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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줄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체육교육 줄넘기 종사자 2227명은 지난 5월 2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우리 체육교육 줄넘기 전문가 및 전국 줄넘기 지도자 일동은 줄넘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줄넘기 지도자들의 권익에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계신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지할 것을 선언한다."


이들은 이렇게 적힌 현수막도 펼쳐 들었다.


'줄을 넘어 하나 되는 대한민국

체육교육인 줄넘기 종사자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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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육교육 줄넘기 종사자 2227명은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국회방송 화면 캡처


'국기 태권도인 1000인' 역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 여론조사 공표 금지 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수많은 직능단체에서 '문재인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물결을 넘어 쓰나미처럼 보일 정도다. 관련 수치는 각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파이낸셜뉴스> 보도에 따르면, 2일 국회 정론관에선 열린 기자회견 총 18회 중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이 16회였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부터 이날까지 정론관에서만 총 92회 문재인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민주주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 때 시민이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고 타인에게 추천하는 행위, 혹은 반대하는 후보를 비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줄넘기인, 태권도인, 한국자유총연맹 핵심 간부, 진보단체 활동가 등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철학을 밝힐 수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해도 괜찮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타인에게 추천해도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후원하고 성원해도 어떤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누구를 지지해도

불이익 받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란 그런 것"


그런데 대선 때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신문광고를 냈다가, 실질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공개지지했다가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것도 표현의 자유를 생명처럼 여기는 문학인이 처벌을 받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양자대결로 치러진 2012년 18대 대선 때의 일이다. 대선일 닷새를 앞둔 2012년 12월 14일, 몇몇 종이신문에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의견 광고가 실렸다.


강은 결코 역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역사도 강처럼 흘러야 합니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중략)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 그로써 자유의 영토가 한 뼘 더 자라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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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를 바라는 젊은 시인·소설가 137인'


정권교체를 바라는 젊은 시인-소설가 137명이 낸 선언문 광고. 여기에는 김연수·박민규·김애란 등 소설가 56명과 나희덕·김선우·서효인 등 시인 81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우리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조금이라도 삶의 고통이 덜어질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란다"며 "그 출발이 정권 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하며 그것을 위해 잠시나마 각자의 작업실에서 나와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고 밝혔다.


박근혜-문재인 중 누구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적시하지는 않았다. 지지 혹은 반대하는 정당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라는 말을 문제 삼았다.


서울시 선관위는 "선언문 내용은 특정 후보자를 가리키지 않았지만,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지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광고 진행 실무를 맡은 소설가 손홍규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듬해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손홍규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줄넘기인들은 ‘문재인’이 적시된 현수막을 들고 지지선언을 해도 괜찮은데, 문학인들의 선언은 왜 범법행위가 되어 끝내 벌금형까지 받았을까?


문제의 핵심은

이상하고도 복잡한

'공직선거법'


대표적인 문제 조항으로 꼽히는 법률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의 광고물이나 광고시설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해서는 안 된다.' (선거법 제90조 1항)


'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선거법 제93조 1항)


정리하면 이렇다. 줄넘기인, 태권도인 등은 후보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었지만 실내 기자회견에서 잠시(?) 의견 개진할 때만 사용해서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문학인들은 후보자나 정당의 이름은 없지만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의 광고물'을 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게 선관위-수사기관-법원의 판단이다.


기자회견을 통한 지지선언이나, 신문지면을 통한 의견 광고나 형식만 다를 뿐 목적은 같다. 자신이 지지하는 쪽을 타인도 지지해달라는, 궁극적으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행위다.


100만 독자를 거느린 신문이 기자회견을 한 이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면, 10만 독자를 가진 신문에 의견 광고를 낸 쪽보다 사회적 영향과 파급력은 더 클 수 있다. 그럼에도 전자는 무죄, 후자는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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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대선주권자행동


다른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지난 3일 신경림, 황현산, 황지우, 안도현, 공지영 등 문학인 423명이 문재인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문재인 후보 지지 문학인 5.9선언'이란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렇게 밝혔다.


"문학인들의 정치에 대한 바람은 일반 국민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국민이 생업에 대한 걱정과 평온한 일상의 복원을 바라는 것처럼, 문인들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상상력이 마음대로 표현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그런 세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인은 문재인 후보뿐이다."


이들 문학인들의 지지선언을 <중앙일보> 등 여러 언론이 보도했다. 규모도 컸지만, 유명 작가들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5년 전 '신문광고'보다 사회적 파급력이나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 보인다.


하지만 이들 문학인들의 행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수막에 '문재인'을 적시했지만, 실내에서 의견 개진용으로 잠시 펼친 것이기에 불법이 아니라는 게 선관위의 의견이다.


최근엔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달 27~28일 국민주권실현 적폐청산 대전운동본부는 대학가 중심으로 대선 투표 독려를 위한 현수막 25장을 게시했다. 이런 내용의 현수막도 있었다. '촛불이 만든 대선, 미래를 위해 꼭 투표합시다' 그러자 대전시 선관위는 '촛불'이 특정 정당 반대를 뜻한다며 현수막 게시를 막았다.


하지만 선관위는 '투표로 70년 적폐청산! 투표로 새 나라!'라고 적힌 현수막의 게시는 허용했다. 어떤가. 한국의 선거법은 뭔가 애매하고, 모호하며, 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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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전시 선관위는 '촛불'이 들어간 현수막의 게시를 금지했다. ⓒ참여연대


애매하고 모호한

한국의 선거법


기자회견 때 후보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은 펼쳐도 괜찮지만, 자기 집 베란다에 '문재인 지지' '홍준표 지지' 문구를 내걸면 불법이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지지하는 후보자 선거 포스터를 내걸고 누리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건 괜찮지만,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하면 법정에 설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합법, 오프라인에서는 불법. 단순 기자회견은 합법, 후보자 이름 없는 의견 광고는 불법.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고, 복잡한, 선관위 직원마저 헷갈려하는 어려운 선거법을 언제까지 그대로 둬야 할까.


이번 대선 이후, 내년 지방선거 때는 모든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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