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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 화요일
노무현재단 편집위원장 강기석
 
 
 
 
진실은 무죄였다.

“한명숙 피고인에 대한 모든 혐의는 무죄”라는 재판장(형사합의 22부 부장판사 김우진)의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법정은 숨죽인 환호에 휩싸였다. 소리 없는 박수소리로 들썩였다. 법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은 부릅뜬 법정정리들의 제지로 인해 마음껏 소리 지르고 박수 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법정은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감격으로 터져 버릴 듯했다. 

아흔이 넘어 보이는 이름 모를 한 노(老)방청객이 그예 견디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재판장님, 만세!”

정리들이 달려들어 제지했지만 한번 터진 그의 격정은 거침이 없었다. 

“저 놈들! 저 정치검찰 놈들! 노무현 대통령까지 죽이고…”
 


감격으로 터져 버릴 것 같았던 법정, 그리고 한 총리의 눈물

하지만 만세는 재판장이 아니라 한명숙 전 총리가 받아야 마땅한 것이었다. 만세를 받아 마땅한 그의 두 눈에 언뜻 눈물이 비친 것 같았다. 잠시였다. 곧 평정을 되찾은 그는 법원 밖 마당에 운집한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기자들 앞에 나섰다. 

"저의 진실을 밝혀주신 재판부에 깊은 신뢰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지난 2년여 동안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진실과 결백을 믿어주는 국민 여러분이 있어서 제가 이렇게 여기까지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참 고맙습니다."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7개월, 재판이 시작된 지는 정확히 1년 3개월여 만이다. 한명숙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옭아매려던 정치검찰의 검은 음모는 30일 그렇게 일단 막을 내렸다. 1차 곽영욱 뇌물사건으로부터 계산하면 무려 1년 11개월 만이다. 

전 정부의 최고위 임명직을 상대로 한,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모략극이었다. 정치탄압이었다. 그러므로 이날 한 총리에 대한 무죄선고는 한 개인에게 덧씌워진 부당한 혐의를 벗긴다는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장의 논고는 이명박 정권의 무도함을 질타하는 쟁쟁한 징소리였으며, 참여정부의 도덕성을 확인하고 민주진보세력의 건강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웅혼한 북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재판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이날 자리를 지키고 앉은 특수부 검사들이, 억울하고 분한 표정을 억지로 꾸미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2심, 3심까지 끝까지 한 총리를 물고 늘어질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것이 그들 세계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표적수사, 기획수사가 실패함으로써 검찰 전체의 위신과 명예가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할지라도, 그런 사태에 책임지는 검사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것 역시 살아있는 권력과 결탁한 정치검찰 세계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악랄함에서 더 이상 독기는 뿜어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가면 갈수록 그들의 사악함 뒤에 숨겨져 있었던 치졸함에 대한 비웃음만 더해질 것이다. 철면피한 수구언론들도 적어도 이 사건에 관한 한 더 이상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진 못할 것이다. 진실이란 태양 앞에, 각다귀 떼를 연상케 하는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은 맥을 놓을 것이다. 





쟁쟁한 징소리, 웅혼한 북소리에 맥 놓은 정치검찰

이 재판은 지난 해 12월 20일 2차 공판에서 핵심증인 한만호 전 한신공영 사장이 “나는 한명숙 전 총리님께 돈을 준 적이 없습니다. 한 총리님은 지금 누명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 라고 양심선언을 했을 때 일찌감치 거둬져야 했다. 검찰의 겁박과 회유 속에, 그리고 잠시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철석같이 검찰의 설계에 협조하기로 했던 인물이 뒤늦게 참회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이날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우선, 이 사건이 수사시기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면서도, 전적으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재판부는 한씨가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도 검찰의 강압이라기보다는 회유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에 따라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의 법정에서의 진술번복이 바로 검찰에서의 진술을 전면 탄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사건을 심리했음을 밝혔다. 재판을 2차 공판에서 끝내지 않고 스무 서너 차례, 장장 11개월을 끌어야 했던 재판부 나름의 이유를 밝힌 셈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한 사장의 검찰진술조서를 중심으로, 한 사장의 회사 정 아무개 경리팀장의 진술과 채권회수목록 등 검찰이 제시한 직접적인 증거자료는 물론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사용한 1억 짜리 수표, 남편의 금융거래 내역, 아들의 유학자금 등 간접증거들까지도 샅샅이 살펴보고 그것이 한 사장의 검찰진술을 입증하는지의 여부를 따져 보았음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안에서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음”을 또한 분명히 한 것이다. 재판부의 사안 별 중요한 판단은 다음과 같다. 





