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 11. 29. 금요일

아외로워









또 축구 얘기다. 이번 주 일요일, 그러니까 12월 1일 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케이리그 경기에 관한 이야기다. 축빠들에게는 이미 식상한 이야기라서 달리 이야기할 필요 없고, 반면 축구 안 보는 일반인들에게는 완전히 아웃오브안중이라서 딱히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이 엄청난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도 하고 있지 않은 듯해서 감히 키보드를 들어본다.


굳이 또 명승부


지난 11월 27일, 6연승을 기록하며 리그 선두를 달리던 울산현대가 부산 원정을 떠났다. 비기기만 해도 사실상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였다. 만약에 이 경기에서 비겼다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0 정도로 털리지 않는 한 우승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이날 울산의 상대였던 부산은 지난 9월 1일, 포항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상위 스플릿에 극적으로 합류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후가 문제였다. 리그 상위 반절을 짤라서 모아놓으니 중위권 다크호스였던 부산은 상대적으로 초 약체 호구팀이 돼버렸다. 서울과 0-0 무승부를 시작으로 6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했다. 스플릿 스테이지 12경기 중 반절인 여섯 경기를 그것도 연속으로 무득점 한 것이다. 말이 쉬워 6경기 연속이지 한 달 반을 승리는커녕 골 넣는 꼬라지도 못 보여준 거다. 부산 아이파크의 ‘오빠’들은 그 많은 부산의 소녀 서포터들에게 골 세레모니로 팬 서비스도 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Screen Shot 2013-11-29 at 10.30.16 AM.png

[사진]만약에 당신이 아는 여자가 K리그를 사랑한다면 부산 팬일 가능성이 높다. 축구 보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면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 가볼 것. 승리에 환호하는 부산 서포터즈 (출처:중계화면 캡쳐)


그러다가 경찰청에서 병역을 마친 양동현이 복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0월 30일 전북전에서 양동현이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덕에 부산은 지긋지긋한 무득점을 빠져나왔다. 경기는 전북이 이기긴 했지만 부산의 경기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스플릿 라운드 8경기 연속 무승(3무 5패, 세 번 있었던 무승부의 스코어는 모두 0-0)을 기록했던 부산은 11월 10일 인천전에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더니, 17일에는 수원까지 잡으며 연승을 기록했다. 24일 서울전에서도 지기는 했지만 또 양동현이 골을 넣었다. 지난 27일 경기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다크호스 부산과 7연승과 우승을 눈앞에 둔 울산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이 경기를 부산이 잡아버렸다. 수비 실책으로 한 골을 헌납한 부산의 수비수 이정호가 후반전 세트피스에서 헤딩으로 동점 골을 넣더니, 종료 직전 역습 상황에서 양동현 어시스트에 파그너의 골이 나오면서 경기를 뒤집어 버렸다. 


이 경기에 5시간 앞서 열린 포항 경기에서 2위 포항 스틸러스는 우승 다툼에서 쩌리가 돼버린 FC서울과의 경기에서 3-1로 이겨놓고 울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포항의 황선홍 감독은 간이 떨려서 울산전은 관전도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산이 이겨준 덕분에 포항은 우승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상황이 꼬인다. 지금 울산의 승점은 73점, 포항은 71점이다. 두 팀은 각각 1위와 2위를 기록 중이고 이제 남은 경기는 양 팀 모두 한 경기다. 그런데 그 한 경기가 하필이면 울산과 포항의 맞대결이다. 울산도 포항도 이 경기에서 이기면 우승컵을 가져간다(비기면 당연히 울산이 가져간다). 지금까지 치러온 리그 전체가 무색하게도 시즌 마지막 단 한 경기로 우승컵의 향방이 갈리게 돼버렸다. 말 그대로 챔피언 결정전이다.


겨우 그런 거 가지고 호들갑인가 싶을 것이다. 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우승팀이 가려지지 않는 게 딱히 신기한 일도 아니고, 설령 그 마지막 경기가 1, 2위 대결이라도 좀 관심은 가겠지만 오바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상의 챔피언 결정전 대진이 울산과 포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까지 이야기해도 잘 모르겠는 일반인들을 위해 추가 설명을 하겠다. 경상도 동해안 지방에서 전해지는 축구 전설이다.


