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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시절, 아니 쇼와(昭和)시절에는 대본영정부연락회의(大本營政府連絡會議)란 정체 모를 비밀회의가 있어 왔다. 이 회의는 그 존재 자체로 구 일본제국의 정부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군은 국가의 정부부처 중 하나이고 이들은 군통수권을 가진 이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쇼와 시절의 일본군은 정반대였다. 간단히 말해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해야 할까? 군이 나라를 통제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그 결과 군이 정부를 활용하거나, 정치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대본영정부연락회의란 말을 얼핏 들으면, 오늘날 정부기관들끼리 업무협조를 위해 모이는 유관기관 합동회의나, 관계 장관회의, 민관군 합동회의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 실상을 뜯어보면 군이 전쟁을 위해 정부와 정치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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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군사작전이나 군사행동 계획에 관해서는,


“통수권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체의 정보를 말하지 않았다. 즉, 군대가 전쟁을 일으키거나 대단위 작전을 벌이는 것을 민간정부 쪽에서는 일절 알 수 없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가 1941년 11월에 몇 차례 열린 대본영정부연락회의였다. 당시 도고 시게노리(東郷 茂徳) 외상은 미국과 개전을 앞둔 상황에서 외교 교섭을 하기 위해서는 전쟁 일자를 알아야 한다고 군부에 요청을 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군부는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다.


“군사작전 상 비밀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 외교부 장관이 외교교섭을 위해 개전일자를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도고 시게노리는 끈덕지게 군부를 설득했다. 외교 협상을 위해서는 개전일자를 알아야 일정을 짤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겨우 겨우 12월 8일이란 대답을 얻어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대본영은 어떤 작전이 펼쳐질지, 개전의 첫 목표가 어디인지 함구했다. 대신, 개전에 대비해 선박과 비행기의 생산을 독촉했을 뿐이다.


지금의 기준으론 상식 밖의 모습이다.


1941년 11월 태평양 전쟁 직전 몇 번의 대본영정부연락회의(大本營政府連絡會議)가 있었는데, 이때 일본은 향후 있을 전쟁에서의 점령방침을 결정한다.


“진주만 공격 이후 남방자원지대를 확보한 이후. 이들의 점령과 통치를 위한 기본 방침을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남방 점령지 행정실시요령』이었다. 기본적으로 남방작전에서 점령한 지역은 군정(軍政 : 군대가 통치)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리고 군정을 위해 군정감부(軍政監部)를 설치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점령지 통치 방법이었다. 대본영은 크게 3가지 기본방침을 정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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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원의 획득.

이는 남방작전의 기본 목표였다. 미국과의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남방자원지대에서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입수해야 했다.


둘째, 군의 자활

점령지 군대는 본국에서의 보급에 의존하지 말고, 식량들의 필요한 물자를 현지에서 조달하라는 지침이었다.


셋째, 치안의 회복

일본군에 대한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을 주문했는데, 간단히 말해서 현지주민들을 억압하고 생활에 대한 압박을 줘도 좋다는 일종의 ‘강경대응’ 사전허가였다.


이 행정실시요령은 당시 다급했던 일본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건이다. 단기결전을 위주로 전략을 준비했고, 싸워왔던 일본은 중국 전선에서 ‘벽’에 부딪히게 됐다. 본격적인 장기전 태세를 준비하고, ‘끝까지 가보자’라며 버티는 장제스를 보며 일본은 당황했고, 그들이 실수를 한 게 아닌가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일본은 중국이란 수렁 속에 빠졌다.


일본의 국력은 중국이란 수렁 속에서 천천히 소진됐고, 국력이 소모된 만큼 일본 군부는 다급해 졌다. 이 다급함이 묻어나온 것이 『남방 점령지 행정실시요령』이다. 군의 자활이란 곧, 보급을 해 줄 여력이 없다는 의미이고, 자원의 획득은 수탈의 다른 말이며, 치안의 확보는 수탈에 반발하면 무력으로 진압하란 의미였다.




