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추억] 사장학개론

2012-04-10 15:04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너클볼러 추천0 비추천0

2012. 4. 10. 화요일

너클볼러


 


그곳은 PCB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난 그곳에서 원판을 재단하는 일을 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원판을 들어 옮기고, 자르고, 나르고 하는 일들을 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늘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해야 했다. 분진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부분 끼지 않았다. 숨이 차기 일수였기 때문이다. 생산에 투입해야 하는 원판을 계속 잘라 날라야 했다. 평생 먹을 먼지, 그곳에 있던 2년 동안 다 먹었다. 사실이다.


 


프레스반 형들의 선택도 늘 그런 식이었다. 안전센서(손이 프레스 사이에 있으면 작동이 되지 않는)를 늘 끄고 일했다. 끄지 않으면 손가락, 손이 날아갈 걱정은 없으나, 생산량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늘 생산량이었다. 내가 일했던 2년동안 수건을 손에 감싼채 병원으로 실려가는 모습을 딱 세번 봤다. 이거 무슨 쌍팔년도 얘기냐고? 정확히 2004년도 얘기다.


 


주야 맞교대였다. 내가 주간을, 밤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때딕'이 책임졌다. 생긴 건 나보다 너댓 살은 더 많아 보였으나 늘 나를 형이라 불렀다. 사실 내가 한 살 형이기도 했다. 한 달 내내 밤새 일해도 받는 임금은 6-70만원 정도였다. 그러니 난 항상 주간, 때딕은 항상 야간이었다. 때딕은 짧은 우리말로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형. 돈 너무 짜. 너무 짜. 힘들어."



 


고향에 돈도 보내줘야 하고, 알선 수수료도 내야 하고, 이것저것 먹기도 해야 했다. 아무 것도 없는 컨테이너 박스 같은 기숙사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늘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때딕에게 이렇게 대꾸했다.


 



"때딕. 나도 힘들어."



 



 


만드는 제품의 공정상 여름엔 졸라 덥고, 겨울엔 따뜻했다. 헌데 내가 일했던 재단실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뭐 그랬다. 재단실은 사장님 전용 파킹 스테이지 옆에 있었다. 졸라 일하다 잠깐 쭈그리고 앉아 담배라도 하나 물고 빨기 시작하믄 사장의 대형 쉐단 '체어맨'이 스르륵 하고 들어온다. 사장의 출근 시간은 늘 랜덤이었지만 주5일 중 4일은 내가 담배 피고 있을 때 들어오곤 했다. 신기하기 그지 없게도... 차문이 스스륵 열리고 사장님이 내린다. 난 담배를 얼른 끄고 일하는 척을 한다. 사장의 검은색 쉐단도, 검은색 구두도 늘 반짝거렸다. 회사에서 가장 깨끗한 거, 바로 사장의 쉐단과 구두였다.


 


일하는 척을 하면서 사장 쪽을 곁눈질 한다. 피우다 만 담배가 아쉬운 탓이었다. 차에서 내린 사장은 공장을 '스윽' 한번 훑는다. 그리고 쉐단, 구두에 혹여나 먼지가 묻었는지 확인하곤 했다. 내 머리엔 먼지가 서릿발처럼 내려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트렁크를 연다. 꼼지락, 꼼지락. 큼지막한 아이언을 꺼내들고는 보란듯 호탕한 스윙을 하기 시작한다. 사장의 체구는 거의 김구라 수준이었다.(너무 비슷해 김구라를 언급한 것뿐이다) 스윙은 호쾌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마치 '일하는 시간에 잠깐이라도 농땡이 까믄 아이언, 오케이'라믄서 무언의 협박을 하는 듯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스윙을 하곤 2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눈치 보던 나는 그제서야 못다피운 담배를 다시 꼬나문다.


 



 


지하엔 구내식당이 있었다. 10년이 넘게 할머님이 주방을 맡고 계셨다. 회사에선 할머니에게 월급을 준다. 그리고 1달 음식값을 주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12시 점심과 5시 저녁, 12시 야근조 점심 이렇게 하루 세 끼를 준비한다. 돈은 늘 부족하다 했고, 반찬은 형편 없었다. '할머니 이거 반찬이 뭐예요'라고 누군가 한 마디 하믄 눈물을 글썽이믄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왜 나한테 그래. 나보고 어떡하라고"



 


