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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3. 목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즉, 정치적 현실을 이해하고 나아가서 대안을 제시하고 미래를 얘기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지만...


 



 


사람에 대한 이해는 진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개인에 대한 이해부터가 쉽지가 않다. 거기에 몇몇 개인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전형적인 인간형들을 몇 개 만들어서 이해했다 쳐도, 그들이 집단으로 모여 군집을 형성하면 그 집단은 또 각각의 개인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대상의 밑그림을 그려보자. 다름 아닌 통합진보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관한 것이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프로필. 현재는 수정되었다. >


 


경기동부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르던 당시에만 해도 이 사건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식으로 과격하고 극단적으로 벌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게 웬 악의적인 소설이람~' 하는 정도로 이해했을 지경이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도대체 통진당 내부의 당권파라는 일련의 그룹들, 그 사람들의 행태가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시는가? 저들이 왜 저러는지 말이다. 88만원 세대들에게는 그야말로 강 건너 불 구경일테고, 기타 일반 유권자들은 '씨바, 저놈들 다 빨갱이였어?' 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그 빨갱이는 또 뭔데? 라고 다시 물어보면 말문이 막힌다. 북한넘들? 아니면 좌파들? 다들 아시겠지만 북한하고 좌파는 상극이다. 그래서 종북좌빨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 되는 거고.


 


이런 이해하기 힘든 배경 속에서 상황은 급속도로 전개되었고, 강기갑 대표는 결국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총선 때 찍은 표는 아까와 죽겠고, '시바 저 새끼들이 날 속였어~' 하는 분노는 치밀어 오르고, 에라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아무나 욕하고 보자... 이러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뭐 그러고 싶다는데 뭐라 해 줄 말은 없다. 하지만 당신은 허수아비 보고 화내는 중일 뿐이다. 어쩌면 그 허수아비는 당신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상과 사고방식의 기원은 어디일까? 


 


딱히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사상의 흐름을 초간단 다이제스트로 훑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결국 그건 또 내 전문분야다. 졸라 복잡하고 긴 얘기를 최대한 간단히 정리하는 거. 


 


그 시작은 NL이다. 


 



내셔널리그 아님. 네덜란드 아님.


 


민족 해방, NL, National Liberation, 이건 레닌-스탈린 시절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사상이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민족"개념을 상당히 앞세우던 얘기이다. 심지어 우리에게도 6.25 전쟁 때부터 있었던 사상이다. 거기에 1960년 모스크바에서 나온 사회주의 혁명 43주년 기념 <공산당,노동자당 대표자회의 성명>에도 이 개념이 언급되고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얘기이다.  이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상은 80년대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는데, 그 원동력에는 80년 광주가 자리잡고 있었다. 광주를 겪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국인데 설마 우리들을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두겠냐는 믿음은 정면으로 배신을 당했고, 그 결과 80년대 초반 그 삼엄했던 시기에 각지의 미국 문화원, 대사관등이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 개념이 발전해서 반미로 자라나던 시절이다. 


 


그 때 벌어진 아주 유명하고 중요했던 논쟁이 바로 사구체(사회구성체, 이런 식의 약자가 당시에는 유행이었다.) 논쟁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의 관점에서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을 바라본다면, 도대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느냐는 "진단"부터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 그 진단에 있어서 우리 사회를 인식하는 입장이 나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는 식반론(식민지반자본주의론. 우리 사회는 식민지이면서 반쪽짜리 자본주의, 즉 기형적 자본주의 사회라는 관점)과 신식국독자(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비슷 비슷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좀 다르다.)로 나뉘어서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 논쟁의 결과, 한국이라는 특수한 현실에서는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계급적 모순보다는 민족적 모순이 더 우선하므로 민족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사회 변혁의 지름길이라는 선택이 우세하게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신식국독자를 주장했던 측에서는, 결국 남한 사회의 문제점도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문제, 즉 계급적 모순이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으니, 차후에 변형된 레닌-스탈린식의 민족 모순 우선주의보다는 전통적이고 정통파인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계급 모순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쪽도 다수 등장하게 되는 거다. 


 


이게 바로 자주파와 평등파의 구분이 되는 거고, NL과 PD의 등장이 되는 거다. 


 


최장집 같은 경우도 이 두 가지 흐름의 존재가치를 모두 인정하고 있으면서 나아가 이 두 가지 측면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이 미래의 사회 변혁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될 거라는 얘길 하기도 했다. 맞는 얘기다. 세상은 절대 한 가지 측면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다시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현상이 하나 발생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북한의 정권 유지용 철학이었던 주체사상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한의 학생 운동권 그룹에 유입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자주파 계열에서 그 주체사상을 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로써 자주파 내부의 주사파 그룹이 등장하게 된 거다. 


