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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관련, 검찰 수사를 받던 청와대 민정비서관 산하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했던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찰수사관이 이달 초 자살했다. 또 다시 ‘죽음을 부르는 검찰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사람이 쓰러질 때마다, 생목숨이 사라져갈 때마다 역설적으로 검찰의 위세는 더욱 등등해질 뿐이다. 시민에게 그 검찰의 권력이 와닿을 때는 ‘목숨으로 치르는 대가’ 임을 눈으로 확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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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부터, 전도유망한 기업인, 정치인 그리고 검찰 내부자까지도.

 

2. 

검찰 외부자들이 검찰과 맺지 않아야 할 연을 맺거나, 들여놓지 말아야 할 발걸음을 어쩔 수 없이 들여놓게 돼 그 발걸음이 곧 황천길이 되어도, 이들의 죽음은 어떻게든 기록되거나 회자되었다. 통계라도 남겼다.

 

예를 들면, 지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검찰 수사를 받자 자살하는 피의자들이 해마다 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자살한 피의자만 해도 100명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대한변호사협회, “[성명서] 검사에 의한 인권침해 이제는 근절하라”, 2016.01.19.). 검찰과 관련된 죽음 중 외부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죽음이 석연치 않으면, 석연치 않음에 대한 공개적인 의문제기라도 있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과도한 인권침해 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해결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도 있었다.

 

검찰 식구의 ‘과로사’와 같은 안타까운 생의 마감에도 2000명 검찰 식구의 진한 애도가 따르는 ‘존엄사’로 포장이 가능했지만, 검찰 내부자들의 ‘자살’과 같은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버려지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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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자살에 대해서는 정말로 알려진 게 없다. 그나마도 2016년 상사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자살한 서울남부지검의 고 김홍영 검사에 대해서는 알려졌지만, 대부분 내부자들의 죽음은 철저히,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때 검찰국장이 빨갱이로 몰려 자살한 사건은 희미하게나마 ‘그랬다더라’와 같이 구전동화처럼 전해져 왔지만, 워낙에 메카시즘 광풍과 같이 빨갱이 터부가 강했고 또 이를 적극적으로 자기 정권의 안위에 이용했던 정권의 ‘기획자살(이라고 쓰고 살인이라고 읽는다)’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민주정권 이후의 검사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로사이든, 무엇이든 흘러가는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버려지고, 묻혀버린 검찰 내부자들의 죽음, 검사의 자살에 대해 알아보았다.

 

3. 신문에 단 한 줄 기록, 1993년 부산 지검 김모 검사

 

일단, 신문에라도 한줄 기록된 검사들의 자살은 1993년 부산지검의 김 모 검사였다. 당시 불과 30살에 불과했던 김모 검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이 새파랗게 젊은, 앞날이 창창한 검사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그나마도 최근 고 김홍영 검사의 죽음이 화제가 되면서 곁다리로 한 줄 실리고 재조명될 뿐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1993년 부산지검 김모 검사의 죽음도 상사에게서 받은 인간적 모멸감(이라 쓰고 ‘괴롭힘’이라 읽는다)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관련 기사 링크).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하고 내부의 소식을 외부를 통해서 더 빨리 알 수 있는 시대지만, 1993년만 해도 전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검찰 내부의 동료검사들도 박모 검사의 죽음에 대해 모르는 이가 태반이고,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4. 법조인의 과도한 스트레스만 알린 2011년 대전지검 허모 검사

 

검찰 내부자들의 죽음이 알려진 건 국가 전체적으로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지고, 언론의 양태가 다양해지고 난 후에도 한 참이 지나서였다.

 

2011년 9월 7일 대전지검에 근무하던 30대 중반의 초임 검사가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 언론이 아주 잠깐 주목했었다(관련기사 링크).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검사로 근무한지 7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젊고, 유능한 형사부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법조계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죄송하다’는 글이 있었고, 이를 토대로 대전지검은 당시 차장 검사를 중심으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진상파악에 나섰지만 정확한 진상파악 결과는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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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법조인의 스트레스’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이 젊은 검사의 죽음을 평하였지만, 이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의 진단’이라는 게 추후의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같은 시장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인지라, 검찰조직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 할 수 없는 용기부족이 ‘법조인의 심각한 스트레스’ 정도의 워딩 만 보도됐을 거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뒤늦은 진단이지만, 어쨌든 이때도 상사의 괴롭힘이 전도유망한 젊은 검사의 자살의 결정적인 동기였을 거라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5. 검사의 자살로 유일한 감찰 이뤄진 고 김홍영 검사