죽음의 행진


필리핀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목줄과도 같은 곳이었다. 필리핀 내에서 전략물자가 생산되는 것은 아니지만(구리가 나오긴 했다), 그 지정학적 위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남방자원지대에서 획득한 자원을 일본 본토로 실어 나르기 위한 수송 루트의 거점이었고, 군사전략적으로 봤을 때도 극동지역에서 미국의 중요거점이었던 필리핀의 확보는 대동아공영권을 말하던 일본에게는 꼭 확보해야 할 지역이었다.


1942년 1월 수도 마닐라를 점령한 일본은 곧바로 군정감부를 설치하고, 군정에 돌입한다.


그리고 ‘헛발질’을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은 군정감부의 책임자인 와치 타카지 소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일본군은 필리핀이 어떤 나라인지 몰랐다. 고작해야,


“스페인이 400년 정도 지배했다가, 미국이 이를 빼앗아 40년째 지배했던 나라.”


정도의 인식만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은 필리핀을 접수했다. 일본의 필리핀 점령은 첫 단추부터 잘못 잠궜다.


시작은 바탄 죽음의 행진(Bataan Death March)이다. 맥아더가 도망 간 뒤 7만 여명의 연합군은 일본에 항복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포로에 대한 학대행위는 유명한데,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 바로 바탄 죽음의 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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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마사노부 중좌가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작전의 신’이라 불리던 그의 특기 중 하나가 ‘명령 왜곡’이다. 소련과의 전투 때 보여준 막장 행동을 여기서도 보여준 것이다. 당시 필리핀 14군에 내려간 명령은,


“포로 감시를 엄중히 하라.”


였는데, 츠지 마사노부는 이를


“미군과 필리핀군을 처형하라.”


로 바꿨다. 결국 일본군은 마리벨레스에서 카파스까지 120㎞를 강제 이동시키면서, 포로들을 학대하고 살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만 여 명의 포로가 죽었다. 이 사실은 즉각 미국에 알려졌고, 진주만에 이어 한 번 더 일본을 ‘때려잡을’ 명분을 주게 된다.


이 포로학살은 일본의 필리핀 통치에도 악영향을 끼쳤는데, 이 연합군 중에는 필리핀 군도 포함돼 있었다. 자연히 여론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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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1930년대 후반 필리핀 사람을 정의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황색 미국인”


400여년의 스페인 통치 이후 들어온 미국은 필리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영어를 가르치겠다며 공립학교를 세웠고, 미국 본토에서 1천 여 명의 교사를 데려와 교육을 시켰다. 초콜릿과 껌과 같은 간식이나 기호식품은 덤이었다.


돈 있는 자들도 좋아했다. 미국은 필리핀의 사탕수수와 코코넛에 주목했다. 대규모 농장을 구축해 이를 공장 식으로 작물을 재배해 미국으로 넘기면 꽤 ‘괜찮은 사업’이 된다는 걸 간파했다. 필리핀의 질 좋은 구리 광산도 좋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미국은 대단위 투자를 했고, 필리핀의 기득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 했다. 그들도 좋아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필리핀 국민들은 어땠을까? 나쁘지 않았다. 경제가 발전했고, 일자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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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생겼고, 길거리에는 자동차가 등장했다. 어느새 양복을 입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냉장고는 흔한 물건이 됐다.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 다른 국가들보다 월등히 높은 생활수준을 보여줬다.


필리핀인들에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이 들어왔다.


일본은 필리핀인들의 생활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인의 시각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미국적인 가치관을 주입시켜 식민지 주민으로 길러진 존재였다. 작은 황색 미국인으로 길러지는 바람에 동양인으로서의 자각이 사라진 변종이란 소리다.


일본은 정신개조에 나서려 했다. 그 시작은 ‘천황제’에 대한 교육이었다. 일본군은 덴노의 위대함을 역설하며, 덴노의 신민이 됐으니 덴노를 떠받들라 강요했다. 필리핀 사람으로서는 황당한 소리였다. 지난 400여년 간 스페인 지배를 받았고, 이후 40년간 미국 지배를 받은 그들에게 신이란 곧 ‘하나님’이었다. 기독교 문화로 거의 450여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갑자기 덴노를 믿으라고 말하면 그 말이 먹히겠는가?(우상숭배를 금하는 기독교 교리를 모르는 것일까?) 천황숭배를 말하며 칼로 위협을 하는 일본군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일본군은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었다. 미국이 했다면, 우리도 해야 한다며 필리핀 어린이들을 붙잡고 일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도 안 되는 대동아공영권을 교육하기 시작한다.


