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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6. 화요일

벨테브레 










박희태 전 국회의장. 6선 국회의원에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으며 현재는 새누리당의 상임고문이자 건국대 로스쿨의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이중국적을 지닌 딸의 이화여대 특례입학 파문으로 법무부장관에서 열흘 만에 낙마하였고 전당대회에서 당협위원장들에게 돈 봉투를 돌리다가 불명예스럽게 정계를 떠나는 등 흑역사도 있었지만, 폭탄주의 원조이며 명 대변인으로서 정계에 나름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인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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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서울대 동문들이 대통령 비서실장, 주일대사, KBS 이사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사이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린 박희태. 역사 속의 인물인줄 알았던 그가 실시간 검색어로 돌아왔다. 문제는 뜬금없이 뉴스를 탄 이유가 성추행 의혹 사건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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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가락으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1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어느 골프장에서 법조계 지인들과 라운딩을 하던 박희태는 20대 여성 캐디에게 신체 접촉을 했고, 불쾌감을 느낀 해당 캐디는 라운딩 도중에 교체를 요청했다고 한다. 결국 박희태는 고소 크리를 당하게 되었고 조만간 강원지방경찰청에 소환 조사를 당할 거라는 이야기. 얄궂은 것은 강원지방경찰청에서 수사하는 사건의 경우 일반적으로 춘천지검이 관할하는데(박희태의 주소지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이송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박희태는 한때(1983~1985) 춘천지검장을 역임한 대선배라는 것. 전임 제주지검장이 공연 음란 혐의로 제주지방경찰청→제주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점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비추어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사실관계에 대해 단정적으로 언급하는 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명확한 물증을 찾기 힘든 강제추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을 근거로 처벌되는 이들도 적지 않기에, 억울하게 처벌받는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원로 법조인으로 로스쿨 석좌교수가 될 정도로 권위 있는 법학박사 박희태 선생의 셀프 해명을 중심으로, 형사처벌 가능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MBN과의 전화인터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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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가락으로,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는 이런 이야기에요. 그것을 이제 만졌다 이렇게 표현을..."


출처 - MBN


박희태 선수. 마이 억울한 듯싶다. 손가락 끝으로 가슴을 툭 찌른 것과 만진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인정! 그렇다면 박희태는 무죄인가?


박희태에게 적용될 것이 유력한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하는 것을 그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손가락으로 툭 찌른 정도를 폭행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리 정치 9단에 폭탄주의 대가라고 하나 손가락으로 천하를 평정했다는 무슨 무협지에 나올법한 고수는 아니지 않겠는가? 물론 손가락으로도 세게 찌르면 아프다. 박희태도 이를 의식했는지 절대 세게 찌른 건 아니라고 강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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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거고..." 


"예쁘다 정도로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터치) 한 것"


출처 - 노컷뉴스


여기서 잠깐.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이다. 손가락으로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를 했다면 항거가 곤란한 정도는 아니었겠지? 이런 변명을 예상했던 대법원 또한 가만있지 않았으니...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며, 이 경우에 있어서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

(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즉 살짝만 건드려도 추행이 될 수 있다는 것. 위 판례의 사실관계에 대해 부연하자면 피고인은 와이프가 경영하는 식당의 지하실에서 여종업원 두 명과 노래 부르며 놀다가 그중 한 명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 다른 한 명을 뒤에서 껴안고 블루스를 추면서 가슴을 만졌다는 것.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자와 춤을 추면서 피해자의 유방을 만진 행위가 순간적인 행위에 불과하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하여진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하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추행행위라고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서,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어 강제추행에 해당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므로 박희태의 해명처럼 손가락 끝으로 가슴을 찔렀거나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한 게 사실이라면 박희태는 유죄를 피하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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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박희태의 해명. "다른 데는 내가 등허리를 쳤다 팔뚝을 만졌다 이런 건 큰 문제가 없지 않나 싶고."(MBN)


여성의 가슴은 객관적으로 보아 성적인 부위임에 틀림없을 터. 그렇다면 등허리나 팔뚝은 문제가 없을까? 대법원은 등 뒤에서 부하 여직원의 어깨를 주무른 사건(대법원 2004. 4. 16 선고, 2004도52 판결)에서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시함으로써 박희태의 해명을 궁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개인적으로 골프를 안 쳐서 잘 모르겠는데, 레슬링이나 유도라면 모를까 골프를 칠 때 캐디의 등허리를 치거나 팔뚝을 만지는 게 불가피한 신체 접촉은 아닐 것 같다. 결국 박희태의 해명과는 달리 등허리를 치거나 팔뚝을 만진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다만 대법원은 아니고 하급심 판결(대구지방법원 2012. 6. 8. 선고 2011고합686 판결) 중에는 골프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여직원의 쇄골 바로 아래 가슴 부분을 손가락으로 한 번 찌르고 어깻죽지 부분을 손으로 한 번 만진 정도로는 강제추행으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 게 있다.


