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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척 매뉴얼] 노무현 <여보, 나좀 도와줘>



2009. 6. 12. 금요일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정이유


첫째, 잘 알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있은 후 당 서적은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고인 관련 서적 중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여타 정치인이나 학자의 눈에 비친 노무현이 아닌, 스스로 인간 노무현을 말하는 첫 번째 육필 서적인 만큼 당 서적의 읽은 척은 고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할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라는 점.



둘째, 역시 잘 알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이 겸사겸사 공안통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제끼고 있는 요즘, 당 서적이 언제 국민화합과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어 순식간에 레어 아이템으로 변모될지 모른다는 점.



셋째, 고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들이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는 바가 바로 그의 인간적 면모라고 했을 때, 당 서적은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인 1994년까지의 삶을 가감 없이 서술한 자전적 에세이라는 점에서 그 어떤 서적보다 그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확인하는 데 적절한 최루성 만땅의 작품이라는 점.



 


 읽은 척 매뉴얼


참고로 이미 고인이 된 분의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예의상으로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통일하는 게 맞다 하겠으나, 가독성이 떨어지므로 편의상 노무현, 혹은 고인으로 칭하는 점 양해바라는 바이다.


1)등장인물



-노무현 :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초인적인 의지와 추상같은 신념으로 모든 고난을 헤쳐나감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뤄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창조했다.’ 는 식의 영웅담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 서적에서의 노무현은 거의 고백성사를 하듯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자기반성이 주를 이룬다.




-김영삼 :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처음 정치판에 입문시켰던 장본인임과 동시에 3당 합당을 주도한 변절자로서의 김영삼이 언급된다.



-김대중 : 3당 합당으로, 과거 노무현이 김영삼의 민주당에서 김대중의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었던 만큼(이 부분은 필자의 설명에 약간의 착오가 있는 부분입니다. 보다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께서는 아래 오늘여기님이 남겨주신 게시물을 확인하시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당연히 등장한다.



-문재인 : 문재인 변호사가 참여정부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에 앞서, 인권 변호사 시절 함께 일을 할 당시의 문재인에 대한 노무현의 평가가 흥미롭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세부 스킬에서 밝힌다.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 : 제목이 <여보, 나좀 도와줘>인만큼 당 서적에는 권양숙 여사와 그의 자녀들에 대한 얘기가 적지 않다. 특히, 연애시절 양가의 반대로 결혼에 애를 먹었던 점과 결혼 직후 경상도 남자 노무현이 아내를 휘어잡기 위해 손찌검까지 불사했었다는 자기 고백이 눈길을 끈다.




2)내용요약


당 서적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서술된 작품도 아니고, 어느 특정 사안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서적도 아니다보니 주요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다만, 고인이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을 간략히 정리하라고 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사실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부족한 점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나를 속이지 않았고, 그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생각이다. 이러한 노력이 모아질 때 나 개인과,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은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3)읽은 척 세부스킬





당 서적의 시대적 배경


먼저, 당 서적을 읽은 척 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이 책이 출간된 시기의 정치적 기상도에 대한 이해라 할 수 있다.



정치인 노무현이 쓴 책이므로 당연히 당시 정치상황이 주요 테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만들어진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노무현과 관련된 비교적 최근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며 대충 읽은 척을 했을 때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읽은 척 삑사리의 가능성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 당 서적은 1994년에 만들어진 책인 관계로, 고인의 해수부 장관 시절이나, 민주당에서의 대통령 경선시절, 대통령 당선 후의 얘기는 당연히 없다.



