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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더럽게 무서워하네


사람들 그거 참, 진짜로 탄핵 무지하게 무서워한다. 쫄보들 같으니라구.


물론 이해는 간다. 불과 12년 전,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신 새천년민주당은 아주 호된 맛을 본 적이 있다. 바로 탄핵 역풍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예 머리 속에 각인이 되어, 탄핵은 진짜 함부로 하면 큰일 나는 정말 무서운 일이구나 하고 지레 겁먹고 쫄아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6년 현재, 모든 것이 달라진 오늘날의 상황에서조차 탄핵을 두려워한 나머지, 대통령을 쫓아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하는 겁쟁이들의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누가? 누구긴 누구야, 문재인과 더민주의 의원들이지. 얼마나 쫄아서 눈치들을 보는지,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의도에서 경기도 오산까지 들린다더라. 


그럼 이제부터, 그 탄핵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 무서운 일인가, 평생 가야 한 번 시도해보기도 힘든 일인가, 너무나 무서워서 쫄아 붙는 게 당연하고 정당한 일인가를 따져 보기로 하자.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나도 모르겠다. 



2004, 탄핵의 추억


떄는 바야흐로 2004년. 취임한 지 일 년 된 노무현 대통령은 곤궁하기 그지 없는 입장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개뿔, 선거 운동도 졸라 안 해줬다고 전해진다) 새천년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석은 겨우 40여 석, 지지율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밀려 만년 3위, 지지부진 그 자체였고, 다가오는 2004년 총선에서는 명색이 집권여당(대통령이 입당했으니 의석수와 상관없이 집권여당이다)임에도 불구하고 개헌 저지선, 그러니까 1/3 의석도 확보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물론 2004년 들어서면서 지지율을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지역구 선거에서도 먹힐지는 의심스러운 상태.


거기다가 35명이나 의원을 빼앗긴 새천년민주당 입장에서는 웬수보듯이 보고 있고, 한나라당은 다 이긴 선거라고 생각했던 대선에서 졸지에 노무현에게 패배한 이회창 충격의 여파와, 차떼기 정당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상황이라 어리버리 하던 중이기도 했다. 단지 하는 거라면 노무현이 국가 경제를 망쳤다~ 라고 돌잽이 옹알거리듯 계속 옹알거리는 수준의 얘기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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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 사람들이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탄핵.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아직 의석수가 40여 석 밖에 안 된다는 점에 착안을 한 것이다. 조만간 총선을 거치면 이 상황이 어찌 바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대략, 과반은 아무도 생각도 안 했고, 그저 개헌 저지선은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정도의 예측이 있었을 뿐. 


즉, 총선이 끝나면 개헌저지선(공교롭게도 탄핵소추 의결 반대선과 같은 숫자다)을 돌파할지도 모르는 열린우리당을 봤을 때, 차라리 여기서 큰 칼을 한 번 휘두르자, 라고 판단을 내린 것. 과연 누가 내렸을까? 세간에는 조순형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자신은 반대했었다고 주장했지만 신빙성은 별로 없다. 또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탄핵 진행 과정에서 추 의원은 상당히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심지어 탄핵 직후에 삼보일배로 반성의 몸짓도 역사에 기록될 만큼 크게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이 반대한 일에 뭘 그리 열성적으로 사과를 해.


어찌 되었거나 칼은 새천년민주당이 뽑는다. 2004년 2월 24일에 대통령 노무현은 기자회견 석상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라고 발언을 한다. 이 발언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문제가 되는 발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중앙선관위는 이 발언에 대해 중립의무준수를 요청한다.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선관위의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새천년민주당은 여기에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선거법 위반과, 측근 비리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발표한다. 측근비리가 왠지 모르게 하나 끼어 들어갔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측근비리가 몇 건 있긴 했었다. 물론 새누리당의 차떼기가 워낙 강렬해서 잘 주목을 못 받긴 했지만 말이다. 새천년민주당은 왜 하필 그 때 측근 비리에 시비를 걸었을까? 자기들이 그 측근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하여튼.. 


새천년민주당의 이런 사과요구에 청와대는 거부를 한다. 이게 3월 6일.


그러자 3월 9일에 한나라당 의원 108명, 새천년민주당 의원 51명이 서명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된다. 자민련은 여기서는 빠지면서 사과요구를 다시 한다. 뭔 사과를 그렇게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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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 날, 국회에서는 말 나온 김에 탄핵안을 가결처리 하려는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대치했고, 가결 처리는 실패한다. 


