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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0 비추천0
2011.11.07.월요일
물뚝심송





아주 오래된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요즘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FTA와 관련해서도 그 뿌리깊은 무력감의 원인이 되는 고민거리 하나가 또 발동하고야 말았다.

썰을 풀어보자.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

우리 사회가 아주 고도화로 민주화가 되어서, 실시간으로 모든 유권자의 뜻을 확인할 수 있고, 그 뜻에 따라 모든 정책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아주 극단적이고 효율적인 직접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게 과연 좋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근데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다수가 염세주의에 빠져서 우리가 사는 이 한반도를 몽땅 파괴해 버리고 다 같이 죽어 버리자는 결정을 내린다면 어째야 하나? 즉, 약 75% 의 유권자가 더 이상 이 나라를 유지하기가 싫어졌다고 결정을 내리는 상황 말이다.

그렇게 되면 삶에 대한 의지가 살아 있는 나머지 25%의 뜻과 상관없이 우린 몽땅 죽어야 되는건가?

너무 기괴한 비유라고?

그러면 좀더 실감나는 비유를 해 보자.

그 내용에 대해서 알건 모르건 다수의 유권자가 FTA를 하자고 주장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FTA를 하게 되면 어떤일이 생기는 지 알고, 그 결과를 두려워 하며, 그렇기에 이 FTA라는 흉악한 조약을 맺길 거부하고 있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소수인 상황 말이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내일 아침에 당장 전국민 직접 투표를 거행해보자. 장담하는데 FTA 찬성론자가 최소한 65%는 넘을 거다.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무조건 나랏님 하시는 일은 찬성해야 된다는 노인네들이나 자신의 부를 더 강화해야겠다는 이기주의자(이들은 별로 욕하고 싶지 않다. 인간은 원래 그런거다.)들, 그런 사람들을 다 합친 한나라당 고정표 30%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 즉 민주진보개혁어쩌구 세력들 모두와 중간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사람들 70%만 가지고 투표를 한다고 해 보자.

그래도 FTA 는 찬성표가 더 많을 거 같다. 왜냐고?

지금 일반 대중의 뇌리에 박혀 있기를, FTA는 경제적 약소국이 수출로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라는 거거든.

박정희 때 성장하면서 머릿속에 완전 꽉 들어박혀 있는 수출만이 살길이다.. 이런 명제는 생각보다 무척 뿌리깊은 존재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고 삼면(사면아니다.)이 바다고, 우리가 잘하려면 무조건 무역만이 살길이고, 아니 나아가서 무역이 아니라 졸라 수출만 해야 된다고 배우고 자랐다는 얘기다. 이 땅의 40대이상들은 말이다.

하다못해 머리카락이라도 모아서 가발이라도 만들어 팔아야 되는 그런 시절에 성장한 사람들이거든.

수출이 감소하면 나라 망하는 줄 안다.

뭐든지 만들어서 수출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보니 아이들까지 마구 수출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엄청난 아동 수출국이다.

북한과 합치면 얼추 내수 시장만으로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대안 논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바.. 북한도 나름대로 자원강국이고 인구 많은데, 남북한이 같은 경제권에 들어가면 대미, 대중 수출이 그렇게 시급하지도 않고, 유럽시장도 만만찮다는 사실은 어느덧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고, 하여간 여타 대안논리가 수두룩 빵빵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미국에 차를 팔고 반도체를 팔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온통 머리속을 휘어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건 정치적 정의하고는 또 다른 생존의 논리라서, 어떻게 설명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다.

무상급식등의 교육논리나 복지확충 같은 복지논리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나마 우리가 보릿고개 없이 밥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수출 없이 가능했겠냐는 한마디로 묵살.

우리 사회의 50대 이상은 전쟁을 직접 겪거나 최소한 전쟁의 여파로 인해 배를 곯고 자라난 세대들이다. 정치적 정의고 나발이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공포를 가슴속 저 깊은 구석에 짱박아둔 세대라는 뜻이다.

그 공포는 외부로 발현될 때는 때때로 정 반대로 발현된다. 시바.. 니들이 굶어 봤어? 하면서 난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갈 재주가 있어~ 이런 식의 허세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 상대로 경제정의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말하면서 FTA 반대논리를 설득할 재주가 있을까? 난 자신없다.

결국 현재 스코어 FTA를 반대하는 세력은 소수다. 이 소수는 FTA가 가져올 폐해를 추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미국 위주의 세계 경제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진보적인 발상이 가능한 소수다.

하지만 FTA 찬성세력은 훨씬 더 거대하다. 이들은 미국은 절대 망할리가 없으며,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선 무조건 미국시장에 뭘 가져다가 팔아야 되고 (그게 얼마나 천박한 논리인지는 먹고사니즘의 위대함에 눌려 빛이 바랜다.) 미국시장에 뭘 팔기 위해선 한미 FTA는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FTA가 통과될 경우,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먹고 사니즘에도 심대한 장애가 올 수있다는, 우리 또다시 밥 굶는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경고조차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더 험악한 상태에서도 보릿고개를 없애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거든.

엄청나게 발전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이 개인들의 노력을 얼마나 우습게 무력화시키는지, 즉, 시스템이 얼마나 무섭게 발전했는지, 우리가 함부로 그 시스템에 들어가고자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에 대해 전혀 감이 없거든.

그래서 난 졸라 무력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FTA는 어떤 형태로는 통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뒷감당을 하라는 엄청난 숙제가 떨어질 거 같다. 그 때가서 거 보라고, 이래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반대를 했잖냐고, 찬성한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개길 도리도 없다. FTA의 폐해는 찬성자 반대자를 가리지 않고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소수는 항상 억울하다.

그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과연 다수의 뜻대로 움직이는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 버리는 민주주의 라는 제도 자체가 옳은 것인가, 그러니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까지 들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되는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근거없는 낙관이 역사를 움직이는 법이다. 

거기에 한마디만 더 붙이자.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