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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러 문재인 청문회대선토론을 하느라 그 누구도 공약은 신경쓰지 않고 있지만서도, 그래도 누구 하나는 봐야하는 거잖아요. 약간은 중구난방인 공약들을 주제 별로 디벼보기로 하였습니다. 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만 몇 편이나 나올진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나랏님도 몰라요.


첫 편은 20대 여성이 보는 성평등 정책입니다. 철저히 본인과 주변인 입장에서 서술했으니 "네가 뭔데 20대 여성의 총대를 멨냐"거나 "민증을 까지 않으면 믿지않겠다"는 말은 넣어두십시오. 총대는 원래 아무도 몰래 혼자 메는 것입니다.



어느덧 20대 후반, 나이를 먹음에 따라 많이 정리된 교우관계는 딱 세 그룹으로 나뉩니다. 취업 한 애, 못한 애, 공무원준비생. 비율로 따지면 2:1:7 정도죠. 공무원준비생의 7은 취업준비를 하다가 돌린 애들이 태반이라 아직 준비한지 1-2년 밖에 안 된 애들이 많습니다. 보통 공무원 준비부터 합격까지를 3-5년으로 잡으니 얘네는 아직 붙으려면 해온 기간의 두 배는 더 고생해야겠죠. 학자금 대출이 있거나 부모님이 곧 은퇴하시는 친구들은... 휴, 만나면 늘어나니 한숨이요, 욕입니다.



1) 취업이 안 됩니다


친구 A는 아는 애 중에 가장 스펙이 좋은 애입니다. 출신 대학도 굴지의 명문에 (당연하지만) 한국말은 물론 영어에 제2외국어도 할 줄 알죠. 성격도 똑부러지고 논리적이기까지 해서 말도 잘합니다. 얘가 작정하고 자기 아이돌을 영업한 적이 있었는데, 듣는 내내 '예쁜지 모르겠는데' 하다가도 집에 가면 그 아이돌을 사진을 찾고 있습니다. 그만큼 약을 잘 파는 애에요.


스펙 좋아, 학벌 좋아, 말 잘해. 심지어 얼굴도 예쁩니다. 취업하는데 얼굴 예쁜 게 뭐가 중요하냐구요? 제가 안답니까? 유명 연예인이 TV에 나와 “여자가 예쁘게 태어난 것은 고시 3관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게 잘못인지도 모르는 사회에서 안 예쁜 게 나쁜 거겠죠.


친구들은 모두 A가 대기업에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A는 예상을 깨고 낙방과 낙방을 거듭하며 꼬박 1년을 취업준비 하는 데 썼습니다. 스펙은 학교 다닐 때 쌓았으니 그것까지 합치면 사실 1년이 넘는데, 조금 슬프니 1년으로만 한정하겠읍니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으니 서류는 매번 통과했습니다. ‘인‧적성’이라고 불리는 기업 자체 시험도 거의 매번 합격해, 남들은 한두 번 가기도 힘들다던 면접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럼 뭐합니까, 꼭 최종 혹은 세미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고 마는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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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두 번의 낙방은 A의 잘못이 맞았는지 몰라요. 기억해보면 언젠간 머리 망 밖으로 잔머리가 유난히 빠져있었으며, 언젠간 구두 끝이 닳아있었다고 했거든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면접관의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대답조차 제대로 못했던 남성 지원자가 자기 대신 붙은 건 이상했습니다. 그는 A를 제외하고도 모든 여성 지원자들보다 말도, 의견 개진도 못했는데 말이죠.


비록 그 기업은 떨어졌지만, 워낙에 능력 있는 친구라 면접 보러오라는 곳이 많았습니다. 물론 면접을 보러오라는 거지 A를 붙여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던 지라 결과는 똑같았어요. 떨어뜨릴 거면 곱게라도 대해주지 어떤 면접관은 무례함을 보이기도 서슴지 않았답니다.


“A씨, 여자가 그렇게 말이 많으면 안 돼요.”


