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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뒤로 돌아서는 여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한국인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있던 곳은 재판이 이뤄지는 곳이었고, 망명 담당관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 여자는 추방 명령을 받고 나온 듯 했다. “한국으로 가는 거에요?” 라고 묻자, 교도관은 손으로 창문을 퍽 치며, “shut up” 이라고 했다. 여자는 내 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주었다. '건강하세요.'라며 다시 뒤로 돌아 걸어갔다. 멀어지는 그 여자를 쳐다보려는 순간, 교도관이 앞에 딱 섰다.


“240!!!!! 나왓!”


긴장이 되기 시작했고, 또 다시 손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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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큰 책상. 내가 죄수는 죄순가 보다. 아무말도 안 했는데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240, 여기에 죄수들이 몇 명이 있는 줄 알아?”


“... 아니.”


“대략 5000명 정도야.”


"... ...”


“하루에 5000명이 한 번에 메일을 보내. 너처럼 하루에 2번씩 보내는 사람도 있고, 많게는 3통까지 보내. 어?!!"


하면서 짜증내는 말투를 내 뱉었다.


난 어깨에 모든 힘을 빼고 최대한 놀란듯 움츠렸다.


“미안. 난 꼭 미국에 있어야만 해.”


난 내가 전에 변호사 오리엔테이션에서 얘기했던 나의 스토리를 다시 말하려 했다.


“난... 왜 미국에 왔냐면...”


그러자 망명 담당관은 내 말을 자르며 이야기 했다. 나의 스토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OK. OK. 일단 너에 대해서 재판 신청은 열릴 것 같아. 재판이 끝나면 추방 결정이 될 거야. 소리 지른 건 미안.”


난 고개를 들어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흑인이 날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저게 잘 됐다고 하는 표정인지, 그냥 귀찮으니 가라는 뜻인지 검은 입술 사이로 흰 이빨을 살짝 보여주는 걸 보니 잘 됐다는 쪽으로 생각 하기로 했다. 그렇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적어도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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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수용소 안은 파란색 죄수복. 혐의가 없고 단순 범죄자들이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웬만큼 재수 없는 사람들 아니면 재판에 이길 확률이 높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변호사만 잘 선임하면  보석금으로 다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수용소 침대를 찾아다니며 재판은 이겼지만 아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보석금은 최저 2000불에서 많게는 10000불. 진짜 재수없는 애들은 20000불. 보석금이 책정이 되고 나가는 일만 남았는데. 돈이 없어서, 또는 돈을 내줄 사람이 없어서 못 나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보석금을 지불해 주는 사람도 시민권자여야 했기 때문에.


어떤 친구는 8000불. 뉴욕에 형이 살고 있는데 1주일 안으로 보석금 내기로 했다면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는 사람. 어떤 친구는 보석금 5000불인데 와이프가 자신이 못 나갈 줄 알고 자신이 감옥에 잡히면서 주고 온 돈 15000불을 한번에 날렸단다. 돈을 다시 모으고 있기 때문에 못 나가고 있는, 모았다가 또 날리고 또 날린 게 2번째란다. 3개월째 모으고 있다고 했다. 어떤친구는 보석금 10000불인데 여기저기 가족들이 모금을 다 해도 7000불 밖에 못 모았다면서 보석금 재 합의 재판을 신청중이라 했다.


몇몇 사람들과 얘기를 해 보니, 내가 나갈 수 있는 길들이 꽤 많아 보였다.


“응... 형, 왠 일이야?”


“어, 나 오늘 망명 신청관이랑 상담 했는데 재판이 잡힐 수도 있대. 추방은 그 후에 결정 된대.”


“어? 그래? 와, 잘 됐다. 그럼 내가 뭐 해주면 돼?”


LA에 사는 동생이었다.


“아니 아직은 뭐 해줄 게 없는데. 내가 너한테 보내준 4000불 그거만 잘 가지고 있어줘.”


“어, 형. 그 돈은 내가 다 가지고 있어. 걱정마. 나 형 나오는 거 기다리고 있으니까.”