11개월에 걸친 재판과정에서 밝혀 낸 무죄증거들

- 정 아무개 경리팀장의 진술과 그가 작성한 유력한 증거인 채권회수목록에는 허위나 추측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에서 모호하게 진술한 부분도 법정에서는 단호하게 증언했다. 채권회수목록에 ‘의원’‘3억’ 등이 적혀 있으나 그것이 한 전 총리를 지칭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똑같은 사항도 어떤 장부는 타이핑, 어떤 장부는 손으로 기재했다.

- 한만호가 자금을 제공할 때마다 한 전 총리와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통화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그의 전화에 한 전 총리 전화번호가 입력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한 전 총리가 모 교회 신축공사 과정에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빨리 하기 위해 관계 부처에 부탁을 한 것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를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한 것이지 한씨를 위해 로비를 한 것이 아니다. 

- 한만호가 동료 재소자들에게 한 총리에 대한 정치자금제공사실을 떠벌렸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한만호의 검찰진술의 신빙성을 높인다고 할 수는 없다.

- 거액을 주고받았다는 장소(한 총리 아파트 앞 길거리), 정황이 상식에 맞지 않는다.

- 한만호가 피고인 측으로부터 진술번복 회유를 받았다고 볼 수 없다. 

- 한 전 총리와 한만호는 종친이기는 하지만 거액의 돈을 주고받을 만큼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다. 

결국 한만호가 법정에서 번복한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어 재판을 속행했지만, 유일한 증거라 할 수 있는 검찰진술 역시 허위진술, 과장진술의 여지가 있으며, 객관적 자료와도 전혀 맞지 않고 합리성, 신빙성, 일관성도 결여됐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대선경선에 나서는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직접 수수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조심성이 없는 사람, 무감각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피고인은 총리를 지냈으며 오랜 기간 깨끗한 정치인으로 활동해 왔다. (정치자금을 직접 수수할)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검찰 주장에 따르면 피고인은 매우 용의주도한 인물이어야 하거니와 평소 피고인의 성격, 인간관계에 비추어 볼 때 (검찰의 그런 주장은) 맞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러므로 재판장에게는, 검찰이 제시한 수많은 증거자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이,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한 전 총리의 티없는 일생을 새삼 확인해 가는 과정과 다름없었을 터다. 





재판장도 고개를 흔든 정치검찰의 짜맞추기

다시 법원 앞마당. 지지자들은 마음껏 흥겨웠다. 그들의 손에 들린 백합꽃이 환하게 미소 짓는 듯했다. 고작 몰상식이 상식의 상태로 돌아오고 비정상이 다시 정상이 됐을 뿐인데도 그랬다. 어쩌면 고난의 끝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될 한명숙의 정치역정에 대한 벅찬 기대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한 전 총리는 “이번 판결은 이명박 정권과 정치검찰이 합작해서 만든 추악한 공작에 단죄를 내린 것”이라며 “민주정부 10년 동안 하지 못했던 검찰개혁을 2012년 정권 교체를 통해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저는 앞으로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역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 지금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끌어안고 앞으로 통합과 승리의 길을 여는 데 저의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 이날 판결의 의미는 단순히 한명숙 전 총리의 명예를 원상회복시킨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를 살리고 민주진보정권 수립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운 채 또다시 가시밭길을 재촉하는 숙명의 부름일지도 모른다. 다만, 아무리 험하고 고된 길일망정 너끈히 헤치고 나갈 의지와 용기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항상 함께 하기를. 
 
 
 

197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던 당시
35세의 한명숙 전 총리
내가 3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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