당시의 주요 정치적 이슈는 3당 합당과 이에 대한 노무현의 불복, 92년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 김대중의 정계 은퇴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무현 개인의 정치적 상황으로는 청문회 스타가 되었지만 당리당략에 의한 위선적 청문회에 염증을 느껴 사표를 제출했던 의원직 사퇴파동, 이후 김영삼과 갈라서면서 평화민주당에 입당(이 부분은 필자의 설명에 약간의 착오가 있는 부분입니다. 보다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께서는 아래 오늘여기님이 남겨주신 게시물을 확인하시라)한 후 부산에서의 첫 번째 낙선, 평민당 대변인에서 다시 최고위원으로 선출됨으로써 원외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정치적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는 것 정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특히 눈여겨 볼 점은, 부산 선거에서 첫 번째로 떨어진 후의 먹먹한 심경을 토로하는 부분이다.



1992년 3월 24일. 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중략)


개표하는 날 아침, 좀 창피스럽기는 했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지구당 사무실에 나갔다가 당원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아내가 잠시 눈물을 훔치긴 했지만. 그러나 그 뿐이었다.


(중략)


나와 우리 집 식구들은 선거를 치르기 1년 전부터 미리 낙선의 홍역을 충분히 치르고 있었다. 부산 바닥에서 김대중 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가는 민주당 간판 갖고는 백 번 나가도 안 되니 지역구를 서울로 옮기라는 성화에 어지간히도 시달렸던 것이다. 심지어 지구당의 열성당원들조차도 지역구를 옮기라고 권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은 자기가 설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남자는 죽을 자리라도 가야 할 땐 가야 합니다.”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내 속은 이미 숯 덩어리처럼 새까맣게 타 있었다. 말이 그렇지 세상에 어떤 사람이 죽을 자리에 제 발로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내 아내 양숙씨는 도대체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이었다.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의논이라도 하려 하면, “언제 당신이 나한테 물어 보고 한 일이 있어요?”하고 매번 고개를 돌렸다. 자기가 뭐라고 권하더라도 결국 내가 부산에서 출마할 것이 뻔한데 뭐하러 묻냐는 투였다. (p.13~14)



낙선한 직후 나는 이참에 정치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 일에 매달리면 먹고살기가 훨씬 넉넉해질 테고, 아무리 정치자금이라 하지만 멀쩡한 사람이 친구들한테 손 벌리는 짓은 안해도 될 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그만 욕먹는 일도 없을 테고....(p.19)



13대 선거 당시에는 개표 도중에 자다가 일어나 보니 이미 당선이 되어 있었는데, 이번 14대 선거에서는 자다가 일어나 보니 이미 엄청난 차이로 떨어져 있었다. 이로써 나는 정치 입문 4년만에 ‘청문회 스타’라는 최상의 경험으로부터 ‘낙선’이라는 최악의 경험까지 두루 맛보았다.


낙선 직후 나는 이제야말로 홀가분하게 정치판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이미 나의 운명이 되어 버린 것인가. 낙선으로 싫든 좋든 나를 둘러싸고 있던 화려한 장막이 사라지고난 뒤, 나의 텅빈 마음속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뇌가 시작되었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p61~62)



선거 전에는 가족들한테까지 외면을 당했다는 얘기, 그리고 낙선 후에는 개인적으로 많은 괴로움이 있었고, 정치에 대한 큰 고뇌가 있었다는 대목들이 일견 청년시절 노무현의 좌절과 그 좌절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를 느낄 수 있어, 감동적이고 좋았다 표현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큰 괴로움과 고뇌가 앞으로 두 번 더 반복된다는 것, 부산에서의 당선이라는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 결국 대통령이 되지만 앞으로 2009년 5월 23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로써는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억장이 무너지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고로, 당 서적을 읽은 척 함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스킬 중 하나는 마치 부두교의 주술사가 된 심정으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주문이라도 외듯 입속에서 끊임없이 ‘만약’을 중얼거리는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때 그가 만약 가족의 만류에 따라 정치를 그만 뒀더라면, 그때 그가 만약 부산 3연패라는 영욕의 길로 들어서지만 않았더라면, 그때 그가 만약 정치에 대한 근원적 고뇌 말고 정치에 대한 얄팍한 계산에 자신의 행보를 맡겼더라면 지금과 같은 국민적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이다.


