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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검사, 나쁜 검사

 

거대 음모나 극악 범죄에 맞서 싸우는 수사물 캐릭터들에게는 명분이 있다. 그들의 가족은 위기에 처했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갚아야 할 심리적 부채가 존재한다. 최근 종영한 OCN 드라마 <듀얼>이나 영화 <테이큰>처럼 납치당한 딸을 인질로 세우면 복잡한 고민 없이 주인공을 싸움터로 내보낼 수 있다. 볼모로는 자력으로 구출할 가능성이 적은 딸이 아들보다 적합하다. 어리고, 착하고, 병에 걸린 딸이면 더 좋다. 지루하다. 억지로 증폭시킨 보호자의 열망과 이를 관전하는 시청자 사이에 온도 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혹은, 황정민이나 송강호의 ‘선한 얼굴’이 표현하는 불같은 집념이나 타고난 도덕감에 기대는 방법도 있다. 도대체 이 세계에 존재하기나 할까 싶은 정의의 화신들이 불의를 때려잡는다. 소시민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유토피아적 결말은 시청자에게 쾌감을 제공하지만, 역시나 숱하게 반복해 온 패턴이다. 모로 가도 감동과 눈물과 사이다 범벅이 되는 대결극에서 주로 절대 선을 담당하는 ‘민중의 지팡이’들은 경찰(형사)나 (국선)변호사다. 그 대척점에는 흔히 검사들이 소환된다. 무고한 시민을 기소하는 은폐와 조작의 아이콘, 접대 자리에 불려 다니며 로비와 얽히는 권력형 인물들. <부당거래>의 류승범은 이 ‘속물 검사’ 캐릭터가 구현하는 비열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비밀의 숲>은 ‘악당 전문 직종’이었던 검사들의 홈그라운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돈이 사람을 먹고 돈은 권력에 먹히는 먹이사슬 속에서 황시목이 고고함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은 착한 성정이 아닌 ‘이상 성격’에서 출발한다. “신뢰와 불신, 공감과 경멸, 죄의식 등 인간적인 면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뇌섬엽을 제거한 후유증으로 감정을 잃어버린 황시목에게 상황을 판단하는 준거는 ‘쾌’나 ‘불쾌’가 아닌 오로지 법이다. 인성보다 지성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에 나쁘지 않은 핑계다. <내부자들>에서도 검사 ‘우장훈’ 역할을 맡은 바 있으나 이병헌의 존재감에 뒤처지고 말았던 조승우는 황시목을 연기하면서 비로소 잘 맞는 법복을 입는다. 선으로도 악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중립적 마스크, 설명조의 장광설을 펼치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대사전달력은 황시목을 그럴싸하게 현실 세계에 빚어 놓는다. 한국 드라마 특유의 감정 과잉을 덜어내고 나니 인물 대신 사건이 널뛰기한다. 캐릭터들의 두뇌 싸움은 시청자보다 한 발자국 앞서 나가고, 카메라는 작은 실마리만 엿보인 후 꽁무니를 뺀다. 수사현장과 모의현장을 오가는 적절한 교차편집이 긴장과 리듬감을 부여한다. 시청자는 독단적으로 수사를 전개하는 황시목의 의중을 읽어내는 동시에 주어진 정보를 저글링 해 범인을 추측하는 이중의 추리 게임 플레이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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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적은 누구인가

 