사장과 일부 임원들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지 않았다. 가끔 내려온다 쳐도 반찬을 보곤 '아줌마 반찬이 이거 왜 이래. 난 라면' 이러곤 했다. 그들이 '난 라면'하면, 라면에 계란까지 하나 멋지게 풀어제낀 라면이 자리로 배달 됐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임원처럼 라면을 먹고 싶어했다. 무채에, 깻잎, 콩자반에 미역물(미역에 물만 들어가 있는 국을 난 미역물이라 불렀다)이 전부인 식판을 앞에 두고 옆에서 풍겨오는 라면 냄새를 참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 나도 들으란 듯이 '할머니 나두 라면'이라 외쳤다.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었고, 할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라면을 처묵던 임원만이 '미친놈'이라고 한 마디 건넬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2시쯤인가 식당에 내려갔다. 그나마 할머니와 친했던 터라 할머니가 숨겨놓은 라면을 몇 개씩 받아다가 쉬는 시간에 사람들과 깨먹곤 했다. 할머니는 늘 내게 라면 서너 개를 쥐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만 특별히 주는겨"



 


그날도 라면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헌데 식당엔 사장님이 앉아 있었다.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일하는 시간에 여길 왜 처내려왔냐는 욕을 처묵게 생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장이 뭔가 찔리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순간 난 '할머니 물 안 나온다면서요? 어디에요?' 멘트를 치믄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믄서 사장의 식판을 봤다. 우리가 먹은 점심과는 전혀 딴판의 식단이었다. 양은냄비 속 김치찌개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계란 후라이의 흰자는 너무나 깨끗해보였다. 허나 노른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가 더 있었는데... 다 확인하진 못했다. 대충 수도꼭지를 보는 척 하다 현장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1시간쯤 지나 다시 내려갔다.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사장은 늘 2시쯤 내려와 따로 점심을 먹는다 했다. 계란 후라이를 좋아하고, 늘 노른자를 빼고 부쳐준다고 했다. 사장이 살찔까봐 특별한 주문한 것이었다.


 


PCB라는 게 원래 그렇다. 저임금 구조에 노동은 고되다. 그래도 버는 놈들은 따로 있었다. 임원들은 4-5시면 퇴근했다. 일은 넘쳐났고, 힘들었다.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난 군대 대신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병역특례병이라 불리는. 내게 희망은 '2년만 일하면 떠난다'는 것이었다. 이 희망마저 없는 이들은 그저 슬플 뿐이었다. 현장 직원들은 물론, 관리자들도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몇몇 생각있는 관리자들이 현장 직원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이 줄어들었던 때가 있었다. 서서히 줄더니 주야 2교대를 할 수 없는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직원들은 모두 주간으로 돌려 주간 근무만 했다. 하지만 줄어들기 시작한 일감으론 야근도 힘든 상황이었다. 헌데 일도 없는데 늘 야근을 시킨다. 허구헌날 청소를 시키고, 재고를 조사하게 하고, 방금 점검한 장비를 또 점검하라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사장의 지시였다. 일이 없다 하여 직원들을 쉬게 하면 이 다음에 일을 시켜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장은 모든 걸 다 지맘대로 할 수 있었다. '불만' 그런 것들은 자신의 돈 몇 푼 쥐어주면 만사오케라 대놓고 피력하곤 했다. 그러나 '불만'은 돈 몇 푼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현장의 몇몇 관리자들에 대한 직원들의 신망은 두터웠다. 그 몇몇은 때론 거부할 줄도 알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할 말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신망이란 건 그렇게 쌓였다. 임원이란 양반들은 그게 싫었다. 사장이 하고 싶은 말만을 옮기고 사장이 시키고 싶은 일만 시키는 메신저인 그들에게, 신망이라는 건 사장의 욕망의 표현일 뿐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건 몇 해 전 회사를 나갔던 악명높은 관리자를 영입해 자신들과 반동 관리자들과의 사이에 박아넣는 것이었다. 사장은 이 건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듯 승인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장의 아주머니 한 분은 청심환을 노가리 씹듯 한 덩어리 꿀꺽 하시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직원들을 직급에 상관없이 '년'과 '놈'이라 불렀다고 했다. 굳이 어떤 넘이냐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줌마의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현장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무실로 향했다.


 


모든 직원들의 서명이 담긴 연판장을 돌리기로 했다. 그지 같은 관리자의 영입을 반대하고, 사장의 눈치나 보면서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엿 같은 관리자들과 반성과, 직원들의 합당한 의사와 요구에 귀기울여 사기를 진작하고, 그를 통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애사심을 발휘, 함께 회사를 발전시키자 뭐 그런 내용을... 나보고 쓰라는 것이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산업특례병이었다. 그리고 일종의 전역, 그러니까 퇴사를 한 달 앞두고 있었다. 연판장을 준비하고 일 주일 뒤 공장을 전원을 모두 내리고 확실한 의지를 담아 사측에 전달한다고 했다. 까딱 잘못해 뭔 일이라도 생기면 그 동안의 개고생은 모두 허사가 될 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제안을 한 관리자 형님은 내게도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었다. 대단한 의지가 아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황 속에서의 결정이었다. 딱 담배 한 갑을 해치우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연판장은 그렇게 작성이 되었다. 서명도 완료되었다. 결전이 날이 밝았다.