 


노무현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


당 서적을 읽은 척 함으로써 거론할 수 있는 ‘노무현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은 성격상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가 스스로 밝히는 노무현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위 ‘명패 투척 사건’은 청문회에 나온 전두환 씨가 퇴장할 때 내가 명패를 집어던진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중략)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전두환 씨에게 명패를 던진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내동댕이를 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전두환 씨에게 대한 분노보다는 당시 내가 소속하고 있던 통일민주당의 지도부에 대해 화가 치밀어 내동댕이쳤던 것이다. (p.33)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청문회에서 전두환의 면전에 명패를 집어던졌을 정도의 담력과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던 유일무이의 초선의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혹은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란다. 전두환이 아니라 당시 노무현이 속해있던 통일민주당의 지도부들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고 한다.



어쩌면 독자제위는 이 고백을 통해 그에 대한 전설적 무용담 중 한 토막의 빛깔이 바래지는 것 같아 오히려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고 보면 또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명패 투척 사건’의 내막에는 당시 여야 수뇌부간의 ‘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더러운 야합과,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야당에 대한 야당의 반목과 정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5공특위는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와 3김이 정호용까지만을 문제 삼기로 협약을 맺은 일종의 기획 청문회였다는 사실. 그리고 광주특위와 관련해서는 당시 호남당인 평화민주당이 알아서 난리를 칠 것이므로 괜히 영남당인 통일민주당이 나서서 지역 주민들 표 깎아먹는 일은 없게 하라는 당 지도부의 계략에 넌더리가 나 명패를 패대기쳤다는 얘기이다.



지금이야 그 야당의 의원들은 대부분 여당에 편입되거나 용도폐기 되었지만, 뭐 이런 놈의 야당이 다 있나 싶은 대목이라 할 것이다. 물론, 뭐 이런 놈의 국민들에 영합했을 뿐인 야당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이런 고백도 있다.



나는 결혼을 할 때까지도 남성 우위의 생각이나 여성에 대한 경계심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양숙이만 ‘특별히 좋은’ 여자이거나 ‘순종하는’ 또는 ‘내 손아귀에 들어올’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 놓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말을 명령조나 억압조로 함부로 하면 그걸 따지고 들뿐만 아니라, 심하면 우리 집의 가풍을 비난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내 개인의 습관까지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곤 했다. 나는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부라리기도 했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러니 작은 말다툼도 걸핏하면 싸움으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중략)
 
견딜 수 없는 초조감과 불안감에 나는 급기야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중략)
 
나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면 소리를 질러 대었고, 그 말에 심하게 반발을 하면 다시 손을 올려붙였던 것이다. 정말 기억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략)
 
“어떻게 노 형은 형수님을 그렇게 꽉 잡고 삽니까? 비결이 뭡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인생의 대선배나 되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조져야 돼. 밥상좀 들어 달라고 하면 밥상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 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물론 농담이었지만, 전혀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p.124~126)



아마, 놀라움을 금치 못할 독자들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 대선 후보시절, 아내의 부친이 좌익사범이었다는 상대진영의 색깔론(사실 그 얘기도 당 서적에서 처음 노무현이 스스로 밝혔던 내용이다)에 대해, 역으로 그럼 대통령 해먹겠다고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그럴 거면 대통령 안하겠다는 발언으로 수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가 사실은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했던 폭력남편이었다니. 이럴 수가, 하고 말이다.



사실 당 서적에 실린 노무현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자기 고백은 이 뿐만이 아니다.



어린 시절, 치사하게 형들 빽을 믿고 학교에서 까불었던 얘기며, 새 필통이 너무 갖고 싶어 어수룩한 친구를 속여 필통을 바꿔치기(?)했다가 왕따가 될 뻔 했던 사연, 변호사 개업직후 60만원의 수임료에 눈이 멀어 충분히 합의를 볼 수 있는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수임료를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형식적 절차를 밟기 위해 부랴부랴 피의자 접견을 함으로써 한 아주머니의 피눈물을 쏙 뺐던 사건 등등. 대략 당 서적의 50% 이상은 자기 삶에 대한 부끄러웠던 기억의 회고라 할 수 있다.



