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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 대한 검열보고

 

 

 

 

 

 

 

 

 

 

 

 

 

 

 

 

 

 

 

 

 

 

 

 

 

 

 

 

 

 

 

 

 

 

 

 

 

 

 

 

       
발신자      딴지 영화부 개봉영화 검열위원 나뭉이
       
수신자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도대체 무얼까 궁금해 할 독자제위
       
등   급    
















 
 
문소리의 농염한 연기 기대자 관람가
지진희의 풀어진 모습 기대자 관람가
남녀의 위선, 이중성, 가식 이런 종류의 소재가 땡기는 이들 관람가
그 외 관람불가
 
       

 

 

 

 

 

 

 

 

 

 

 

 

 

 

 

 

 

 

 

 

 

 

 

 

 

 

 

 

 

 

 

 

 

 

 

 

 

 

 

 

 

 

 

 

 

 



 

 

당 영화의 포스터부터 살펴보자. 석규(지진희 분)가 영어 제목이 적힌 책을 거꾸로 든 채 한눈이 팔려있다. 야리야리한 S라인 몸매를 꽈배기 튼 채 그를 유혹하고 있는 은숙(문소리 분). 아마도 애정행각 직전인가 보다. 근데 웬걸, 장소가 심상치 않다. 서가에 책이 잔뜩 꽂혀 있는 걸 보니, 더군다나 제목에 여교수라고 박혀 있는 것이 교수실 정도 되는갑다.

 

아니 교수가 하라는 학문연구는 안하고 그 신성한 교수실에서 연애질이나 하고 자빠져 있다니. 겉으로는 교수인 척 위엄을 떨면서 이렇게 뒤로 콩까는 모습, 참으로 위선적이고 꼴깝스럽다. 그렇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바로 그런 남녀의 위선과 꼴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다.

 

은숙은 심천 전문대학교 교수. 그러나 가르치는 일에는 별 관심 없고 그녀를 추종하는 뭇남성들의 껄떡임을 받으며 겉으로는 아닌 척, 이 남자 저 남자와 놀아나기에 바쁘다. 그런 은숙과 찐하게 한빠굴하고 싶은 김PD(박원상 분)는 출장명목으로 일본 도피행각을 준비 중이고, 은숙과 사귀고 싶어 안달 난 유선생(유승목 분)은 그녀와 뭔가 썸씽이 있는 듯한 석규와 신경전이 대단하다.

 

그래서 당 영화가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면 은숙과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의 애정행각에서 벌어지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다. 예를 들자면, 뿔테 안경을 낀 은숙의 지적인 모습에 반한 김PD는 다음 날 아침 여관 침대에서 그녀가 잃어버리고 간 안경을 발견한다. 다음에 이들이 만나자 나누는 대화.

 

"안경 혹시 잃어버리시지 않았나요?"
"안경이라뇨? 아~ 안경"
"근데 눈 나쁘시지 않나요?"
"(당황해하며 버럭 큰소리로) 저 지금 콘택트렌즈 꼈단 말예요"

 

은숙이 안경을 꼈던 건 실은 눈이 나빠서가 아니었나 보다. 근데 이렇게 이성을 앞에 두고 위선을 떠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 김PD는 사명감에 젖어 일대 사활을 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회사에 일본 출장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실은 남들의 눈을 피해 은숙과 빠굴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서 일뿐이다.

 

당 영화 속 그녀와 그놈들 사이의 애정 줄다리기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렇게 매사가 찌질하고 졸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이런 연애풍경이 우리네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사인 척 교양 있게 굴다가도 경쟁자라도 나타날라 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졸렬해지는 수컷, 겉으로는 조신한 척 아무 것도 몰라여를 내세우면서도 이 수컷 저 수컷 은근히 유혹하며 연애를 즐기는 암컷.

 

결국 은숙과 석규, 김PD와 유선생의 욕망과 본능에 관한 모습은 딴 나라 딴 별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얘기인 셈이다.

 

 

물론 영화는 대학과 시민단체라는 먹물사회를 그 무대로 하고 있는 만큼 이들 먹물들의 허영심과 위선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허나 이는 은숙과 상대 남성들과의 러브질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이중성을 더욱 데코레이숑하기 위한 새끼 플롯일 뿐, 감독이 실질적으로 말하려는 바는 아니다.

 

이렇게 남녀의 연애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면과 속사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홍상수의 영화와 닮아있다. 홍상수 감독은 이미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등을 통해 빠굴담과 연애담을 다루며 그 안에 숨겨진 본심, 즉 남녀의 위선에 대해 졸라 냉소적으로 썰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영화가 그런 남녀의 심리를 밝혀가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홍상수 감독, 그에게는 특유의 형식이 있다. 먼저 한 사건(또는 상황)에 처한 쥔공을 보여준 다음 곧 바로 동일한 사건에 빠진 쥔공의 또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쥔공의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거다. 가령,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김상경 분)는 춘천으로 놀러갔다가 대책 없이 껄떡대는 명숙(예지원 분)이 귀찮아서 부산으로 피신 간다. 근데 웬걸. 그곳에서 경수는 명숙이 꼴이 나버리고 만다. 유부녀 선영(추상미 분)을 만나 한눈에 꽂힌 경수가 무지하게 껄떡대지만 그녀가 피해버리는 거다.  

