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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크레딧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를 다뤄 보았다.

 

크레딧은 개인과 기업으로 하여금 자기가 가진 이상의 소비, 지출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거시경제에서 "누군가의 소비 = 누군가의 소득"이 됨으로, 이 공식에 크레딧이 추가되어 크레딧 만큼의 추가 소비, 소득을 발생시켜 현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크레딧은 미래에 갚아야 할 채무를 남기는데, 채무자는 이 빚을 갚기 위해 미래에 그만큼 소비 일부를 줄여야만 한다. , 오늘 먹은 치킨값을 다음달 월급으로 갚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렇게 현재의 구매 능력을 일시적으로 늘려주지만 미래의 구매능력을 감소시키는 특성 때문에, 레이 달리오는 크레딧이 필연적으로 사이클(Cycle, 주기)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사이클 특성은 개인에서 산업, 지역 단위로 확장시켜 생각해볼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많은 자본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건설업, 토목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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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민족정론지 딴지일보가 갑자기 흑산도나 욕지도로 확장 이전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전 소식을 접한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섬으로 몰려가 딴지일보를 위한 사옥과 딴지일보 직원을 위한 아파트, 벙커1 방문객을 위한 호텔을 지을 것이 틀림없다. 건물을 짓고 지역이 개발되기까지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이 기간동안 외부에서 많은 인부와 건축 자재가 반입될 테니 섬의 경제는 유래 없는 활기를 띨 것이다. 이러한 섬까지 인력을 동원하려면 건설사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임금을 제공해야 할 것이고, 인부들은 건축기간 동안 섬에 머물며 자고, 먹고, 쉬면서 돈을 쓴다. 빈방이 있는 집들은 월세를 놓을 것이고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하면, 근로자들을 위한 원룸도 지을 것이다.

 

지역경기가 좋을 때는 크레딧이 마구 공급되어 돈을 빌리기가 쉬워진다. 담보물로 제공해야 할 토지의 가격이 오르는 데다가(LTV 담보 인정 비율),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어 주민소득(DTI 총부채 상환 비율또한 올라가기에, 은행 입장에서 이 지역 사업에 돈을 빌려주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레딧이 공급되어 대출이 많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가격과 주민소득이 올라갈 수 있다. 대출을 받은 돈이 곧바로 이 지역의 부동산과 건설업으로 흘러들어가 더 큰 고용 효과와 부동산 가격 상승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최초의 딴지일보 사옥 이전이라는 호재로부터 시작된 이 호황이 크레딧의 도움을 통해 더 많은 외부 자금, 노동자를 섬으로 유입시켜 2차호황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호황은 최초 원인으로부터 파생된 뒤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 추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지속적인 인구 및 소득 증가, 현재와 같은 고성장 유지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호황기에 공급되는 크레딧은 그 자체로 자산 가격 상승 최대치와 속도를 빠르게 늘려준다.

 

물론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섬의 근본적인 경제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관광명소가 되어 관광객이 급증하거나 딴지일보를 따라 다른 언론사들이 집단 이주하지 않는 이상), 단기 호재에 따른 지나친 자산 가격 상승은 단순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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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짓기 시작했던 건물들은 언젠가 완공되어 건설 인부들은 서서히 섬을 빠져나갈 것이다. 외지인이 빠져나감에 따라 지역경제는 다소 시들해질 것이고, 호황과 외부인 유입을 위해 건물을 짓는 것은 불필요한 투자처럼 보일 것이다. 늘어난 새로운 건물의 공급 탓에 건물주들은 공실과 임대료 하락을 겪지만 다달이 이자는 내야 한다. 여기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노심초사하며 빌려간 채무자의 신용도 변화를 지켜볼 것이며 이 지역에는 더 이상 신규 대출, 상환 연장 등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크레딧이 줄어들면 이 지역에 더 이상 신규 건축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투자자가 유입되지 않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떨어진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 담보물(돈 빌릴 때 제공한 땅)의 가치가 하락, 기존 대출의 신용도도 떨어뜨릴 수 있다. 가장 긍정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가장 많은 빚을 내서 가장 크게 지어진 건물부터 경매에 부쳐질 것이고, 경매에 부쳐지는 건물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수년간에 걸친 크레딧의 공급, 단절이 부동산 시장의 경기 상승, 하락의 폭을 크게 만들며 사이클을 만든다는 것이다. 크레딧이 꾸준히 늘어나는 상승기에는 크레딧 공급이 하나의 호재로 작용해 자산가격을 가파르게 끌어올리지만, 크레딧이 줄어드는 경기 하강기에는 자산가격의 하락을 부추긴다. 크레딧의 도입이 현금으로만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지던 시기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금의 유입, 이탈을 발생시켜 급격한 자산 가격 상승 및 하락이라는 거대한 사이클을 형성시킨 것이다(그래서 금융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이래, 역사는 더욱 빠른 속도로 흘러간 것 같다.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해짐에 따라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덜 생산적인 인력, 기술은 빠르게 도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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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달리오는 이러한 크레딧의 생성과 소멸에 따른 사이클을 거시경제 전반으로 확장해 적용시켰다. 그는 지난 수세기 동안 발생했던 48건의 주요 금융위기를 분석하면서 이를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눴다. 이 중 21건은 디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이었고, 나머지 27건은 인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이었다(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디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에서는 자산 혹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졌던 반면, 인플레이션적 크레딧 사이클에서는 자산 가격 혹은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 어떤 금융 위기가 디플레이션, 인프레이션을 발생시키느냐는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확률적으로 봤을 때 부채의 조달방식을 보면 예측할 수 있다.

 

레이 달리오에 따르면, 빌린 돈이 대부분 자국통화일 경우에는(보통 기축통화나 이에 준하는 지위를 유지하는 선진국에서 많이 발생했다) 디플레이션, 외국 통화를 많이 빌렸을 경우(자국 통화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운 개발도산국에서 주로 많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중앙은행이 돈을 새로 발행해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식으로 직접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2008년도 금융위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당장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망했지만 대부분의 부채는 기준 통화인 달러로 발행되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외국에서 돈을 빌렸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매우 제한적이다(대표적으로 1차세계대전 전후 살인적인 인플레를 겪었던 독일이 그랬고, 외환 위기 직후 한국도 여기에 해당된다).

 

다음엔 본격적으로 디플레이션적인 크레딧 사이클을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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