만약 좃선일보의 기자가 당 서적에 대한 읽은 척 매뉴얼을 작성한다고 가정하면, 아마도 위와 같은 내용들에 대한 널뛰기적 짜집기로 당 서적이 바보 노무현의 인간적 자서전이 아닌, 겉 다르고 속 다른 노무현의 범죄일기쯤으로 둔갑시켰을 가능성도 크다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당 서적에 대한 읽은 척의 결정적 분수령이 있다 하겠다. 또한 ‘노무현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을 바라보는 두 번째 시각. 즉, 진정한 팬심으로 바라보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시각을 피력할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어째서 자기 자랑만 채워도 지면이 모자랐을 정치인의 첫 자서전에 자칫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는 민망한 자기 고백을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것일까.



물론, 솔직하고 탈권위적인 그의 면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꼴마초였던 청년시절, 돈이 최고였던 변호사 시절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함으로써 당시 그가 이루고자 했던 정치적 포부의 진정성을 강조하려한 전략적 언변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어쩌면 그의 부끄러운 고백들은 스스로 체험한 인간의 변화가능성을 통해, 사람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고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고, 사람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여전히 희망이 존재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라 하겠다.



1946년에 태어나, 코흘리개 시절에 전쟁을 겪으며 지속되었던 괄약근 찢어지게 가난했던 살림살이, 그 가난이 자신의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 그 와중에 당연히 만연했을 그 시대의 생존경쟁적 기회주의, 그리고 기회주의가 옳으냐 옳지 않으냐의 가치 판단을 할 여유도 없이 남의 집 묘목을 훔치기도 하고 밀린 숙식비를 떼먹기도 했던 청년 노무현, 이후 개인과 가족의 영달을 위해 기득권의 틈바구니에 끼어보고자 시작했던 고시공부, 그 와중에 이루어진 결혼과 무시 받는 것 같다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아내에 대한 폭언과 손찌검, 사법시험 패스 후에는 요트가 취미가 되어버린 그의 안온했던 삶, 그리고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그동안의 삶에 총체적 국면전환을 맞게 되는 일천 구백 팔십 일년...



즉, 자기도 한때는 막노동꾼에서 사시합격자로 변했고, 돈 밝히는 조세 전문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변했으며, 아내를 때리던 무지랭이에서 존경받는 가장으로 변모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성찰을 통해 직업을 바꿀 수도, 가치관을 바꿀 수도, 더 나가서는 이 세계를 바꿀 수도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는 얘기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변하고자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거개는 오직 ‘돈’이라고 하는 물적 소유권의 변화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역시 그러했었다. 하지만 그는 삶의 어느 지점(아마도 부림사건)에서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결국 변했기 때문에 고졸 변호사의 자수성가적 위치에서 멈추지 않았고, 3당 합당으로 졸지에 여당의원이 될 수 있었던 그 절호의 기회(?)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할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거개는 오직 주둥이로 당위와 논리의 이론적 우위를 이용해 타인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역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주요 업무인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변했는지 안 변했는지의 여부를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타인의 변화를 선동하기 앞서, 자기 스스로 변화, 발전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이들을 실제로 움직이게 했다 할 것이다.