더비의 향기


기회가 될 때마다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포항은 한국 축구의 배아줄기세포 같은 팀이다. 한국식 프로리그는 포항에서 비롯됐다. 포항 서포터가 족보 없는 축구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은 다 그런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Screen Shot 2013-11-29 at 10.35.23 AM.png

(출처:포항스틸러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울산도 근본이 있는 팀이다. 무엇보다 구단주가 한국 축구의 거물이자 새누리당 8선 의원이자 가장 돈 많은 국회의원이자 피파에서도 한 자리 하셨었던 정몽준 회장이다. 당연히 전통적인 강팀이다. 은근히 인기 없는 이미지와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는 비난에도 공허한 공격축구 드립 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멋진 구단이다. 


Pic3.png

[그림]K리그 클래식 팀 분포도. 대전은 강등이 확정됐다.(출처:위키피디아)


위의 지도를 보면 포항과 울산이 상당히 가까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존심 강하고 성적도 잘 나오는 구단이 저렇게 붙어있으면 당연히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그렇다. 양 팀이 모두 강팀인 것이 문제였다. 울산은 다른 인접구단인 대구나 부산, 경남 같은 팀들과는 딱히 원한 사지 않고 잘 지내고 있고 이것은 포항도 마찬가지다. 


양 팀 사이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다가 드디어 1998년, 꽁지머리 골키퍼 때문에 폭발하게 된다. 98년은 K리그에 플레이오프가 처음으로 도입된 때였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으로 가는 플레이오프에서 포항과 울산이 맞붙었다. 원래 서로 은근히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데다가, 한국 축구의 르네상스로 축구 열기가 폭발하던 원년이었고 양 팀의 경기가 워낙 명승부였다. 말이 필요가 없다. 영상으로 보자.



이 경기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98년에 울산이 우승한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 승부는 챔피언 결정전으로 가는 플레이오프일 뿐이었다. 울산은 준우승했다. 참고로 동영상에서 한준희 위원(지금과는 달리 머리가 풍성하시다)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울산은 준우승에 일가견이 있는 팀이다. 지금까지 총 여섯 번의 준우승을 했고 2002~3년 시즌에는 한국 축구사에 전무후무한 연속 준우승 기록까지 세웠다. 반면 의외로 우승은 두 번밖에 못 했다.


어쨌든 이날 이후 포항과 울산의 경기는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기 시작했고 수원과 안양의 지지대 더비와 더불어 한국의 1세대 더비로 인정받고 있다. 현존하는 더비로는 가장 오래된 더비경기다. 2001년에는 98년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틱한 승부를 이끌어냈던 김병지 골키퍼가 하필이면 포항으로 이적하면서 양 팀의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시간은 흘러 2007년 준플레이오프, 울산은 홈에서 포항을 맞아 분전했다. 팀의 사기유닛 이천수가 시즌 중반에 페예노르트로 이적해 갔지만 여전히 우성용, 알미르 등 2005년 아시아의 깡패 시절 멤버들이 건재했던 울산은 승리를 낙관했다. 당시 포항은 법인화 작업과 더불어 모기업의 돈줄이 점점 말라가던 시점이었고 예전과 같은 강팀 느낌이 많이 희석돼 있었기 때문이다. 


2007포항.jpg

(사진:스포탈코리아)


그러나 포항의 저력은 대단했다. 지금은 포항에 없는 이광재와 황재원이 골을 넣었고, 울산은 우성용이 골을 넣었다. 당시 2005년부터 감독을 맡고 있던 브라질 출신 세르지우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을 멋진 패스플레이를 하는 팀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이제 막 그 결실이 맺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울산은 물론이고 수원과 성남을 연파하더니 우승해 버렸다. 이후 2009년까지 파리아스 감독은 K리그, FA컵,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까지 매년 순서대로 우승컵 하나씩을 쭉 들어 올렸다. 이른바 ‘파리아스 매직’이다.