 



득템? (책을 들고 있는 인종들이 다양하다. 북한 얘들도 참...)


 


이 과정은 뭐 많이들 얘기하니까 대충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최초 김영환이 86년도에 구국학생연맹을 설립하고 강철서신을 발행해 주사파의 전도자가 되고,

그 여파로 80년대 말 전대협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주사파가 다수파로 등장하게 되고,

90년대 들어 김영환은 북한에 직접 가서 김일성까지 만나고 돌아오게 되고,

전대협의 뒤를 이은 한총련은 다수파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을 주사파들이 장악하게 되고,

이 모든 하부 조직을 관장할 전국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설립되고 거기에 하부 조직으로 경기동부, 인천, 울산등이 있게 되고,

평등파 계열에서 민노당을 창당하고,

거기에 자주파 계열에서 군자산의 약속이 나오고,

자주파들이 민노당에 몰려 들어가고,

분당 사태가 발생하고,

그 와중에 김영환은 자신의 하부 조직원들을 대거 이끌고 전향하게 되고,

중국 가서 뻘짓하다가 공안에게 붙들려 있고...


 


그리고 오늘까지 온 거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만약 저 장황한 사상의 역사가 사실이라면, 통진당에서 벌어진 사태에 관련된 모든 인물들은 저 사구체 논쟁이나 신식국독자(이건 무슨 요리도구 이름 같기도 하다.) 이런 거 생각하면서 싸우고 있냐는 말이다. 그럴 리가 있나...


 


또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저 사상의 흐름이 머리 속에 정리가 되어 있으신가?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면 이 글을 쓰는 놈의 머리 속에는 저 사상들의 철학적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가? 그럴 리가 있나... 


 



저 사상들 다 이해하는 거, 졸라 복잡하다.


 


일부 학자들, 솔직히 그것도 의심은 가지만, 아주 일부의 학자들이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의 흐름을 연구하면서 저런 논쟁들의 변천사를 꿰고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저런 게 들어있다면 그는 당장 타임머신 타고 80년대로 돌아가야 된다. 


 


저 사상은 역사적인 가치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백 보 양보하더라도, 오늘날 이후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반 철학을 제공하기 위한 과거의 근거로써만 가치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면 이런 거창해 보이는 사상적 흐름 말고 저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것은 또 뭔가? 


 


사실 그게 더 중요하다. 그들의 사고방식, 그들이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그것은 일종의 하위문화가 된다. 과거 앞서 언급한 사상적 기반이 운동권을 지배할 당시, 그러한 기반 철학에서부터 운동권 문화가 파생되어 나오게 된다. 그러한 "행동을 지배하는 하위문화"들은 복잡한 철학적 사고와는 달리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기도 한다.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전달되며 변천하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하면서 오늘날 흔적을 남기고 있다. 


 


예를 들면 주체사상에서 나오는 "품성론" 같은 거다. 이게 참 우스운 건데, 김일성 수령을 칭송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 만들어진 얘기들이다. 김일성은 독립투쟁,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무수한 경험을 얻어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되었다는 얘기이고, 우리 모두 그의 품성을 본받아 그처럼 되고자 노력해야 된다는 얘기에서 나온 이론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얘기 아닌가? 싯달타가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고행길에 나서 무수한 경험 속에 대오각성해서 성불했으니 우리 모두 그를 본받아 열심히 수행정진하면 언젠가 부처가 될 수 있다...


 


근데 그 기이한 수령론의 일부인 품성론은 우리 사회의 운동권에게 내려와 헌신하는 지도자형으로 정립된다. 즉, 과대표는 나서서 과친구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헌신하면서 바보 같이 그들에게 봉사해야 하며 그로써 학우들을 감동시켜 투쟁의 대열에 합류시켜야 한다... 뭐 이런 수작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건 참 잘 먹힌다.


 


자주파 친구들이 까칠하고 졸라 잘난 척 하는 평등파 멤버들에 비해 언제나 신입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뭐 어려운 소리 잘 안 하고, 그저 어려운 일 있으면 도와주려고 그러고, 술 사달라면 술 사주고, 노래 하고 놀기 좋아하고, 한 마디로 친화력 짱이거든. 


 


이런 행동의 방식, 이런 하위 문화들은 사구체 이론 같은 골치 아픈 수작보다는 수명이 길다. 그래서 오늘날 살아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저 사람을 겪어 봐서 아는데, 저 사람은 절대 주사파 따위가 아니야" 라고 확신하게 되는 이유에 이런 품성론이 일조를 하고 있다.