최근, 그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충격을 받으면서, 혹자는 그를 모든 것이 완벽했던 진실과 정의의 완전체처럼 추앙함으로써 지난날 자신의 냉담과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을 일시불로 보상하려는 듯 묻지마 찬가를 갖다 바치는 행태도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 서적에 대한 읽은 척을 통해 그를 추모할 독자라면, 오히려 그는 완벽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님을 강변해야 할 것이다. 다만 늘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자기극복을 병행함으로써 스스로 진화해나갔던 사람이라 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 진화해서 덩달아 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모를 사람이, 이미 오래 전에 더 이상 변해야 할 이유도 없고, 변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화석인간들의 음모에 의해 생을 마감함으로써 그 기회를 놓치게 되어 슬프고 분하다 표현하는 것이 더욱 구체적이면서, 어쩌면 더욱 노빠적인 고인에 대한 애도라 할 것이다.



 





노무현이 평가하는 사람들



앞서 언급한 바 있듯, 당 서적에는 당시 쟁쟁했던 정치인들과, 그의 친구, 가족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들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를 발췌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1)김영삼




노무현을 처음 정치판에 이끈 장본인은 김영삼이다. 그리고 당 서적에 의하면 김영삼은 3당 합당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노무현을 꽤나 아끼고, 중히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틈만 나면 상도동으로 불러 봉투를 쥐어주고, 의원직 사퇴 파동이 있었을 때도 아무런 비난 없이 용돈을 주며 좀 더 쉬다 오라고 했을 정도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김영삼에 대한 노무현의 평가는 냉정, 혹은 공정하다.



YS는 ‘탁월한 정치인’이다. 언뜻 생각하면 뭐가 탁월하다는 건지 조금 애매모호한 표현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표현이 YS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수식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말은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내가 말하는 ‘탁월한 정치인’이라는 말을 더 쉽게 표현하면 ‘뛰어난 두목’이라는 뜻이다. (p. 73)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
 
YS의 이 말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건강을 중요시하는 말처럼 들린다.
(중략)
 
아무튼 머리는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머리’라고 하면 세계관과 철학, 그리고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지식은 언제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 철학은 남에게 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p. 85)



YS가 3당 합당으로 권력을 잡기 전만 해도 이 땅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장물의 수준은 한정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권력에 빌붙어 먹고사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YS의 대권 장악과 함께 기회주의자들의 입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기회주의자들의 성공이 최고 권력의 차원으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YS의 대권 장악은 기회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신선한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p. 87)




 


2)김대중




김영삼의 민주당에서 3당합당에 의해 김대중의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던 만큼 김대중에 대한 노무현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당 서적에서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그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아직 복귀하기 전의 아름다운(?) 상황까지만 언급한 것이라 정계은퇴 번복 후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부분이라 하겠다.



YS와 마찬가지로 DJ를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나는 ‘참으로 아까운 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DJ야말로 내가 말한 지도자의 3대 요건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 ‘역사의식’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p. 95)



나는 YS를 ‘탁월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 일은 없다. 그러나 DJ에 대해서는 ‘지도자’로 이름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가끔 집회 등에서 정치인들이 그분을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켜세울 때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그건 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끝내 사퇴하지 않은 데 대한 실망, 그리고 89년에 중간 평가를 무산시킨 데 대한 불만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구 민주당 때는 물론이고 통합 이후에도 곧잘 DJ를 비판하곤 하다가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p. 98)



DJ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함으로써,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의 세계로 넘어갔다. (중략) DJ는 그 이미지의 세계, 존경받는 지도자의 세계에서 이 현실 정치판이라는 세계로 돌아오면 안된다. 그 길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다리를 넘어오려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존경받는 지도자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이다. (p. 109)




 


3)권양숙




책의 제목 자체가 <여보, 나좀 도와줘>인만큼 권양숙 여사에 대한 얘기는 따로 한 챕터를 차지할 정도로 폭넓게 다뤄지고 있다. 과거 논두렁 연애시절의 이뻐 죽겠는 ‘우리 양숙이’에서 부터 정치에 입문한 후 싸늘해진 ‘바가지의 달인 권여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노무현은 가족들에 대한, 특히 부인에 대한 죄의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유는 결혼해서 호강시켜주겠다던 약속을 거의 지킬 뻔 했으나, 남편인 노무현이 변호사 때려 치고 정계에 입문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도와달라는 의미되겠다.



