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8. 13. 목요일
펜더
Dreadnought
Dread(두려움) + nought(없다) =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군함에 붙이기에는 더 없이 멋있는 이 이름은 20세기 초반 전 세계의 군사력 판도를 뒤바꿔 놓는다. '드레드노트'란 군함은 이름 그대로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단 하나, 스스로를 두려워해야 했다. 탄생과 동시에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렸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양산해서 공포를 불식시키려 했던 전함. 그 자체가 이미 공포의 만연이었고, 전쟁을 부추겼던 마魔의 이름.
'드레드노트'
영국 해군에게 있어서 드레드노트Dreadnought란 이름은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이미 17세기 무렵 3급 전열함에 이 이름이 붙었고, 이후에도 대代를 이어 사용됐다. 세계사적으로 그 위명을 떨친 20세기 초의 전함 '드레드노트'는 이미 6대代째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쩌면 흔한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흔한(!) 이름이 역사의 흐름 자체를 뒤바꿔 놓을지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존 피셔(John Arbuthnot Fisher)의 등장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영국인들에게는 트라팔가의 영웅 넬슨 제독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해군인'으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군사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드레드노트급' 개발의 장본인이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을 이끈 불굴의 해군인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퇴역한 상태였는데, 영국 정부가 그를 다시 끌고 와 '해군사령관' 자리에 눌러 앉힌다)
피셔 제독은 투사였다. 그를 둘러싼 몇 가지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7세와의 면담 중에,
"제독, 내 얼굴 앞에서 주먹 좀 그만 휘두를 수 없는가?"
라고 주의를 받은 일화가 유명하다. (왕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떠든 것이다. 겁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나머지 하나는 바로 '윈스턴 처칠'과의 충돌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에 몸을 우겨넣고 교착상태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영국 행정부에서는 저마다의 전황타개책을 내놓게 된다. 당시 처칠은,
"프랑스에 병력을 투입하는 대신, 터키를 공격해 독일 남부에 교두보를 건설하자. 이렇게만 되면,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동맹은 와해될 것이고 전쟁은 영국에 유리한 국면으로 뒤바뀔 것이다."
라고 주장하게 된다(당시 실질적인 목표는 터키를 동맹에서 떨어져 나오게 하면서, 동부전선의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이 주 목표였다). 멜 깁슨 주연의 영화 '갈리폴리Gallipoli'로도 잘 알려진 '갈리폴리 상륙작전'이었다. 이 상륙 작전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영국 역사상 최악의 상륙작전'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칠이 갈리폴리에 대한 상륙작전을 주장할 때 피셔는 베를린과 가까운 발트해 연안에 상륙작전을 펼치자는 주장을 하게 된다. 격론 끝에 처칠의 주장이 채택됐고, 희대의 '삽질'이 시작되게 된다. 당시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주장한 처칠도, 이에 반대한 피셔도 모두 그 정치생명을 끝내야 했는데, 작전이 실패하면서 처칠의 사임은 이미 예견된 것이지만, 피셔의 경우는 의외였다.
"피셔가 갈리폴리 상륙작전 자체를 못 마땅해 해서 상륙작전 당시 해군이 미온적으로 움직였다. 갈리폴리 작전의 실패에는 해군과 피셔의 수동적인 움직임이 발목을 잡았다."
란 주장이 나왔고, 결국 피셔도 사임을 하게 된다.
그가 갈리폴리 작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유보하겠다. 아니, 갈리폴리에서 그가 의도적인 태업을 했더라도 그의 존재가 영국 해군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 정도쯤이야'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에 그가 아닌 다른 이가 영국 해군의 수장 자리에 앉았다면, 아마 영국은 팍스 브리타니아Pax Britannia를 2차 세계대전이 아닌 1차 세계대전 중에 내려놓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피셔가 해군에서 활동 하던 당시를 한 마디로 정의내리자면,
'격동'
이었다. 그가 처음 해군에 발을 내딛었을 때 영국 해군은 '범선'을 탔었다. 그러나 곧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철갑선을 목도하게 된다. 범선에서 시작해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의 배에서 생활했고, 마지막으로 증기터빈을 동력으로 하는 드레드노트급을 만들어 냈다.
