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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 화요일
산하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은 사실상 "들키면 불륜, 안 들키면 로맨스"라는 말과 통한다. 즉 남이 하는 행동을 내가 알았기에 그건 불륜이 되는 것이고, 내가 은밀히 하는 일은 공개되지 않았기에 로맨스일 뿐인 것이다. 세상 70억 인구 중에서 대충 알 거 아는 나이를 지난 사람들 중에 로맨스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여드름 나는 청춘으로부터 요양원 아랫목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마찬가지다. 



 
"너희 중에 마음으로 간음한 자는 다 간음하였느니라." 하신 예수님의 극단적인 말씀은 좀 접어두자. 정히 그러실 거면 당신 아버지더러 "왜 남녀를 갈라 놨습니까?"를 따지고 드신 다음에 인간들을 나무라시는 게 순서지. 아마 장담하는데 지금 예수님을 알현한다면 웃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짜식아 말이 그렇지 뜻이 그러냐?" 아니라고? 당신은 예수님 만나 봤어? 

각설하고 간음 아니 아니 로맨스의 욕망은 사람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지금 페이스북에 출몰하는 내 친구 녀석처럼 장가간 뒤에도 핑크빛 사연이 끊이지 않는 행운아(?)도 있고, 마음은 굴뚝이어도 여러 여건과 사정상 그 굴뚝을 용접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하이에나처럼 뭔가를 찾아 초원을 배회하기는 하지만 허구헌날 동네 똥개처럼 배 걷어채이다가 볼짱다보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행각은 중요한 영역에 속해 있다. 그건 '사생활'의 영역이다.




사생활의 사전적, 법률적 정의를 구해 보자. 세계인권선언 제 12조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 가족, 주거 또는 통신에 대해 타인으로부터 간섭받거나 명예와 신용에 대해 공격받을 일은 없어야 하고, 사람은 누구나 간섭 또는 공격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개인적인 일'이란 영어로 프라이버시(Privacy)이다. 최소한 자신만의 영역이라고 판단되는 시공간에서는, 법을 어기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한 누구로부터의 관심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는 것이다. 누구를 좋아하든 말든, 누구와 자든 말든, 누구와 오랄을 하든 후배위를 즐기든, "법을 어기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 상대도 기꺼이 그에 응한다면" 그건 사생활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벗어나서도 안된다. 

일찍이 박정희가 신봉했다는 "배꼽 아래 인격 없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나는 박정희가 내 친구가 지닌 화려한 달변과 내 페북 친구인 모 변호사님같이 수려한 미모와 내 트윗 친구처럼 작렬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로맨스를 만들어 나갔다면 그의 '배꼽 아래' 행적에 일언반구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자신의 권력으로 꾸미고 완력으로 장식했다. 

"저 탤런트 아가씨 이쁘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정보기관원이 그 아가씨를 찾아가서 "코드 원이 보자십니다."라고 청하고 말 안 들어먹으면 "너 인생 고장나고 싶어?" 겁박하기도 해서 술자리에 끌어다 놓고, 그것도 각하께서 선택하시라고 두 명 이상을 데려다 놓고 술을 먹다가 '머리가 기울어지는' 쪽으로 로맨스(?) 상대를 정했을진대, 이게 무슨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며 존중받아야 할 로맨스이겠는가. 이건 당연히 범죄 행위이고, 그 배꼽 아래는 결단코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 고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내 새끼들의 얼굴과 이름은 까발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생활을 운운한다면 그건 발정난 고양이 울음만도 못한 짐승의 비음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또 언젠가 로비스트와 놀아났던 군 장성처럼 자신의 직위를 오남용해서 애인에게 기쁨을 안겨 주거나 어느 세무 공무원처럼 국민 세금을 애인 아파트에 쏟아붓는 놈들의 사생활 역시 보호받을 권리를 상실하는 것이다. 배꼽 아래도 인격이 있고, 보호받아야 할 인격과 그렇지 못한 인격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동의? 



어떤 '배꼽 아래'


'나꼼수'에서 느닷없이 가카의 사생활을 건드렸다. BBK 사건으로 기억에 선명한 에리카 김과 가카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음을 암시하면서, 그와 별도로 사생아까지 있다는 투의 멘트를 날린 것이다.

내 알기로 가카가 에리카를 만났을 때는 끈 떨어진 갓이 되어 미국에 갔을 즈음이니 박정희처럼 그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와 '로맨스'를 강제한 것은 아닐 터이다. BBK 사건과 그녀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법률적으로 파고들고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여 범죄의 성격을 규명하고 가해와 피해의 유무를 따질 문제이지, 그와 그녀의 관계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성질의 것일 수 없다. 그렇다면 나꼼수의 폭로(?)는 무엇을 위한 것이 되는가. 

가카와 그 주변 인물들의 공적 행동, 사회적 행위의 범죄성을 대담하게 드러내고 날카롭게 풍자하고 다 함께 조소하면서 나꼼수는 그 명망을 쌓아 온 것으로 안다. 그 점 나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폭로와 해학에도 인격이 존재한다. 감추인 것이라 해서 다 까발리고, 특종이라고 해서 무조건 떠들어댄다면 그는 나꼼수의 성가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 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이 속한 또는 속했다고 여겨지는 진영에 대한 자살 수류탄 투척이 될 수 있음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사생활의 자유는 인류가 지금까지 힘들여 구축해 온 인권의 성채 중의 하나이고, 지금도 그를 부정하는 세력으로부터 호시탐탐 위협받고 있는 현실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이 좋겠다. 



시도 때도 없이 쉿! 만큼이나 시도 때도 없이 no쉿! 은 위험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한 개인의 사생활이 그 영역을 벗어나 불법의 혐의가 발견되고 공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때 사생활은 폭로할 가치가 생성된다. 반면 은밀한 사생활을 들춰내어 인간적 면모를 깎아내기 위한 시도라면 이는 매우 건전하지 못하며, 바로 박정희나 전두환의 정보 기관이 매우 즐겨 써먹던 수법이다. 콕 이름을 찍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유신 때 그렇게 견결한 투사였다가 5공 이후 갑자기 변신했던 대학 교수의 경우도 그랬다는 전설이 있고, "중앙정보부 흥신소"에 의해 패가망신을 했던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나는 그것이 인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고 여기며,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비슷한 행위가 벌어지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나꼼수의 폭로가 사실이든 아니든, 가카는 연애할 자유가 있다. 단 책임은 김윤옥 여사에게 져야 한다. 그가 국고를 축내서 연애를 하거나 상대를 권력으로 겁박하거나 애인에게 빠져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는 한, 나는 그의 사생활의 자유를 옹호한다. 나는 그 내막을 '몰라야 한다'.

나에게도 사생활을 허하라. 혼자 놀기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