“응. 고마워. 근데 재판에서 이겨도 최하 5000불에서 10000불 정도 필요할 거 같은데.”


“아... 그래? 형, 그럼 내가 어떻게라도 한번 알아볼게.”


감옥 안에선 친한 사람들에게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박카스 같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것 같았다. 멘탈이 무너진 나를 잠시 기분 좋게 해주었다. 하지만 문득, '아 돈이 없는데 어떻하지? 4000불 있는데 5000불 나오면 어떻하지? 게다가 10000불 나오면?' 하는 생각에 그 에너지가 떨어져 축 처지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중에는 오히려 더 힘들어지기까지 했다. 난 재판이 잡히길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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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일어나니 게시판 앞이 시끌벅적 했다. 보드게임 중이었다. '체커'라는 게 있다. 그날 아침은 그 토너먼트가 열리는 날이었던 것 같다. 체커는 동그란 원판에 구멍들이 송송 뚫려서 그 위에 색깔이 다른 말을 세우고, 넘고 넘고 해서 상대의 진영으로 넘어가는 게임이다. 구글에 보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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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는 1:1 토너먼트로 진행이 되며 결승자에게 가끔은 과자와 콜라가 주어진다. 근데 퀄리티 있는 수용소에서 콜라와 과자 따위로 저렇게 웅성거리지 않는다. 승리자 맞추기 번외 토토가 수용소 안에 있다. 이 날이면 가지고 있는 과자들이 순식간에 다른 상자에서 다른 상자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매 한 판마다 과자를 걸 수가 있는데 음료수는 좀 비싼 놈이라 과자 2봉지 정도로 보면 된다. 체커는 인도애들이 진짜 잘한다. 정말 싫어 하는 애들이지만. 사실 예선전은 과자를 잘 걸지 않는다. 외모 만으로도 누가 이길지 뻔하고, 인도애들은 예선에선 절대 안 떨어진다.


8명이 남았다. 그럼 과자를 걸기 시작한다.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에게 내 번호를 말하고 과자 2봉지. 한 번에 2봉지 이상 걸지는 못한다. 어차피 반반이다. 난 그동안 큰 인심에, 마사지 손님도 줄고 해서 과자가 많이 비어있는 상태였고 과소비로 인해서 영치금을 더 넣어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하긴 들어간 지 한 달이 조금 안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인도인은 항상 이긴다. 난 진짜 싫어하는 놈이지만 인도인에게 2봉지를 걸었다. 내가 좋아하는 초코칩이었다. 과자를 위해서 한 거다. 난 친하지도 않은 그놈의 어깨를 툭 치며, “good luck” 이라고 말해줬다.


뒤를 돌아 보더니 찡끗하면서 걱정 말라는 얘기를 했다. 한 수, 한 수. 뽀옥 뽀옥 소리를 내며 흰 말 빨간 말들이 정신 없이 왔다 갔다, 넘어갔다 왔다 했다. 난 그걸 잘 할 줄 모르지만 응원 만큼은 제대로 했다. 갑자기 인도친구의 이름에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뭐라뭐라 지네 말로 떠들었다. 상대방 선수는 피지에서 온 파마머리 친구였다. 피지, 정말 작은 섬 나라다. 그 친구가 이걸 해 봤겠나? 하는 나의 생각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보기 좋은 첫 패. 과자 두 봉지가 넘어갔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도박은 본전을 찾기 위해 다시 하는 게 도박이라고. 그래... 반 반인데 재수없게 2번 지겠어? 박스를 열어 과자를 꺼내려고 하니, 5봉지? 6봉지 정도 남아 있었다.


4강이 됐다. 예전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체크의 위력은 그정도와 비슷했다. 4강 경기 답게 2층에서 기대어 쳐다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난 재빨리 또 누군가에게 걸어야 했다. 음... 음... 누구에게 걸지.


