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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우리 팀장님 이야기

2005.4.10. (월)
딴지 생활부

 

직장인에게 최우선의 낙이 있다면, 매달 통장에 월급이 꼬박꼬박 입금된다는 그 사실일 거다. 내가 일하는 유통업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직장생활 2년차인 나는 그 낙을 압도하는 직장생활의 고달픔이 때로 전혀 엉뚱한 데서 야기되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 영혼이 돌일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팀에 계시는 팀장님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야기는 우리 팀장님의 이야기다.

 

* * *

 

우리 팀이 사무실을 옮긴 건 지난 2월 초니까,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 우리 팀원들의 심정은 패잔병의 그것과 흡사했다. 말이 사무실을 옮긴 것이지 사실은 우리팀이 통채로 좌천된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내가 입사했을 즈음 성과주의 열풍은 더 거세게 불어 팀간 개인간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져 있었다. 그 때 우리팀 컴퓨터 모니터마다 내가 우리회사의 경영주다!라는 슬로건이 붙여져 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사무실의 온도가 물리적 온도 이하로 낮아져 있었던 건 당연했다.

 

문제는 우리팀이 지난해 2/4 분기부터 최하위권의 고과를 받은 팀이란 것이었다. 철저히 팀별 성과에 의해 보상과 처우가 달라지는 유통업계의 정책상 설 보너스에서 우리는 일단 차별을 받았고 이제는 지금의 허름한 사무실로까리 내몰리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팀이 새로 이사온 곳은 지은 지 최소한 30년은 족히 될 것같은 건물이었다. 총 3층짜리 이 건물 1층에는 음식점이 있었고, 2층에는 시골 읍에서나 봄직한 허름한 다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분위기가 침울해서 저런 곳에 누가 드나들까 싶은 그런 다방..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3층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 사무실이라기 보다는 창고에 가까웠으며, 구석구석에는 닭털인지 비둘기털인지 정체불명의 깃털이 떨어져 있기도 했다. 그 깃털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팀원들의 가슴은 아려왔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함의 최고봉은 역시 화장실이었다. 우리가 쓰기로 된 화장실은 옥상으로 가는 반층 계단 위에 반에 반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남녀공용 좌변기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악취도 악취거니와 문제는 그 좁은 공간이었다. 반의 반 평이 되지 않는 공간이 시사하는 바는, 볼 일을 다 본 다음 휴지질을 할 때 몸의 동선을 최대한 작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몸의 동선을 크게 했다간 벽에 치명적으로 변을 묻히고야 마는 불상사와 그 뒷수습을 감당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 형편없는 화장실을 쓰느니 차라리 근처 지하철 역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말리라..

 

이 후진 사무실로 이사하던 첫 날, 청소를 하고 사무기구와 책걸상, 그리고 컴퓨터를 새로운 사무실로 옮겨보았지만 그 곳은 조금 깨끗해진 창고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누구보다 조금이라도 사무실 분위기를 내려고 애쓰던 분이 계셨다. 바로 팀장님이셨다.

 

팀장님은 깨끗함에 관한 한 유별난 데가 있었다. 팀원들의 책상이 어질러지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하셨고, 화장실에서 팀원이 손을 씻나 안씻나를 체크했으며 서류의 내용보다 그 서류종이에 어느 만큼 손때가 묻었나를 중시하셨다.

 

방 바닥의 먼지를 손가락 끝으로 집어내는 사람을 보고 평소에 나는 저 사람 조심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팀장님이 딱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나의 와이셔스 깃에 묻은 약간의 때를 발견하시곤 여자와 연애를 한번도 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버럭 역정을 내시면서 연애에 관한 훈계성 말씀을 손수 해주시기도 하셨다.

 

이렇듯 때로는 꼼꼼하게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과격하게 윽박을 지르면서 팀원들에게 늘 청결을 강조하시던 팀장님이셨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청결함의 정도로 그 사원의 능력을 평가하고 고과에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열악한 사무실로 옮길만큼 팀이 최하위급의 고과를 맞은 이유도 팀장님의 이런 독특한 사원평가기준에 있다고 저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팀원들 사이에 불만이었다.

 

아무튼, 새로 이사 온 사무실에서 괴팍할 정도로 청결을 중시하시던 팀장님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각자 평소에 잘 잡지도 않던 대걸레며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청소도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건 물론이다.

 

닭털인지 비둘기털인지 그 잡스런 털들을 모조리 제거하기 위한 그날 벌였던 우리들의 분투란 것은, 인사고과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몸부림과 자연스럽게 잇닿아 있었다.

 

팀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신 걸 빼면 우리팀 9명 모두가 꼬박 세 시간여 청소에 달라붙어 열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사무실 입구 쪽에서 문이 왈칵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세수대야 긁는 소리와 비슷한 40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가 쌌죠?"

 

쌌다니? 도대체 뭘? 비록 잡털 날리는 곳이지만 엄연한 사무실에서, 비록 이사 뒷정리이긴 하지만 엄연한 업무시간에 처음 보는 아줌마가 와서 다짜고짜로 던지는 말 치고는 여러 가지로 모호한 발언이었다. 