또한 "당사자는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해명(MBN)도 받아들여진다면 박희태에게 유리할 수 있는 부분. 그러나 라운딩 도중에 교체를 요청한 사정이나, 이후 고소까지 할 정도의 모습을 보면 과연 당사자가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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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 잡았으니 괜찮은데 왜 그래, 응?


그러면서도 박희태는 캐디에게 "'예쁜데 총각들 조심해라' 이런 얘기를 해줬다."(MBN)고 한다. 총각의 한 사람으로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예쁜데 왜 총각을 조심해야 한단 말인가?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예쁜 여성일수록 총각들과 적극적으로 교제하여 필자처럼 멋진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다던지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를 해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조심이라니. 물론 스토킹이나 성범죄 등을 염려하여 하신 말씀이겠지만, 그런 건 총각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말씀을 하는 당신의 행실이...


이에 대해 박희태는 "내가 딸만 둘이다, 딸을 보면 귀여워서 애정의 표시를 남다르게 하는 사람이다."(노컷뉴스)라고 말하거나 



"내가 나이 80 아니에요 그 아이는 20대 초인데 내가 귀엽고 손녀 같고 그래서 애정의 표시로 아이고 귀엽다 예쁘다 하고 그랬으면 몰라도 내가 무슨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한적 전혀 없습니다."


출처 - 채널A


라고 변명한다.


도대체 평소 딸이나 손녀에 대해 어떻게 애정의 표시를 하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도 남다르다는 점을 인정한 걸 보면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스킨십이 아닐까 싶은데 본인은 그러면서 총각들은 조심하란다. 이것이야말로 유체이탈화법의 전형이자, 박희태의 가장 유명한 어록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주관적인 애정의 표시도 상대방이 원치 않으면 강제추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낮은 단계의 애정표현 내지 신체 접촉이자 남녀 합석 술자리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러브샷에 대해 강제추행죄를 인정한 판례(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도10050 판결)가 있다. 공교롭게도 골프 후 식사 자리에서 골프장 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골프장 여직원들에게 러브샷을 강요한 사례였는데, 여기서 법원은 '피고인과 피해자들의 관계, 성별, 연령 및 위 러브샷에 이르게 된 경위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피해자들의 의사 등에 비추어 볼 때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인 ‘강제추행’에 해당하고, 이 때 피해자들의 유효한 승낙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강제추행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어쨌든, 박희태 본인이 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기사의 제목들과는 달리 내용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는 신체 접촉을 인정하는 것 같은 희한한 해명이라는 느낌.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봐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다가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박희태는 적극적으로 결백함을 다투기보다는 피해 여성에게 사과를 하는 등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합의를 보려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강제추행 사건의 경우 합의만 보면 공소권 없음이나 공소기각으로 끝났다는 걸 염두에 둔 듯. 그런데 작년 6월부터 법이 바뀌어 이젠 합의를 보더라도 혐의가 인정된다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진지한 반성과 사과, 피해의 실질적인 회복과 같은 범행 후의 정황은 중요한 양형 사유에 해당되므로 합의를 본다면 처벌이 많이 가벼워질 것 같긴 하다. 원래는 돈봉투 사건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일어난 일이니 집행유예 취소나 결격사유에 해당될 뻔했으나, 위대하신 전임 가카께서 말년에 특별사면이라는 은총을 내려주신 덕분에 그럴 염려도 없어졌고.


글을 마무리하며 돈봉투 사건을 폭로하여 박희태를 정계은퇴로 몰아넣은 고승덕을 소환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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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법대를 나온 법조계 출신 한나라당 정치인이라는 점 말고는 이렇다 할 공통점을 찾기 힘든 두 사람. 나란히 18대 국회의원이었지만 19대 총선에는 공천조차 받지 못해 정계를 떠나 있던 올해, 고승덕은 딸 캔디에게 박희태는 딸처럼 여긴 캐디에게 각각 비난을 받고 이런저런 변명을 했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대급 짤을 남겼음에도 교육감 낙선의 아픔을 겪은 고승덕이 하루속히 딸과 화해하길 바라며, 박희태 또한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실수한 것 같다, 이해를 해라 이래서 대충 된 걸로 알았는데..."(MBN) 정도의 변명인 듯 변명 아닌 변명 같은 어설픈 사과 말고, 최장수 대변인으로 보여주었던 촌철살인의 능력을 살려 고승덕 급의 화끈한 '미안하다!'를 보여주거나, 검사장 출신 법조인의 명예를 걸고 스스로의 결백을 밝혀내길 바라 마지않는다.







벨테브레 

트위터 : @backtalkking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