몇몇 부분을 발췌해보자.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가끔 만나면 마음이 설레곤 했던 처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에도 몇 번 만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땐 워낙 콧대가 높아 말도 제대로 붙여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양숙 씨를 제대 후 고향 마을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고시 공부의 와중에서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p.113)



우린 그래도 남들은 흔히 갖기 어려운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몇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둑길을 걸으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함께 돌아다녔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 논길을 걷노라면 벼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 놓은 것만 같았다. 마치 동화 속의 세계 같은 그 속을 거닐며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p.114/사족이지만, 그렇다. 장차 대통령이 될 사람을 꼬시기 위해서라도 도스토예프스키쯤은 알아둬야 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대한 읽은 척 매뉴얼을 참고하시라.)



아내는 도대체 내가 하는 일에 끼어들려 하지 않는다. 평소에 지역구 관리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번 최고위원 선거 때 대부분의 최고위원 후보 부인들이 선거 운동을 하고 다녀도 아내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청문회 이후 수많은 잡지사에서 아내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디만, 모두 실패했다. 인터뷰는 커녕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p. 118)



처음 선거에 나왔을 때의 일이다. 선거 참모들이 집에 와서 큰 아이와 내가 윗통을 벗고 씨름하는 사진을 보고 홍보용 사진으로 쓰겠다고 하자, 아내는 펄쩍 뛰었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해도 귀한 자식의 사진이 뭇 사람들의 발 밑에서 밟히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참모들이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의 논리도 여러 가지이다. 남편이 정치를 한다고 여자까지 나서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다거나, 가정을 노출시키는 것은 사생활 침해란다. 또 어떤 때는 한 술 더 떠서 “당신이 정치 안하면 한 달 수입이 얼만데, 당신을 내놓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애국 충분히 하고도 남았어요.”라던가, “언제 당신이 아이들 챙겼어요? 나라도 챙겨야지요.” 매사에 이런 식이다. (p. 119)



“여보, 나좀 도와줘. 나는 꿈이 있어. 나는 꼭 그 꿈을 실현하고 싶어. 정치를 하려면 미쳐야 된대. 여보 양숙 씨, 우리 같이 한 번 미쳐보자. 응?” (p. 120)




 


4)문재인




영결식 때도 그렇고, 지난 한겨레와의 인터뷰 때도 그렇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이가 바로 문재인이다. 그 어떤 자리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냉정함, 그렇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함이 아니라, 30년 우정을 지킬 수 있는 그 의리까지. 뭐, 그럴 리 만무하지만 누가 필자 맘대로 대선 후보를 정해보라고 한다면 필자는 문재인을 꼽고 싶을 정도이다.



문재인 변호사에 대해 그가 언급하는 대목은 딱 두 군데이다.



나는 아침 일찍 첫 비행기로 상경한 문변호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언제나 냉정하고 신중한 사람이고 권세나 명예로부터 초연한 사람이었다. 아내가 무슨 뜻으로 그를 불렀는지 모르지만 그는 내 편에 서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냥 서명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창피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끄러웠던 순간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p.44/이는 소위 노무현의 의원직 사퇴파동 사건 때 다시 사퇴를 철회해야 했던 때의 한 대목이다.)



그 시절(인권 변호사 시절)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운영했던 문재인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발령을 받지 못했다. 대학시절의 시위 경력 때문이었다. 82년 나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 이후 85년 운동을 본격적으로 할 때도 항상 나와 호흡을 함께 맞추어 왔다. 지금도 문 변호사는 부산의 각종 시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p. 220)


 


 그밖에


당 서적에는 노무현이 왜 조선일보와 싸우기 시작했는지 그 개인적 갈등에 대한 얘기도 언급된다. 일종의 초선의원 길들이기 기간에 청문회로 너무 유명해진 노무현의 콧대를 꺾어 놓고자 노무현이 개인 요트를 소유했을 정도의 재산가라는 거짓 기사를 유포했기 때문이다.



