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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29. 월요일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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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국회법 개정안은 정말로 위헌인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귀결된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 논란이 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현행 시스템에서도 국회는, 마음에 안 드는 시행령의 상위법을 개정하여 해당 시행령 내용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황교안을 국무총리에 임명한다'처럼 법률에서 구체적인 처분 내용을 직접 규정함으로써 행정부가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전혀 없도록 하는 게 아니라면(처분적 법률), 원래 시행령에 규율되어 있던 내용을 국회에서 법률로써 개정한다는 것만으로는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도 없다.


(시행령 : 법률의 시행을 위하여 발하는 '집행명령'과 법률이 특히 위임한 '위임명령'을 포함하며, 이는 대통령의 명령을 말한다. - 편집부 주)


오히려 헌법학계에서 우려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자주 쟁점이 되어 왔던 사항은, 법률로써 규정해야 하는 내용들을 오롯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에 맡기는 포괄위임의 문제이다. 죄형법정주의나 조세법률주의 같은 법치국가의 대원칙들은 물론, 국적 취득의 요건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종류 같은 사항도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취지를 헌법에서 직접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시행령에 위임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어떤 법률이 기본적인 사항을 전혀 규율하지 않고 '이 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와 같이 백지위임하는 것 또한 사실상 입법권을 행정부에서 행사하는 것이 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즉 법률의 세부 내용을 일정 부분 시행령 등에 위임하여 규율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이 경우에도 가급적 시행령 등으로 규정될 내용·범위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하여 누구라도 그 법률로부터 하위법령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위임한 사항에 대해,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는데도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고 방치했다면 그 또한 위헌(입법부작위)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군법무관의 처우는 법관 및 검사의 그것에 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위임 규정에도 불구하고 30년간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았던 데 대해 위헌으로 선언한 바 있다. 하물며 상위법과 충돌하는 시행령이 있다면 그 자체로 위헌 무효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를 판단하고 효력을 정지시킬 주체가 누구냐는 것인데, 행정부 입장에서 자기들이 만든 시행령이 위헌이란 걸 인정 할 리 없으니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에서 나서지 않는 한(이에 대해서는 헌재와 대법원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다) 국회에서 통제를 할 수밖에 없다.


그 통제방법의 하나로 국회법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대통령령이 제정, 개정 또는 폐지된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10일 이내에 이를 국회의 소관상임위원회에 제출하고, 그 기간 이내에 제출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이유를 소관상임위원회에 통지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회하여 제출된 대통령령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여 당해 대통령령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정종섭, 『헌법학원론』 2015년판, 박영사, p.1246)


개정법이 아니라 이미 시행되고 있는 현행법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어느 저명한 헌법학자는 2015년판 저서에서 '행정입법의 이행을 보장하는 장치로서는 약한 수준의 통제방법'(p.1246)이라고 코멘트했다. 그의 뜻을 받들어 국회법 개정안은 '내용 통보'를 '수정 변경 요구'로 변경하고, 그에 대하여 중앙행정기관 장의 처리 결과 보고 의무를 규정하였다.



어느 헌법학자의 짓밟힌 소신


앞서 언급한 헌법학자는 '입법례에 따라서는 국회가 대통령령을 비롯한 행정입법에 대하여 사전동의 혹은 사후승인을 하게 하거나, 사후에 국회가 행정입법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단지...'라며 무기력한 현행 통제방식을 개탄한 후, '대통령이 위헌 혹은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에 국회는 대통령에 대하여 탄핵소추를 할 수도 있다'(p.1247)는 사자후를 토하기도 했다.


그렇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그 저명한 헌법학자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그리고 위 언급한 내용들은 2015년 3월 10일 출간된 그의 『헌법학원론』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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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 대학원을 다니며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그는, 장관으로 봉직하는 바쁜 와중에도 개정판 저서를 출간하며 '현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대학원 교수, 행정자치부 장관'(위 책 저자 프로필에서 인용)이라는 투잡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말 나온 김에 그의 저서 다른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통령이 법률안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이의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의는 정당한 이의를 의미하는데, 대통령의 개인의 수준에서 의문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익과 국민전체의 이익의 관점에서 법률로 공포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법률안의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헌법에 위반하는 것인 경우, 법률의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법률의 집행에서 예산의 뒷받침이 없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p.1257)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회법 개정안은, 헌법학계의 권위자인 정종섭 장관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위 법률안의 집행이 불가능하거나 예산의 뒷받침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면 과연 박근혜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한 이의'였을까? 혹시라도 '대통령의 개인의 수준에서 의문을 가지는 것'이었다면 가까이 있는 저명한 헌법학자께서 한 수 가르침을 드렸어야 하는 게 아닐까. 정부조직법 제34조 제1항에 따르면 '행정자치부장관은 국무회의의 서무, 법령 및 조약의 공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되어 있는바,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거부권 행사의 주무장관은 누가 뭐래도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임에 틀림없을 터. 과연 그는 자기의 학문적인 소신을 실무에서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그랬을 리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종섭의 언행으로 확인된 것은 최경환 부총리와 차를 마시는 사진 한 장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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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뉴시스>