A는 면접장에서 지원자가 아닌 '여자'로 취급 받았어요. 여기 면접자 위에 여자 있습니까? 슬픈 건 A가 그나마 예쁘고 날씬했기 때문에 이 정도 지적만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A와 같이 면접 본 어떤 여성 지원자는 같은 사람으로부터 다른 말을 들어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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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면접관 자리에 거울을 하나씩 놓도록 합시다


“둔하단 소리 안 들어봤어요? 영업직에 지원했는데, 취업하면 살 좀 빼야 하지 않겠어요?”


A는 왜 모욕을 한 건 면접관인데,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건 같이 면접을 봤을 뿐인 나인 거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뭐, 울분을 토하든 말든 결과는 두 여성 지원자의 사이좋게 탈락을 했습니다.


“인적성까지는 합격자 중에 여자가 훨씬 많은데, 어째서 면접만 보면 합격자 성비가 반대로 되는 걸까.”


불합격의 늪에서 A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고. 취업엔 스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A의 스펙은 너무 좋아도 좋은 상태였지 모자라다고 보기는 힘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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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를 신박하게 하는 방법.jpg


[각 후보의 관련 정책]


여성채용을 꺼리며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이지만, 비겁한 변명입니다. 앞으로 결혼하건 말건, 아이를 낳건 말건, 현재 취업하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요?


문재인

- 대통령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로 성평등정책 추진 동력 강화

- 블라인드 채용제, 여성청년고용의무할당제, 여성 고용 우수기업에 포상/조세감면


심상정

- 포괄적 혐오표현, 성차별에 대한 규제 및 차별금지법 제정, 공공기관 및 일정규모 이상의 민간기업에 성평등/인권교육 의무화

- 여성고용기준 미달기업 패널티


안철수

- 헌법 11조 개정을 통해 국가의 실질적 평등 촉진 의무 구체화


유승민, 홍준표 (..)


+각 후보의 '청년' 모두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정책은 넣지 않았음



2) 취업해도 똑같구요


친구 B는 4년 차의 직장인입니다. 남들 휴학도 하고 취업준비도 길게 하는 마당에 휴학 한 번 없이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해, 친구들 사이에선 나름 짬밥의 제왕입니다. 벌써 대리를 달았으니까요.


얼마 전 B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비슷한 직무의 남자 대리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하는 일에 차이가 없는데 남자 대리와 연봉 차이가 꽤 많이 났거든요. 한두 푼도 아니고 기백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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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협상의 결과물, 이라고 하기엔 힘들었어요. 많은 회사가 그렇듯 B가 다니는 회사의 임금협상 역시 형식적이어서, 적용받은 인상률이 거기서 거기였그든요. 군 시절을 호봉으로 해줬나 싶어 취업규칙을 뒤져봤지만 아무리 봐도 해당 구절은 없었습니다.


B는 남성 임원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순탄치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한 구국의 결단이었죠. 하지만 어째서 남자 대리와 나의 임금이 이렇게 차이가 나느냐고 묻는 B에게, 해당 임원이 한 말은 무심하기 짝이 없는 데다 무례하기까지 했습니다.


“자네도 이제 20대 후반이고 곧 결혼하고 애 낳을 텐데, 그럼 회사 그만둘 거 아닌가? 계속 일할 사람한테 더 많은 돈을 주는 게 어디가 어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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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애초에 그게 연봉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지만 듣지 않았고, '자신은 결혼할 생각도 없다'는 말에도 듣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소득 없는 면담이 있던 그 날, B는 회사의 유일한 여성 임원 C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었습니다. C는 유능하기로 소문이 난 근속 15년의 여성이었는데, 직원들끼리 부르는 별명이 ‘독한 아줌마’였어요. C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던가, 일할 땐 독할지 몰라도 부하 직원들에겐 상냥한 사람이라는 건 별명이 만들어지는데 중요하지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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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고 뭐고 “여자가 저렇게 독하면 안 돼”라는 말을 밥 먹듯 듣는 C의 위로에 B는 씁쓸한 얼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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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후보의 관련 정책]


문재인

-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법제화, 성별임금격차해소 5개년계획

-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여성 관리자 비율 확대, 내각 여성 비율 30%->50% 


심상정
- 성별 고용 임금실태 공시제
- 정치 여성할당제 의무화


안철수
- 성평등임금공시제, 동일임금의 날 제정
- 여성 정치대표성 강화를 위해 내각 여성비율 OECD 평균 30% 추진


유승민, 홍준표 (..)



