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억하는 73년생 모임'이라는 모임에 가입해 있음을 밝히면, 사람들은 대개 이런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73...? 불륜클럽이냐?"
솔직히 말하건데,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동갑 = 불륜' 이라는 난해한 공식이 내 머리속에도 있었음을 미리 고백한다. 몇해 전, 호기심에 가입한 한 동갑내기 모임에서 "단체로 발정났냐" 라는 한마디로 어그로를 먹고 탈퇴한 경험이 있으므로.
그때 생전 처음, 수십명이 서로에게 던져대는 낚시줄을 시각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생 '매너' 따위는 밥에 말아 먹은 듯 굴던 사람들도,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성회원을 두고 '내가 집에 바래다 줘야 한다'라며 서로 멱살을 잡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동갑이라는 거, 사실 위험하긴 하다. 격의도 없고, 어색함도 없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 남편이 동창모임에 가입했어요 ㅠㅠ' 라는 게시글과 뒤이어 매달리는 '증거를 모으세요' 따위의 댓글은 수도 없이 보았고, 실제로 별 생각없이 가입한 밴드에서 낯모르는 동창이 삼종기도 올리듯 하루 세번 보내는 쪽지에 넌더리를 치며 탈퇴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핑계로 한번 엮여보려는거 아니냐'라는 시선이 사실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이왕 엮이려면 굳이 세월호일 필요는 없었다. 갖가지 동창 모임이며 동갑 모임이 창궐하는 마당에 웬 '세월호'인가. 하지만 지난 6개월동안 서로 스스럼 없이 지내며 생긴 몇가지 에피소드를 전하려고 한다.
그래, 이런 이야기는 사실 불편하다. 그것도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우리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이야기를 먼저 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솔직해지자. 우리가 뭘 했건, 어떤 길을 걸었건 "됐고, 불륜은??" 이라고 묻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런 시선들을 일단 처리(?)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확실하게 처리해주마
제일 처음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은 '하나반'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친구이다. 천성이 밝은 이 친구 역시 '최초 소환된 인물'이다. 하나반은 74년생이고, 우리 모임의 가입연령을 72,73,74생으로 확대하게 만든 인물이다. 다정 다감하고, 수다를 좋아하며, 살뜰하게 친구들을 챙기는 성격이기도 하다.
가끔 가로나가 건네는 천연화장품을 좋아라 받아가고, 작은 딸의 아토피에 대해 묻기도 한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회나 콘서트 같은 정보가 있으면 냉큼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 표창원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후 표 교수님의 팬이 되기도 했다.
다른 한 친구는 '어바웃'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친구다. 어바웃은 귀염성 있는 외모와는 다르게 무척 시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상남자다. (아마도 그는 '귀염성'이라는 단어에 울컥할지도 모른다) 전투력도 강하고 정신력 수치도 높아서 현재 우리 모임에서 종종 '만랩 어바웃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바웃은 지난 여름에 광화문의 동조단식에 참가했다. 사실, 소식을 들었을땐 뭐 얼마 하겠나 싶었다. 나는 한창 회사일로 정신없던 시기라 '단식 끝나면 만나자'라며 반쯤 무관심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어바웃의 단식이 7일째가 되었을 땐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갈수 밖에 없었다. 한창 더울 시기였고 딸린 자식이 있는 친구에게 '가족을 생각해라' 따위의 드립을 하기 위해서였다.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하나반이 그동안 매일 하루 3번씩 광화문을 찾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말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을 수줍게 내밀고 간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가 멀지 않은 곳이라 그런다고는 말하지만 '날도 더운데 무슨 정성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바웃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고마와하는 기색도 없었다. 당연하다. 만랩이신데.
어바웃은 9일동안 단식을 했고, 그동안 하나반은 하루 세끼 밥먹듯 얼굴을 내밀었다. 뭐... 좋게 말하면 정이 많은 거겠지. 어바웃은 매번 '그만오라'라고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 일이 있고 몇달 후, 다른 한 친구가 가입을 했다. '미남벅지'라는 유치찬란한 닉네임의 친구였고, 무려 레어하게 '미혼'이라는 타이틀도 달고 있었다. 이 벅지에게 제일 먼저 연락한 친구 역시 하나반이었다. 하나반은 막 개봉한 '다이빙벨'의 시사회 티켓을 거머쥐고 벅지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막 가입한 벅지가 이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고, 결국 함께 영화를 보며 다른 친구들에게 시키지도 않은 인증샷을 찍어 자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엄지짱'이라는 친구가 가입을 했다. 광화문에서 서명지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로, '외로워서'가입을 한 케이스이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광화문의 사정을 안타까와하던 엄지짱은 몇몇 친구들에게 '같이 하루 노숙하자'고 제안했다. 상남자 어바웃은 물론 참여하겠다고 나섰고, 하나반이 또 이를 따라 나섰다. 그 노숙일이 지금 글을 적고 있는 오늘인데 어바웃은 '하나반 집에 가라그래라'라며 퉁퉁대고 있다. 그리고 한시간 전, 하나반은 '내가 엄지짱과 어바웃 사이에서 잔다'라고 보고해왔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사실. 어바웃의 전언으로는 하나반은 한숨도 못자고 밤을 샜다고 한다.
불륜을 추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숨도 못잤다'라는 워딩에 보일 반응
두번째 인물은 '루씨군'이라는 닉네임의 친구이다. '소환장'에는 응하지 못한, 먼 경북에 사는 친구이다. 루씨군은 함께 활동하지 못함을 메신저나 게시판을 통해 미안해했고, 그런 루씨군을 위로 하고자 몇몇 친구들이 어느 주말 루씨군을 방문하기로 했다.