이를 예견이라도 한듯 정종섭은 저서 머리말에서 '행정부의 운영에서도 헌법이 정하고 있는 국무회의의 법적 성질과 기능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지시하는 각료회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국무회의와 각료회의를 구별하지 못하다 보니 국무회의의 심의에서는 국무위원들 간에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와 이를 받아 적는 모습이 건국 이래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며 통렬한 자아비판(또는 유체이탈 화법)을 행한 바 있다. 이 글은 정종섭이 장관으로 취임한지 반년 이상 지난 뒤인 '2015년 신춘'에 작성했다고 명시되어 있는바, 그때나 지금이나 국무회의 서무 장관으로서 앞에서는 이런 실태를 전혀 개선하지 못하고 차나 홀짝홀짝 마시다가 몇 사람 사 보지도 않는 자기 책에서나 끄적거리는 스스로의 비겁한 모습에 대해 참담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근혜는 왜 버럭했을까?


이처럼 대통령의 거부권은 한 유능한 헌법학자의 학문적 양심을 사뿐히 즈려밟고 행사되었지만, 정작 그로 인한 고통은 정종섭 장관 대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받게 될 모양이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는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는 강경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유승민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핵심목표는 올해 심판해야 될 것은 유승민이다 하는 것을 배신을 때리고 나가면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는 걸 행사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걸 기대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깔끔한 문장이다. 영화 <넘버3>에 나오는 송강호의 명대사 '배배배배신이야, 배신'이 생각나지만, 송강호와는 달리 조금도 더듬지 않고 그대로 읊어버렸다. 그만큼 그녀의 분노는 단호하고 딱 부러지게 유승민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유승민은 청와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자 비굴해 보일 정도의 저자세를 취하는 중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또한 유승민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유승민 퇴출에 대한 박근혜의 의지는 확고해 보이며, 님 향한 일편단심으로 뭉친 새누리당 친박계 또한 유승민 타도를 위해 조만간 고강도의 압박 카드를 꺼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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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박근혜의 분노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공무원연금법과 소위 '경제 활성화' 법안 통과를 주문했는데 생뚱맞게 시키지도 않은 국회법을 개정해 각하에게 빅엿을 안기려 한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안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고, 의회민주주의는 내가 원하는 법률 하나를 통과시키려면 상대방이 바라는 법률도 통과시켜 줘야 한다는 타협의 원리에 기초해 작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논리를 간과한 채, 국회가 여야 합의와 소정의 입법 과정을 거쳐 개정한 법률을 놓고 배신 운운하는 건 의회민주주의가 체질에 맞지 않음을 커밍아웃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즉 박근혜는, 국회란 오롯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야 하는 곳이며 여야 합의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려 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녀에게 여야 합의란 야당을 설득해 자신의 뜻을 통과시키는 것일 뿐, 야당의 의견을 수용할 바에야 차라리 국회를 파행시키는 게 낫다(그 책임을 야당에 돌릴 수 있을 테니까)고 보는 게 아닐까.


이런 화끈한 사고구조는 역시 부친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중에도 건재했던 국회를 두 번(5.16, 10월 유신)이나 해산시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관권, 금권을 총동원한 부정선거로 다수 의석을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국회의원의 1/3을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돋는 시스템(유정회)을 구축한바 있다. 이와 같은 만행은 결국 '여당도 믿을 수 없다'는 뿌리 깊은 불신에서 기인한 것.


그렇다. 절대 권력자였던 박정희조차도 믿었던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배신의 정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여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에서 1969년 권오병 문교부장관, 1971년 오치성 내무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각각 가결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이 국회에서 해임당하는 것을 스스로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던 박정희는, 야당이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때마다 여당 지도부에 '무조건 부결'을 지시하곤 했다. 그러나 여당 내부의 미묘한 역학관계로 인해 1969년에는 김종필계, 1971년엔 김성곤(쌍용그룹 창업주)계 의원들이 대거 해임 찬성으로 돌아서며 이변이 일어났던 것.


그러나 해임건의안 통과를 주도했던 여당 의원들은 당에서 제명당하거나(1969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한 끝에 정계를 은퇴하는 등(1971년)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심지어 김성곤은 콧수염까지 뽑히는 수모를 겪었고, 육사 8기로 5.16에 참여했던 길재호의 경우 고문 후유증으로 죽을 때까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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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WS K>


이런 역사를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박근혜의 입장에서 볼 때, 여당 의원들이 소신을 앞세워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야말로 용납할 수 없는 하극상이 아니었을까?



유승민의 난?