예전에 한 번 얘기 나눠봤던 친구가 있는데, 참 잘생긴 친구다. 멕시코에서 넘어왔고 멕시코에서 은행관련 일을 했던 친구였다. 잘생기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걸었다. 게임 진행관에게 과자 2봉지를 걸고,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멕시코 친구가 흰색, 상대는 빨간색이었다. 흰색말이 먼저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가,


“내가 볼 때는 말이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이길 확률이 높아.”


“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지껏 그랬지?”


라며 고개를 깐족대며 우리가 이길 것을 확신했다.


뽀오옥. 첫 흰색 말이 앞으로 돌진을 하고 빨간 말도 돌진을 했다. 첫 말 넘기는 흰색이 성공을 했고, 사람들의 환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빨강색 진영은 어느새 흰색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난 승리는 우리것이다. 하며 내가 이기면 너 과자 줄게!! 라고 크게 소리를 쳤다.


그때 갑자기 빨강색 응원석에서 함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연속 5번 점프 콤보. 보옥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또 완패. 아니 역전패였다. 얼굴 믿고 까부는 애 믿는 게 아니었다. 하... 박스를 뒤적거려 보니, 3~4개의 과자가 들어 있었다. 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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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을 때 친한 동생과 함께 정선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난 꽤 놀음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도박쟁이는 아니고. 일 년에 몇 번 갈까 말까?) 여튼 휴대폰 매장에서 알게 된 동생인데 통신사 정지로 인해서 수입이 급격히 줄었던 적이 있었다. 난 동생이랑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카드값을 메꿔야 한다는 얘길 듣고, "아, 정선이나 한번 갔다 올까?" 했는데 어느새 우린 정선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정선 카지노. 어느 샌가 블랙잭 테이블. 파마머리를 뒤로 용 묶음을 한 아줌마 뒤에서 머리를 움직이며 테이블을 주시했다. 동생은 처음 가는 거였고, 우린 서로 50만원씩 가지고 갔던 것 같다. 2시간정도 후, 우린 웃으면서 나오고 있었다. 그걸 계기로 두 세번 더 갔던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정선을 갔을 때, 우린 모든 돈을 다 잃은 적이 있었고 급기야 매장 다른 동생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하는 일이 생겼다. 난 같이 간 동생에게, "우리 이것만 잃음 깔끔히 집에 가자. 근데 나 왠지 이길거 같애."라고 약속했다. 빌린 마지막 50만원을 칩으로 바꾸고, 자리를 보던 중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카드는 매정하게 테이블에 달라붙기 시작했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3, 8 카드가 내 앞으로 왔다. 더블 찬스. 10만원을 걸었으니 10만원을 더 얹어야 하는 상황. 뒤에서 동생이 어깨를 툭 쳤다.


“더블 다운.”


긴장감이 흐르고 딜러는 눈만 끄덕 거리며 손으로 칩을 셌다.


“장... 장... 장... 장....”


딜러가 카드를 뒤집기 전에 100번은 외친 것 같다. 제발 10이 나와라....


“하... 야, 우리 이제 다시 여기 오지 말자.”


“아, 형. 진짜 우리 여기 오면 안될 거 같아요.”


“그치? 아닌 거 같애...”


“그래도 오늘 형 멋있었어요. 1시간만에 본전 다 찾고, 몇 십 만원 용돈 챙겼네요.”


미친듯이 돈을 땄다. 40분정도 지났을까? 우린 흡연실에 마주 앉아 본전을 세고 더 딴 돈은 둘이 똑같이 나누고 있었다. 몇 만원씩 남은걸 한번에 다 걸고 그것 마저도 따서 부페 고기를 이빨사이에 나란히 끼고 나왔던 적이 있다. 난 그때를 회상하며 4봉지의 과자를 두 손에 들고, "결승전은 2배로 합시다!!"란 말을 크게 했다.