 

흡사 범인을 심문할 때 일갈하던 형사의 그것처럼 단호한 저 발언의 주인공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2층 다방의 마담이었다. 그리고 그 마담 아줌마가 아저씨라고 부르며 쏘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팀장님.

 

어젯밤에 우리들 몰래 저 아줌마와 우리 팀장님 양자가 고스톱이라도 친건가? 동네의 부랑시러운 아저씨들을 많이 상대해 본 솜씨인듯한 마담 아줌마가, 쉰 살에 가까운 우리 팀장님한테 대드는 폼세는 좀 너무한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우리 팀장님이셨다.

 

                               "저..아니예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아니예요 할 때 팀장님의 육성이 가녀리게 떨렸다는 걸. 아니긴 대체 뭐가 아니란 말씀인가. 무례하고 당당하며 게다가 모호한 질문에 지목당한 충격에 적잖이 당황했던지 팀장님은 아니라는 말 외에는 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계신 듯했다. 우리는 빗자루와 걸레를 든 채, 팀장님과 마담 아줌마간에 벌어진 그 긴박한 상황을 숨죽이며 계속 주시했다.

 

다시 가해지는 마담 아줌마의 여유있고도 샤프한 공격.

 

"아까 아저씨가 우리 다방 화장실 몰래 나가는 거 다 봤어.
씨팔, 이거 왜 이래?"

 

목격자임을 주장하며 그 마담 아줌마의 확신에 찬 듯한 공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하던 팀장님은 더욱 기가 꺽인게 역력해 보였다. 아슬아슬한 침묵을 흘려보내신 후 가까스로 뱉어낸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 제가 거기 들어가기 전에도..이미.. 먼저.. 똥이 있었다니깐..요.."

 

팀장님의 안간힘을 다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한번 터진 마담 아줌마의 분노는 거칠 줄을 몰랐다. 천하여장군이 실재한 인물이었다면 바로 이 아줌마를 보고 일컫는 말이리라.

 

"저 똥덩어리 물내려도 안내러 가는데 어떻게 치울래, 이 아자씨야? "

 

"......."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빨리 화장실 원상복구해놔. 당장!"

 

 

 
 


그 날 변기사건 이후 나중에 밝혀진 건 다음 두 가지다.

 

2층 다방 화장실은 우리한테 배당된 화장실에 비해 청결도가 좀 낫다 싶은, 쪼그려 앉아 볼 일보는 소변전용 수세식 화장실이었다는 것. 그리고 다행히 팀장님이 경찰서에 붙들려 가시는 사태만은 피하셨다는 것.

 

그 뿐이었다.

 

팀장님에게 직접적으로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팀원들 사이에 갖가지 억측이 난무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그 때 팀장님은 우리가 사용하게 된 화장실을 두고 왜 하필 2층 다방 화장실엘 가셨을까? 또 우리는 그 대화를 통해 팀장님이 거기 가신 것만 알았을 뿐, 싸셨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들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팀장님은 안 싸셨다는 말씀도, 싸셨으면 무엇을 싸셨는가 말씀도 안하셨다. 만에 하나 원래 있던 것으로 주장하신 그것과 동일한 것을 싸셨다면, 2층 다방 화장실이 소변전용화장실이라는 걸 미처 모르셨던 걸까? 아니면 그걸 간파하셨지만 3층으로 다시 올라가시기엔 이미 다급해진 위기상황이셨던 걸까?

 

팀장님 말씀대로 2층 화장실에 들어가시기 전에 정말 다른 사람의 흔적이 이미 거기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많이 놀라셨기야 할 테지만은, 그래도 습관적으로 물 먼저 내려보는 시도는 하지 않으셨을까. 무엇보다 궁금한 건 마담 아줌마가 봤다는 변기 속의 변이 한 사람 분량이었을까, 아님 두 사람의 퇴적량이었던 걸까?

 

그리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미스테리인 건, 액상타입만 내려보내는 소변전용 변기에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퇴적물들이 지금은 어떻게 사라진 걸까...

 

우리의 궁금함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진상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바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같은 데서 여기처럼 영세한 화장실을 거들떠 볼 리는 만무했다.

 

분명한 건 이거다.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이 인간에게 미칠 때 삶은 갑자기 폭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때 팀장님에게 삶이 그랬을 것이다. 그 때 힘없는 인간들이 선택하는 건 대체로 두 가지다.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똑같은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든지.

 

그러나 불행히도 이 두 방식 모두, 팀장님을 거부했다.

 

기도를 택하기엔, 그 상황에서 차마 자세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폭력으로 맞서기엔 항시 결벽증이 있다 할 정도로 고귀하신 팀장님의 성품이 탈이었다.

 

팀장님은 그날 이후, 옛날식 건물이라 좁고 가파르며 한칸 길이가 매우 높은 계단 층계를 우리 중 누구보다도 더 빠르게 주파해 올라오신다. 그렇다. 팀장님의 선택은 마담 아줌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회피전략.

 

팀장님의 부쩍 두꺼워진 장딴지가 봄바람에 스치운다. 

 

 

 

                                      - 오메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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