 


맞다. 사실 그 사람 주사파 아니다. 자주파 이론, 식반론, 이런 거 다 잊어버린 지 오래고 심지어 주체사상의 품성론까지도 잊어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조직을 유지하고 조직을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조직의 세를 늘리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게 조직을 위해 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물어보시라. 아, 우리 사회의 발전. 절대 이 이상의 구체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머리 속에 아예 들어 있지를 않거든. 


 



'왜'는 없어 보인다.


 


즉, 사상은 사라지고 문화만 남은 거다. 


 




 


이거 이해가 가시는가? 접수가 되시는가? 말하는 나부터도 한숨만 나오는데 읽는 사람이 이걸 어떻게 접수를 해. 


 


그래서 새로운 도구를 준비해 봤다. 진화생물학이다. 


 


흔해 빠진 박사학위 한 개 없지만, 이건 사실 진화생물학도 아니다. 그냥 문과적 메타포일 수도 있다. 바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얘기한 "밈(Meme)"이다. 이 밈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진화생물학적 개념들을 아주 약간은 가지고 있어야 된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먼저, 진화는 발전이 아니다, 라는 말에서 시작해 보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카추에 보면 진화는 항상 좋은 것이다. 더 크고, 더 세고, 더 멋지게 변하는 것을 진화라고 부른다. 이게 진화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오해이다. 진화는 변화에 불과하다. 진화 이전과 이후의 상대적 우열 따위는 없다.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현생인류가 우월한 게 아니다. 또한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다른 종 사이에 우열도 없다. 즉, 바퀴벌레와 호모사피엔스 간의 우월성 차이 같은 건 다 편견이라는 것이다. 


 


다만 진화는 복제과정에서 변이한 유전자들 간에 누가 더 차후에 있을 복제에 유리한가, 즉 생존가능성이 높은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연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이 자연선택을 유발하는 생존가능성 자체도 완전히 우연에 의존할 뿐이다. 환경이 변하는 것에 따라 수시로 변화할 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면 또 그 자연선택은 뭔가? 진화의 필수 3요소를 복제, 변이, 적응력으로 설명하고 있는 도킨스의 관점을 빌리자면, 사건은 이렇게 벌어지는 거다. 


 


최초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의 특징은 자신을 복제할 줄 안다는 것이다. 화학적인 존재이면서, 자신을 담고 있고, 자신을 운반해 줄 수도 있고,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화학적 환경을 조성해 줄 수도 있는 개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복제해 내는 능력이 있다. 이 유전자는 다시 말해서 "복제자"이고, 이 단계가 복제다. 


 


그런데 이 복제자는 복제 과정이 그다지 완벽하지가 않다. 복제할 때 완전히 똑같이 복제가 되는 게 아니라 수시로 에러가 발생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거다. 이렇게 달라진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개체는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복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변이다. 


 


변이의 결과로 개체에 차이가 발생하면서 유전자의 복제 능력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이 환경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포함되어 있는 유전자를 더 많이 복제할 수 있는 개체도 있고, 아무래도 경쟁에서 조금 밀리는 개체도 나오게 된다. 변이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할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가 더 넓게 퍼지고, 그 가능성이 적은 유전자는 슬슬 도태되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하게 변이된 수많은 종류의 유전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자연선택이 발생하면서 전체적인 유전자 풀(pool)이 바뀌어 가는 과정, 그게 바로 진화가 된다.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한 화학적 반응일 뿐이다. 


 


문제는, 과연 그런 복제자가 지구상에 또 다른 놈은 없느냐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유전자 말고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으면서, 변이도 일어나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반드시 유전자 뿐이라는 보장이 있냐는 말이다. 


 


바로 유전자 옆에서 서로 같이 영향을 주고 있는 넘이 하나 또 있다. 그게 "밈"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에 보면 벨로시 랩터라는 소형 육식공룡이 나온다. 매우 날쌔고 잔인하며 집단 사냥을 할 줄 아는 종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벨로시 랩터가 그런 공룡인지는 만나보거나 잡아 먹어보질 못해서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별로 자세하게 묘사가 안 되고 있으나, 책에서는 이 부분이 무척 자세하게 나온다. 연구실에서 복제를 통해 만들어진 벨로시 랩터들이 좀 문제가 있다는 거다. 원래 랩터들은 둥지를 잘 만들고 거기서 알을 낳아 부화시키며 알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교육한다. 유전자에 기록된 본능적 행동 말고, 후천적으로 부모가 새끼에게 전달해주는 행동양식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태어난 랩터들은 이런 행동양식을 전달받지 못했다. 그 결과 둥지는 개판이고, 집단 사냥에서도 효율이 떨어진다.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기르는 방법이나 리더에 복종하고 팀플레이를 하는 방법을 배우질 못한 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화의 결과로 사람은 무척 발달한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유전자를 통해 물려받은 것은 먹고 싸고 자는 본능 이외의 것은 별로 없다. 뇌를 채우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부모를 포함한 주변 환경으로부터 물려받은 행동양식이다. 그런 행동양식을 물려주는 것을 쉽게 교육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받을 때 말고도 평생동안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행동양식을 주고 받으며 살게 된다. 


