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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23. 화요일

독투불패 곰카피




 

 




[화가의 딸로 산다는 것]이라는 마빡 제목을 보고 이끌리듯 클릭을 했더랬다. 아마도 전업화가의 자식으로서 바라본 예술가의 고뇌 내지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하지만 글은 기와 승을 무난히 넘기 전에 이르러 이 산이 맞나? 살짝 갸우뚱하게 만들더니 결국 험준한 K2 등반기 대신 예쁜 꽃동산으로의 흐뭇한 효녀 엔딩을 하고 말더라.



내 기대와 달랐다는 얘기지 디스를 한다거나 그러겠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예술가, 더 들어가서는 그림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전업화가'들의 Dark Side of the moon에 관한 썰을 한 번 풀어보고자 한다.

 

 


돈을 그릴 수만 있다면

 

내가 그림으로 먹고 사냐고? 아니. 울엄마가 화가다. 자랑 좀 하자면 졸라 위대한 예술가다(자식이 자기 엄마 위대하다는데 딴지 걸지 마라). 나이가 칠순이 넘으셨으니 화단에서는 원로 대접을 받고 계신다. 칠순의 화가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가? 모 대학의 학장 내지는 적어도 교수 타이틀을 가진 채 서울 근교의 한적한 곳에 말 그대로 그림 같은 개인 아뜰리에(작업실)를 소유하고 거기서 커피 광고 같은 한때를 보내는 老화가가 떠오르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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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우리 엄마가 저런 여유로운 작업을 하는 모습을

생전에 한 번이라도 보고 싶고나...

 

 

자... 빨간약 먹고 계속 쫓아오시라. 내가 보아 온 매트릭스의 실체를 보여주겠다.


우리 엄마도 생업을 위해 미술학원을 운영하셨다. 처녀 때부터 그걸로 생계와 작품 재료비를 충당하셨고 사업에 흥하기 보다 망하는 것에 더 소질 있으셨던 아버지 덕에 미술학원을 나이 60이 다 되도록 접으실 수 없었다. 입시미술이 아닌 애들을 가르치는 미술이었던 터라 큰 돈을 만질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 대학도 보내시고 나름 생계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엄마는 미술선생님이 아니셨다. 미술학원은 생계수단일 뿐 그림을 그리며, 평생의 걸작을 남기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한 예술가셨다. 엄마는 월~금 아침, 유치부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하교 시간부터 밤 7~8시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가족의 저녁을 챙긴 후(미술학원에 달린 방에서 4가족이 생활했다.) 정확히 밤10시부터 MBC FM의 <이종환의 디스크 쇼>를 틀어놓고 작업을 시작하셨다. 다음날 아이들 도시락도 싸야 하고 생계를 위해 잠은 자야 했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3시간, 예술가가 창작을 위한 고뇌에 마음껏 빠질 수 있도록 허락된 혼자만의 시간은 고작 그뿐이었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들은 절박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고 했던가... 엄마는 그 시간 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양산(?)해 내셨고 거의 매년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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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폴록의 '액션페인팅' 같이 우연에 기대는 물감 흘리기나

죽~죽~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작업류(?) 작품이 아닌 것이 애석할 정도로
씨바, 정말 문하생 하나 없이 꼼꼼하게 한 획 한 획, 붓질로 완성된 작품들이다.

 

 

지금까지 누적된 엄마의 작품 수는 캔버스 작품만 500여 점에 육박한다. 와... 그 많은 작품들의 행방은 어디로 갔을까? 팔렸다면 돈 좀 만지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겠지만 후... 한숨 먼저 내쉬고 답하자면 약 70%는 화실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고 계속 쌓여간다.



"이것들 모두 나 죽고 나면 엄청 오를 것이니까 조금만 참아라..." 



라고 하시는 농담은 엄마가 60이 넘고 나서부터는 씁쓸해지더니 요즘 가끔



"나 죽기 전에 이것들 다~ 불 싸지르고 가야지..." 