 

이처럼 홍상수 영화가 사건 뒤에 사건이 있는 구조라면, 당 영화는 사건 속에 또 하나의 사건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경고!!
결정적인 스토리가 썰풀어지니 당 영화의 관람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아서들 스텝 밟으시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이야기를 좀 더 밝혀보자면, 석규는 심천 전문대학교 만화과 교수로 발령이 난다.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은숙. 그녀가 석규를 바라보는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왜일까. 그와 얽힌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거란 건 이렇다.    

 

은숙은 사실 중딩 시절 석규의 형의 여자친구였다. 근데 여간 까진 게 아니라서 빠굴까지 한 사이다. 그런 석규의 형은 은숙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동생과 친구에게 자랑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들에게 제안까지 한다. 둘이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은숙과 빠굴뛰게 해주겠다고. 그러던 와중에 형의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당 영화에는 성인이 된 은숙과 석규가 만나게 되기까지의 사건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은숙과 석규를 멀어지게 만들었던 중딩시절의 또 하나의 사건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사실이 은숙과 석규의 사이를 질투한 유선생에 의해 까발려지면서 은숙은 교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불량했던 과거를 숨겼다는 것이, 석규 역시 중딩시절 양아치 전력을 숨기기 위해 박필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했다는 것이, 유선생은 부인과 자식이 있으면서 이를 숨기고 은숙에게 결혼하자며 껄떡거렸다는 사실이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 홀라당 발라당 사정없이 드러나는 거다. 당 영화에서 구조가 가지는 중요한 이유.

 

그래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당 영화와 홍상수 영화는 주제를 드러내는 구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건 속에 사건, 사건 뒤에 사건. 하지만 그 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두 영화 다 별반 차이가 없다. 니들은 모두 위선적이고, 속물이고, 이중적이며, 가식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렇다고 본 우원이 당 영화와 홍상수 영화가 같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님은 다들 잘 아실 테고. 이왕 비교한 김에 한 번 더 비교하자면, 두 영화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를 다루는 감독의 스타일에 있다.

 

무슨 얘기냐면, 홍상수 감독은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있어 주인공에게 시점을 부여하여 자신의 주관은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있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가 명숙과 선영이라는 두 가지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철저히 경수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감독은 이와 같은 경수의 행동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고 있다는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녀석 참 꼴깝떨고 자빠졌네. 홍상수의 영화가 졸라 냉소적으로 느껴진다면 바로 이와 같은 효과 때문일 거다.

 

하지만 당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는 감독의 주관적인 시점이 영화 내내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신부님이 수녀님들의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근데 벙찐 표정을 지은 채 정지된 화면처럼 모두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 있다. 방파제 앞에서 지적인 안경을 낀 채 야리야리한 각선미를 뽐내고 있는 은숙. 우스꽝스럽다. 이 말은 은숙의 행동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이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우스꽝스럽다는 얘기다.

 

이처럼 인물의 멈춘 듯 한 표정을 통해 반응을 먼저 보여준 후 그 다음 장면에서 이유가 밝혀지는 감독의 스타일은 영화 내내 유지된다. 그 의도는? 앞썰했듯 주인공의 이중적인 행동을 함께 조롱하고 웃어보자는 것.





 
 

 

 

그렇다면 그런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다가오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안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기 힘든 것이 사실. 왜? 조롱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것이 인물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나는 이 장면에서 쥔공들을 조롱하고 있으니 니들도 조롱해!라고 호통개그하듯 의도적으로 마구 강요하며 주입식 교육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독의 주관이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니 당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생뚱맞고 뜬금없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홍상수 영화를 기타노 다케시가 어설프게 만들었을 때 드는 엇박자스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를 두고 많은 재래식 언론들은 당 영화가 독특하다느니, 스타일이 참신하다느니, 신인감독이 타협하지 않았다느니, 올해의 문제작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는 거다)      

 

그 결과 구조가 드러남으로써 주제가 베일을 벗는 당 영화 특유의 형식은 그것이 드러나기도 전에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감독의 조롱의 시선에 묻혀 힘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 제대로 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한마디로 말해 감독의 스타일이 지나쳐 이야기와 구조를 모두 잡아먹은 경우라고 하겠다.

 

 

 
 

 
결론 때려보자.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특히 그것이 성과 욕망, 본능에 관한 것이라면 그 흥미는 배가 된다. 당 영화가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먼저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에 구조가 있으며,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이 삼박자가 착착 아다리가 들어맞을 때 비로소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 반대로 이 세 요소가 균형이 맞지 않고 어느 한 부분만 두드러지게 강조되면 영화는 이해하기 힘들어지며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진다. 스타일적인 측면에 쓸따리없이 너무 많은 힘을 쏟아 부은 당 영화가 그렇다.   

 

과욕은 금물, 당 영화가 주는 교훈이다.

 

 

 
딴지 영화부 개봉영화 검열우원
나뭉이
(namung@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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