서 대리한테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뭐지 합격인가? 두 마디 하고 합격인가?

 

이상한 전개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대기업에서 자기소개, 지원 동기들을 열심히 어필했던 지난날들이 분리수거 차량 뒤편에서 빠르게 수거되는 검은 봉지처럼 하나씩 내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뜨뜻미지근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젤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질문했다.

 

나 말고.

 

옆에 있는 다른 면접관에게 질문했다.

 

“이거 이력서 여기, 서울에서 일본어 전공한 거야?”

 

“네 상무님 여기 보시면 XX 대학교 일본어과.”

 

“그럼 영어도 잘하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둘이서 묻고 대답하고, 면접자는 듣는다(일본어과 나왔는데 왜 영어를 잘한다고 서로 동의하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들어와서 두 마디 했는데 면접관들끼리 시끌시끌 이야기했다.

 

“음…콜록콜록”

 

지금까지 입을 떼지 않은 젤 가운데에 앉아 있던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나도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신구 할아버지.jpg

 

“춋또 키이떼모 이이까?" 

(뭐 나도 하나만 좀 물어보자)

 

헉, 일본인이다.

 

들어와서 두 마디 했는데 갑자기 일본어 프리 토킹이 훅 들어온다.

 

인생에서 가장 정의롭게 행동한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정계에 지원하고 있는 건가!

 

이 개떡 같은 외국어 질문은 무엇인가!!

 

공장 제조업에 지원하고 일생의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질문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이 질문으로 나는 합격의 골드 버튼을 굳건히 하였다.

 

중2병의 기간을 오랜 기간 겪었으며 오타쿠 입문을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나에게 이런 세계 평화와 정의의 개념과 같은 질문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제 인생에 정의와 정의 있는 행동이란... 블라블라... 우선 그 기준점이 나에게 있는지 혹은... 블라블라”

 

에도시대 방랑 검사물에서나 나오는 일본어 단어를 나도 모르게 섞어가며 내가 생각해도 끝장나는 대답을 했다.

 

아아... 대기업에서는 왜 이런 쉬운 질문을 받지 못했던가!!

 

“스바라시이!”

(대단하군!)

 

나의 일본어 대답이 끝나자, 일본인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옆에 면접관에게 슬슬 면접을 마무리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이 할아버지가 보스인 것 같다. 나중에 출근해서 보니 사무실 젤 높은 자리에 앉아 나 같은 사원은 함부로 말도 섞을 수 없는 경영진의 정점에 계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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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력자가 합격의 미소를 보내자, 면접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나는 한국어로 두 마디 대답하고, 일본어 몇마디 했을 뿐인데.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시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출근 날짜나 세부 사항은 저희 변 팀장이 연락드릴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악수를 받으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합격인 건가...?

 

합격, 그리고 엄마의 전화

 

그 후에 인사팀장 되는 분에게 따로 회의실로 가서 30분 정도 세부 사항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면접한 날에 출근일까지 상담하고 나오다니 좀 혼란스러웠다.

 

지하철역으로 바래다주며 손을 흔드는 기사님을 뒤로하고 꺼두었던 전화기를 켜 보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들 전화 한 통만 해줘.”

 

어머니의 이야기는 뻔했다. 

 

‘최근에 아버지가 다시 집에 들어오셔서 (한동안 집을 나가 계셨다) 생활하는데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고 병원비와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 힘들다는 이야기‘

 

‘경찰 공무원 준비하는 동생 뒷바라지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

 

돈 돈 돈... 우리 집은 항상 돈이 부족하고 장남인 나는 항상 집안 형편이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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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문자도 몇 개 와 있었지만, 엄마한테 먼저 전화했다.

 

“아들 면접 봤는데 합격해뿌따. 큰 데는 아인데 외국계 회사라서 개안은 거 같다.”

 

“아이고, 잘됐네. 안 그래도 니 동생도 돈 마이드가고 잘됐다 잘됐네.”

 

“회사 이름 머고 교회에 자랑 좀 하자.”

 

“나중에 갈키 주께. 피곤하다 끊자”

 

어머니한테 XX금속이라고 말해도 모르실 것 같았다. 우리 아들 XX금속에 취직했다고 교회에 자랑할 수는 없으니...

 

“일단 돈도 벌어야 하고 중소기업에서 조금만 경력 쌓고 이직하면 되겠지.”

 

훗날 이 생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찌나 가슴이 아팠던지...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저는 중소기업 사원의 첫발을 내디뎠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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