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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29.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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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아래 글은 문화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톡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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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걸그룹 덕질을 부업 삼아 잉여롭게 사는 ‘좋아요’라고 합니다. 뭐, 걸그룹 덕질러라고 해도 ‘EXID’라는 팀을 제대로 접한 것은,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이 전설의 파주 직캠 때부터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물별 포커싱 글을 못쓰는 것이기도 하죠. 그때그때 팀이 어떠했는지, 멤버들은 어떠했는지 실시간으로 따라가질 못했으니까요.

네, 그러니깐 바로 이거요.

그러던 제가 ‘위아래’를 들으면서 떠올린 게 하나 있습니다. EXID의 차트 역주행을 보고 순수하게 노래만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릿속에만 있던 개념 하나가 정리되기 시작했거든요.



개인적으로 씨스타의 ‘나 혼자’, AOA의 ‘짧은 치마’등이 이런 생각에 단초였던 거 같습니다.

대중적인 비주얼 멤버와 노래 잘하는 멤버의 구분만이 있을 뿐인 걸그룹의 포지션 부분에 있어, 이 둘을 이어주고 남는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다른 포지션 하나. 농구로 치면 포인트가드(농구에서 팀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선수. 상황 판단과 작전 이해 능력이 뛰어나다)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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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에 나오는 북산고의 포인트가드 송태섭

현재 저의 이런 생각을 100% 만족시키는 아이돌은 ‘EXID’의 래퍼이자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는 능력자 ‘LE’입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이 개념을 이 친구 덕에 정리했기 때문에 LE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실은 ‘포인트가드’ 개념이 확실하지 않던 와중에도 이 분야 최고는 단연코 ‘울랄라세션’의 임단장님이었습니다만.


1. 그래서 포인트가드의 조건이 뭐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면이 다 포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1) 보컬과 보컬의 연결, 보컬과 비주얼의 연결을 돕는 역할 (연결성)
 
2) 활동곡의 전체적인 톤 내지 컨셉을 잡아주는 역할 (컨셉 조정력)

3) 노래에 빈 공간이 발생해 보컬·비주얼 멤버가 의미 없는 파트에서 낭비되는 경우를 방지 (공간장악력)

4) 프로듀싱 단계에서의 구성 조립력 (설계력)

5) 때에 따라서 자기 자신이 킬링파트를 담당할 수 있음 (결정력)

뭘로 보나 LE가 떠오르네요. LE를 통해서만 생각을 정리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무언가가 있다 할만 했습니다.


2. 왜 그런가. 그래서 뭐가 좋은가

1) 연결성 

‘위아래’고 ‘아예’고 파트분배는 하니<->LE<->정화->LE->혜린->솔지->LE식이죠.
사운드 측면에서만 보면 LE가 센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팀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4인은 격차가 좀 있습니다. 솔지가 가장 낫고 정화가 가장 낮죠. 근데 보컬의 음색은 솔지와 혜린이 한 묶음, 하니, 정화와 같은 순으로 상당히 차이가 심합니다. 보컬색이 뚜렷한 것은 장점이지만, 각기 튀는 음색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는 프로듀싱하는 입장에선 고민입니다. 이 부분에서 LE는 스캣으로든 래핑으로든 부드러운 연결이 가능하도록 도와줍니다. LE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 네 명을 조합한다 치면 프로듀싱이 어려운 건 둘째 치고, 각 멤버가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 영역에서도 힘을 소모해야 했겠죠.
 
2) 컨셉 조정력


매우 특이한 음색에 실력파 래퍼,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겸한 입장이다 보니 EXID의 음악에는 LE의 색이 매우 진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 색은 EXID가 하나의 팀으로서 소비자에게 소구하기 위한 한점 돌파력을 만들어줍니다. 컨셉이 밀집되지 못해 흐지부지되어 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중심을 잡고 진한 컨셉을 만들 수 있는 멤버는 무엇보다 소중하죠. 얻고 싶다고 얻어 지는 게 아니니까요.
 
3) 공간 장악력 


이 영상을 보면 이해가 되실 텐데, LE의 목소리가 빠지니 매우 심심하고 구멍이 보입니다. 곡의 구성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노래라는 공간을 LE가 얼마나 채워주는지를 보여주고 있죠. 