이런 관점에서 유승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2005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박근혜와 인연을 맺은 유승민은, 2011년에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도전하여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유승민의 캐치프레이즈는 '박근혜를 지키는 한 표'. 즉 그는 친박계를 대표하여 출마했고, 최고위원으로서도 친박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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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위 디도스 사태로 홍준표 지도부가 위기에 빠지며 두 사람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유승민은 위기 수습을 위해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주장했고, 박근혜의 사인이 없는 상황에서 독단적으로 최고위원 사퇴서를 제출해버렸다. 친박계의 대표 선수로 여겨지던 그의 최고위원직 사퇴는 실질적으로 홍준표 체제에 대한 박근혜의 불신임으로 해석되었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홍준표는 끝내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박근혜가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하여 총선과 대선 승리를 이끌었던 것은 다들 잘 아는 바와 같다. 결과적으로 유승민의 도박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총선 승리가 불투명하던 당시, 일찍부터 전면에 나서 상처를 입고 싶지 않았던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유승민의 돌출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후 박근혜의 눈 밖에 난 유승민은 친박계 핵심에서 철저히 겉돌았다. 일각에서는 유승민이 사석에서 박근혜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 작년 말,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이 소위 문건유출 파동의 배후로 유승민을 지목했던 해프닝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절치부심하던 유승민은 2015년 19대 국회 마지막 원내대표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유승민이 여당의 원내 사령탑이 되는 게 달갑지 않았던 청와대와 친박계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을 내세워 유승민에 맞섰다. 아울러 친박계 핵심으로 손꼽히던 홍문종을 이주영의 러닝메이트로 내세우며 박근혜의 뜻이 이주영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다. 경선 당일엔 최경환, 황우여, 김희정 등 장관 겸직 의원들까지 의원총회에 참석해 한 표를 행사했으나 결과는 유승민 당선.


원내대표가 된 유승민은 박근혜의 대표 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하는 등의 소신 있는 행보로 주목받았고, 야당과의 협상에 있어서도 적절히 타협할 줄 아는 모습으로 합리적 보수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입장에서 유승민의 행태는, 그러잖아도 미운 녀석이 또 한 번 사고를 치는 게 아닐 수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박근혜는 6.25를 맞아 우리의 주적 북괴를 디스하는 마음으로 유승민에게 버럭을 시전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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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투데이>

 

 

그러나 박근혜의 버럭은 생각지도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올지도 모르겠다. 정치 고관심층이 아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탁구선수 유승민(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은 알아도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을 알기는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유승민을 디스하고 이에 대한 분석기사가 연일 언론매체를 뜨겁게 달구면서 정치인 유승민의 인지도는 급상승 중이다. 일각에선 김영삼 대통령과 맞짱을 뜨다 경질된 이회창 국무총리와 마찬가지로, 유승민이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유승민이 박근혜와 더 단호하게 맞서지 못하고 꼬리를 내린 듯 보이는 걸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간지나게 원내대표 자리를 던져버렸다면 유승민의 정치적 위상이 더 확고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최고위원직을 초개와 같이 던져버린 과거를 생각할 때, 유승민이 원내대표 자리에 연연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의 분노는 원내대표 사퇴 정도로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년엔 총선이 있으며, 유승민의 지역구는 박근혜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구 동구(을)이다. 이를 감안해 볼 때 청와대와 친박계에서는 공천을 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유승민의 정치 생명을 끊어 놓으려 할 것이다. 다만 부친(유수호 전 의원) 때부터 대구에서 도합 5선(부친 재선, 본인 3선)을 했던 유승민의 탄탄한 지역기반에 비추어 볼 때,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찍어냈듯 뒷조사를 통해 사생활의 약점을 폭로하거나, 검찰 수사를 통해 본인과 주변 인사들의 돈 문제, 선거법 위반 사례 등을 언론에 흘리며 망신을 주는 것은 물론 소모적인 법적 공방(이겨도 별 거 없고, 지면 정치생명이 끝나는)에 빠뜨리려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남부지방법원장 출신으로 법무법인 바른에서 근무 중인 유승민의 형, 유승정 변호사가 타깃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가까스로 공천을 받는다 해도, 박근혜의 뜻을 받들어 유승민을 저격하겠다는 친박계 무소속 출마자와의 대결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2008년 총선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배신을 심판하겠다며 친박연대 후보로 나선 홍사덕 전 의원의 사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향후 유승민과 관련된 어떤 기사가 나더라도 놀라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박근혜와 유승민의 관계는 마오쩌둥(모택동)-류사오치(유소기)의 그것과 닮아 있다. 후난 성(대구) 출신으로 동향이었던 두 사람은 대장정과 항일전쟁, 국공내전 등을 함께하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정권창출)을 주도했다. 그러나 마오가 대약진운동이라는 명분(증세 없는 복지)에 집착한 반면, 류는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이를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한 마오쩌둥은 '사령부를 포격하라'(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류사오치를 공격했고, 이를 본 홍위병들이 일제히 궐기하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명색이 국가주석이었던 류사오치는 혹독한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지하 감옥에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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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왼쪽)과 류사오치(오른쪽)


이처럼 최고통치자의 역린을 건드린 자는 대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다.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스스로 왕이 되는 수밖에 없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유승민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찌 될런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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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