3) 결혼은 안 할 건데 비혼도 힘들어요


D는 중소기업에 다닙니다. 페이도, 복지도, 분위기도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니는 거죠. 안 그럼 다시 취준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모든 의의는 '먹고 살만큼'에 두는 것입니다.


D는 비혼주의자입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지만, 돈을 벌며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뒤 비혼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집이 여유롭지 않아서라던가, 학자금이 3천만 원이나 있어서라던가, 아이를 싫어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삶의 가치를 결혼이 아닌 데서 찾는 게 낫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결혼’이 강요하는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이 불편하기도 했고요.


요즘 관심사이자 걱정거리는 이사입니다. 집에서 회사가 멀기도 했고, 곧 동생이 제대해 집이 좁아질 예정이거든요. 큰맘 먹고 집을 나가기로 했지만 자의반 타의반 결심한 독립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수지가 안 맞는 거예요. 안전한 곳에 살자니 집값이 비싸고, 집값을 생각하면 안전이 문제. 혹시나 여성안심 주택을 찾아봤지만 인기에 비해 물량이 턱 없이 부족해 번호표 받기도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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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나라에서 하는 다른 제도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D를 위한 건 없었습니다. 임대주택, 공공주택의 경우 대상이 되는 건 신혼부부,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 부양가족이 많은 가정 등이었습니다. 비혼주의자 D에겐 지금도, 앞으로도 해당되지 않을 얘기였죠. 결혼하지 않을 거고 애도 낳지 않을 사람은 서러워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D는 살림을 줄여 고시원으로 이사를 가는 최후의 수단까지 생각하는 중입니다.


[각 후보의 관련 정책]


문재인

- 4인 가구 중심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동거·비혼·여성 등 다양한 형태로 확대, 30세 이하 단독세대주에 대한 민간금융 주거자금 대출 확대

- 월세 30만원 이하 쉐어하우스형 청년임대주택 5만실, 교통이 편리한 대도시 역세권에 시세 이하 청년주택 20만실


심상정
- 1인가구 맞춤형주거 확대
- 여성안심주택 확대, 여성 홈방범서비스 국고 지원 확대, 소형임대주택 사업자가 범죄예방환경 설계시설 신설 시 보조금/세제 혜택


안철수
- ...?


유승민
- 1~2인 가구가 실거주 목적으로 60m2 이하의 소형주택 구입 또는 분양시 취득세 전액 면제
- 임대시 주변 80%시세에 청년(신혼부부 포함) 및 취약계층 대상


홍준표
-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100만호 주거지원




전체적으로 느낀 건 성평등 혹은 여성 정책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출산과 육아 정책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결혼과 출산-육아 사이클을 당연히 거쳐야 하고, 그게 아닌 사람들은 꼭 여성이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졌더랬습니다.


특히 유승민, 홍준표 후보에서 두드러졌는데, 과거-현재-미래 어느 순간에도 출산/육아를 하지 않을, 아니, 결혼조차 하지 않을 여성은 두 후보에겐 '여성'이 아닌 게 아닐까 싶었어요. 여성 정책이라고 내놓은 게 출산/육아 정책이 전부였으니까요? '여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정책을 만들면 이렇게 되고 말아요. (비약 좀 해서) 여성에게만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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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평등 공약을 너도나도 내세우는 것부터가 좋은 징조라고 생각합니다만, 공약 내세운다고 끝은 아닌 거잖아요? 공약 내세웠으면 지켜야지 되는 거잖아요. 지금은 의왕에 계신 누구처럼 이왕하기로 한 거 다 없었던 일 하지 말고,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한 뒤, 꼭 공약을 현실화 했으면 좋겠습니다.


끝이냐구요? 그렇습니다. 모두 대통령 되고 만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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