결론만 얘기한다면 노무현은 당시 당 지도부의 뜻을 따르지 않고 홀로 조선일보와 맞짱을 떠 결국 승소를 거둔다. 하지만 끝까지 간 건 아니다. 1심에서 승소를 한 후 조선일보의 꼬리 내리기로 일단락을 짓게 된다. 물론 그로부터 약 20년 후, 노무현과 조선일보는 다시 한번 맞짱을 뜨게 되고, 결국 노무현은 조선일보에게 패배해 끝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끝으로 그놈의 돈과 관련된 얘기도 있어 소개하는 바이다. 어쩌면 94년도의 노무현은 낙선한 패장으로써 무엇보다 돈이 필요해서 당 서적을 썼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대목을 읽으며 마치 목구멍에 팔뚝만한 가시가 박힌 것처럼, 가장 많이 아팠었다.



오래 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청문회 직후에는 권하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우쭐하기도 하고 자랑도 하고 싶었다. 그 다음에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서는 책을 팔면 돈을 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솔깃하며 이 글을 쓴다.
 
그래도 쓰는 김에 하고 싶은 말을 좀 하고 싶은데 그런 딱딱한 이야기는 독자들이 읽어 주지 않는단다. 출판사의 주문이 까다롭다. 이건 빼라, 이런 이야기를 넣어라. 어쨌든 팔리기나 좀 팔렸으면...
 
그러나 팔리면 얼마나 팔리고 돈이 되면 얼마나 되겠는가. 욕심을 좀 더 부려 보자.
 
“독자 여러분. 저좀 도와주세요. 정말 정치다운 정치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제 후원회 전화는 02-784-2245이고요, 주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 회관 903호 노무현 후원회입니다.” (p. 161~162)



참고로, 위의 전화번호 보고 혹시나 싶어 전화해볼 독자들 있을지 모르겠다. 전화해보니 무슨 홍보대행사의 ARS가 들려와서 수화기를 닫았다. 괜한 헛수고들은 하지 마시라.








정리하자면, 당 서적은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자기 자랑 10%+부끄러운 자기 고백 50%+돈 없어 죽겠다 30%+주변 인물 평가 10% 정도의 구성비로 이뤄진 서적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그동안 본지에 6편의 읽은 척 매뉴얼을 게재했고, 또 최근에는 관련 서적을 내면서 총 20여 편 가까이 읽은 척 매뉴얼을 작성한 바 있으나, 이번만큼 쓰기 힘든 작품이 없었던 듯싶다.



책이 어렵다거나, 분량이 많아서 그렇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 할 것이다. 눈에 때려 넣기라도 하듯 잘 읽히고 노무현 특유의 가식 없는 농담과 똥고집을 감상할 수 있어 즐겁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미 그의 운명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가 희망과 용기로 가장 충만했을 시절의 글을 읽는다는 건 어찌 보면 영결식 장면보다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간혹 본 매뉴얼을 통해 진짜로 해당 서적을 읽은 것만 같은 기시감이 생겨 정말 원작을 구입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간혹 있다. 본 매뉴얼이 사실은 원작을 읽기 전에 입맛을 댕기는 에피타이저의 역할을 하고자 기획되었다는 점을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다른 책은 모르겠지만 故 노무현 대통령의 당 서적만큼은 꼭 돈 주고 사서 읽으시라.







[읽은척 매뉴얼]론다 번 <시크릿>


[읽은척 매뉴얼]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읽은척 매뉴얼]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읽은척 매뉴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편


[읽은척 매뉴얼] 밀란 쿤데라의 <농담>편 


[읽은척 매뉴얼] 유토피아편


[읽은척 메뉴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편


[읽은 척 메뉴얼 외전] 88만원 세대




 


딴지 편집장 너부리(newtoil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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