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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 수요일

문화불패 자흔



네오 펑크의 양대 산맥


 

그린데이 GreenDay

 

          VS

 

오프스프링 Off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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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펑크록(Punk Rock)부터.

 

펑크라는 장르는 60년대 중반 로큰롤 밴드로부터 출발한다

1971년 5월. 한 잡지에 데이브 마시라는 비평가 '? & the Mysterians' 라는

밴드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처음으로 펑크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밴드 이름에 퀘스천 마크 들어가는 게 맞다. 깨진 거 아니다. - 편집자 주)

 

펑크록부터 바로 시작된 건 아니고 그 전에 개러지록(Garage Rock)이라는 장르 이름이 있었다. 말 그대로 차고에서 만든 락이라는 의미.

그러니까 우아한 가사나 화려한 연주 테크닉을 뽐내기보다는

자기만의 연주, 독특한 녹음기술, 의미없는 가사, 아마추어리즘을 표현하는, 뭐 대충 그런 것 되겠다.


그러나 대충 차고에서 만든 음악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훗날 개러지록은 펑크록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고,

그 펑크록은 팝 음악사에 혹은 가요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

 

초기 개러지락을 이끌던 밴드에는

벨벳언더그라운드, 도어스, 더 후, 롤링스톤스

(Velvet Underground, Doors, The Who, Rolling Stones)

등등이 있었는데 끊임없이 실험하고 반항하고 자유를 부르짖으며

정치적 저항도 했던 밴드들이다.

 

이런 밴드들이 초석을 다지고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하나의 장르가 된 게 펑크록 되시겠다.

 

1970년대 펑크록 밴드들이 주로 다룬 내용은

반정부적, 반문화적, 반항적, 자기들만의 정치노선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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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린데이부터 가보자.


 

Green day - Basket case

 

1990년대 중반 커트 코베인의 죽음으로 얼터너티브 락의 인기가 시들해질 때, 가장 혜택을 입은 음악 장르는 펑크록이었다.

 

1970년 중반에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펑크록.

 

그것이 1990년 중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강한 사운드와 메세지를 들고

네오 펑크라는 장르로 부활다

 

그 선두주자엔 말할 것도 없이 그린데이가 있었다.

 

그린데이는 키타와 보컬을 맡은 빌리 조 암스트롱을 중심으로

캘리포니아주에서 결성된 3인조 밴드이다.

 

72년생 동갑내기들로 이루어진 그린데이의 초반 등장은 그럭저럭이었다.

'펑크의 껍데기를 쓰고 나온 아류들'이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1994년 이 앨범 한 장으로 모든걸 뒤집어 버린다.



 


 

 

 

 


 

 

 

 

 

그들의 통산 3집이자 메이저 데뷔앨범 [Dookie]

이전의 펑크는 가라, 새로운 펑크가 왔다!!




평론가들은 거친 펑크라는 장르를 90년대 주류에 맞는 감각으로 살려냈다며,

네오 펑크, 새로운 펑크의 1인자라고 했고,<타임>지는 최고의 록 앨범으로 꼽았다.


상업적으로는? 'Basket Case', 'Longview', 'When I Come Around'

이 세 곡이 록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천만 장 이상을 팔아 치우고

다이아몬드 앨범 인증을 받게 된다.

 

이 앨범의 영향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헤매고 있던 펑크락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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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Day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이전의 펑크밴드들이 뒤틀리고 망가진 사회현실이나 정부를 믿지 말라거나 아니면 DIY를 노래했다면,

그린데이는 자기혐오, 패배감, 그로 인한 부질없음, 고독함 즉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감을 노래했다.

(위에 나오는 노래는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만든 노래)

 

물론 그린데이의 인기는 끝이 없었지만

성공의 자리가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그린데이를 그냥 놔두고 있을 평론가들이 아니었다. 갑자기 그린데이에게 진정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펑크정신을 잊었는가? 시끄럽다고 다 펑크냐? 사회적인 메세지는?'

'펑크의 이단자 같으니라고! 어서 빨리 펑크의 탈을 벗어라!'

'너희들은 펑크의 혁명가가 아니다!'