운명은 얄궂게도 2008년에도 포항과 울산을 챔피언십에서 또 붙여 놓고 말았다. 장소는 울산 월드컵 경기장. 경기 자체는 딱히 할 말이 많지가 않았다. 당연히 경기가 과열되는 양상이 있었지만 의욕이 불타는 양 팀 선수들이 거칠게 투닥거릴 뿐 결정적인 장면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전후반 90분이 득점 없이 지나고, 연장전도 전후반이 득점 없이 끝났다.


이때 울산 코칭스탭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연장 후반이 끝나기 직전 골키퍼를 교체한 것이다. 울산의 주전 골키퍼는 국가대표 골키퍼 김영광이었다. 그런데 울산은 그 김영광을 빼고 프로경기에 단 한 번도 뛴 적이 없는 신인 골키퍼 김승규를 투입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큰 부담이 되는 경기의 승부차기 골키퍼로 베테랑을 빼고 풋내기 골키퍼 프로 데뷔전을 치르게 해주는 것은 상당한 모험 수였다.


2008울산.jpg

[사진]어린 유망주에게는 환희의 순간. 포항에게는...(출처:OSEN)


그런데 이게 통했다. 김승규는 포항의 에이스 노병준과 김광석의 슛을 막아냈다. 울산은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고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


그리고 2010년에는 드디어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가 피파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더비로 인정받았다. 피파의 관심에 힘입은 것인지 비슷한 장면은 2011년에 또 반복됐다. 울산은 6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한 반면 포항은 2위를 기록했다. 울산은 FC서울과 수원을 연달아 꺾었다. 특히 아직도 김영광에 밀려 서브 골키퍼였던 김승규는 수원과의 경기에서 또 연장 후반에 교체투입 돼서 승부차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드디어 포항과 울산의 대결. 2007년 포항이 플레이오프 대 역전극으로 우승하던 때와 거의 반대의 상황이었다. 턱걸이로 올라온 울산이 위에서 기다리던 포항을 만난 거다. 이 경기에서는 울산의 주전 골키퍼 김영광이 경고누적으로 출장할 수 없었다. 덕분에 승부차기 전용 골키퍼로 자리를 잡아가던 김승규가 모처럼 선발출장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기막힌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 경기의 주인공은 김승규 골키퍼가 돼버렸다. 이날 포항은 전반에만 무려 2개의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포항으로써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울산의 골키퍼 김승규가 승부차기 청부사라는 변수가 있었다. 전반 8분, 모따(브라질 사람들은 본명이 무척 길기 때문에 대부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K리그 용병에 등록명이 따로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모따의 본명은 ‘주앙 소리아스 다 모타 네투’다)가 찬 페널티킥을 김승규가 막아냈다. 24분에 또 페널티킥을 얻어낸 포항은 이번에는 황진성더러 차게 했지만 김승규는 당연하다는 듯 또 막아냈다. 


20111126165511153.jpg

[사진] 모따의 슈팅을 막아내는 김승규. (사진:스포탈코리아)


더욱 얄궂은 장면이 후반전에 나왔다. 후반 16분, 이번에는 울산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불쌍한 신화용은 설기현의 슛을 막아내지 못했고 경기는 그렇게 1-0으로 끝났다. 


여담이지만 이 경기에서 이긴 울산은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서 전북에게 진다. 전북은 팀의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울산은 대망의 여섯 번째 준우승을 달성했다.


스틸타카와 호르곤 명장설


2012년, 드디어 축구계에 플레이오프가 없어졌다. 이제 우리도 리그 승점만으로 우승팀을 결정하게 됐다. 플레이오프 폐지 원년인 2012년에는 FC서울이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래서 리그 후반에 너무 관심도 떨어지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기로 한 건지 울산은 모두가 승리를 예상했던 부산전에 패하면서 마지막 경기까지 이목을 끌게 됐다. 