라고 하실 때면 듣는 내가 울컥~ 올라오기까지 한다. 본인이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인가? 현재 그림값 최고봉인 고흐는 지하인지 하늘인지에서 퍽이나 좋을까? 예술가의 최종 목표는 '생전의 인정받음'이 아니던가? 예술적으로 죽을 쑤어서 개를 주고 간 작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일화에 따르면 오늘내일 하던 뭉크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하던 것이 판화에 싸인 하는 것이었다고 하던데 처자식도 없던 그가 과연 누구 좋으라고 말년에 싸인회까지 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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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전업화가는 예술가이기 전에 의식주를 해결해야 할 인간이며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다. 그런 그들의 직업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야만 하고 또 그 그림은 정당한 평가에 따른 합당한 댓가로 대중에게 소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림만 팔고도 밥먹고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 대목에서 그림 안 팔아도 먹고 싸는 데 지장 없는, 다음 작품, 다음 전시회를 위한 제작비 마련에 대해 한 번도 걱정이란 걸 해보지 않은 취미 화가들 해당사항 없으시다. 계속 문화센터 열심히 다녀주시라. 그래야 그 문화센터에서 강의하는 전업작가들도 먹고산다.

 



환쟁이는 환장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인가


 

"순수미술을 하겠다고? 미쳤니? 굶어 죽고 잡냐..."

 


이 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답이다. 그래서 우선 생존을 위한 밥벌이부터 하다보면 본업이어야 할 작품활동은 부업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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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ja vu~

 


그렇다, 잘못되었다. 뭐가? 대한민국 미술계의 시스템? 그렇다 21세기 동네북, '시스템' 탓이다. 그렇다고 해방 이후 요 모냥 요 꼴을 유지하고 있는 시스템이 낼 모레 바뀔 리도 없고. "찍지마! 씨바..."나 외치는 양촌리 용식이 같은 넘이 문화부장관 하는 마당에(참... 이번 내정자도 화집보다는 결제서류를 더 많이 보신 분 같아 별 기대 안 함.)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업작가들은 그냥 내 작품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 세상이 알아 줄 것이다 라는 순진한 생각들을 하고 계신다. 어쩌면 그 순수함이 그들이 붓을 끝까지 붓들 수 있게 하는 힘 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본인이 몸소 깨달은 "대한민국에서 순수미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 3가지를 공개 해보고자 한다. 



두둥~~!!

 

 




1.작가나 함 해볼까?

 

그 비결 첫 번째는 돈 걱정없는 집에 태어나는 것, 혹은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너무 뻔한 답이라고?(이 나라가 그렇겠지 뭐...)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전업화가의 입장에서 보면 돈과 권력이 있는 계층들간의 네트워크 파워, 이게 사실 더 막강한 이점인 것이다.

 


잘 나가는 집안의 자제분께서 첫 개인전을 열거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취미로 그림 배우신 모 그룹 임원 싸모님께서 호기롭게 전시회를 여신다 치면 화환의 2열 종대 행렬은 물론이고, 요즘 말로 '완판녀'가 되어버리신다(하청업체나 거래처 사람들이 결혼식에 봉투만 놓고 가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고로, 화랑들에게 이런 작가들은 매우 소중한 고객님이다. 왜냐하면 초대전을 열어도 화랑이 힘들여서 그림 살 손님을 굳이 끌어오지 않아도 싸모님 체면에 완판은 이미 기정 사실이고 그 작가의 사회적 레베루에 걸맞은 돈 있는 손님들의 DB를 쉽게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판이라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꼴리면 출세하라고? 그래, 졌다... 졸라 부럽고 정말 출세하고 싶다 씨바... 화랑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하기로 한다.

 



2.교수천국 작가지옥

 

두 번째 비결, 사실 부자로 태어난 류의 '운명론' 이외에는 이 방법뿐이고, 또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바로, '교수' 타이틀을 다는 것이다.

 


사실 '교수 프리미엄'은 우리나라 미술계가 좀 유난해 보인다. 작가본인도 할 때마다 설명이 달라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 앞에서도 교수님 딱지가 붙으면 그림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먹히기 때문에 화랑들도 교수작품들 선호한다. 웃픈 현실 또 하나를 말하자면 우리나라에 1% 법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뭔가하면 건축비의 1%를 건물 내외의 미술장식에 할애해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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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1%가 훨~ 넘는구먼유...

 


얼핏 들으면 오... 작가들 노났네 싶지? 하지만 실상은 이 혜택을 보는 작가들도 1% 라는 게 슬픈현실이다. 공공건물의 경우 입찰 공고를 낸다. 그러면 대박의 꿈을 품은 작가들이 빚을 내고 시간을 들여 시안을 제출한다.(웬 빚이냐고? 제출물 중에 조감도가 있기 때문이지... 이거 작가가 손으로 그리리? 돈 주고 CG,CAD 외주 줘야지 않겠어?

외주는 싼감? 딱보면 순딩 뜨내기니까 홀딱 벗겨 먹더라...)