해군 생활면에서도 엄청난 개선이 이루어졌다. 영국 해군하면 떠오르던 쉽 비스킷Ship Biscuit을 신선한 빵으로 대체한 것도 피셔제독이었다.
결정적으로 요동치는 국제정치의 한 가운데서 영국 해군의 미래를 정확히 제시했다. 피셔가 해군의 수장으로 앉아 있던 시절 영국해군은 '독일 해군'의 도전을 받아야 했다.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II)
그는 영국 해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독일은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제국이다. 독일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세계적인 교역지역이고, 우리들은 그 구역을 계속 넓혀갈 것이다. 독일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전함을 가져야 한다."
보불전쟁(1870년에 일어난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의 승리는 유럽대륙의 판도를 뒤바꿔 놓았다. 독일과 프랑스라는 유럽의 강자들이 서로를 노려볼 때 영국은 '영광스런 고립 splendid isolation'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유럽 대륙이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불 전쟁으로 유럽의 판도는 독일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빌헬름 2세는 한수 더 떠 독일통일의 주역이었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곤 식민지 확장 정책에 뛰어들게 된다. (웃기는 게 이렇게 확보한 식민지가 비스마르크가 외교로 얻은 식민지 보다 적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말이 통했던 비스마르크 대신에 호전적인 빌헬름 2세의 등장은 영국 정치인과 군인, 아니, 영국 전체에 위협이었다. 해외 식민지 확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바로 해군이다. 빌헬름 2세는 티르피츠(비스마르크의 자매함을 기억하는가?)를 기용하고, 1898년에 함대법을 만들어 해군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빌헬름 2세의 해군에 대한 투자는 영국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해 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독일이 쫓아오자 영국도 덩달아 해군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독일과 영국은 말도 안 되는(?!) 건함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치킨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먼저 손을 내민 건 영국이었다. 1913년 영국은 육군장관이었던 홀데인을 독일에 보내,
"우리 건함경쟁을 멈춥시다."
라고 제안을 했다. 전 세계의 바다를 제패한 영국이라지만, 독일과의 무모한(!?) 건함경쟁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빌헬름 2세와 티르피츠의 생각은 달랐다.
"조금만 더 투자하면, 독일이 영국을 추월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이는 망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영국과 독일의 군함 총배수량(가지고 있는 배들의 무게를 합한 수치라 생각하면 편하다.)비는 2.2 대 1이었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투자해야지만, 영국을 쫓아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영국이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우선해야 하지만.)
그러나 이런 추격이 영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사실이었고,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의 해전으로 불리는 '유틀란트 해전'에서 보여준 독일 해군의 분전을 보면 빌헬름 2세의 투자가 헛되진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유틀란트 해전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죄수가 감방에서 나와 간수를 한 대 때린 후 도로 감방으로 돌아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영국 해군의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 전술적으론 독일군이 승리했지만, 전황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진 못했던 해전이다.)
이런 격동의 한 가운데에서 영국 해군을 이끈 이가 바로 피셔였던 거다. 그는 독일에 대한 견제를 위해 두 가지 성과를 내놓는데, 하나는 영국 해군의 재배치였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드레드노트급의 건조였다. 하나씩 설명해 보겠다.
첫째, 영국 해군의 재배치
당시 영국의 생명선은 영국-이집트-인도를 잇는 교역항로였다. 때문에 영국 해군의 전력 중 상당수가 인도양과 지중해에 배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증강하고 있는 독일해군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한 피셔는 이 병력을 일부 빼내 북해지역에 배치하게 된다. 독일에 대한 견제였다. 이 조치에 대해서는 영국 내에서도 상당한 이견(異見)이 나왔지만, 피셔는 특유의 뚝심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둘째, 드레드노트급의 건조
피셔는 범선시절부터 영국 해군에 복무한 경험 덕분에 산업혁명의 결과가 어떻게 무기체계에 이식되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근대무기의 발달 앞에서 기존의 전략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드레드노트급이었다. 그는 식민지 정복에 투입되던 낡은 군함으로는 더 이상 '근대의 전투'를 치룰 수 없다고 믿었고, 20세기에 걸 맞는 새로운 전략 패러다임과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게 된다.