 

그런 평론가들에게 그린데이는 일침했다


'펑크는 단지 언더그라운드야. 그러니까 그냥 냅둬! 그냥 좀 재미있게 놀게 냅둬!'

 

그린데이는 혁명가도 아니었고, 펑크정신을 지고 갈만한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냥 누가 옆에서 뭐라 하던 말던 무대를 뛰어 다녔다. 그냥 악동이었고 개구쟁이였다.

 

평론가들은 혹평과 별개로 대중들은 열광했다.

 

2005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올해의 비디오상, 최우수 그룹 비디오, 최우수 록비디오

2005년 제33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얼터너티브부문 인기아티스트상, 팝/록부문 최우수 앨범상

2005년 제47회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록앨범상

2006년 제48회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레코드상

2009년 제26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최우수 록 비디오상, 최우수 감독상, 촬영상

2009년 제37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최우수 얼터너티브 락 아티스트상

2010년 제 52회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록앨범상

 

상주고 욕하고, 상주고 욕하고,

 

그린데이의 앨범이 나올 때마다 펑크록에서는 딱히 대안이 없었다.

 

그냥 그린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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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데이의 2004년 대히트 앨범 [American Idiot]




Green Day - American Idiot

 

그러나 분명히 그린데이도 달라지고 있었다.

이전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사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데 앞장을 섰고, 부시한테 투표하는 바보같은 미국인들이라는 메세지 강한 노래도 부르고.

그린데이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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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데이가 네오펑크를 독식했다면 별로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평론가들과 대중들은 라이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프스프링이 등장한다.

 

그린데이의 반대쪽에는 오프스프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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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오프스프링의 [Smash]

 



The Offspring - Self esteem

 

1994년 그린데이의 [Dookie] 앨범이 휩쓸고 있을 때

오프스프링은 [Smash]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네오 펑크의 시대를 알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쏘아 올린 두 장의 거대한 앨범.

 

한 장은 그린데이의 [Dookie] 앨범이었고

또 한 장은 오프스프링의 [Smash]라는 앨범.

 

이 앨범의 등장으로

평론가들은 네오 펑크라는 장르에 제대로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린데이만으로는 네오 펑크를 규정지을 기준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린 정의는 이런 것이었다.

 

그린데이 = 양아치 네오 펑크

오프스프링 = 범생이 네오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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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스프링은

매닉 서브사이덜(Manic Subsidal)이라는 이름을 달고

그린데이보다 좀더 일찍 밴드활동을 시작했다.

 

밴드란 게 그렇듯이 오프스프링도 심한 멤버 교체가 있었는데

기타와 보컬을 담당한 덱스터 홀랜드를 주축으로 1989년에

비로소 밴드가 완성됐다.

 

처음 이 밴드가 등장했을 때는 보잘 것 없었다.

정통 메탈밴드들이 워낙 강세였고, 그들이 들고 나온 펑크라는 장르도

좀 수상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부잣집 아이들이 모여서 부르는 펑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펑크는 즐기라고 하는 음악이 아니다.'

'코드가 그게 뭐니?'

 

그러나 그들은 [Smash] 앨범 한 장으로 모든 걸 뒤집었다

(그린데이가 [Dookie] 앨범으로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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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ffSpring - Come out and play (Keep Em Seperated)

 

오프스프링의 펑크록은 좀 달랐다.

그 이전의 음악과도 달랐고 그린데이와도 달랐다.

 

'3가지 코드만 안다면 당신도 펑크록을 연주할 수 있다' 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밴드이면서도,

그린데이가 가볍고 발랄했다면 오프스프링은 무겁고 거칠고 음침했다.

 

한때 시애틀 그런지 음악의 방계일 뿐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오프스프링의 펑크록은 또 다른 네오 펑크였다.

 

간혹 몇몇 곡에서 들려주는 묵직한 기타루프가 그랬고,

다양하고 이국적인 멜로디가 그랬다.


'Self esteem' 한 곡이 끝을 내주었다. 모두가 열광했다.

 

그린데이가 언더그라운드 출신이면서 오버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닐 때,

오프스프링은 MTV를 장악했다.