또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은 사과요구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측근비리로 지목된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이 자신의 형인 노건평에게 3천만 원의 뇌물을 줬다는 얘기에 대해서 한마디 한다. 이로 인해 남 사장은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해 버리고 연이어 자민련 역시 당론을 바꿔 탄핵에 찬성을 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도 그리 적절하지는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논의해 볼 만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노무현 대통령조차 고인이 된 마당에 이런 논의를 하기는 쉽지 않다. 하여간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제 탄핵에는 자민련까지 가세를 했다. 결국 3월 12일부로 탄핵안은 한나라당 + 새천년 + 자민련 총 195명이 투표해서 193명이 찬성, 2명이 반대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당시에는 국회 의석총수가 273석이었고, 이 시점에는 271석이었다. 지금도 이 상황에서 울부짖으며 저항하다가 국회 경비들에게 번쩍 들려 끌려나가던 수많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참담한 표정이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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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일정이 잡히고 7차 최후변론까지 진행이 된 후, 5월 14일 최종적으로 탄핵심판을 기각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사이에 4월에 제 17대 총선이 있었고,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 노무현이 소속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는 엄청난 성과를 올린 뒤였다. 


역풍은? 


가장 호된 역풍을 겪은 쪽은 더민주의 선조 새천년민주당이다. 선거결과 의석수 9석. 당시 약진했던 민주노동당에도 못 미치는 의석으로 원내교섭단체는 커녕 제4당의 지위로 떨어져 사실상 당이 파멸하는 결과를 얻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도 처절했던 삼보일배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낙선, 유학길(사실상 도망길)에 오른다. 조순형 대표도 낙선. 이 정도면 사실상 초토화다. 


자민련은? 다른말 할 거 없고 김종필 총재가 낙선한다. 그것도 비례 1번으로 출마해서 낙선. 10선에 실패. 총재직 사퇴, 정계은퇴로 이어지게 된다. 2008년에는 뇌졸중까지.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이던 박관용 정계은퇴. 최병렬 당대표 은퇴. 홍사덕 총무 은퇴. 이 중에서 홍사덕만 17대 한 번 쉬고, 18대에 가서야 친박연대로 다시 대구에서 당선되어 한나라당으로 복귀할 수가 있었다. 그래놓고 탄핵에 대한 재평가라고 우기기도 했다. 지금 잠은 오는지 모르겠네. 


와, 진짜 탄핵 한번 하려다가 실패하더니 완전 초토화되는구나, 역시 탄핵은 무섭네, 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2004 VS 2016


현재의 상황과 2004년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당시의 노무현과 지금의 박근혜는 어찌 다르고, 어찌 같은가를 살펴봄으로써 과연 탄핵은 손대면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두려운 존재인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 발단 자체가 다르다.


2004년의 경우, 직접적인 발단은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발언인데, 그 발언 자체는 사실 별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물론 중선위는 멘트를 한번 하긴 했지만 그것도 고발조치도 아니고,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앞으론 법 좀 지켜주세요~ 라는 권고에 가까운 조치만 했다.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당이 승리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다는데, 그게 뭐? 불법적인 일은 안 하고 합법적인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는 건데. 그게 뭐?


그 정도 발언으로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것은 좀 가혹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정도 일이 선거법 위반이고 탄핵소추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가혹한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이냐면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콤비들도 탄핵소추를 하면서 제시한 이유에 선거법 위반에, 측근비리와 경제실패라는 추가 이유를 붙였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선거법 위반만으로는 자신이 없던 거다. 


그렇게 미약한 근거로 탄핵을 발의한 것도 문제가 되지만, 더욱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탄핵이라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린 게 누구냐는 지점이다. 2004년에는 민주당 내부에서 그 말이 처음 나왔다. 2016년에는 유권자들의 입에서, 이 정도면 탄핵감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게 다른 점이다.


즉, 2004년의 탄핵은 정치인들이 꺼낸 탄핵이고, 2016년의 탄핵은 유권자들이 꺼낸 탄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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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도 2004년은 탄핵소추안 발의자들도 민망해했던 선거법 위반이었다면, 2016년은 실질적인 헌법 위반, 헌법으로 위임된 대통령의 권한을 아무런 공적 선임 절차도 없는 민간인에게 공여한 대통령의 권한 오남용 문제. 차원이 다르고 레벨이 다르다. 2004년에 노무현의 탄핵소추 이유에 대해서는 외국의 여론들조차 도대체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갸우뚱 하는 분위기였다면, 2016년의 박근혜에 대해서는 해외토픽 가쉽란에 “세상에 이런 일이” 분위기로 샤먼 포춘텔러에게 정신을 지배당하는 사우스 코리아의 대통령 이야기가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이건 절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 지적해두고 넘어가자. 


