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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회사에서, 친척 모임에서, 동창회에서 그 밖에 여러 장소에서 꼰대를 만난다. 유쾌하진 않지만, 앞으로도 꼰대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불편한 경험을 어떻게 조금 덜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 꼰대가 왜 꼰대질을 하는지 이해하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그렇다. 이유라도 알면 좀 덜 불쾌하지 않을까 하는 취지에서, 꼰대이즘의 심리적 원인을 분석해보자.

 

먼저 꼰대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꼰대

[명사]

1.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



사전적 의미로 꼰대는 단지 '늙었음'을 의미한다. 꼰대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 '내가 왕년에', '몇살이야'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단어가 만들어질 당시와 달리, 꼰대에 새로운 사회적인 의미가 덧씌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꼰대.jpg



꼰대가 21세기 한국 사회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4백 년이나 전인 기원전 425년, 고대의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명이 막 태동하기 시작한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에서 기록된 점토판에도 “제발 철 좀 들어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문자가 없었던 시기의 기록은 발견될 수가 없지만, 아마 그보다 옛날에도 어린 것들을 개탄하는 같은 취지의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를 못마땅해하는 현상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자기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 잔소리 하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모양이다.

 

그러나 잔소리하는 늙은이가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적 경멸의 대상은 아니었다. 꼰대라는 단어도 90년대 이전까지는 젊은 세대가 아버지나 선생님 등의 기성세대를 불량스럽게 지칭하는 은어에 가까웠으며, 사회적으로 널리 쓰이는 보편적인 단어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잔소리하는 늙은이의 존재가 아니라, 잔소리하는 늙은이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꼰대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심각한 경멸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다시 말해, 꼰대는 왜 이렇게 경멸의 대상이 되었을까?



<체크리스트: 당신은 꼰대입니까?>


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

2. 대체로 명령문으로 말한다.

3.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 불평불만만 하는 건 사실이다.

4. “○○란 ○○○인 거야” 식의 진리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5. 버스나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비켜라”고 말하고픈 충동이 인다.

6. 후배의 장점이나 업적을 보면 자동반사적으로 그의 단점과 약점을 찾게 된다.

7. “내가 너만 했을 때” 얘기를 자주한다.

8.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9.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간부, 유명 연예인 등과의 개인적 인연을 자꾸 얘기하게 된다.

10. 커피나 담배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거나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굽지 않아 기어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후배가 불쾌하다.

11. 낯선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에게는 친히 제대로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12.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놓고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13. 옷차림이나 인사예절도 근무와 연관된 것이므로 지적할 수 있다.

14. 내가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15. 연애사와 자녀계획 같은 사생활의 영역도 인생선배로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16.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17.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18. 미주알고주알 스타일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확인한다.

19. 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20. 아이들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실제로 뭘 배워본 적은 없다.


*출처: 창의리더십센터 보고서 ‘How to Be the Boss without Being the B-word(Bossy)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꼰대라 불리는 이들의 심리적 특성은 무엇인지 정의해보자. 첫째로 꼰대는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둘째로 꼰대는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는다. 셋째로 꼰대는 타인의 삶에 간섭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은 다음 세대에게 가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가치관은 도덕적으로 옳으므로 세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으며, 이런 가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자신은 권위를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믿는 것이 꼰대이즘의 기본 작동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꼰대가 자유롭게 꼰대질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러나 꼰대를 재수 없게 여기는 꼰대질의 피해자는 동의하지 않는) 꼰대이즘의 숨겨진 핵심 전제는 이것이다.



내 경험은 일반적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로 이 전제가 깨졌기 때문에, 꼰대는 단지 잔소리하는 늙은이를 초월해서 사회적인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전제가 깨진 이유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왜 꼰대질의 숨겨진 전제를 깨트리는지 이해하기 위해, 기원전 425년이나 기원전 1700년보다도 훨씬 전인 17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생활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호모에렉투스.jpg

 

 

호모 에렉투스는 무리를 지어 생활했으며, 뗀석기를 사용하여 매머드 등의 짐승을 사냥하였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호모 에렉투스 부족의 삶에 있어서, 앞세대나 뒷세대나 삶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기후변화라든지, 부족의 주요한 식량이 되는 동물의 대이동과 같은 자연적인 요인이 아니라면 앞세대나 뒷세대의 삶의 방식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요소 자체가 없었다.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세대 간 삶의 변화, 즉 인간의 기술 발달에 의한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돌과 돌을 부딪쳐서 돌칼의 날을 세운 뗀석기의 형태는 100만 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문자(written language)는 없었으며, 언어(verbal language)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뗀석기.jpg

