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04. 22. 화요일

수습기레기 퍼그맨












jindotwit.jpg



진도에 내려가길 자원할 때만 해도 이런 사과문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 사건 해결에 기여했던 딴지의 선배 기자들처럼 뭔가 해내자, 지금 여러 잡음이 나오는 건 민군관 공조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 원인을 직접 보고 오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독투나 일베, 트위터 등에 퍼지고 있는 얘기에는 잘못 알려진 것이 있어, 사실 관계를 분명히 하려 진도에 다녀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사과문 쓴다면서 변명하려는 거냐? 아닙니다. 트위터에 돌고 있는 얘기는 제가 실제로 한 잘못보다 많이 작습니다. 이게 찔립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쓸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제가 학부모님들에게 한 질문은 '이 SNS를 보라'가 아니라 아래의 것들입니다. 




- 최근 학생들에게 카톡이나 문자 받은 분 있습니까? 


- 그런 것들의 검증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 실종자 연락처 리스트를 만들어두면 검증하기 더 편하지 않습니까?




지금 진도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 입장에서는 배신감과 절망감을 추스르고 겨우 다져놓은 질서에 금이 가게 하는 질문이며 실종자 부모님들의 노고와 능력을 깎아내리는 질문입니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또 하나의 사실을 밝혀야겠습니다. 저는 몰래 활동하다 걸린 것이 아니라는 걸. 위의 질문을 하다가 한 학부모님께 대표-아래 영상에 나온 바로 저 분-를 만나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래서 함께 찾아가서 뵙고 얘기할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뻔뻔하고 주제 넘었다는 비난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학부모 회의를 지체시키면서 주제도 모르고 열심히 설명했던 거 같습니다. 앞서 했던 질문들의 취지를 설명하고 그걸 새로 투입되는 잠수정 얘기와 연계해 학부모들이 연락 받은 걸 모으면 그 위치부터 수색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게 아이디어에요?"


슬픔과 분노가 함께 보였던 대표님의 붉은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실수했구나.


"그 잠수정 내가 하자 그래서 하는 거거든요."


야간 수색에 오징어잡이 배 조명을 쓰는 것도 학부모 아이디어였다는 얘기가 기억났습니다. 그분들은 '부모'였으며 자식을 위해 극강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잠도 안 자고 오로지 자식들을 구할 방법만 궁리하고 있었으며 회의를 거듭하며 뜻을 모으고 정보를 검색, 검증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현명하고 강하고 열정적인 학부모님들을 우려하는 시각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저처럼 학부모님들이 슬픔에 빠져 냉정한 판단을 못할까 걱정합니다. 어떤 이들은 학부모님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진 않을까 걱정하고 어떤 이들은 불순한 권력에 눌려 할 수 있는 걸 못 하진 않을까 걱정합니다. 이런 우려 섞인 시각 탓에 많은 분들이 현장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누구에게도 선동 당하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동시에 가장 현명하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이후의 대화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아래의 내용은 요약해서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준비해간 질문 중에 생존 소식 검증에 관한 것이 있어 그에 대한 얘길 하다 알게 된 것입니다. 오보가 쏟아지게 된 과정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실 겁니다. 동시에 제가 학부모님께 개인적으로 접촉해 위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게 해드릴 정보입니다.




1. 기자가 최근 학생에게 연락 받은 부모가 있냐고 질문


2. 그러면 질문 받은 학부모 입장에서 기자가 왜 저런 질문을 할까, 혹시 받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짐


3. '받은 사람이 있다!'로 와전


4. 이게 기자 귀에 들어감 


5. 오보





지금 학부모님들은 자신의 자식이 식당 칸이나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무수한 소식을 보고 흥분했다가 그것을 여러 번 검증하고 거짓이었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반복해 겪으며 카카오톡의 'ㅋ'자만 들어도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생존 소식이 거짓이라 밝혀졌을 때, 그것을 가장 인정하기 싫었던 사람이 누구였을지. 


학부모 대표와의 대화는 저의 신분 조회를 경찰에 요청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여차하면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워낙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학부모님들이 요청하면 경찰에서 바로 신분 조회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회의를 마치고 나와서 저렇게 발표하신 것 같습니다. (저 시간에 저는 체육관에 없었습니다. 처음 제게 대표를 소개해준 학부모님이 제가 선의로 그런 것임을 이해해주고 신분 조회는 한 것으로 치겠다며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jindostadium.jpg



마치 직접 만나지 않은 것처럼, 카톡이나 문자가 아닌 SNS라는 표현을 써서 얘기하신 것에 대해 제가 변명을 해야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꿔 얘기하신 것은 너무 적절했습니다. 이미 조치를 취해(놓으라 지시해서) 손발을 묶어 놓았다 판단되는 기자 나부랭이 한 명을 향한 방송이 아니었습니다. 체육관에 다시 퍼질지 모르는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방송이었습니다. 다소 격앙되셨음에도 대표로써 해야할 일을 하신 것입니다. 리더십의 표본입니다.



간 보기를 했다, 선동하다 실패했다, 과연 이 정도 비판이 제게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의욕만 넘쳐서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 하는 상태였습니다.


저의 스탠스는 정치적인 어떤 것이라 부르기엔 너무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저는 트위터에 떠도는 것 이상으로 비난 받아야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체육관의 부모님들과 딴지일보 선배님들, 필진 분들 그리고 소식을 전해 듣고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을 다시 한 번 의심하셨을 모든 분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대표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상황을 잘 설명해주신 학부모 분과 죄책감에 찾아갔을 때 천주교인이 아님에도 따뜻하게 맞아주신 광주 교구의 한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과 송구스런 마음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 선배님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자중하고 발전을 모색하겠습니다. 앞으로 저는 자진해서 기레기라는 호칭을 쓸 생각입니다. 이 일로 상처 받고 놀라셨던 모든 분들이 그만, 넌 이제 기레기가 아니다, 라고 말씀해주실 때까지 그러겠습니다. 








퍼그맨

욕할 곳 : @ddanzipugman


Profile
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