올해는 지난 4년간 이어진 전북과 서울의 퐁당퐁당 우승이 끊긴 해다. 시즌 초반부터 FC서울은 유래가 없는 막강한 무승 행진을 벌이면서 야구의 한화와 더불어 성적부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UTU의 법칙인지 결국에는 최소 4위 이상을 확보하게 됐다. 전북은 최강희 감독 대행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며 전반기에 부진했지만 후반기에 한때나마 우승을 노리는 위치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이번 시즌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팀은 단연 포항과 울산이다. 특히 시즌 초 포항의 축구는 충격적이었다. 선수들이 공을 딱딱딱 주고 받으면서 쓱쓱쓱 몰고가서 골을 넣는 포항의 스타일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포항의 경기를 접한 사람들이 이게 스페인 식이네 이탈리아 식이네 갑론을박이 오고 갔고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스페인식 티키타가와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스틸타카’, 혹은 ‘과메기타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포항의 특기할만한 점은 외국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포항이 우리 민족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파시스트 팀이라거나, 원래 외국인 선수를 안 쓰는 팀이라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2012년만 해도 지쿠와 아사모아가 포항에서 뛰었다. 그런데 왜 외국인 선수가 없냐고? 그냥 돈이 없는 거다. 


htm_20130315164015318_59_20130315173302.jpg

[사진]그렇게 얻은 별명이 황선대원군이다. (출처:한 인터넷 커뮤니티)


케이리그 돈 없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불황이 계속되는데다 선수들 연봉까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스폰서들이 운영비 상위 구단이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한국 프로축구는 연봉이 모두 비공개였다. 


어쨌든 근래의 이런 돈 없는 분위기를 가장 먼저 타기 시작한 구단이 포항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가장 굵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포항은 저력이 있는 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갖춰진 포항의 유소년 시스템은 포항이 마지막까지 비빌 언덕이다. 포항식 과메기타카의 중심에는 황진성, 신광훈, 이명주, 배천석과 같은 포항 유스출신 선수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선수들, 그것도 한 팀의 유스시스템에서 나온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런 수준 높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포항의 저력이고 한국 축구의 저력이다.


3월 2일 리그 첫 경기에서 서울이랑 2:2 무승부를 기록할 때만 해도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이어서 대전, 수원, 전남을 연파하고 두 달이 다 되도록 무패를 달렸다. 무려 11경기 무패(6승 5무)를 달리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5월 18일 홈경기에서 마침내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상대가 울산이다. 


울산이 재미있는 축구를 한다는 소리는 비록 문법상 하자가 없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 취급 받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 울산은 수비축구의 대명사이며 한 골 넣고 잠그는 패턴의 전형을 보여주곤 했다. 성적도 썩 좋지 않았다. 2005년, 사기유닛 이천수가 뛰던 시절에는 K리그와 아시아를 씹어먹었지만 이후에는 차츰 내리막길을 걸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으면서 그에 걸맞는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욕은 욕대로 먹고 돈은 돈대로 쓰는 팀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부터이다. 위에서 말했던 6강 플레이오프에 턱걸이로 올라간 뒤, 연전연승 이후 6번째 준우승을 달성한 해가 2011년이다. 여기에 지금은 없어진 리그컵 대회도 차지했다. 비록 종이컵 소리 듣던 대회였지만 그래도 이 대회 우승으로 울산은 자신감을 찾았다.


Screen Shot 2013-11-29 at 11.08.48 AM.png

[사진]신인시절 고딩머리 하고있는 김신욱


리그컵 우승과 챔피언십 준우승을 거치면서 얻은 울산의 새로운 별명은 '철퇴축구'였다. 미드필드에서 딱히 높은 점유율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하는 시간보다는 수비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결과적으로 이기는 축구를 했던 것이다. 헤딩 마스터 김신욱은 철퇴축구의 핵심이었다. 원래는 '뻥축' 한다는 조롱의 의미가 있었는데 점점 좋은 성적이 되면서 울산의 정체성이 돼버렸다.