 


오후 2시에 일제히 전원을 내렸다. 직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모였다. 사측에선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이 시간 맞춰 회사를 빠져 나갔고, 연판장은 임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임원들은 차분히 준비된 멘트를 씨부렸다.


 



"마.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달려달라"



 



 


'그래도 공장을 세웠으니 한 번 지켜보자'는 의견에 따라 모두 해산했다. 내가 실제 겪은 첫 번째 파업이자,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짧은 파업이었다. 다음 날 회사에 포섭된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포섭된 사람, 그리고 불안해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이미 정상적으로 가동할만큼 되고도 남았다. 연판을 주도했던 관리자들은 사직서를 올렸다. 무리해서 그들의 사직을 승인할 경우 그로 인한 업무의 혼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직서엔 등돌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이제 내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작성했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터였다. 그 날 오후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내에 계신 00씨, 00씨 지금 바로 사장실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씨바, 조때다.


 


사장은 온화한 표정으로 책상앞에 앉자 PC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불안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사장은 졸라 온화한 표정을 날 바라보며 일어나서는 쇼파에 와 앉았다. 그리고 나보고 앉으라 했다. 뭘 마시겠냐 물었다. 불안했는지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후 비서가 커피를 가져왔다. '음. 커피를 시켰구나.' 사장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몇 살이지?"



 


이렇게 간단한 몇 가지 신변 얘길 주고 받았다. 냉면 육수를 들이키는 소리로 커피를 한 잔 들이키고는 식겁한 질문을 건냈다.


 



"너 이제 2주 남았지?"



 


이 상황을 미리 예측하여 모법답안을 작성해 놓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연습까지 했다. 헌데 정리가 되지 않았다.


 



"사장님. 그러니까. 사실. 그게..."



 


머뭇거리던 사장이 내 말을 끊었다.


 



"그래 젊은 나이엔 그럴 수 있어. 바꾸고 싶은 게 많겠지. 그지? 근데 말야. 세상엔 쉬운 게 없어.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우리 처남이 있어요. 너보다 한두 살 정도 위일 거야 아마. 너랑 비슷한 성격인 것 같어. 근데 말야. 일찍 이민을 갔어. 거기서 한두 해 고생하더니 지금 자리잡고 잘 살고 있어. 너 보니까 말야. 우리 처남 생각이 나. 너도 말야. 더 늦기전에 내 얘기 함 잘 생각해봐. 힘들어도 나가 사는 거야. 가능성이 많아요. 젊어서 도전을 해야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함 떠나봐.'



 


어. 이거 뭔 얘기지. 당장 회사를 떠나란 말인가. 나 같은 넘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내가 황무지와 같은 먼 이국에서도 자리잡고 살 만한 진취적이고 능력있는 넘이란 말인가. 도대체 뭔 말이냐고.


 



"가봐"



 


혼란한 머리 속까지 도달한 것은 '꺼지'라는 사장의 말이었다.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하고는 사장실을 빠져 나왔다. 혹시 누군가 내게 '유 퐈이아'라고 할까봐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때딕은 자뭇 진지하게 내게 뭐라고 했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잠에 들었다. 막상 다음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했다.


 


출근하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불안감뿐이었다. 회사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악덕 관리자가 첫 출근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 관리자의 첫 미션이 나같은 반동을 정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 들이킨 술이 순식간에 분해되면서 머리 속이 깨끗해졌다. 최악의 상황, 바지끄댕이라도 잡고 늘어진다는 배수진을 쳤다. 저멀리서 누군가 내개 달려왔다. 저놈은 분명 초당 24프레임 정도로 오고 있을진데 내 눈엔 초당 300프레임 정도의 슈퍼 슬로우로 보였다. 바지끄댕이를 잡을때는 살짝 무릎을 꿇어주는 것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달려온 친구놈이 내 눈 앞에서 이러는 것이었다.


