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70년대가 밝았다. 4.19로 열린 1960년대는 짧은 민주주의와 이어진 군홧발, 그리고 작달막하고 다부졌던, 실로 다양한 경력의 군인이자 정치인의 치세 중에 막을 내렸다. 그해의 시작은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함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망의 70년대'를 강조한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뚝뚝하게 '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5백 달러 선을 훨씬 넘어야 하고 수출은 적어도 50억 달러 선을 돌파해야 한다. 경제의 규모나 단위 그리고 평가의 기준은 모두 국제적 수준에서 다뤄져야 하며 우리의 상품들은 국제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여 다른 나라 상품을 압도해야 하며 그중에서도 몇몇 산업부문은 세계 제1위를 자랑할 수 있게 돼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보내는 신년사라기보다는 사단장이 휘하 병력에게 전투력 측정 대회의 목표치를 산정하는 듯한 어투였다. 


874329613_irIc3nGU_B9DAC1A4C8F1C7F5B8EDB1BA.jpg


이외에도 몇 개의 숫자가 등장하고 이런 저런 '기어이 실현해야 할' 일들이 제시되지만 막상 그를 수행해야 할 국민의 삶과 권리에 대한 표현은 인색하거나 전무했다. 딱 한 구절,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한 사람의 노동 대가가 한 가구의 생계를 능히 꾸려나갈 수 있게 하여 서민 생활에 보다 여유와 윤기가 돌게 해야 하겠다."는 문장이 간신히 얼굴을 디밀고 있었을 뿐. 


박정희 대통령이 이 뚝뚝한 신년사를 발표하기 하루 전 1969년 12월 31일 나이 스물세 살을 맞는 동대문 평화 시장의 한 재단사는 이런 다짐을 하고 있었다.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는 결단코 투쟁하련다. 역사는 증명한다." 그는 그로부터 한 달 전 대통령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대통령 각하.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한 동심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시간~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당시 섬유는 한국의 주요 수출품 중의 하나였다. 미국 주재 한국 대사가 미 국무 차관과 차관보를 앞에 두고 "직물 수출은 한국의 사활 문제"이며 목표를 채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읍소할 정도로 '50억 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리고 그 수출액의 달러 한 장 센트 한 닢을 벌기 위해 평화시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1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 15시간씩 햇빛도 보지 못하고 일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를 박탈당한 채.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던 재단사는 그 뒤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노동청을 찾고 언론사 기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동료들을 모아 데모도 하고 경찰에게 호소도 하면서. 그러나 1970년 대한민국은 끝내 그를 외면했다. 


그렇게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법치국가의 수도 한복판에서 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15032281_611203145734471_85963978628223531_n.jpg


'인간의 존엄성'을 기본원리로 삼는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폐병으로 쓰러져가는 열 서넛 시다들의 권리를 제발 살펴 달라고 호소하면서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육신을 스스로 불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전태일이 죽은 며칠 뒤부터 김재준 목사나 기타 한국 기독교의 거인들(조용기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은 그를 기렸다. 문익환 목사는 "전태일이야말로 예수였다"고 선언했는데, 전태일처럼 예수와 닮은 삶을 산 이는 세계 역사를 탈탈 털어도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고로 인해서 자연히 다른 감정에도 잘 동화되며 남자인 내가 불쌍한 광경으로 인해서 코언저리가 시큰할 때가 많으니까 말입니다."

(전태일 평전 중)


라고 말하는 스무살의 노동자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란 말, 이 말에 율법이고 예언자고 하는 군상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라고 설교하던 서른 셋의 목수가, 


차비를 털어 나이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주고 청계천에서 수유리까지 휘파람 불고 걸어가던 뭉툭하고 작은 눈의 청년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한테 네가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중요해. 그게 곧 나한테 대하는 거니까"라고 말하던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음에도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지지 않는 잔이라면 아버지 뜻대로 하시오"라고 결연하게 말하던 마리아의 아들과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라고 주먹을 부르쥐었던 이소선의 아들.


이 둘 간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death-1655381_960_720.jpg


김진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건' 속에서 예수는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곧 사건은 부활 신앙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시간의 장벽을 뚫고 공간의 담장을 넘어서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예수 부활의 자리가 '교회'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부활 신앙의 내용이 교리가 아니라 역사적 체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반도 남단의 사람들은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나버린 예수 그분을 '전태일 사건'을 통해서 읽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 살이니 받아먹고 기념하라 이것은 내 피이니 마시고 나를 잊지 마라"고 한 유태인 청년처럼 2000여년 뒤의 한국 청년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제단의 제물이 됐다. 로마 제국이 건재하던 시기의 변방 속주 청년의 십자가를 기리는 붉은 색 네온은 사방에 그득하고, 일요일만 되면 그 이름을 부르고 "나와 같은 죄인 살리기 위해 죽으신" 그 은혜에 감읍하는 목청이 성층권까지 울리는 나라에 살면서, 그와 거의 동일한 삶을 살았던 동양인 예수는 이렇게 외쳤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의 목소리는 깊이 잠들어 있던 사람들을 깨웠다.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며 "대학생 친구 하나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되뇌던 청년이 몸을 불사른 후, 뒤늦게나마 그 친구가 되겠다는 대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전태일이 입술 깨물며 호소하던 하느님을 함께 섬기던 이들이 전태일의 죽음 앞에서 스스로의 무심과 게으름의 죄를 고백했다. 1970년 11월 22일 새문안교회 청년들은 예배 이후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대한 '참회와 호소의 금식기도회'를 연다. "분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현실을 외면하고, 교회여! 무엇을 하려는가. 회개하라!"


전태일의 죽음은 예수의 부활처럼 사람들을 깨웠다. 한때 외면하고 모른척하고 혹은 정말 몰랐던 사람들이 불에 덴 듯이 깨어 일어나 '땅끝까지' 내달리기 시작했다. '대망의 70년대'가 열렸던 1970년은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해이며 포항제철 공사가 시작된 해였으며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에 내려앉은 해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이 해는 전태일이라는 뭉툭한 이름과 그에 걸맞는 인상을 지닌, 그 이웃을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 주는 큰 사랑으로 불타오른 한 노동자의 마지막 해였다. 그러나 그의 슬픈 종말은 창대한 역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142134485.jpg


끝으로 그를 기리며 문익환 목사가 쓴 시를 소개하련다.



한국의 하늘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이름은 전태일이다 


한국의 산악들아 강들아 들판들아 마을들아 

한국의 소나무야 자작나무야 칙덩굴아 머루야 다래야 

한국의 뻐꾸기야 까마귀야 비둘기야 까치야 참새야 

한국의 다람쥐야 토끼야 노루야 호랑이야 곰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백두에서 한라에서 불어오다가 

휴전선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뒹구는 

마파람아 높파람아 

동해에서 서해에서 마주 불어오다가 

태백산 줄기에서 만나 목놓아 우는 

하늬바람아 샛바람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뭐 다르겠느냐 

우리의 이름도 전태일이다 

깊은 땅 속에서 슬픔처럼 솟아오르는 

물방울들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들어야 알겠느냐 

한국 땅에서 솟아나는 물방울치고 

전태일 아닌 것이 있겠느냐 


가을만 되면 말라 

아궁이에도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봄만 되면 희망처럼 눈물겨웁게 돋아나는 

이 땅의 풀이파리들아 

너희의 이름도 전태일이더냐 

그야 물으나마나 전태일이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미싱사들 시다들의 숨소리들아 

너희의 이름이야 물론 전태일일 테지 

여부가 있나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







산하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