 - 의석의 문제


그 다음으로는 의석의 문제다.


2004년 당시의 의석 구조는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40여 석에 불과한 구조, 즉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른 당의 연합이 탄핵을 하건 개헌을 하건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그래서 민주당이 탄핵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가능한 의석구조”하에서 진행된 탄핵도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최종적으로 헌재가 기각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국회 의석구조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2016년 의석구조는 탄핵소추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로 짜여져 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의 결과 여소야대라는 결과를 얻어내긴 했지만, 더민주와 국민의당을 합쳐서 과반을 겨우 넘을 뿐, 대통령 탄핵 소추의 필요 의석인 200석까지는 야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을 다 합쳐도 한참 모자른 의석구조다. 


이게 탄핵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주 쉬운 곳에 구멍이 있다. 지금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친박과 비박으로 갈려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친박은 어떻게 해서든 박근혜를 살려서 끌고 갈 수밖에 없는 부담스러운 입장이고, 비박계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기회에 친박의 싹을 도려내고 차기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망이 넘실대는 정황이다. 이건 관계가 없을까? 


즉,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비박계와의 협상이 가능해진다면, 탄핵소추안 통과는 아주 불가능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민주의 의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노무현 대통령을 자신들이 직접 탄핵했던 새천년민주당이라는 선배들의 장엄한 업적을 눈으로 보면서 자랐으면서도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절대 그러한 위대한 업적을 엄두도 못 낼 것이라고 장담하는 걸까? 


어쩌면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지금 민주당에서 “당신들이 탄핵에 동참한다면 이러이러한 조건을 들어주겠소” 라고 협상안을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나 혼자뿐일까? 


하여간 의석수 구조의 차이점에서 오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인 새누리당 비박계의 의지, 이 문제는 탄핵소추를 “어렵게” 만드는 문제이긴 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드는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헌재의 입장이다. 


 - 헌재의 판단


헌재는 어떻게 판단을 내릴까? 탄핵심판도 하나의 재판이다. 피고가 있고 원고가 있다. 원고는 국회 법사위원장이 하게 되고, 피고는 대통령 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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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재가 주관하는 탄핵심판은 일반 사법재판과는 차원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검찰이 주도하는 수사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법에 기초한 형사재판도 아니라는 얘기다. 탄핵심판은 아마도 재판의 형태를 띤 모든 절차 중에 가장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일 것이다. 여기에 검찰이나 특검이 조사한 결과자료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2004년의 헌재는 탄핵을 기각했다. 판결문의 논조는 일부 노무현 대통령의 위법 사실도 존재하나, 그것이 탄핵이 필요한 수준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헌재 재판관들이 노무현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랬을까? 절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정치적인 판단”을 내린 것뿐이다. 


그 정치적인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민주주의적 가치가 기준이어야 하겠지만 일반적인 정치적 판단의 기준은 권력의 향배에 따른 판단이다. 당시 헌재는 향후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 있다고 봤을까?


불과 한 달 이내의 시간 속에서 헌재는 크게 두 가지의 사건을 목격한다. 하나는 광화문 시청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의 물결이다. 전국적으로 수십만이 넘는 인파, 연인원으로 따지면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다. 즉 여론의 상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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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그 촛불이 누군가 동원한 허상이 아니며, 실제의 여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17대 총선의 결과로 보게 되었다. 탄핵당할지도 모르는 대통령이 속한 신생 정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획득하는 것을 실제로 코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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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사 영감님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여기서 노무현을 탄핵이라도 시켜 버리면 무장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고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굳이 뭐 그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상상치 않더라도,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점유하는 순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진영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 이제 노무현 탄핵은 물 건너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게 바로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권력의 향배라는 것이다. 최소한 2004년 4월 당시의 권력은 노무현의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에게 있었다. 


 - 지금의 권력은? 


그렇다면 지금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2004년의 여론권력은 노무현의 탄핵을 반대했다. 지금 2016년의 여론은 어떤가? 박근혜의 지지율은 5%를 찍었다. IMF 당시 김영삼의 기록, 아무도 이 기록은 깨지 못할 것이라던 불후의 기록 6%를 깼다. 또한 전두환조차 꿈도 못 꾼 호남 지지율 0%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이게 여론이다. 


일단 박근혜는 아니라는 것, 이게 여론이다. 