 



"야. 어젯밤 일이 하나도 안 돼있어. 지금 난리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밤 때딕이 해놓았어야 할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숙소에 뛰어가 문을 열었다. 방은 너무나 깨끗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어제 밤 때딕이 멘붕상태인 내게 했던 말은 일종의 작별인사였던 것이다. 문틈에 앉아 담배를 하나 물었다. 때딕은 착한 친구였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주면 '형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하던 친구였다. 정확히 오늘부로 그 친구는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다. 허나 더 이상 때딕의 걱정을 해주진 못했다. 이미 내 앞에는 새로온 관리자가 떡하니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던진 첫 인사는 이러했다.


 



"야이 새끼야. 어서 담배피고 있어. 라인 끊기믄 죽을 줄 알아."



 


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총알처럼 튀어갔을 뿐이었다.


 



 


며칠 후 사직서를 제출했던 관리자 몇몇이 돌아왔다. 이렇게 회사는 더욱 안 좋은 꼬라지로 견고히 구축되었다. 때딕 없이 난 남은 2주를 입에 거품물고 채웠다. 후임자가 오기까지 며칠을 더 채운 후 난 퇴사, 아니 제대를 했다. 별다른 송별회 이런 건 없었다. 조용히 잔업까지 마치고 퇴근한 게 전부였다. 취업을 하고 몇 년 뒤 회사를 찾았다. 분위기는 더욱 어두웠다. 사람들은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몇몇 놈들은 참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장도, 임원들도, 그들이 데려온 관리자도 그대로였다. 당연 회사도 그대로였다. 매캐한 냄세도, 핸드폰 벨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소음도 그대로였다. 아니 조금 바뀌었다. 매출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급여는 대부분은 동결되었고, 일부 관리자들의 급여는 감봉되었단다. 일부 관리자들은 당연 '단기속성파업'을 주도했던 이들이다. 주차장엔 번쩍이는 새 차가 눈에 띄었다. 새로 바뀐 임원들의 차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다.


 


회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자주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 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뻔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깐. 기업이라는 공적인 조직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장의 소유물쯤으로 인식되는 이상, 사장과, 사장이 임명한 수족(임원)이 그대로인 이상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조합을 만들어 정당한 요구안을 들고 사측과 협상하고 싸우는 구조를 만든다는 건 왠만한 중소기업에선 대충 10억 광년은 떨어져 있는 이름없는 행성에서나 가능한 일로 치부된다. 어렵다. 정말 어려운 것이다. 이제 직장생활 10년차쯤에 접어들고 있으나, 회사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적 없다. 정당한 불만과 요구가 있더라로 대부분 결론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되었다. '그냥 붙어 있거나' 아님 '냅다 째거나' 그저 속담처럼 중이다. 절을 앞에둔. 서럽고, 힘들다.


 


안타깝게도 가카에게선 사장의 향기가 난다. 사장은 결재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수족과 같은 임원들을 곳곳에 짱박으면 만사 편하다.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할 이유도 없다. 뭐 문제가 심각하다 싶으면 전 사장 탓하거나, 임원 하나 책임 물어 짤라버리믄 되니깐, 이렇게 지난 4년 동안 국가는 개인의 소유물쯤이 되어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난 10년을 직장생활하면서 회사가 바뀌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참여가능한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일단 '임원'들은 바꿀 수 있다. 사장의 수족이 아닌 우리의 수족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그게 바로 내일이다.


 


'바꾸면 뭐하나. 그게 그거지'라 미리 주저하지 말자. 우리가 다니고 있는 직장 함 생각해보자. 임원과 사장이 직원의 힘으로 통째로 바뀌었다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럼 회사 바뀐다. 그래도 안 바뀐다믄 그건 다른 문제가 있는 거다. 악령이 씌었다거나, 회사 밑으로 폭 10km, 깊이 10km의 거대한 수맥이 흐른다거나 하는 뭐 그런 거...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이 말에 대답해줘야 할 때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우리 손으로 임원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4년 동안 눈치보면서 사느라 수고했다. 임원들을 바꾸면, 사장도 바꿀 수 있다. 그럼 나라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우린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전국의 직장인이여 대동단결하라. 예비직장인도 총발기, 아니 총궐기 하라. 70% 가당찮다. 100% 참여하자. 그리고 우리 간만에 기분좋게, 밤새도록, 코가 삐뚤어질때까지 함 마셔보자. 술이 얼큰하게 올라왔을 때쯤 '씨익' 웃으면서 앞선 질문에 이렇게 답하도록 하자.


 


'조까'


 



 


11일, 내일 하루를,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우리 모두의 생일판으로 만들자. 그리고...


 


 


 


'미리 생일 축하한다. 모두'


 


너클볼러

twitter:
@Knuckleballer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