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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칼럼] 단일민족은 사기다

2006. 4. 10. (월)
딴지총수

 


 


 



하인스 워드 열풍이다. 하인스 워드, 장하다. 그는 장한데 그를 맞이하는 우리에 대해선 할 말이, 좀 있다.
 



74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연 여배우 수상자. 할리 베리. 그녀 어머니는 백인이다. 그런데 그녀는 흑인이다. 따지자면 백인도 흑인도 아닌데 말이다.


머라이어 캐리. 그녀 어머니는 아이리쉬 백인. 외모로는 백인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을 흑인이라 고백했다. 피부색 농도의 문제가 아닌 게다.


타이거 우즈. 타이인 어머니와 흑인 백인 인디언 혼혈 혈통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스로 흑인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동양계에 가깝다 말한다. 그가 흑인임을 부정한 이유 역시 모두들 그를 흑인으로 받아들여서다.


미국사회가 인종을 구분할 때 사회통념처럼 적용해 온 한 방울 원칙(one drop rule) 때문이다. 단 한 방울의 흑인 피만 섞여도 그 사람은 흑인으로 분류한다는, 백인농장주와 흑인노예 사이의 자식들까지 모두 거래할 수 있는 노예자산으로 계상하고자 했던 백인중심의 인종차별적 사고의 유산. 흑인과 섞이는 걸 순수한 백인의 피가 혼탁해지는 것으로, 정품이 아닌 비짜가 되는 것으로 바라본 이 시각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고 소수만의 편견도 아니다.


1980년 초반 미 남부에서 누가 봐도 백인의 외모를 가졌고 스스로를 백인으로 알고 있었으며 부모 조부모까지 모두 백인이었으나 족보상 18세기 백인농장주와 흑인노예의 후예였던 한 여인을, 흑인 피가 1/32 이상 섞였다며 한 방울 원칙을 적용해 결국 출생기록부에 흑인으로 기재하도록 판정한 것은, KKK단이 아니라 루이지애나주의 법정이었다.
 



몇 년 전 TV 광고에 대따 입 큰 미녀 하나가 모 회사 치약광고에 등장한 적 있다. 이 하며 벌리는 구강 사이즈부터 이국적이었던 그녀,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한국계인 하와이 출신의 미스월드였다.


저러다 저거 저 큰 입에 주먹 쑬렁 들어가지 싶도록 힘찬 그녀의 칫솔질에 사해동포적 초초함마저 살짝 느끼며, 일본인 할머니와 중국인 어머니를 둔 그녀가 중국인 남편과 미국에서 낳은 자식의 복잡한 가계도를 머리 속에 그려보고 있는데, 기자회견장의 언론들은 생뚱맞게도 그녀를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만들어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몇몇 한국음식을 좋아한단 답변과 한국에 한 번 와보고 싶었다는 답변을 계속해 유도하더니 어느 순간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까지 내닫는다. 참, 남사스럽다. 미스월드에 선발된 그녀를 한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만들어내려는 기자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평소엔 한 방울만 섞여도 온전한 한국인으로 안 쳐주다 성공하면 한 방울만 섞여도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고 마는 한국형 한 방울 원칙.
 



헌신적인 어머니, 역경을 이긴 의지, 팔뚝에 새긴 한글, 그리고 현명한 그의 태도에 우리 내부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혼혈에 대한 그동안의 냉대, 편견을 질타하며 그들을 따뜻하게 끌어안지 못한 우리들의 편협함을 반성한다. 우리 모두의 죄책감을 요구한다.


옳다. 우리 잘한 거 하나 없다. 그러나 반만 옳다. 우린 그렇게 안 배웠다.


우린 우리 민족이 찬란한 반만년 역사의 단군자손으로 세계유일의 자랑스런 단일민족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다. 우린, 단일하고 순결한 우리의 핏줄에 다른 피가 섞이는 걸, 순수한 공동체의 순도가 희석되는 사고로 여겨지도록 교육받았다. 단일민족이 좋은 거니 혼혈은 자동으로 나쁜 거였다. 그들은 불순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잘못했단다. 혼혈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단다. 그동안 우리는 배타적이고 편협했단다. 그러면 나쁜 사람이라는 거다. 그들을 차별 없이 끌어안고 포용했어야 한다는 거다. 그늘진 그들에게 베풀고 상처받은 그들을 어루만졌어야 한다는 거다.


틀렸다. 반은 틀렸다. 그렇게 개개인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가르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우리 중엔 수많은 중국계 성이 있고, 어느 시대 어느 국가나 그랬듯 셀 수 없는 전쟁을 치르며 다양한 인종이 섞이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가르치자. 혼성이, 하이브리드가 열성이라는 암시의 교육 그만두자. 단일민족의 국가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도 없다.


그러지 않고서 하는 모든 소리는 그저 착한 사람 되자는 소리다. 그런 반성은 모든 잘못을 개인의 품성 문제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사람이 못돼서 그랬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아니다. 우린 그렇게 배우며 자랐다.
 



우리 순혈주의가 유난하다고 말한다.


사실 그건 그렇지 않다. 우리 편 유독 잘났다고 말하고 싶은 것까진 인간본성이다. 국민국가 탄생과정에서 결속의 근거로 발명된 민족의 개념은 허구일지언정 효과적이었다. 백인들 인종주의가 오만하고 공격적이라면 우리들 순혈주의는 자족적이고 방어적일 뿐이다. 배타적이고 비과학적인 건 매일반이다.


문제는 그 본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근거 없다는 걸 자각할 지성의 부재다. 그리고 그 지성은 조직적으로 교육하고 구조적으로 육성해야 겨우 형성되는 사회적 덕목이다. 하인즈 워드로 인한 감동으로 우리가 착한 사람 되어 이 문제 해결되지 않는다.


월드컵 감동으로 착한 축구팬 되어 K리그가 살아나던가. 할리 베리가 200년째 흑인이다.


 



단일민족은 사기다.


 


 


 


 


- 딴지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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