자 그럼 이 출품작들의 심사는 누가 할까? 빙고~! 위탁 받은 교수님들이 하신다. 그 다음 돌아가는 프로세스는 쓰기조차 손 아프다... 일반 건축물의 경우는 화랑들의 로비로 진행되는 건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저 작가의 작품이 좋아서 여러 건물에 걸려 있는지 여러 건물에 걸려 있어서 좋아 보이는 건지 아리까리 한 체로 자연스레 비슷비슷한 작품들에 낯이 익게 되는 것이다. 그 작품들 곁에 택이 있다면 봐두었다가 구글링 해보시기 바란다. 십중팔구는 교수님이라는 데 내 손모가지를...

 


미술에서 교수 타이틀이 우리나라에서만의 유별남인가에 대한 간단한 체크를 해보자... 당신이 주워들은 해외의 유명 미술 작가들 중 교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작가가 있는가? 그럼 유명 미대는(디자인, 패션 말고 순수미술)? 일반인들이 음악 쪽은 줄리어드, 버클리 등 몇 개 대학을 읊을 수 있지만 순수미술 쪽으로 유명한 대학?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학이 고작 위대한 '홍대' 하나 밖에 없다는 것도 미술계에서 학위 또는 교수 타이틀이 우리나라 이외는 별 의미가 없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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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그까이꺼 난 1년 만에 때려 쳤어... 배울게 없더라고...

 


이 교수작가들 중에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2세 작가들이 많다는 것도 특이하다. 부모의 피를 받아 재능이 출중한 작가들도 분명 있겠지만 부모가 미리 닦아놓은 고속도로를 타고 태생이 평범한 작가들보다 무난하게 주류에 편입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고 부모의 네트워크와 노하우에 따라 그들 역시  '교수'가 되는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세습은 우리의 민족성인 갑지...

 


우리나라 교수님들의 특권은 써도써도 끝이 없으니 이쯤에서 우리나라 미술 교수들은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교수'로 불리길 더 선호한다는 아이러니한 현실로서 미술계의 '교수 프리미엄'을 갈무리 하겠다. 교수 완장이 얼마나 좋으면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은 회사에 컴플레인 전화를 할 때도 "아... 저는 XX대 XXX교순데염~" 요러고 통화를 시작한다는 애기를 CS 실무자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누가 물어봤어염?).

 


이 챕터의 결론으로 이들 교수들에게 작품활동은 부업이며 고로 이들의 직업은 미술교수이지 '전업작가'는 아니다! 라고 이 연사 감히 외쳐본다.

 


꼬와? 그럼 교수를 관두시고 그림만 그리시던가... 싫지?



 

3.작가도 마케팅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방법 가본다. 요즘같이 정보와 컨텐츠가 숨막힐 정도로 매일매일 불어나는 시대에 자기 분야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또한 하루하루 증명되고 있다. 무조건 튀고 봐야한다! 모가 나야 정이라도 맞는 세상인거다.



"아 씨바 저게 작품이야?? 나도 그리겠다..."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자기 작품에 사람들의 눈길 한 번 꽂을 기회조차 없는 것보다야 100배 행복한 게 현실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미술계의 흐름도 '충격' ,'경악', '알고 보니...'의 강도를 더해 갈 수 밖에 없었고 그 정점은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영국의 예술가.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전설이며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영국 현대미술의 부활을 이끈 장본인.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충격적인 이미지와 엽기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일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 편집자 주)'가 찍어버린다. 이건 문화적 쇼크 이전에 우선 자기를 세상에 어필하고자 했던 한 무명 예술가의 천재적인 마케팅 작업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뒤엔 든든한 또라이 광고재벌 찰스 싸치가 받혀 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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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

위대한 백정?  아니, 아티스트...

 


그럼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미 떠올리셨을 거다.그렇다... 우리 시랭이 언니. 그녀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인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당당하게 '아티스트' 타이틀 달고 SNS와 방송을 누비는 그녀야말로 현대를 사는 예술가가 자신과 자기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101 메뉴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따라 해볼 테야? 앙~).



어느새 가수보다 '화투화가'로서 더 유명해진 전직(?) 가수 조영남의 경우와 분야는 다르지만 SNS를 기가막히게 활용하는 작가 이외수도 좋은 예라 하겠다.

