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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기업에서 주주와 경영, 그리고 노동이 분리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니까, 자신의 몫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 지지고 볶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럼, 여기에 대안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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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직관접인 답은, 주주=경영자=노동자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기업에 대해 동일한 소유권을 갖고, 투표를 통해 경영진을 직접 선출하는 기업. 이렇게 되면, 배당을 늘리자거나 임금을 늘리자고 서로 싸울 일이 없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일부 생산자 협동조합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가긴 한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 협동조합이란 게, 거대해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고 유의미한 경쟁을 할 수 있느냐이다.


일단, 그런 사례는 있다.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국가 몇 곳에서는 협동조합이 상당히 큰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경제구조가 다른 우리가 공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른다. 좀 더 흥미로운 사례는 선진국인 스페인에서 찾을 수 있다. 바스크 지방에 위치한 몬드라곤이라는 기업이다. 몬드라곤은 스페인 내전 직후 하나의 작은 협동조합으로 시작, 오늘날엔 스페인 재계 10위에 해당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한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도 했지만 요즘 많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다루도록 하겠다). 매출은 120억 유로를 넘고, 자산 역시 250억 유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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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의 성공사례에서 규모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 협동조합 내에서 생산에 필요한 모든 활동이 자체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몬드라곤은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으로, 가전제품부터 NASA에 정밀 부품을 납품할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제품생산에 필요한 기술은? 협동조합 내 대학과 연구소가 있어, 이곳에서 조합원들의 개발이 이뤄진다.


이 모든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자본금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이뤄진다. 모든 조합원은 동일한 지분을 갖고, 여기서 나온 수익금에 대한 배당을 받는다(정확히는 은행에 넣어둔 출자금이 불어난다). 그럼, 이 조합원들은 어디서 출자금을 마련하나? 몬드라곤 내에 자체 은행이 있어, 이곳에서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출자금을 빌려준다. 또한, 몬드라곤 그룹 내 협동조합들에게 필요한 대출 또한 이곳에서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제품의 판매 역시, 몬드라곤 그룹에 속한 유통업체를 통해 이뤄진다. 즉, 몬드라곤그룹 아래 교육–금융–생산–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활동이 조합 내에서 이뤄진다. 협동조합이 하나의 완전한 경제 생태계를 이룬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를 갖고 있음에도, 몬드라곤은 비교적 매우 민주적이고, 노동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모든 노동자가 동일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로 경영자 선출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당연히 구조조정이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조합원들의 동의를 받아야하므로), 조합이 실패해도, 조합원들은 몬드라곤그룹 내 대학교/기술학교에서 재교육을 받은 뒤, 조합 내 다른 기업으로 재배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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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격차 역시 현저히 낮은데, 내규에 따르면 조합 내 최고 연봉은 최저 연봉의 9배를 초과할 수 없다(이것도 최근 많이 격차가 많이 벌어져서 그정도이다. 이 비율은 한동안 3대 1을 유지해 왔다). 즉, 말단 신입이 한 달에 백 만원을 받는다면, 경영자는 규정상 한 달에 9백 만원 이상을 받을 수가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최대치가 그렇다는 거고, 보통 조합의 경영자들은 최저 연봉의 평균 5배 정도만을 수령한다. 이렇다 보니 경영자의 임금은 산업평균에 비해 낮은 반면, 일반 조합원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졸라 쌈박하지 않은가?


이쯤에서 선을 한 번 긋고 가겠다. 사실 몬드라곤이라는 기업은 1980년대 많은 경제학과 경영학교수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농담처럼, 미국에서 좌파성향의 교수 붙잡고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느냐 물어보면 스웨덴을 가르키고,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느냐를 물어보면 가르키는게 몬드라곤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학계의 기대와는 달리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모델은 스페인 밖에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다. 그 존재 자체가 매우 독특한 기업이다.


또, 중국의 제조업이 급부상하기 시작하면서 몬드라곤의 가격경쟁력은 많이 약화된 상태이다. 특히, 전통적 기반이었던 제조업분야에서 경쟁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다. 자유무역과 중국과의 경쟁속에서 아직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냉정히 말해, 몬드라곤이라는 협동조합 모델을,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보편적인 대안으로 보기엔 문제가 많다. 모든 국가가 스웨덴이 될 수 없듯이, 모든 기업이 몬드라곤처럼 굴러갈 수 없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이렇게 큰 규모로 키우기도 어려울 뿐더러, 얘덜도 요즘 많이 힘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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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몬드라곤은 연구해 볼 가치가 많다고 생각한다. 일단 지금도 몬드라곤은 일반 대기업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고(약 8만명 정도의 노동자가 속해 있다. 매출이 20배 가량 높은 삼성전자 총 근로자수가 10만 명이 안 된다), 불황기에도 해고보다는 재교육을 통해 인력을 재배치해 왔다.


또한, 고속 성장기에 쌓은 막대한 이익금을 배당으로 조합원끼리 나누기보다, 신규 협동조합에 대한 창업지원과 사회 환원(교육사업 등) 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더 많은 일자리와 사회발전에 기여해 왔다.


마지막으로, 작은 협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이정도로 큰 규모의 경제적인 성장을 거둔 사례가 없다. 지금까지의 성공만으로도, 충분히 배울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또 모르지 않는가. 최근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면, 정말 그럴듯한 대안이 될지.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몬드라곤이 어떻게 세워졌고, 어떤 구조로 운영되는지를 파보겠다.





지난 기사


1. 우리는 비민주적인 사회에 살고있다

2. 왜 우리는 독재를 선택하는가

3. 기업은 불완전하게 이익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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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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