“너희들은 미국의 착취와 인종차별에서 해방 됐다. 이제 같은 동양 민족으로써 함께 번영하자!”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개소리’처럼 들렸다. 일본이 들어오기 전에 필리핀은 잘 살았다. 그러나 일본이 들어오고 나서는 ‘지옥’이 열린다. 함께 번영하자는 말의 뜻은 ‘일본만 번영하자’란 의미란 걸 필리핀 사람들은 곧 깨닫게 됐다.




일본 필리핀을 망치기 시작하다


첫 시작은 ‘화폐개혁’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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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페소화를 썼던 나라다. 그러던 것이 태평양 전쟁 직후 종래의 페소화를 대신해 ‘긴급지폐’라 불리는 신권을 발행했고, 이 통화가 유통된다. 그러나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모든 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필리핀 화폐를 ‘적의 화폐’란 이유로 유통을 금지시켰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헛웃음이 나올 것이다. 당시 필리핀 유통 화폐의 70%를 차지하는 ‘긴급지폐’를 하룻밤 사이에 휴지로 만들었다. 만약 일본이 긴급지폐를 폐지한 다음 자신들의 통화를 안정적으로 유통시켰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에게는 그런 상식이 없었다.


군정감부(軍政監部)는 돈 대신 군표(軍票)을 찍어내 뿌렸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돈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뿌리고 보는(약탈과 다른 점이라면, 종이 쪼가리를 건넸다는 것 뿐이다) 일본군 덕분에 필리핀 경제는 망가졌다.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한 3년 안 되는 기간 동안 필리핀 물가는 일본군 점령 직전의 100배까지 뛰어 올랐고, 극심한 인플레이션 덕분에 사람들은 화폐거래 대신 물물거래를 택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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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국가 일본/ 살림출판사/ 이성환

2. 호호당 선생의 ‘프리스타일’

3. 세계전쟁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황금알

4. 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 이북스펍/ 이윤섭

5. 조선역사 바로잡기/ 가람기획/ 이상태

6. 다시 쓰는 한국근대사/ 평단문화사/ 이윤섭

7. 대본영의 참모들/ 나남/ 위텐런 지음, 박윤식 옮김  

8. 나무위키

9.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추수밭/ 이노세 나오키 지음

10. 『중일 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 미지북스/ 권성욱 지음

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서해문집/ 김효순 지음

12. 석유전쟁/ 매일경제신문사/ 정기종 지음

13.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 궁리/ 이창위 지음

14. 연합함대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 가람기획/ 박재석, 남창훈 지음

15.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246

16.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 살림출판사/ 다카시로 고이치

17. 히로히토 신화의 뒤편/ 을유문화사/ 에드워드 베르 지음

18. 일본의 가장 긴 하루/ 가람기획/ 한도 가즈토시 지음





1부 

[러일전쟁]


2부

드레드노트의 탄생

1차 세계대전, 뒤바뀐 국제정치의 주도권

일본의 데모크라시(デモクラシー)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각자의 계산1

8년 의 회, 던 축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2

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외전

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2차대전의 불씨

그리고, 히틀러

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국제정치의 본질



3부

태평양 전쟁의 씨앗1

태평양 전쟁의 씨앗2

도조 히데키, 그리고 또 하나의 괴물

일본을 늪에 빠트린 4명의 '미친놈'

대륙의 각성완료, 다급해진 일본

대동아(大東亞)의 환상에 눈 먼 일본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1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2

일본의 패배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1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2

천조국, 움직이다



4부

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하려고 했을까

신성불가침으로 만들어진 권력, 덴노(天皇)

일본의 반인반신, 덴노(天皇)의 오판과 태평양 전쟁

미국과 일본의 외교와 태평양 전쟁

정신력으로 전쟁을 결정한 일본

미국의 최후통첩, 헐노트(Hull Note)

진주만 공습, 두고두고 욕먹는 이유

인류 역사상 가장 병신같은 선전포고

미국, 2차대전에 뛰어들다

전통이란 이름의 살인, '무사도(武士道)'

맥아더의 오만, 태평양전쟁 필리핀 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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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괴물로 변해가는 일본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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