'루씨군 원정대'의 첫번째 친구인 '쟈스민'은 이름대로 무척 여성스러운 성격의 친구이다. 살림도 잘하고 참한 성격이다. '쟈스민'의 반대말로는 두번째 친구인 '삐삐'가 있는데, 털털한 성격에 덤벙대기로는 세계 최강의 캐릭터이다. 그리고 세번째 친구 '도도'는 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어바웃 못지 않은 시크함을 가진 친구이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온갖 고민 해결을 명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도도는 늘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시킨다. '각자의 삶은 셀프' 그리고 네번째 친구 하나반은 역시나 이 원정대에 합류했다. 오지랖 넓은 하나반이 빠질 리 없었을 것이다.
멀리서 늘 인증샷으로만 우리를 보아오던 루씨군으로써는 무척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다. 네명의 친구는 루씨군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각종 선물꾸러미를 준비해갔다. 노란 리본 목걸이, 뱃지, 손수건 기타 등등. 루씨군은 감격했지만 좀 걱정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네명의 방문객은 종일 루씨군을 괴롭히며 곳곳을 돌아다녔고, 루씨군은 매우 고마워 했다고 한다.
지난달 루씨군이 서울 나들이를 왔을 때, 여성 회원들은 앞다투어 서울역에서부터 루씨군을 맞았다. 아줌마들이 어찌나 극성인지, 점심을 사주기로 한 어바웃은 점심시간 내내 안절부절 하다가 커피전문점에 한무리를 안착시켜놓고 회사로 튀어(?)버렸다. 종종 얼굴을 봤던 어바웃이 이정도인데, 루씨군이 불편해하지 않았을까 살짝 걱정된다.
그래. 이 정도 일은 어느 단체에나 있을만한 일이라 믿는다. 게다가 '동갑모임'아닌가.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사고(?)를 치던, 난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아니, 별개의 일이라 믿는다. 우리가 하려는 활동과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늘어놓는 내 심정은 당신의 생각을 묻고 싶어서이다. 어떤 판단을 하고 싶은지,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잠시 여기서 선을 하나 긋자. 진짜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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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저 절취선 위까지 글을 읽은 후 '그럼 그렇지'라거나, '에휴.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라고 생각했다면, 다음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올해 일흔 둘이신 우리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똥은 똥끼리 뭉치는 법'
나나 내 친구들이 '걸레'냐고...? 아니. 난 저 이야기에서 '불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중이다. 만약 당신이 저 절취선 위의 글을 읽으며 머리속에 '불륜의 급행열차를 탄 위험한 유부남, 유부녀'를 떠올렸다면, 당신 주위의 '불륜은 달콤한 유희' 정도로 미화시키고 있는 다른 사람을 정리하라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있으니 무슨 모임을 봐도, 무슨 단체를 봐도 제일 먼저 '불륜 저지르려는 년놈들'로 보이는 것 아닌가.
만약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다면, 드라마를 끊어야 한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사실 불륜을 빼면 볼게 없다지만 그래도 보는 사람이 있다. 그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 불륜은 재미 없다. 진짜 불륜은 옆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위험한 운명의 데스티니'따위는 주로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니, 그 시간에 뒷산에 올라 엄한 소나무에 등이라도 치는게 건강에 좋을 듯 하다.
불륜에 심취하면 멀쩡한것도 이상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동갑 = 불륜의 공식을 머리에 넣고 있는 사람들에겐 불행하게도, '하나반'은 두 딸의 아버지이다. 주말이면 와이프가 좋아하는 뼈해장국을 끓인다면서 하루종일 우거지를 삶고, 두 딸과 함께 악기를 배우러 다니는, '반은 아저씨, 반은 아줌마'인 인물이다. 그래서 아이디도 '하나반'일 거라고 우리는 짐작하고 있다. 이런 성격 덕분에 '루씨군 원정대' 여행도 위화감 없이 동행할 수 있었고, 안산 분향소에서의 1박 2일 행사에는 두 딸도 함께 올 수 있었다.
또한 지금 이 시각, 광화문의 어느 천막에 자고 있을 세 친구인 엄지짱, 하나반, 어바웃 모두 남자이다. 딴에 험한 일이라고, 사나이들끼리 씩씩하게 광화문을 지키는 중이다. 벅지는 새벽에 일을 하는 터라 잠시 들렀고, 아마 아침 즈음이면 함께 밥을 먹기위해 광화문으로 달려갈 것이다.
경북의 루씨군은 3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과의 결혼 사진을 핸드폰 초기 화면으로 사용하는 중고 새댁이다. 그녀는 지난달에 서울을 방문해 친구들을 만났다. 광화문을 함께 갔고, 서촌갤러리의 빈하용 전시회를 다녀왔다. 그리고 2년째 회원이지만 혜택을 받아보지 못한 벙커에 들러 회원카드로 커피를 시원하게 쐈다. 그리고 루씨군은, 줄곧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 난 '너희 불륜 모임이냐'라는 시선이 몹시 불편하다. 사실 앞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고 한들, 별로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난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슨 사고를 치건, 그들로 인해 내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격한 감정이 이입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오해를 여러번 사기도 했었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상대방의 표정에 마음이 상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런 오해가 감사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때로는 스스로 멈추어버린 바퀴에 채찍질도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오해들로 인해 친구들 중 유난히 '울컥증'이 심한 내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지금 이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낸뒤 폼 잡고 앉아 '보고'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73년 소띠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