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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2001년 펴낸 <부유한 노예>라는 저서를 통해 모든 노동자의 전반적 지위 강등, 그리고 창조적 지식 노동자인 기크와 슈링크의 시대를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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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투 식스, 정확한 8시간의 노동, 그리고 안정된 임금으로 맥주 한 팩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풋볼을 시청하던 평범한 미국 노동자들의 꽤 오랜 기간 이어져온 평온한 일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민자들이 과거와 같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데 만족하지 않고 공장으로 또 난이도가 크지 않은 기술숙련직으로 진출했다.

 

오래된 서민들의 일자리는 새로운 서민들로 인해 위협받게 되었다.

 

로버트 라이시의 예측은 정확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뒷걸음치지 않았지만 모두 한 단계씩 뒤로 밀려났다. 임금도 고용도.

 

이런 상황은 영국도 다르지 않았다. 영국민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하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하며 위정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릇된 판단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하다. 아프고 슬픈 일이다.

 

많은 주류의 학자들이 거시경제의 숫자놀음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자본과 인간의 미시적 분석에 골몰하던 로버트 라이시는 <부유한 노예>를 출간한 지 10년 후, 이번에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불합리한 인간과 그 인간들을 이해하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된 러시아의 민담 중 하나가 바로 “이웃집의 암소를 죽여주세요.” 이다.

 

가난한 농부가 부자인 이웃집의 암소를 부러워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하느님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나도 암소를 주세요. 라고 말할지 않고 이웃집의 암소를 죽여 달라고 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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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을 단 한 마디로 해석하자면 ‘이웃집의 암소를 죽여 달라는 농부의 분노와 같다.’가 아닐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이웃집 암소 죽이기는 불합리한 선택, 경제적인 효용을 따지지 않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농부를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이 농부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것인가?

 

“하이고, 선생님이 모르셔서 그러는데요. 이웃집 암소를 키우는 부자가 내는 세금이 있지 않습니까? 그 세금으로 선생님한테 복지를 하는 겁니다.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이웃집 암소를 위해 지원을 할 거고 그러면 선생님도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겁니다.”

 

“이웃집 암소를 보고 부러워 할 시간에 노오력을 해야죠. 십만 시간이건 삼십만 시간이건 죽도록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부자가 될 겁니다.”

 

“에라이. 이 썩을 종자야. 너 같이 무식한 놈이 있으니까 사회가 발전을 안 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은 안 되죠. 정치인의 전략적 판단과 순차적 프로세스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여태까지 대한민국에서 나온 대답은 아마 이정도 인 거 같다.

 

그래서 이 사회는 이웃집 암소를 죽이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들어 냈고 헬조선이라는 자조어린 단어로 명명되기 시작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웃집의 암소를 죽이고 싶은 사람들을 단번에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우선 그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대놓고 하는 비난과 비판만이 그들을 등 돌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 용어와 먹물들이 만들어 내는 신조어 또한 그들에겐 욕이나 다름없다.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언어에 가득 찬 현학과 드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언사가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햇볕처럼 자신의 곁에서 고단한 삶의 얘기를 들어주며, 어떨 땐 합리를 내려놓고 함께 욕하고 슬퍼해 주는 이웃이다. 그러다보면 차츰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분노는 녹아내릴 것이고 그들은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그네의 웃옷을 벗기는 내기에서 바람을 이긴 햇볕을 이야기했던 것은 어쩌면 북핵 문제 뿐 아니라 이 사회의 오래된 대립과 축적된 분노를 해결하려던 고뇌 속에서 내 놓은 해답이 아닐까 싶다.

 

지금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과거 이웃집 암소를 죽이고픈 생각에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표를 준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이들은 “누가 이 따위 사기꾼을 뽑았어!”, “팔푼이를 여왕으로 만든 건 대체 누구야?”라는 비난을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대의 민주주의 억눌려 있던 광장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고, 시민이 주도하는 집단지성의 ‘옳음’을 바라보며 기쁘고 흐뭇하지만 아직도 걱정거리는 남아있다.

 

바로 민주당 지도부의 행보와 국민들에게 내 놓은 메시지다.

 

거대 야당으로서 최우선시 해야 할 국정운영의 책임과 신중함, 광장의 정치와 의회의 정치의 다름을 이야기하는 민주당 지도부이다. 이러한 정치적 수사와 더디고 갈팡질팡하는 행보가 만들어낼 참극은 결국 이웃집 암소를 죽이고픈 농부의 수를 늘리는 일이다.

 

초겨울 추위를 마다 않고 광장에 선 시민들에게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정치공학을 설명하고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광장에서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고, 연단에 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어 주는 일이다.

 

마치 따뜻한 햇볕 같이 말이다.




워크홀릭

트위터 : @CEOJeonghoonLee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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