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다큐멘터리라는 일의 특성 때문에라도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촬영해야 할 일이 많은지라, 싫든 좋든 여행을 떼놓고, 사는 걸 이야기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세계 여러 나라를 참 많이 방문해 봤지만, 그중에 비행기 타고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일본은 다른 여행지에 비해 크게 부담 없고 많은 준비가 필요 없어 업무 외적으로도 1년에 한두 번씩 여행을 떠나는 곳입니다.
일본은 저에게 그렇게 먼 나라가 아니었던 거죠.
3.11 대지진 전에는 일본 도쿄 ‘타카다노바바(高田馬場)’에서 잠시 동안 거주하기도 했고(지진 일주일 전에 귀국했습니다;) 업무상 출장도 전국적으로 수십 회를 다녔을 정도로 일본은 저에게 꽤나 가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식도 입맛에 맞고, 적당히 언어도 통해서 일본인 친구들도 꽤 있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는 그들의 성향도 오히려 저에겐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음식이니 문화니 다 괜찮은데, 좋아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못한 한일 갈등과 역사 문제가 그것이었습니다.
한일 무역전쟁이 뜨겁습니다. 저 같은 범인(凡人)이 알 수 없는 한・일 간의 숨겨진 정치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성 제재가 이번 외교갈등의 핵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강제징용(強制徵用)
저는 이 단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강제징용과 관련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된 단체와 접촉하며 관련된 지역들을 탐방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적으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보면 좋을 것 같아 제가 다녀왔던 그날의 현장을 딴지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기타큐슈[北九州]
일본 출장이나 여행 중 가장 많이 방문했던 곳이 이곳 '기타큐슈(北九州)'였습니다. 한때 꽤 자주 방문한 덕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 대충 알 정도로 익숙한 동네입니다.
어느 날 출장 중, 우연히 기타큐슈 고쿠라(小倉)의 한 재일교포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재일대한기독교회(在日大韓基督敎會) 고쿠라 교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연행되어 오신 한인 강제징용자들의 후손들이 많이 출석하고 계신 교회였습니다.
또한 교회 자체에서 지속적인 재일 한인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관심을 갖고 두 차례 정도 개인적으로 더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담임목사이신 ‘주문홍’ 목사님께 강제징용과 관련된 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 드렸고, 목사님과 성도분들이 이번 강제징용 현장 탐방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교회는 재일 한인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불합리한 한인 인권 문제를 위해 투쟁한 故 '최창화(崔昌華)' 목사님이 설립한 교회였습니다.
故 최창화 목사님은 70만 명에 이르는 재일 한인들의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으로 한인 참정권 문제, 민족 언어 찾기 운동, 지문날인 거부운동 등을 벌이며 재일 한인들이 받는 인권차별의 현실을 UN 등 국제사회에 알리신 인권운동가입니다.
-> 故 최창화 목사님이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야쿠자 살해 사건이었던 '김희로' 사건을 통해 한인 인권에 투신한 분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링크)
때문에 교회 한 켠에는 조선인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재일한인 인권 문제와 관련한 작은 역사관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께 역사 문제를 상기시키고 故 최창화 목사님으로부터 시작해 그동안 걸어왔던 재일 한인 인권 투쟁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곳입니다.
이 교회는 기타큐슈시(北九州市) 외곽 모지구(門司區)의 공동묘지에 영생원(永生院)이라는 작은 추모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큐슈지역 탄광과 제철소에 강제징용을 당하셨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가시지 못하고 일본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모시고 있는 납골당입니다.
1973년 故 최창화 목사님이 설립한 이 추모관은 수십 년째 조선인 강제징용자 후손을 모시고 1년에 두 번 추도식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문홍 담임목사님과 성도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추도식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납골당처럼 보이는 영생원. 그런데 한 켠에는 무명(無名) 또는 불명(不名)이라고 쓰인 유골함이 보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유골함은 강제징용 중 사망한 조선인의 유골함입니다. 모두 157기의 유골이 모셔져 있습니다.
전범 기업이 운영하던 기타큐슈 근방의 '치쿠호(筑豊)' 탄광 등 수십여 개의 탄광과 '야하타' 제철소(八幡製鐵所) 등에서 강제노동 현장에서 사망하신 분들의 유골을 수집한 것인데 신원이나 유가족이 불분명하여 이렇게 이름 없는 유골함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이름없는 유골들과 달리 선조들의 고난이 새겨진 야하타 제철소는 메이지(明治)시대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인 유적이라 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하네요.
강제징용자의 후손이신 김정자 할머니입니다. 부친께서 탄광 강제징용의 희생자였고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오신 모친께서는 일본 속의 조선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하셨답니다.
일본에서 70 평생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툰 할머니는 부친의 강제징용을 '납치'라고 분명히 표현하셨습니다.
김정자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이 유골들은 채탄 과정 중 갱도 매장, 폭사, 익사한 유골들입니다. 사과 상자처럼 허름한 나무 박스에 여러 유골이 뒤섞인 채 담겨 일본의 절이나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인수해 오신 거라고 합니다. 할머니 손으로 직접 받아 오셨다고 합니다.
아주 간혹 한국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유골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 신원확인조차 안된 많은 수의 유골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납골당의 한편에 무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모셔져 있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세월만큼 더 있어도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유골함을 싸고 있던 흰 천이 낡아 글씨가 희미해 집니다.
새로운 천으로 갈아주고 정성스럽게 인적사항이나 발견장소 등을 표기합니다.
우측에 글을 적고 계신 남자분은 위에서 말씀드린 故 '최창화' 목사님의 아들 '최성식' 님입니다.
역시나 최성식 님도 부친의 뜻을 따라 재일 한인 인권 문제를 위해 애쓰고 계시며, 여기저기서 인권 문제 강연도 많이 하고 계십니다.
故 '최창화' 목사님의 따님 '최선혜'님 역시 부친의 뜻을 이어 한인 강제징용, 위안부, 인권 차별 문제에 관한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관련기사 - 링크
이번에는 만나 뵙지 못했지만 '최선혜'님은 언젠가 한번 만나 뵙고 싶은 분입니다. 재일 한인 인권 운동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분이라 만나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고쿠라 교회와 영생원에서 강제징용 후손들을 만난 이후 저는 근처의 또다른 강제징용의 사례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 첫 번째는 야마구치 현(山口県) 우베시(宇部市)의 '죠세이 탄광(長生炭鉱)'입니다.
네.. 저 바다의 기둥이 해저 탄광이었던 '죠세이 탄광(長生炭鉱)'의 흔적입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정말 많이 헤맸는데... 몇 차례 방문했더니 지금은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죠세이 탄광 이야기는 다음 편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위의 내용을 기록한 영상입니다.
고쿠라교회 담임목사 '주문홍'목사님, 김정자 할머니, 최성식 님의 인터뷰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혼자 다니고 혼자 촬영하느라 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보시는 것이 약간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https://youtu.be/YVzi4M1pcN0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두 번째 이야기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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