거기에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이제 며칠이 더 지나면 2004년 촛불의 기세와 비교해야 할 정도의 인파가 또 모일 것이다. 


2004년 당시에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던 그 규모의 인파가, 2016년에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똑같은 장소에 모여 똑같은 광경을 연출하게 된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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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마이뉴스>


2004년에는 정치권이 주도한 탄핵을 여론이 반대했다. 그리고 여론이 이겼다. 


2016년에는 정치권이 머뭇거리는 탄핵을 여론이 원하고 있다. 누가 이길까? 


권력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이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는 법이다. (왕좌의 게임, 바리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써 있는 이유가 뭘까? 그게 공염불일까?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수준으로,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표출한다면 정치인들은 그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다. 따르면 살고 어기면 죽는다. 


탄핵의 역풍이라는 것은 없고, 실제로 있는 것은 여론의 역풍이다. 그게 탄핵의 역풍으로 오인되고 있는 이유는 당시 여론이 반대하던 탄핵을 정치권이 주도했기 때문일 뿐이다. 


2016년 오늘 또 역풍이 분다면, 탄핵의 역풍이 아니라, 탄핵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역풍이 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여론이고 그게 권력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통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리 단순하지 않다. 더민주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말이 쉽지,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에 동조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누구와 누구가 만나기만 해도 온갖 구설에 휘말릴 것이 뻔하고 의심을 받고 욕을 먹게 된다. 또 새누리당 비박계는 뭐 착한 사람들인가? 그 인간들이 바로 친이계 아닌가 말이다. 박근혜 피하려다 이명박 끄트머리를 다시 불러들이게 되는 형국,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밟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탄핵은 어려운 일이고, 발의조차 부담스러운데 탄핵소추안 통과는 더 힘들고, 그렇게 기껏 통과시켜 놨더니 박근혜를 아이돌로 생각하는 노인네 재판관들이 탄핵은 원래 기각시키는 게 옳은 건 줄 알고 기각시키면 참으로 허망한 결과라는 것도 안다. 그 때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누가 되었건 간에 탄핵은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다. 최선봉에 선 사람은 “킹 슬레이어”의 칭호를 얻고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 


“그래도 대통령인데 어쩜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대통령을 쫓아내냐, 독한 놈이네.” 라는 소리를 평생 듣고 살아야 된다. 미안한 얘기지만 더민주 당대표 추미애 의원이 여태 그 소리 듣고 살았다. 


이 짓을 누구에게 하라고 등 떠미는 거 진짜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벌써 그걸 하겠다고 나서고들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 원래 정치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흔해 빠진 정치인 말고, 역사에 '정치가'로 기록될 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는, 해봐야 누구에게도 칭찬은 못 받는,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고 누군가 해야 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김대중이 그랬고, 노무현이 그랬다. 


위험하고 아무에게도 이익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성사 가능성도 낮고 자신에게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원하고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해야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바로 저 두 사람이며, 우리 대한민국 근대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두 분의 대통령이었고, 이제 나란히 저 세상으로 떠난 분들이라는 얘기다. 


저 두 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전략적 이해관계 따져가며 박근혜 살려두고 책임총리나 받아서 면피하고 차기 대권 노리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실리적으로 움직였을까? 이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가득 찬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데, 그 퇴진의 대상인 박근혜와 협상을 하려고 했을까? 심지어 박근혜는 말도 잘 못 하는데 말이다. 


두 분이라면 오히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맨 앞에 앉아서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탄핵은 두려운 일이다


맞다. 헌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한 나라의 대통령을 비록 같은 헌법적 절차이지만 탄핵을 함으로써 권좌에서 끌어내린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무섭고 험난한 일이다. 당하는 상대도 결코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그 상대가 국가의 최고 권력을 손에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걸 왜 해야 되는가? 심지어, 탄핵하다가 뭔가 틀어져 잘못되면 차기 정권교체까지 한 칼에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 모험을 도대체 왜 해야 하는 걸까? 


다른 이유 하나도 없다. 


그게 옳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허수아비 대통령이 무당인지 샤먼인지 모른 사람을 데리고 국가의 미래에는 관심도 없이 헛짓거리하면서 놀고 있는데, 그걸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백일하에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그걸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박근혜는 헌법을 어기는 순간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그걸 청와대에서 쫓아내는 것은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고, 그저 헌법에 명시된 업무절차일 뿐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게 대통령이라는 어머무지한 이름을 가진 선출직 공무원이라서 좀 무서운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용기라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고서도 옳기 때문에 행하는 데에 있는 법이다. 


우리 모두에게 용기가 허락되길 빈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