2011년 준우승은 울산에게 챔피언스리그 참가 기회를 줬다. 그리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무패우승 해버렸다. 광저우도 해내지 못한 위업이다. 김호곤 감독을 '호르곤'이라 부르며 욕하던 축빠들도 혹시 그가 알고보면 불후의 명장이 아닌가 하는, 이른바 '호르곤 명장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20121110230329635.jpg

[사진]챔피언스 시상식에서 철퇴풍선을 휘두르며 말춤을 추면서 등장한 김신욱. 

머리가 브라질 용병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3년, 울산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드필드의 장악력이 매우 좋아졌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온 수비형 미드필더 마스다 지카시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울산이 점유율까지 높이기 시작한 거다. 울산은 잠그다가 역습하는 지루한 팀에서 잠글 때는 확실히 잠그고, 수준급 패스 플레이에, 그마저 막히면 김신욱의 머리를 보고 띄우는 전천후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2011년 리그컵, 2012년 챔스 우승에 이어 2013년에도 우승을 해보려는 욕심이 있다.


이 날의 승리팀은?


Screen Shot 2013-11-29 at 12.15.53 PM.png

[사진]28일, 팔자 좋게 연탄 봉사활동을 하는 포항의 선수와 임직원(출처:포항 스틸러스 홈페이지)


2013년, 울산과 포항은 모두 3번 만났다. 전적은 울산이 2승 1무로 앞섰다. 게다가 포항은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마다 울산에게 발목을 잡혔었다. 게다가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곳이 울산 홈이다. 울산의 포항전 홈 승률은 90%에 육박한다. 그리고 포항과의 챔피언십으로 프로무대에 데뷔한 울산의 김승규 골키퍼가 이제는 울산의 주전 골키퍼이자 국가대표 골키퍼로 성장해 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울산이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울산에게 유리하지만도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공격이다. 지난 부산전에서 울산은 모두 2개의 경고를 받았다. 하필 그 두 장의 카드가 울산의 투톱인 김신욱과 하피냐에게 갔다. 원래 시즌 누적 경고 수가 3의 배수가 될 때마다 한 경기 출장 정지가 된다. 김신욱은 시즌 6번째 경고, 하피냐는 3번째 경고를 받으면서 울산의 선발 투톱이 모두 포항전에 못 나오게 됐다. 울산의 콩라인 컴플렉스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포항은 지난 경기에서 FC서울에 완승하며 5연승째를 기록했다. 여기에 포항의 스트라이커 노병준은 무슨 자살테러 하러 가는 무슬림 전사같은 인터뷰를 하면서 분위기를 더욱 격하게 만들고 있다.


원래 포항과 울산의 경기는 예측이 무의미하다. 선수들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너무 많다. 게다가 단판 승부로 우승이 오락가락하는 중요한 경기라면 그냥 혼돈의 카오스다. 조심스럽게 벤치 클리어링 비슷한 상황도 예상을 해본다. 케이리그의 매력은 선수들이 목숨 걸고 뛴다는 거다. 


Screen Shot 2013-11-29 at 12.55.17 PM.png

[사진]FC서울에서 뛰는 일본인(스페인 출신, 일본국적 획득)에스쿠데로가 말하는 한국 축구의 특징.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 선수들에 비해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출처:http://chappira.tistory.com/40)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전북 없는 경기를 이렇게 기대해 본 것도 무척 오랜만이다. 고등학교때, 남고였던 우리학교 운동장 건너편에는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고가 있었다. 우리학교가 체육대회를 하면 여학교 학생들이 우리학교 체육대회를 멀찌감치서 구경하곤 했는데, 그래서 경기는 언제나 쉽게 과열됐다. 누군가 부러지거나 실려가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체육대회 시작 전에 체육선생님이 ‘오늘 경기는 A매치도 아니고 국가대표 선발전도 아닙니다. 살살 뛰세요’ 라고 당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마치 내 고등학교 시절 체육대회처럼, 통제 불능의 시한폭탄같은 경기가 강력하게 예상된다. 145번째 동해안 더비, 그리고 2013케이리그 우승팀을 가리는 경기가 이번 주말에 열린다.








아외로워

트위터: vforveri@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