 


기술이 발전하려면 선조들이 했던 시행착오의 기록이 남아있어야 후대가 이를 보고 창의력을 발현시킬 수가 있는데, 기록할 문자가 없었으니 세대 간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만한 기술의 변화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매머드 사냥을 할 때 치명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적게 걷고도 먹을만한 과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몸으로 때워서 채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 앞세대가 미리 해왔던 삽질의 경험을 뒷세대가 듣는 것은 생존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10대, 20대, 30대 때 경험하게 되는 삶의 양상이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앞세대는 뒷세대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었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느릴 때는 앞세대와 뒷세대의 경험이 동질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공동체에 가치 있는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고, 이에 따라 존경과 권위를 누릴 수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회공동체를 위해 가치 있는 식견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존경과 권위를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앞세대와 뒷세대의 경험이 동질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자가 발명되고 난 이후인 기원전 1700년만 되어도 꼰대이즘의 원형(“제발 철 좀 들어라”라는 점토판의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문자는 기록을 낳고, 기록은 필연적으로 기술과 사상의 발전을 낳기 때문에, (현대 사회만큼은 아니더라도)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벌써 앞세대와 뒷세대 간의 경험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의 크기는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다른 말로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점점 커진다.


이 차이가 커지면,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사회공동체에 가치 있는 지식을 전달해 줄 수가 없다. 꼰대가 경험했던 10대의 삶과 현재의 10대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앞세대의 경험은 더 이상 뒷세대에게 가치 있는 지식이 아니다. 이 결과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존경과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다. 존경과 권위을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 시점에서 가치 있는 지식을 어떻게든 획득해서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럼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꼰대의 마음속엔 뭐가 있을까?



내 경험은 일반적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무의식 수준에서는 꼰대이즘의 숨겨진 전제가 깨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의식 수준에서는 이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전제가 깨졌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 현재 시점에 가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위가 없는 사람일수록, 현재 시점에 가치 있는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수록 꼰대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꼰대의 꼰대질은 현재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설득이다. 내가 옳다고 나조차도 믿지 않으면, 스스로 온전한 퇴물임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집착’과 ‘권위에 대한 집착’은 꼰대질의 두 가지 동력원으로 작용한다

.

 

꼰대질의 두가지 동력원.jpg

 


다시 말해, 꼰대질은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대로 다른 사람도 인생을 살아주길 바라는, 이를 통해 현재엔 없고 과거에만 존재했던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투쟁이다. 꼰대는 꼰대질을 통해 사회공동체로부터 제공되는 존중과 권위를 더욱 상실하게 되지만, 의식 수준에서는 이를 부정하더라도 무의식 수준에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꼰대질을 하면 할수록 꼰대질을 더 할 수밖에 없는 꼰대이즘의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다.


 

꼰대이즘의 무한루프.jpg

 


간단하게 말해, 꼰대가 꼰대질을 하는 것은 외로워서 그러는 거다. 그러니까 꼰대질을 당해 열 받더라도 꼰대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꼰대이즘의 무한루프에 빠져 극단적인 외로움에 시달리는 꼰대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어버이연합을 찾아갈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꼰대질하지 말라고 꼰대랑 싸우지도 마시라.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것도 꼰대질이다. ‘꼰대질은 나쁘다’는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꼰대로 살고자 하는 꼰대의 삶에 대한 간섭’이기 때문이다. 무한루프의 패달을 가열차게 밝아 더 악성꼰대로 만들지 마시고, 꼰대를 꼰대로서 살게 해주시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꼰대가 아닌지 점검해보자. 다시 말해, 나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어서, 이 가치관에 기반해서 타인의 삶에 간섭하려고 시도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 이런 유형의 꼰대질은 꼭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떠들어봐야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춥고 귀찮아서 촛불집회 안 간다.”는 친구에게 시민의식 운운하면서 갈구는 것이 꼰대질이 아닌지 생각해보자. 이 경우 ‘귀찮음은 시민의식을 포기할 이유가 못 된다’는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귀차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친구의 삶에 대한 간섭’이 된다. 그러니 정치적 의견이 다른 친구를 너무 갈구지 마시라. 자꾸 갈굼당하면 일베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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