 

네오 펑크를 부추기면서 인지력을 높여 가고,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지긋지긋하게 생명력을 유지하던 얼터너티브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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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스프링의 98년 5집 [Americana]

 



 

그린데이가 소속사와 화목하게 지낼 때,

오프스프링은 소속사와 갈등이 많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던 Smash 앨범의 성공 때문이었다.

 

스매시라는 앨범을 내기 전에 영세업체였던 에피탑래코드사는

오프스프링을 트레이드 하려고 나선다.

 

이 때문에 일어난 고소, 삿대질과 욕설, 쇠고랑에 표절 시비.

 

그대로 몰락할 것 같았던 오프스프링은

[Americana] 앨범을 내면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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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ffSpring - Pretty fly (for a White guy)

 


 

그린데이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동안

오프스프링은 새로운 것에 몰두했다.


전자음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정통 메탈의 기타연주도 사용해보고

다른 나라의 전통적인 음계들을 조합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 펑크이면서도 펑크가 아닌 것, 또 다른 펑크에 몰두했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때마다 어색하고 산만했으며

소위 잘 나가는 밴드들을 따라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지만

 

대중들은

그저 신나는 밴드였어, 펑크 좀 했는데 이제는 힘이 딸려 보여

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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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앨범을 내며 네오 펑크를 유지하는 그린데이와는 달리,

그리고 힙합과 알앤비와 팝에 힘을 잃은 많은 밴드들과는 달리,

오프스프링은 2000년도를 헤집고 다녔다.


물론 음반 판매량으로 보면

그린데이가 월등하다.

그러나 차트 순위 집계에서는

오프스프링이 월등하다.


 


 

 

 

 

 

 

 

 

 

 

 

 

 

 

 

 

 


 

 

 

 

 

 

 

 

 

 

 

 

 

 

 

 

 


 

 

 

 

 

 

 

 

 

 

 

 

 

 

 

 

 


 

 

 

 

 

 

The OffSpring - The kids aren't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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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를 만나면 겁부터 난다.

그것이 하위문화면 더 그렇다.


하위문화가 주류로 떠오르면,

주류문화의 기득권자들은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시기하고 위협한다.

 

저것들이 내 밥그릇 뺏지는 않을까,

내가 받아 들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일까.

 

늘 새로운 것을 말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썩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70년대 펑크음악도 그랬고

90년대 네오 펑크음악도 그랬다

(아마 조선 펑크도 그랬다지? 조선 펑크는 다음에.)

 

기득권들은 겁을 먹으며 당황했고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열광했고 환호했고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을 것이고 알아주길 원했을 것이다.

 

그린데이가 오프스프링이 꼭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런 쪽의 정반대편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더럽고 치사한 사회에 거대한 중지를 날리는 대신

어쩔 수 없어, 그냥 그런거지 뭐, 대신 눈치보지 말고 신나게 놀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라는 메시지.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자각의 효과를 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엿이나 처먹어라 는 가사는 혁명이 되어서

하나의 거대한 담론으로 자리를 잡았고

간단한 기타 코드는 음악사에 새로운 코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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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불타오르기 바랐던 네오 펑크도 이제 서서히 내리막을 가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나오고,

어떤 것들은 주류가 되고 어떤 것들은 비주류가 되었다.

누구는 펑크의 시대는 갔다고도 한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네오 펑크의 끈을 놓치지 않고 이어가는 밴드들이 있다.


골드핑거, 블링크182, 섬41, 위저, 랜시드 등등.

밴드 이름은 달라도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의 네오 펑크영향을 받은 밴드들이다.

더 세련되어지고 조금 얌전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펑크정신을 가지고 있는 밴드들.


거슬러 올라가면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이 있었고,

더 거슬러 가자면 섹스피스톨스와 크래쉬가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모두들 기득권의 불합리에 저항하고 가치 없는 것들에 눈을 돌리고

(굴하지 않고 떳떳이) 시대정신을 노래한 것만은 틀림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펑크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든다.

 

이제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은 최전선에서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두 밴드가 남긴 세상에 대한 거대한 fuck 아니 새로운 punk는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캬-_-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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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ffspring - Hit That

 

Green day - She



funk와 punk를 헷갈리는 분은 없겠지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