얽히고설킨 사람들 사이에서 ‘착한 검사’와 ‘나쁜 검사’ 프레임은 효력을 상실한다. 부장검사 이창준은 장인이자 한조 그룹 대표인 이윤범에게 저당 잡힌 목숨이고, 서동재는 출신 성분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줄타기로 생존을 도모한다. 막 수습 딱지를 뗀 검사 영은수는 가문의 명예 회복이라는 야망을 품고 검찰에 입성했고, 부장검사 강원철은 현실 타협 가능한 정의를 추구하며, 윤세원 과장의 반듯한 겉모습 뒤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유스타치아의 저울 같은 황시목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히는 과거에 발목을 잡히고, 특히 영은수를 대하는 유난히 위악적인 태도에서는 전형화된 ‘나쁜 남자’의 냄새가 난다. 미성년자 성 접대에 취한 경찰서장과 억지 자백을 위해 시민을 폭행하는 경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올곧은 주관을 지키는 인물은 한여진(배두나) 경위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황시목을 견제하는 임무, 황시목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는 권한은 한여진에게만 주어진다. “이마에 착한 사람, 무서운 사람 써붙여 놨으면 좋겠어요”라는 장 형사에게 “그럼 여기도 애매한 사람 꽤 많을걸요”라고 응수하던 한여진의 말처럼, 캐릭터 대부분은 선악으로 묶어서 범주화하기 어려운 모호함을 갖고 있다.

 

황시목과 이창준과의 대결 구도로 시작된 <비밀의 숲>의 수사 과정은 전제조건이 ‘내부의 적’으로 확장되면서 갈팡질팡한다. 용의자는 강진섭에서 이창준으로, 이창준에서 영은수로, 영은수에서 서동재로, 박무성의 아들 박경완으로, 이창준의 아내 이연재로, 경찰서장 김남진으로, 이윤범과 그 오른팔 우 실장으로, 윤세원으로 옮겨 다닌다. 모든 인물이 혐의와 혐의에서 면제될 이유를 동시에 갖고 추리를 교란시킨다. 이창준의 배후에는 비리가 있지만 범인은 이창준의 숨통을 조여오고, 이창준 일가에 눈먼 복수심을 품은 영은수에게는 연쇄살인의 동기가 부족하다. 서동재는 지은 죄가 크지만 사람을 죽이기엔 담이 작고, 윤세원에게는 아들의 사망 사고로 인한 사적 처벌의 가능성이 희미하게 주어진다. 등장인물들은 적군과 아군을 오가며 이합집산한다. 이창준은 황시목을 권력으로 포섭하려 하고, 영은수는 황시목의 시야 안팎에서 집요하게 사건을 캐며 힌트를 제공한다. 이창준의 끄나풀이었던 서동재는 이중 스파이가 되어 얼떨결에 황시목의 협력자로, 황시목의 이상성격을 의심하던 강원철은 안전한 조력자로 변화한다. 가장 수상한 주변인들을 특검팀에 몰아넣는 대담한 의사결정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 황시목의 비인간성 덕분에 가능하다.

 

이처럼 등장인물의 이해관계를 배배 꼬아 경계를 흐려놓는 트릭이 단순히 ‘방심한 순간 배신당한다’는 반전 효과로 기능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계하던 타인에게서 의외의 선한 면모를 발견할 때 느끼는 희망, 사건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하면서 믿었던 이에게 느끼는 배신감. 사회에서, 특히 조직 생활에서 경험하는 일상적인 감정들이 <비밀의 숲> 속 인물들의 입체적인 깊이 속에 녹아내린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충돌하는 욕망들에 몸을 맡기다 보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불의에 부역하기도 하고, 의도했던바 이상으로 의인이 되기도 하는 삶의 가변적 속성으로 인해 우리는 서동재도, 영은수도, 윤세원도 될 수 있다. 이 혼돈 속에서 황시목의 기계적 정의감과 한여진의 인간적 윤리 감각은 중심을 지키며 상호보완하지만, 환상의 콤비를 만나 가까스로 이뤄낸 대의조차 군데군데 이 빠진 승리로 그려진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시험과 수난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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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 당신이 볼 수 있을 가장 피씨한 드라마

 

