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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근혜와 아이들


지난 대선, 민주당에서 일하는 걸로 추정되는 분들이 ‘박근혜는 수첩 공주에 독재자의 딸이다. 머리도 나빠서 상대가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속으로 ‘그러면 선거 한 번이라도 이겨보지’라고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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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2002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가 천막당사를 이끈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졌다(무상급식으로 싸웠던 2010년 선거는 당시 친이가 박근혜를 제치고 치른 선거였다). 최순실의 영빨이든 기획력이든 무엇이든 간에, 박근혜에겐 단순히 아버지의 후광이라 치부할 수 없는 능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2006 지자체 선거에서 남긴 “대전은요?”, 2007년 개헌 논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처럼 국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레토릭으로 판을 정리하는 능력, 대단했다. 모든 정치인이 가지고 싶은 능력이지만 쉬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다만 박근혜가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능력이 실제로 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 그 정도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던 거라는 걸 안 지금은 허탈하지만.  


우울하다. 일단 상황을 보자. 대통령이 국회에게 총리 추천권을 넘겼다. 다시 한 번 야당과 반대세력에게 빅엿을 먹이는 짓이었다.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갔을 때 야당이나 국회의장이 거부하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하는데’ 라며 야당을 비판한다. ‘대통령이 저 정도하면 되었다’는 평가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근혜는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20%만 만들 수 있다면 현재 사퇴 요구, 혹은 탄핵에 대한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국회에 방문해 ‘총리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고 한 정치적 행위는 향후 정국에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어차피 국회에서는 총리를 결정 못한다. 정치적 합의를 통해 사람을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인가? 특히 그 자리가 향후 정권을 결정할 만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박근혜(혹은 박근혜를 조종하는 총합이라고 치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국회에 총리 결정권을 넘기면서도 김병준 사퇴를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총리 결정과 관련해 국회가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임계점이 온다면, 박근혜는 ‘무능한 국회,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수권 능력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이 먹힌다면 박근혜 입장에서 지금 당장은 위기지만, 다음 대선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부를 만들거나 지더라도 근소한 차이로 질 수 있다. 임기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자신의 사법처리를 고민하는 그녀에겐 사활을 걸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특별법에 의한 특별검사(별도 특검) 도입, 국정조사 수용, 총리후보 지명 철회 및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을 영수회담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박근혜는 다 받아들이려고 한다. 더민주가 뭐라고 할 지 궁금해졌다. 그랬더니 2선 후퇴란다.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모두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박근혜의 기존 지지층 밑바닥에선 ‘야당이 너무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시작이 박근혜의 사퇴였다면 협상 여지가 있는데, 야당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끌려 다니고 있다.  



2. 김병준 그리고 책임 총리


만약 야당이 이를 거부하고 박근혜는 김병준으로 총리를 결정한다면?


총리로 결정되고 난 뒤 김병준은 ‘국정교과서’와 ‘사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병준을 통한 박근혜 측의 노림수는 이 부분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지금 박근혜 정부에 대한 퇴진 전선이 ‘보수’와 ‘진보’의 논쟁으로 바뀔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즉, 김병준이 책임 총리가 되어서 이 두 부분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면(김병준 총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 부분을 건드린다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박근혜 측이 그를 총리로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다. (설마 예뻐서 했겠냐?)


야당은 총리 추천을 거부하고 12일 집회에 참석한다는 뜻을 밝혔다. 총리와 연계된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도 짜증나지만, 일단 지금 총리가 누가 되든 우리에게 약속해야 하는 부분은 명확하다.


첫째, 거국중립내각은 한시적이다. 6개월 후 선거를 약속해야 한다. 총리 스스로 6개월 시한을 약속하고 박근혜와 함께 퇴진하겠다는 것을 전제한다.


둘째, 그 시간 동안 성역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어떻게 수사할 것인지 방안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공정한 선거 관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6개월 동안 거국중립 내각은 다음 대선을 위한 과도기적 성격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정권 이양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못 박는다.


여의도 노숙자인 내가 보기에 민주당은 목표가 불명확해 보인다. 어떻게 이 시국을 이끌어 갈지 혹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 지 목표가 없어 보인다. 이 판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니는 꼬라지다.



3. 야권의 대선 후보들


대선 후보들에게도 쓴 소리 좀 하겠다. 일단 문재인 전 대표. 훌륭한 분 같다. 허나 딱 거기까지여서는 곤란하다. 문재인 대표는 내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한 분이기는 하지만, 문재인 대표가 정치적으로 보여준 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김대중, 노무현, 하다못해 이명박 조차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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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하기 전,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뭘 하려고 하지? 라는 의문,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문재인 후보 역시 잘 모르겠다. 안철수도 안희정도 박원순도, 이들이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이 권력을 이용할 것이고, 임기 중에 무엇을 해내고 끝낼 것인지 국민들에겐 불명확해 보인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선거에서 이기려면, 이렇게는 안 된다. 국민들이 권력을 위임하면 이건 해낼 것이고,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이걸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박근혜가 싫어서 선택하는 것이라면 다시 한 번 국민은 불행해진다. 상대방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보다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지금의 야권에서 느껴지는 많은 안타까움은 그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흔한 레토릭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되어서 안 되는 이유는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과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 믿고?


그러기에 국민은 지난 10년 동안 ‘나라도 아닌 곳’에 살아왔다. 우리 국민은 ‘공화국’을 누릴 충분한 권리가 있는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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