 

검사의 자살 사건으로 유일하게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대대적인 감찰까지 이뤄진 건은 고 김홍영 검사의 자살 사건이다. 2016년 5월 김 검사는 상사였던 전 김대현 부장검사로부터 지속적인 폭언, 폭행 등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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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 검사의 아버지가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정민규 기자>

 

김 전 검사의 자살 건으로 그의 사법연수원 41기 동기회는 집단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부산에 있는 김 전 검사의 묘소를 참배하여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김 검사는 자살할 당시 유서를 남겼지만 유서의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진 않았다. 그러나 사망 전 지인에게 토로한 자신의 고충 등을 통해 김 검사가 상관으로부터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대우를 지속적으로 받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 검사의 자살 건으로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감찰을 벌였고, 그 결과 김 부장검사는 장기미제 사건을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 검사에게 인격모독에 가까운 폭언을 수 차례 하였고, 때로는 폭행도 불사했던 것으로 밝혔다.

 

이로 인해 김 전 부장 검사는 해임되었고, 징계취소소송까지 제기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김 전 부장검사는 해임되고 3년이 지난 올 8월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회에 변호사 등록 신청을 하였으나 보류되었고 3개월이 지난 10월에서야 등록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 11월 27일 김 전 부장검사를 형사고발하였다. 죽은 김 전 검사를 폭언, 폭행 및 협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다.

 

서울중앙지검은 대한변협의 이와 같은 고발사건을 형사부에 배당하였다.

 

6. 

전도유망했던 젊은 검사의 자살 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남겼고, 검찰내부 문제가 더 이상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큰 화두인 ‘검찰개혁’이라는 과제가 ‘화석화된 그들만의 구호’가 아니라 시급한 과제임을 절감하게 했다. 무엇보다 검찰은 검찰 그 스스로가 변화하거나 혁신할 수 있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간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검사동일체 문화에서 비롯되는 조직의 강압적인 위계질서를 비롯한 과중한 업무 등 검찰의 총제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성을 일깨우고 검찰 내부에서도 미약하게나마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 검사의 자살 사건을 두고 국내 한 대학의 로스쿨 교수는 “전도유망했던 젊은 검사가 끝내 막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검찰이 해체 수준 이상의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하게 썩어 있다는 걸 단면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죽음 밖에 자기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이 있는 게 건강한 조직이고, 건강한 사회인데, 검찰은 내부자들마저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결국 죽음 밖에 없는 괴물 조직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개탄했다.

 

최근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김 검사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집중조명하면서 화재가 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고 김 검사의 아버지 김진태씨는 “업무상 스트레스와 상사의 괴롭힘이 (아들) 죽음의 전부일까”라고 반문하면서 “아들을 죽음까지 이르게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여전히 아들이 막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명확한 이유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또 이 방송을 통해 임은정 검사의 비망록이 일부 공개되었다. 죽은 김 검사가 근무했던 2015년과 2016년 당시 서울남부지검 내부에서 벌어진 귀족검사의 여검사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과 이를 조직적으로 무마했던 일 등등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난맥상에 대한 임 검사의 기록 일부다.

 

임 검사는 2012년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구형’을 한 일로 검찰조직의 눈 밖에 나 여러 고초를 겪고 있었다.

 

임 검사는 “국가배상소송용 비망록이자 회고록이다. 제가 듣고 관여한 내용이라 적은 것”이라고 부연하였다.

 

7. 

검찰은 ‘적폐청산, 재조산하’를 내세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반성 및 개혁을 하는 듯한 제스처 보여주긴 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부장검사 이상 검찰 간부들의 인사에 대해 다면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선배검사가 후배 검사를 괴롭히는 일들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두었으나, 오래된 검찰의 적폐 관행을 일소하기에 유효한 제도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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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7. 딴지 만평>

 

오히려 검찰은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건에서 대통령의 인사건에 대놓고 관여하는 대담함을 무식하게 드러내면서 계속, 거침없이 폭주하고 있는 중이다.

 

내부자들의 죽음은 언제까지고 외면한 채 말이다. 

 

 

■ 참고자료

 

국가인권위원회, “범죄수사 절차상 피의자의 인권침해 현황 조사” 보고서, 2003.10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야간·심야조사의 범위와 인권보장”, 2019.07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발생 원인 및 대책 연구”, 2014.12

 

행정안전부, 통계연보

 

대한변호사협회 성명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