4) 설계력


히트곡인 ‘위아래’와 ‘아예’의 메인프로듀서는 ‘신사동호랭이’지만, 작곡과 작사에서 LE가 담당하고 있는 부분은 큽니다. 특히나 LE는 이름대면 알만한 노래의 작사가로서 이미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죠. 재밌는 것은 ‘위아래'와 ‘아예'등 그녀가 작곡, 작사한 곡에는 ‘멤버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다는 점입니다. 각 멤버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고 희석시키는 설계는 단순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나오기  힘든 부분입니다.  특히 정화의 경우, 보컬 4인 중 가장 튀고 EXID에 어울리지 않는 음색을 갖고 있는데, 단점이 잘 드러나지 않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파트를 할당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프로듀싱의 질은 올라가고 멤버의 부담은 줄어듭니다. 이것이 갑작스러운 역주행이 꾸준한 인기로 이어지는 ‘위아래'와 ‘아예’ 그리고 EXID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결정력



농구에서도 포인트가드가 기본적인 능력 외에 득점력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고평가를 받죠. 그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에이스 카드인 LE는 킬링파트라고 할 만한 부분에서도 확실히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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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와 ‘아예’ 활동만 보면 영락없이정환이네요.
(편집자 주- <슬램덩크>에 나오는 포인트가드로, 못하는 게 없는 사기 캐릭터)
  
 
3. 그래서 그런 포지션이 있다 치고,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이런 포인트가드를 맡아줄 사람이 있는 팀이라면, 어느 타이밍엔가는 뜰 확률이 있고, 쉽게 가라앉지 않고 오래갈 거라는 겁니다. 물론 팀을 캐리하는 건 비주얼 에이스이거나 메인보컬(혹은 예능 캐릭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원이나 팀의 브랜드 측면에서 힘이 올라오지 않거나 올라온 힘이 스믈스믈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점을 커버하고 장기적인 흐름으로 이끄는 것이 제 3번 포지션인 포인트가드가 아닐까 합니다.

허나 포인트가드라 칭하려면 정말로 에이스급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 포인트가드의 정의가 슬램덩크에 나오는 슈퍼포인트가드처럼 되는 것 같네요. 좀 더 예쁘게 정리하려면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아이돌끼리는 구분을 짓는 '리드보컬'과 '메인보컬' 중 리드보컬이 바로 이 역할을 상정하고 만든 개념이 아닐까 하는데, 솔직히 제대로 지키는 곳을 별로 못 본거 같아요.
  

4. 이 분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 
 
1) 씨스타 효린: 물론 메인보컬 겸 리더라는 위치가 있지만. ‘나 혼자’때의 그녀의 스캣과 기타 능력들은 제가 생각했던 포인트가드의 모습이라 할만 했습니다. 
 
2) AOA 지민: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짧은 치마’의 반은 지민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민이 아니었음 절대 ‘짧은 치마’가 그렇게 못 나왔을 거예요. 노래를 감칠맛 나게, 또 부드럽게 이어주는 그녀의 랩은 무척 소중합니다. AOA에선 지민 빼면 그나마 유나 정도 밖에 떠올릴 사람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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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씨스타 효린, AOA 지민, 에이핑크 남주, 러블리즈 케이

(출처- 연합뉴스, SSTV)


3) 에이핑크 남주: 몇 개의 조건이 맞지 않지만, 비주얼 보컬 3인방과 메인파트를 맡는 93라인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줍니다. 또 보컬로 에이핑크의 청순 컨셉에 힘을 실어 넣고, 메인보컬들이 나서기 애매한 고음파트의 소화하는 등 분명 에이핑크에서 포인트가드입니다. 아직 단독으로 주목 받은 적이 없을 뿐 여러모로 에이핑크의 살림꾼입니다. 정말 중요한 친구이에요.

 
4) 러블리즈 케이: 이 친구는 희망사항이자 러블리즈의 소속사인 울림에 제안하고 싶어서 선정했습니다. 울림은 아예 케이에게 메인을 몰아주던가 아니면 진에게 맡기고 케이에게 이 룰을 줬으면 합니다. 메인보컬의 재능을 지녔고 매우 높은 포텐셜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일즈 포인트를 못 잡은 느낌이거든요. 공평성에 무게를 두는 건 좋지만, 러블리즈도 슬슬 멤버별로 힘을 안배해서 푸시할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유주는 차세대 아이돌 메인보컬이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케이는 아직 그런 거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아예 킬링파트를 몰아주던가 케이를 중심으로 노래와 무대구성을 조립하는 것이 케이 본인에게도 그렇고 러블리즈에게도 좋을 것 같네요. 멤버별로 파트를 구분 지을 수 있는 효과를 주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혼자서지만 ‘러블리즈의 윤대협’이라고 미는 친구인 만큼 포인트가드로서의 자질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 글을 마치며
 
걸그룹 덕후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걸그룹 포지션 덕후’입니다. 그러니깐 각각 멤버의 장단점을 하나의 팀으로서 조립할 때 어떤 그림이 만들어지는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이런 저에게 ‘포인트가드론’에 완벽하게 맞는 LE는 이래저래 고마운 존재입니다. 쓸데없이 잉여력을 쏟는 타입인지라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정리가 잘 안되면 집착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시원하게 머리 비울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에 LE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이상 글 마치겠습니다. 다음에도 이만큼 자유롭고 쓸데없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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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