드레드노트 건조 이전 영국 주력 전함 중 하나인 로얄 소비니언(1897).
탄생의 서막
쓰시마 해전 당시 일본 해군은 20세기 '근대의 해군'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그 당시까지의 전함은 배 여기저기에 달 수 있는 모든 '포'를 달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회전포탑도 달았지만, 배 양측이나 공간이 좀 남아있다면, 여기저기에 부포들을 달았다. 육군으로 치자면, 155미리 곡사포부터 시작해서 9미리 권총까지 쏠 수 있는 모든 화포를 장갑차에 달고 움직였다고 생각해 보라. 어찌어찌 포를 다 달수는 있겠지만, 그 '조준'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각자 조준을 하고 발사를 해야 할 것이다. 왜? 권총의 가늠자와 소총의 가늠자가 다르듯 포도 구경에 따라 조준 방법이 다르다. 결정적으로 같은 목표를 겨눴다고 하더라도 포의 사거리가 다르고, 탄도가 달랐다. 조준방법이 다르기에 각자 알아서 조준하고 발사해야 했다.
당시 군함들은 구경이 다른 수많은 포들을 함 여기저기에 쌓아놓고는 각자 '알아서' 포를 쐈다. 이러다 보니 명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쓰시마 해전 당시 일본 해군은 지휘에 맞춰 동시에 발사를 했던 것이다. 물론, '뻘짓'이었다. 포 구경이 다르고, 탄도가 다른데 같은 사격제원으로 발사한다고 그게 같은 곳에 착탄할 수 있을까? 바보짓이었다. 그러나 이 '뻘짓'이 영국 해군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건네주게 된다.
'동일한 탄도를 가진 화포 여러 문을 동시에 같은 사격제원으로 발포하면,
일정한 탄착군을 형성하지 않을까?'
이전까지의 전함에는 별 쓸모도 없는 각종 부포들을 함 여기저기에 달아 괜히 공간만 차지하고, 화력 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영국해군도 알고 있었다. 물론, 부포의 효용가치는 있다.
"바다에서 꼭 전함만 상대한다는 법은 없다. 적의 경순양함이나 구축함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작은 부포가 필요하다."
라는 반박이 있었지만, 피셔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전함이 홀로 작전을 나가는 경우는 없다. 호위하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상대하면 된다. 전함은 전함을 상대해야 한다."
결국 이런 생각들이 모이면서 신형 함에 대한 요구조건들이 하나씩 정리되게 된다. 이렇게 정리 된 요구조건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동일한 탄도를 가진 화포 여러 문을 동시에 같은 사격제원으로 발포하면, 일정한 탄착군을 형성할 것이다. 주포를 단일구경으로 통일하고, 부포를 폐지. 늘어난 여유 공간 만큼 최대한 많은 주포를 탑재한다.
둘째, 이 신형함이 상정한 표준적인 교전거리 내에서의 전투에서 확실한 방어력을 확보한다.
셋째, 증기터빈을 주 동력기관으로 탑재. 기존 전함보다 월등히 빠른 고속성능을 확보한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요구조건이었으나, 영국의 산업 기술과 잠재력을 피셔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피셔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이 신예전함은 탄생하게 된다.
드레드노트Dreadnought라는 이름으로.
참고자료
1. 전쟁국가 일본/ 살림출판사/ 이성환
2. http://hohodang.com/ (호호당 선생의 '프리스타일')
3. 세계전쟁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황금알
4. 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 이북스펍/ 이윤섭
5. 조선역사 바로잡기/ 가람기획/ 이상태
6. 다시 쓰는 한국근대사/ 평단문화사/ 이윤섭
7. 대본영의 참모들/ 나남/ 위텐런 지음, 박윤식 옮김
펜더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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