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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가라앉았지만,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2014년 4월 16일 이후, 4월은 우리에게 한층 더 잔인해져 버렸다. 2년 전 그날, 300명에 달하는 젊은 생명들이 그대로 바다 깊숙히 수장되어 버린 탓이다. 긴급한 구조 상황 앞에서 보여 준 정부 당국의 안이한 대처와 미디어의 부재, 그 이후 조성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혐오 언론 탓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2년 전 벌어진 사고가 아닌, 부패와 관료주의, 극심한 이기주의 등 현재 한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문제들을 한 번에 품고 있는 얽히고 설킨 실타래와 같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현재진행형인 이 참사를 그저 두고 볼 수만은 없던 프랑스 내 교민 몇몇과 한국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이 모여 이상호 기자의 <다이빙벨> 상영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영화는 2014년 10월 2일, 끝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이용관 위원장 퇴출, 지원금 대폭 삭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의 믿기지 않는 스캔들을 만들어 낸 바 있다. 그 어디에서보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이 많은 프랑스에서 적잖은 이들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서글프게도 그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시도 때도 없이 한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다이빙벨> 상영 토론회는 2016년 4월 15일과 16일 양일,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연구원(EHESS)과 프랑스 국립동양학 대학교(INALCO, 이날코)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그리고 행사 마지막 날, 현장에 본지 기자 역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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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프랑스 국립 동양학 대학교에 배부된 행사 전단


자원봉사 요청을 받고 4월 16일,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프랑스 국립 동양학 대학교에 도착했다. 지난해 말과 얼마 전에 발생한 테러로 인하여 학교를 비롯한 프랑스의 공기관은 여전히 경비가 삼엄하다. 가방을 열어 보여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방문 목적을 전달한 이후에 입장이 가능했다. 학교는 아직 중간고사 기간인지라 복도 곳곳에서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이 속속 도착하여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영상을 상영회장을 안내하는 등 분위기가 조금씩 분주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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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시작 10분 전, 사람들이 하나둘 입장하고 있다.


전날 참석 인원 80여 명보다 1.5배 많은 130여 명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상영토론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순간, 행사를 준비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내게 와서 사진 촬영 자제 요청을 해 왔다. 이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에 수 회 패널로 참여한 바 있는 영화평론가 바스티앙 메르손(Bastien Meiresonne) 씨에 따르면, 이미 전날 상영회에 ‘스파이’로 보이는 이들을 감지했다고. 아마도 국정원에서 보낸 사람들이 아닐까 추측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국가 전복 모의를 하는 것도, 테러 모의를 하는 것도 아닌데, 한국의 시민들은 국가 밖에서도 정부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한국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신변 안전을 위하여 촬영한 사진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가렸다. 양해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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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프랑스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노란 리본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위한 이 리본은 한국에서 물 건너왔다. 딸이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라며, 이 행사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메세지와 함께 한국의 한 주부가 손수 리본을 만들어 파리로 보냈다. 이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십시일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의 프랑스어 자막 제작부터 프로모션, 장소 섭외, 행사 통역 등 모든 절차를 그 어떤 지원도 없이 기부와 자원봉사로 조직 및 진행하였다. 9천킬로 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프랑스 내 한국 교민들과 한국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의 마음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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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 중인 프랑스 국립 동양학 대학의 최정우 교수


행사 장소를 마련해 준 프랑스 국립 동양학 대학의 최정우 교수의 개회사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최 교수는 이 자리는 영화를 감상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2년 전 일어난 참사를 기억하고 현 한국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라며 담담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1분 묵념을 제안했다. 곧이어 1분 동안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강의실은 곧 고요해졌다. 세월호 참극의 내용을 아는 이도, 잘 알지 못하는 이도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q6.JPG 묵념 중인 행사 참가자들의 모습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던 1분 동안 
침묵은 수백 가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곧이어 아시아 영화 전문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바스티앙 메르손 씨의 <다이빙벨> 소개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두 명의 기자에 대해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촬영 시간도, 편집 시간도 상당히 짧았다. 100시간 남짓한 필름을 편집하여 80여 분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고, 편집 기간 역시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몸부림에 가깝다. 메르손 씨는 이 영화를 보며,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 그리고 언론의 행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음을 고백한다. 참고로 프랑스는 현재 노동법과 관련하여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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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 상영 토론회 패널 바스티앙 메르손 영화평론가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는 모습과 함께 배 안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처음 학생들은 그 상황을 장난스럽게, 여유 있게 받아들인다. 



"지금 뭡니까? 쿵쿵거리는 소리 뭡니까? 나 울고 싶습니다."

"내가 지금 탄 세월호. 나는 갔어야 됐어, 네스호. 이런 미친놈들의 항해사. 너 때문에 나는 즉사"
(단원고 2학년 6반 김동협 학생 랩)



그리고 점차 노래는 처절한 외침으로 변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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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고 싶어요, 진짜로." 

"지금 구조대 와도 300명을 어떻게 구합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그리고 곧이어 들리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전원이 다 구조되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곳곳에서 한탄과 약간의 욕설이 섞여 나왔다. 그로부터 80여 분간 당시 세월호 희생자 구조작업을 둘러싸고 발생한,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상황들을 심각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힌 것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한 고 강승묵 학생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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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다이빙벨> 해외판 캡처



"아들한테 통화할 때, 해경 말 잘 들어서 행동하라고 얘기했던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나오라고 했으면 나왔을 텐데 제가 그렇게 얘기한 바람에

우리 아들을 못 살려서 저는 그게 한이 됩니다, 지금."


"아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영정사진도 똑바로 못 바라봐요."


"우리 아들 살릴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우리 아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생각만 하면.
나땜에 우리 애기를 죽인 것 같아갖구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우리 애들이 왜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나, 왜 구조를 하지 않았나 그걸 꼭 밝히고 싶습니다."



영화가 끝났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영화는 끝났지만 비극은 여전히 해결된 것 하나 없이 현재진행형임을 알고 있기에 침묵은 앞서 있었던 묵념 시간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힘겹게 시작된 토론은 열정적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충격이 한국 사회에 어떠한 식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후 한국사람들이 어떤 사회 행동을 보여 주었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 총선 결과와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도 등장했다. 그리고 토론은 정부의 뻔뻔한 거짓말이 어떻게 가능했느냐에 이르러 보다 치열해졌다. 국가는 존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 어느 곳에도 기댈 곳은 부재한, 버림받은 한국 시민들의 현주소가 다시 한 번 수면에 떠올랐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정치인들의 모습과 혐오담론을 키운 언론의 행태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 가족의 일이 아니기에 너무나도 가볍게 ‘지긋지긋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모두를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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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근처의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본 기자가 자리를 뜬 새벽 0시 30분까지도 사람들이 남아 처참한 심경을 나누었다.
사진 출처 - ‘celia paris’ 페이스북


공권력의 언론 점령, 정부의 국민 포기는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선진국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참상을 낳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함께하지 않는다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난 두 달간 이 행사를 준비해 왔다는 한 유학생은 행사가 끝나고 너무나도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즐거워서는 안 되는 날인데 너무나도 마음이 기쁘다며. 그동안 쌓아왔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기에 거기에서 온 카타르시스라고 생각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이야기는 그냥 의레 하는 형용구가 아니다. 그렇게 함께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행동할 때 조금씩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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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이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