경・검찰이라는 남초 조직이 주 무대인 관계로 남자 냄새나는 극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간의 K-드라마가 여성 인물이나 남녀 관계를 다뤄 온 관행들을 낯설지 않게 고쳐 쓰고 있다는 점에서 <비밀의 숲>에는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 있다. 유능하고 독립적인 한여진이나 실질적 가장이자 야심가인 영은수 캐릭터뿐만 아니라,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억압과 폭력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은수는 박무성과 말다툼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인간말종 주제에 말끝마다 ‘여자 검사’라며 비웃었다”며 울분을 토하고, 룸살롱 마담은 취조실에서 자신의 가슴을 엿보는 김수찬 경위에게 불쾌함을 표출한다. 2014년경 해외 K-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이슈가 된 적 있는 남자 연기자의 여성 연기자 손목 잡기(Wrist Grab)은 비로소 낭만이나 박력이 아닌 폭력으로 묘사된다(영은수의 손목을 일방적으로 잡아끌고 가는 서동재를 발견한 황시목은 서동재를 제지하며 “이것도 폭력”이라고 단언한다). 한강 다리 위에서 서동재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과 멸시를 당하는 한여진의 얼굴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불안하게 연출된다.

 

이 같은 고쳐쓰기의 백미는 한여진과 이연재의 갈등에서 빛을 발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 여성상을 준수하는 이연재와 그 반대편에 놓인 한여진의 설전은 얼핏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처럼 보인다. 캣파이트에 흥미를 보이려는 시청자에게 선제공격을 날리듯 한여진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이연재의 발언을 가차 없이 비웃는다. 그러나 이 장면을 한낱 대리만족으로 소비하기엔 대화 분위기가 너무도 살벌하고 불편하다. 좋게좋게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여진에게 꽂히는 은근한 비난의 시선은 여성들의 현실을 닮았다. ‘프로불편러’들이 불편한 프로불편-불편러들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타협적 젠더 감수성은, 안타깝게도 마지막화에서 ‘레드 립스틱을 바르고 여자로 거듭난’ 한여진을 내세우면서 엉뚱한 수렁으로 미끄러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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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아쉬운 마무리

 

첫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황시목이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수사 기한을 마무리하기까지 약 3달의 시간을 촘촘히 엮어내느라 <비밀의 숲>에는 늘어질 겨를이 없다. 속도감 있게 유지되던 긴장이 무너지는 기점은 마찬가지로 마지막 에피소드다. 모든 내막이 밝혀지고 갈등이 해소되면서 작가는 의무적인 태도로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매듭지어준다. 새로운 시작, 희망, 회개, 화해 등의 키워드로 요약될 만한 대 통합적 대단원은 그동안 심어놓은 클리셰 회피 장치들이 무색할 만큼 구태의연하다. 갑작스럽게 다음 세대에 교훈을 주는 ‘아버지’로 기능하게 된 이창준의 상징화는 특히 작위적이다. 모든 범죄형/부패형 인물이 나름의 단죄를 받은 가운데 검사직에 복귀한 서동재의 수혜, 자타공인 ‘서동재 처리반’이 된 황시목과 ‘정신 못 차린 밉상’ 서동재 간에 형성되는 브라더십은 모두 아버지의 유언에 빚을 지고 있다. 이창준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남긴 말씀을 성실하게 설명하고, 해석하고, 전파하고, 플래시백으로 회상까지 하면서 마지막 에피소드의 한 시간을 게으르게 흘려보낸다.

 

다소 실망스러운 마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숲>은 국내 수사 드라마의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할 만큼 잘 만든 작품이다. 한여진과 황시목의 플러팅은 시작되지도 않았고(이 담백한 관계는 물론 장점이기도 하다!), 이제 막 한 사건을 해결했을 뿐인데 한 시리즈가 속절없이 끝나버렸다. <비밀의 숲>에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 보인다. 각 역할의 캐릭터 성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김정본처럼 미심쩍은 인물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시목을 파멸시키겠다’던 이연재는 한조 그룹 대표이사직을 승계함으로써 새로운 충돌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마치 후속 시리즈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이 열어놓은 설정들은 <비밀의 숲>에 선뜻 안녕을 고할 수가 없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을 보고도 자연스럽게 시즌제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한 일 년쯤 뒤면 황시목과 한여진을 다시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기를 바란다.






탱알

트위터: @taeng_al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