 


가끔 연예인들이 작품전을 한다~ 사진전을 한다~ 하는 뉴스들이 들린다. 먹신 하정우나 코요테 빽가가 바쁜 일정 틈틈이 작업한 역작들이라며 전시를 하면 우루루~~~ 팬들이 몰려간다. 그 상황을 지켜보는 많은 전업작가님들의 씨니컬한 반응은 아이유가 공채 탤런트들을 제치고 주말드라마의 주연을 꿰차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연기자들의 어이없어함과 다르지 않을 거다.



더불어 개나 소나 붓 들고 셔터 누를 손꾸락만 있으면 작가임네~ 하는 것에 대한 자존심에 기스도 좀 날 것이고. 하지만 워쩔겨? 역시 꼬우면 연예인이 되시던가 어깨에 이구아나라도 얹고서 앙!~앙!~ 대중의 관심을 먼저 끈 다음에 전시회를 하던지 해야 된다니까! 참 내...

 


위의 세가지 모두 해당사항 없거나 죽었다 깨어나도 예술가적 자존심 상  못하겠다고? 그럼 모 어쩔 수 없다. 열심히 골방에서 시스템이 붕괴되어 새날이 올 때까지 묵묵히 작품활동에만 매진하시라... 미안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스펙과 빽을 걷어내고 오직 작품으로만 다이다이로 붙어서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안 되어 있다...



아직까지 우리 대중들에게 순수 예술은 남이 좋다고 하면 따라서 좋은갑다~해야 "이런 무식한 자석~" 소리를 면하는 그런 수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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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적과의 동침

 

이 부조리한 시스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화랑에 관한 썰도 좀 풀어볼까 한다. 대한민국의 화랑계는 박수근, 이우환, 김환기, 천경자 등 한국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을 독점하고 팔리는 작품들이라면 호구 취급 마다하고 시급하게 외국 유명작가들의 B급 작품에 대한 국내도입을 서두르는 메이져 갤러리들이 최상단에, 그들의 친인척들이 운영하는 인사동과 청담동의 화랑들이 중간에 그리고 그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소규모 화랑들이 바닥을 다지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미술교양 함양에 이바지하고 있다. 



옥션도 있지 않냐고? ㅋㅎㅎㅎ 유명 옥션들 역시  최상단의 메이져 화랑들이 뒤에서 주물주물~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업화가들을 상대해주는 화랑들은 그나마 기단부의 소규모 화랑들이다. 그럼 화랑들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까?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서 물심양면 전폭지원으로 스타작가로 키워낸 다음 작품 값을 올린다.



에이~ 설마~~~? 안 믿기지? 그래 맞다... 그렇게 세련된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리가 없잖아!! 사실 그건 미국 ,영국 심지어 중국 얘기다. 그럼 우리나라 화랑들은? 거기서 호당 1,000만원이 우스운 그림들이 거래되는 메이져 화랑들의 거래는 논외로 한다. 부동산 거래 시 중계수수료가 0.5 %정도지 아마? 미술품을 경매하는 옥션은 10~20% 정도 수수료를 떼어간다. 자 그럼... 미술품의 실 거래가 이뤄지는 화랑은 얼마~~게? 여기서 욕 한번 더 하고 정답 발표하겠다. 씨바...



대부분의 화랑이 무려 작품 판매가의 50%를 떼어간다. 반띵~!!!


이건 가카 취임 훨씬 이전부터 미술계의 관례이고 법적인 가이드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아놔. 도둑넘들... 더 뜯고 덜 뜯는 화랑들도 분명 있고 작가에 따라서도 조금 덜 떼는 경우도 있지만 미술계의 상식으로는 50% 다. 그럼 작가의 작품이 100만원에 거래되었다고 했을 때 창작의 주체인 작가의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일까? 예술적 창작 작업에 순수한 인건비를 매기기가 그렇지만 10호 그림 하나 그리는 데 구상부터 완성까지 3일이 걸렸다고 치면

시급 10,000원에 하루 8시간으로 해도 24만원. 거기다 액자, 캔버스, 물감 붓 등의 재료비와 기타 실비 한 15만원 정도하면 전업작가가 100만원짜리 그림 하나 팔아서 본인 손에 쥐게 되는 최종 수익은 20%가 채 안되는 구조이다.  쫌 거시기 하지 않은가?



자세히 따지지 마시라. 여기서 키워드는 '화랑의 작품판매 수수료50%'니까. 언제고 화랑을 통해 작품을 구매하게 된다면 잊지마시라! 화랑 반띵!



고로 작가와 미술품 구매자 모두 윈윈 하는 꼼수를 하나 알려드리면 화랑에서 그림 보구 나와서 작가랑 따로 연락하여 직거래 하시라.(이러다 화랑쪽에서 테러 당할라...)