결승전. 제일 큰 테이블에 둘이서만 나란히 앉아 170명 중 2명 빼고 나머지는 다 서 있는다고 보면 된다. 오고 가는 과자가 몇 수십 봉지였으니까. 사실, 사건 사고가 많이 없는 수용소에서 그 정도는 눈감아 줬다. 게임을 통해서 죄수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도 되고 서로 많이 친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선수에게 모든 봉지를 걸었다. 밀리앙의 친구였는데, 그냥 모르겠었다. 이 친구에게 걸었다. 상대는 인도선수. 터번. 그냥 듣도 보도 못한 놈이었다. 신경도 안 쓰이고. 그때, 경기를 위해서 몸을 푸는 순간, 뒤에서 교도관이 소리를 쳤다.


"240!"


다시 한번 크게 내 번호를 불렀다.


“240!!”


하면서 소릴 쳤고 난 뭘 잘못했나? 하며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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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다 교도관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 역시 교도관을 주시하고 있었다. 긴장감이 도는 결승전. 왜 날 부르지? 난 안쪽 구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가기가 좀 힘들었다.


“240. 빨리 안 와?!!”


허겁지겁 교도관에게 갔다. 교도관은 서류 사이에 들어 있는 하얀 편지봉투를 집더니 나에게 건네 주었다. 편지 봉투에는 내 죄수번호가 크게 쓰여져 있었다. 난 이게 뭐지? 이런 게 올 게 없는데 하는 걱정에 봉투를 바로 뜯어보지 못했고 자리로 돌아왔다. 밀리앙이 달려 오더니 봉투를 낚아채며,


“내가 읽어줄게. 응? FBI에서 온 건데? 240, 당신은 어쩌구... 응? 240,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난 순간 심장이 너무 떨리기 시작했다.


“왜? 무슨말인데? 내가 뭐 잘못...?”


“아니, 아니. 보석금 10000불 내고 나가란 명령서야."


"재판도 안 받았는데...?”


“혐의가 없고 레코드도 깨끗하고. 그래서 재판 없이 나가는 거 아닐까?”


라며 밀리앙이 얘기를 전해주었다. 난 편지를 받고, 울기 시작했다. 아무생각도 들지 않고 편지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이제 나갈 수 있는 건가... 편지 내용은 보이지도 않고, 10000불 내고 나가라는 말. 금액이 제일 크게 보였다. 눈물을 그치고 나니, 기쁨도 잠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현실의 벽은 좀 높았다. 집에다 전화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걸 모르실 것이란 생각때문에 더더욱 그러질 못했다.


“혹시 어디 돈 좀 빌릴 데 있을까?”


LA에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형. 나도 일수까지 알아봤는데 어디 돈 구할 데가 없어.”


“10000불만 내면 나가는 건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석방서만 읽어보고 또 읽어봤다. 아침이 밝아도 일어나기가 싫었다. 아침도 먹기 싫고.


“240, 아침 먹어야 해. 일어나.”


“아, 교도관님. 저 몸이 너무 아파서 못먹겠습니다.”


“어디가 아픈데? 많이 아프면 얘기 해. 양호실 데려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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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데가 없는데, 아팠다. 몸에 힘도 없고, 어지럽고, 몸이 춥기만 했다. 뭔가 집중을 해서 생각을 분산시키고 싶었는데, 수용소 내에서 내가 할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나마 나 혼자만의 공간인 스텐 변기 위에 앉아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종교활동을 하기로 했다. 매일 저녁이 되면, 농구 코트는 성전으로 바뀌었다.


