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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봉하] 이상주의자들의 거대한 퍼포먼스를 위한 헌화


2009.5.28.목요일



학생운동 잔존세력에 대한 소탕작업이 한창이던 90년대 중반이었다.


집회를 나갔을 때 가장 마음이 평안해지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한 주사파 선배가 있었다. 그의 이상에 동의한 건 아니지만 그의 심정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민주화의 성지이자 저항문화의 상징에서, 거대한 직업훈련소이자 첨단 소비문화의 중심으로 변모한 캠퍼스. 그 속에서 운동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적잖은 자기기만과의 필연적인 투쟁을 의미한다.


집회는 그 압도적인 물적 퍼포먼스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짧은 해방감을 선사한다. 적어도 그 속에서 그들은 더이상 소수자가 아니며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을 일도 없다.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동지인 것이다. 집회는 그 자체로 일상과 현실이라는 거대한 리얼월드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상주의자들의 섬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내 머리속의 관념이 아니라 내 눈앞에서 내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생생한 퍼포먼스였다.


작년의 기적적인 촛불집회 이후 불과 1년만에 또하나의 믿겨지지 않는 퍼포먼스가 봉하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느 이상주의자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수십만의(곧 100만 단위가 될 것이 확실시 된다) 인파가 자발적으로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퍼포먼스의 진정한 무대는 분향소도, 사저도, 부엉이 바위도 아니다. 마을 진입로에서부터 시작해서 분향소까지, 분향을 하기 위해 약 2km가량 늘어져 있는 기나긴 사람들의 행렬이야말로 이 퍼포먼스의 의미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서울에서, 대전에서, 광주에서, 부산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이 극단적인 고비용 저효율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내려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장관을 이루는 만장들의 행렬과 끝없이 이어진 촛불들, 그 압도적인 비주얼 속에는 고작 몇십초의 분향을 위해 기꺼이 대여섯시간의 기다림을 감내한 수십만의 이상주의가 고스란히 투사되어있다.







유시민이 그랬다던가. 자살의 동기는 정치적 공격이었지만 그 대응은 인간적 죽음이었다고. 맞는 말이지만 돌이켜보건대 노무현에게 있어서 정치적과 인간적이란 말이 그렇게나 구분 되는 말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의 정치는 그리고 노무현의 이상주의는 결국 도덕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더욱 검증하기 불가능해 보였던 그의 정치적 진정성. 그는 결국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증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고인의 생전, 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기보다 그의 이상과 구현방식에 동의하지 못했기에 나는 그의 지지자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정치적 지향의 문제이기에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는 건, 고만고만한 정치인 중에서의 상대적 도덕성이니 개혁성이니 하는 따위의 이유가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의 선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그 선의가 악의적이고 저열한 공격에 의해 의심 받고 그것에 대응할 아무런 수단이 없을 때, 목숨으로써 고귀한 이상의 숭고함을 웅변한 사람이다. 자살을 권장하는 것도,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이상에 투신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살 수도, 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존중받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나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숭고함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여기 있다. 숭고한 이상을 기리기 위해, 일상 속 작은 이상을 실현한 사람들이 여기있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을 위한 희생과 배려의 범위래봐야, 기껏해야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봉하마을은 거대한 리얼월드의 한복판에 존재한 이상주의자들의 섬이다. 고인이 살아 있었다면 여기야말로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작년 촛불집회 때도 그랬지만 유독 어린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들이 많다. 잡다한 현실적 이유를 떠나서, 실제 현장에서 체험하기 전까지 학원과 교과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환타지의 공간에, 흔치 않은 이상주의자들의 축제에 자신의 자식을 참여시키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싶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아빠로서 내 아이와 이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함께 즐길 수 없음이 아쉬웠다. 그들의 바램대로 나 역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저열한 현실주의자들의 계산보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상상과 좀더 가깝기를 바란다.







분향소 맞은편 야외극장(?)에서는 지치지도 않는 열성관객들을 향해, 생전의 노무현이 쉬지않고 자신의 꿈을 노래한다. 귀향 후에는 농촌운동을 하겠다는 마지막 꿈까지. 그가 생전에 거닐었을지 모를 평범한 동네어귀를 걸어본다. 그는 이곳을 거닐면서 마지막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나를 포함하여 오늘 온 모든 사람들이 고인과 똑같은 이상을 공유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꿈을 꾼 사람이 있었고, 그가 진정한 몽상가였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본심은 영원히 알 길이 없어졌지만, 그가 이 위대한 이상주의자들의 퍼포먼스를 총기획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꿈에 대한 칭송은 지지자들의 몫일 터, 오늘 나는 이상주의자들의 거대한 퍼포먼스를 위해 힘든 수고를 마다않은 그의 노고에 대해, 꽃 한송이로 내 나름의 감사를 전하고자 한다.



글, 사진 - 신짱(woolala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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