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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 분향소에서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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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조] 분향소에서



2009.5.25.월요일




어쩐 일인지 토요일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 들어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은, 그 충격이 너무 커서 당시에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 딴지일보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 사고와 관련하여 급히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그 역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리가 안되기는 나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내 마음속의 어수선함을 추모사 형식으로 담아 노매드에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루종일 멍한 상태에서 지내다, 다음날 가족모임이 있어 큰 형님댁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모임에서도 단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화제였고,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며 나와는 정치적 노선을 항시 달리했던 큰형님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노무현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노무현의 가치를 존중했고, 그래서 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하여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는 말씀을 꺼내놓으셨다. 그래도 이렇게 가족이 모여 국가적 슬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어서, 대낮부터 대취한 후 전날보다 깊게 잠이 들었다.


오늘 출근 후 점심 식사를 한 후 직원 한명과 함께 시청 앞 분향소를 찾았다. 오월의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슴에 조의 리본을 단 수많은 사람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긴 줄을 만들고 있었고 벽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등이 붙어있었다. 분향을 하며 더러는 오열했고, 분향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땀인지 눈물인지 얼굴에 흐르는 그 무엇을 연방 닦아냈다.


한 때 무혈 혁명의 선두에 서서, 희망의 상징으로 밝게 웃던 그 분은 여전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영정사진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다가온 영정 사진은 여전히 그의 죽음을 실감나지 않게 했다. 실감이 안나니 슬픔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 그러나 그의 사진 밑에, 사람들이 놓아둔 국화꽃 속에서 나는 그의 책을 보았다. " 여보, 나좀 도와줘".



그 책의 제목처럼 인간 노무현은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처절하게 외로웠을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파란만장한 정치의 파도를 다 헤치고 나서도 예순셋의 노무현은 인간이기에 너무나 고독했을 것이다. 은퇴 이후 농촌생활을 꿈꾸며 살아온 고향집이 어느 순간 감옥이 되었을 때, 바로 옆에서 자신의 저녁을 차려주는 아내와 식사를 함께 하는 아들이 범죄자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을 때, 시시각각으로 좁혀오는 표적된 수사가 죄의 내용보다는 인간 노무현의 몰락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과연 누구에게 자신의 힘듦을 하소연할 수 있었을까.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것조차, 구차한 노무현의 변명이라는 사악한 언론의 조직화된 반박 앞에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아버지 역할을 했다던 그의 형도, 그와 심금을 나누던 친구들도 모두 영어의 몸이 된 상황이라면, 결국 노무현은 그의 눈치만 보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나 좀 도와달라는 한탄은 커녕 위로 한 줌이라도 더 짜내기 위해 애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한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에게, 노사모라는 엄청난 지지 세력을 두고 있었던 사람에게,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 만으로도 현실정치에 끼칠 큰 파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위로의 방문객은 오직 같은 마을의 촌로였다. 그가 들고 온 통닭과 소주를 묵묵히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가 식어버린 통닭과 이홉드리 소주 같음을 생각했을지 모를일이다. 독한 마음 갖지 말라는 방문객의 위로를 들으며 그는 인간사의 허망함을 가슴깊이 실감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짧은 분향의 순간, 그가 쓴 에세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나는 바위에 몸을 던져 피와 살과 뼈가 튀어나가는 극한의 죽음을 선택한 그의 고독이 절절해져 가슴이 메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꿈을 꿀 때 부터,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리고 대통령을 그만두고 나서도, 명문대 출신도 아닌 신분에,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닌 주제에, 지역의 통일된 감정도 끌어내지 못하는 능력에, 감히, 그래 감히, 성골의 영역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품격과 언행과 피의 성분을 흠집내기 바빴던 스스로 성골 집단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기 능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루고, 권력을 향해 처세가 아닌 명패를 집어던지던 그의 신념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 아니냐며, 미꾸라지는 절대로 용이 될 수 없는 세상임을 알라고 조소 섞인 거짓 애도를 표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노무현이 흘린 피가 자기들의 신성한 영역으로 튀어와 그 자리를 더럽힐까봐 공고한 성벽을 서둘러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외로움이 가슴에 닿아 서럽고, 그를 이렇게 극한으로 내몬 세상이 더러워, 할 말을 잊는 오월이다. 노무현에게 빚진 마음이 거리를 채우는 부채의 5월이다.   


 


관광청장 뚜벅이(ddubuk@namad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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