 


여기서 또 구조적인 문제를 엿볼 수 있다. 평생 그림만 그려온 전업화가가 그림을 세상에 공개하고 판매하는 행위만큼 막막한 것도 없을 것이다. 반띵을 하더라도 그나마 화랑에서 불러주는 화가들은 행복한 편에 속한다. 작가가 직접 옆구리에 그림 끼고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화랑마다 찾아 들어갈 수도 없고. 길에서 좌판을 벌일 수도 없지 않은가? 백도 네트워크도 약한 화가는 하는 수 없이 자비를 들여 적당한 화랑을 대관해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때 드는 비용 또한 만만하지 않기에  많은 작가들이 우선 빚을 내어 대관을 하고 액자를 하고, 팜플렛을 인쇄하고 미술잡지에 광고까지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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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그림이 좀 팔리면 빚도 갚고 다음 작품을 위한 재투자도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이 빚에 허덕이는 악순환을 끊기가 힘들다. 이런 대관 손님들에게 화랑은 큰 힘을 쏟지 않는다. 화랑은 그저 노는 공간 대관료 받아 좋은 거고 혹여 화랑을 통해 판매가 된다면 수수료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화랑의 초대전인 경우 작가는 대관과 홍보의 부담을 덜고 화랑도 나름 적극적으로 손님을 유치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50%의 판매 수수료는 가혹하다. "어느 화랑이 판매 대금을 제때 주더라"는 작가들 사이에 훈훈한 미담이 되고 상설 전시를 이유로 작품을 화랑에 맡겼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어느 날 화랑에서 작품이 사라져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금전적인 면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전업작가들이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점도 있지만 그림만 그릴 줄 아는 순진한 작가들 등을 치는 일부 화상(畵商)들의 진상질이기도 하다.

 


쓰다 보니 두서없이 길어지고 이야기도 갈피를 못 잡는 거 보니 머리에 한계가 온 듯하다. 슬슬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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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만 먹어도 되는 송충이는 행복하다

 

대부분 전업작가들 아니 우리엄마의 소원은 당근, 그림이 대박나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다(후... 칠순이 넘으셨다니까...) 하지만 그 소원은 로또 1등 먹게 해주세요 급 소원이고 소박한 현실적인 바람은 생계 고민 재료비 고민 화실임대료 고민 안하고 오직 '무엇을 그릴까? 어떻게 그릴까?'만 하루 종일 마음껏 고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시는 거라 말씀하셨다. 



울엄마 나름 원로 중견 대접받으시는 분이라 호당 가격도 꽤 되고, 그림도 간간히 거래된다. 하지만 부업 없는 현재 전업작가로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라 통장은 마이너스, 카드는 리볼빙이 기본이다. 김연아라고 딴거 안하고 스케이트만 타고 싶지 않았겠수? 



물론, 지금 더 처절하게 고생하고 더 억울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진짜 순정작가님들이 어디선가 묵묵히 붓을 놀리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정도의 차이일 뿐 예술 권력, 예술 기득권 아래 개선의 기미가 안 보이는 불합리한 시스템 속의 똑같은 희생자라는 입장에서 내가 겪고, 듣고, 아는 한에서 주저리 주저리 여기까지 써봤다. 당근 두서도 없고 오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박과 보충 글이 올라온다면 우리나라 전업화가들,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미술계의 현실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더 늦기전에

 

앞서 밝힌 교수 층들의 장기적인 기득권 행사와 더불어 박수근 등 몇몇 작가들에게만 맞춰진 우리나라 미술계의 포커스는 2000년대 들어 해외유학과 인터넷으로 대중들이 접하기 시작한 다양한 미술 컨텐츠에 영향 받아 트렌드에 맞춘 젊은 작가들을 띄우기 시작하면서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현대 미술의 초석을 다진 1940~50년대 태어난 많은 전업작가분들(일명 세시봉 세대)이 지금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붕~뜬 세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대중 음악계에서 후배들이 김창완이나 신중현에 대한 예술적인 재평가 작업들을 하는 걸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의욕적인 신진 미술평론가들의 재평가 작업들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쎄시봉 세대가 재조명되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 대중음악계와 함께 예술계도 같이 회자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살짝 피력하면서 울엄니의 처녀적 사진을 화끈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이 썰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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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鄭江子) 대한민국 최초의 누드 해프닝 <투명풍선과 누드>/ 1968년 세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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