30분은 개신교, 30분은 천주교, 30분은 이슬람, 30분은 그냥 돗자리 깔고 절 했는데 뭔지 모르겠다. 나도 그 틈에 끼어서 하나님이나 외쳐보자고 생각했다. 그럼 맘이 좀 가라앉겠지 하며 미친듯이 외쳐댔다. 오~ 주여. 오~ 주여. 그때 뿐이었다. 운동을 하기로 했다. 수용소에는 운동기구도 있고 매일 허구한날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접하기가 쉬웠다. 카드를 한 장씩 번갈아 가며 뒤집고, 나온 숫자대로 푸쉬업을 했다. 몸이 좀 커지고 살이 찌는듯 했으나 걱정을 깨지는 못했다. 독서를 하기로 했다. 큰 맘 먹고 영어로 되어 있는 신데렐라 책을 집어들고 침대에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들고 책은 배게 밑에서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그정도로 맘고생이 심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갑자기 철문이 덜컥 열리면서 루이스가 돌아왔다. 며칠만에 돌아온 거였고. 그 전에 루이스가 잡혀가고 난 다음 박스를 빼가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걱정을 많이 했었다. 루이스는 날 보며 환하게 웃어주면서 어디 독방에 잠깐 있었는데.. 이제 괜찮다면서 날 안심시켜 주었다. 난 루이스에게 석방 명령서를 보여주었고 루이스는 잘 됐다고 축하를 해 주었다.


며칠 뒤, 루이스는 박스를 들고 교도관 앞에 서 있었다. 난 무슨 일인가 싶어 루이스에게 다가갔다. 루이스는 나를 보며,


“240, 일이 잘 해결 되서 정말 축하해. 난 사실 추방결정이 떨어져서..."


“그때 싸운 것 때문에 그래? 진짜 미안...”


내가 미안해 할까봐 추방 사실을 숨긴 거였다. 미안한 마음에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석방 명령서 자랑도 했는데.


“아니... 절대 그거 아냐. 미안해하지 말고. 내가 음주 걸리기 전에 벌금 안 낸 게 있었거든. 근데 법원을 안 가고 미루다가 음주가 다시 걸린 거라서. 추방이 결정된 거야.”


걱정하지 말라며 끝까지 날 위로해 주는 루이스에게 난 더 미안하고 미안했다. 미국에 남아있는 루이스의 가족들에게 더 미안한 맘이 컷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냥 이래 저래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툭툭 시비를 걸었다. 진짜 모든 게 다 짜증이 났고, 그 중에 인도 애들은 꼭 끼어 있었다. 전에 한 대 맞았을 때와는 달라. 다른 생각을 하려고 운동을 겁나게 했더니 몸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내가 자꾸 시비를 거니 그들도 나에게 독기가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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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다시 도랑을 건너서 아파트 골목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차는 내 앞에 대기하고 있었고, 난 그 차를 타고 정신없이 사건 현장을 빠져 나왔다. 맞은편에 3대의 국경수비대 차량이 오고 있었다. 난 고개를 숙여 몸을 피했다.


“오른쪽!!!”


이번엔 성공이다. 그토록 바라던 미국땅에 왔다.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시애틀의 날씨는 참 좋았고. 난 창문을 열고 자유의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내 얼굴에 한 대의 차량이 멈추고 맞은편 차량엔 미국 소녀가 수줍은듯 날 쳐다보았다. 나도 그 소녀를 보고 웃어주었다. 소녀는 갑자기 물을 마시더니 내 얼굴에 물을 뿜기 시작했다.


꿈이었다. 이번엔 진짜 같은 꿈이었다. 내가 시비 걸고 그랬던 인도 애들 중의 하나가 내가 자는 사이에 과자 봉지에 물을 담아와 내 얼굴에 뿌린 것이다. 난 자다가 너무 놀래서 침대에서 떨어졌고 그 인도 녀석은 주변에 있던 친구들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다. 때린사람들은 다 끌려가고 난 멀뚱멀뚱 내 침대 맞은편 빈 침대에 앉아있었다. 이게 뭔 일인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그 터번은 그 다음날 보석금을 내고 바로 나갔다.


나가면서 나에게 한마디 했다.


“돈 없어서 못 나간다지? 어쩌냐? 여기서 조금 더 살아봐라.”


약 올라서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반박을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난 서글픈 맘을 동생이랑 얘기나 하려고 전화를 들었다.


“어~ 나야.”


신원확인을 위한 메세지가 뜨고,


“형! 형!! 진짜, 와~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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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5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6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2

7편 누군가 널 죽이려 한다던가

8편 거짓 증언

9편 망명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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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