 


이런 행동양식들이 모이면 문화가 된다. 이런 문화를 이루는 작은 행동양식의 단위,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부모에게 물려받기도 하고, 선생님들에게 배우기도 하는 이런 행동양식의 단위가 바로 "밈"이다. 쥬라기 공원의 랩터들은 이 밈을 제대로 받지를 못했다. 사람 역시 이 밈을 전달받지 못하면 아마도 무척 약한 잡식성 동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이 밈이 무척 많이 있다. 이 밈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어디서 생겨난 걸까? 바로 여기서 이 밈이라는 존재 또한 유전자처럼 복제 가능하고 변이하면서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하는 존재라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물론 밈이라는 존재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측정불가하며, 재현불가하다. 과학의 소재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성질들이 부족하다. 밈학은 그래서 아직 시기상조다. 밈 이론을 가지고 이런 저런 사회 현상들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많지만, 그게 공식적으로 과학으로 인정받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밈 이론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입하여,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고 유용한 일이 된다. 그러니 학술적 엄밀성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분석에 동참해 보자.


 




 


가장 대표적인 밈은 바로 종교적 사고방식이다. 


 


사후세계가 존재할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거 없다는 나같은 사람들도 있다. 사후세계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은 일종의 밈으로 전세계 인구의 과반수가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환경에 따라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밈이 쉽게 이식이 된다. 


 



 


이거, 사람들이 아이에게 옮기는 게 맞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서, 밈들이 스스로 사람들을 제어해서 이식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 즉 밈은 스스로를 복제하고 있는 거다. 일단 일차적인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각 개인들의 생각은 다들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저승이라고 부른다. 황천길을 따라 가면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스틱스 강의 뱃사공이 건네줘야 갈 수 있는 지하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살아서 한 행동에 따라 둘로 나뉘어 간다고 믿기도 한다. 사후세계에 관한 밈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이가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학적 합리성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그저 단백질로 이루어진 개체에 불과하며 죽으면 분해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기괴한 밈이 생겨났다. 이 밈 역시 자기 복제를 한다. 수많은 사람에게 스스로를 이식하게 된 것이다. 나한테도 옮았다. 줸장...


 



 


그러면 자연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을 무대로 이 두 패거리의 밈이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두 가지 계열의 밈 사이에서 자연선택이 벌어질 것이다. 결국 어느 한쪽의 밈이 우점종으로 자리잡게 되고, 어느 한쪽은 일부 괴팍한 비밀 집단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믿어지는 소수 밈으로 전락하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멸종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밈들도 유전자처럼 복제하고 변이하며 적응력을 발휘해서 자연선택의 대상이 된다. 즉 진화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진화 자체를 다루는 초점이 개체나 종, 군집에서 떨어져 나와 유전자로 옮겨왔다. 개체의 행동만으로 분석이 안 되는 것들, 예를 들어 악어 떼가 드글드글한 강물에 앞장서서 뛰어드는 이타적인 "누우"의 행동이라거나 하는 부분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방식이다.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 : 한꺼번에 뛰어들어 악어떼가 누우 몇 마리를 잡아먹을 동안 나머지가 건넌다.


 


이 방식은 상당히 효율적이며, 자연계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해 왔다. 우리 또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이 글의 서두에서 썼듯이, 개인에 대한 이해나, 그것을 좀 더 확장한 집단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유전자 대신에 밈의 관점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해석해 보자는 것이다. 


 


뭐 손해날 일은 없다. 어차피 개인에 대한 이해, 집단에 대한 이해로도 전혀 분석이 안 되는 골때리는 정치 현실이니까. 좀 다른 걸로 해석해 봐서, 해석이 잘 되면 좋은 일이고 안 되어도 본전이니까 말이다. 


 




 


최초에, 공산주의라는 밈이 탄생했다. 이 밈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식되었으나, 결국 이 밈이 얘기하는 공산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가능성 조차도 소련의 붕괴 이후로 거의 소멸되어 가는 것 같아 보인다. 이제는 최초의 공산주의라는 밈은 그다지 점유율이 높지 않은, 사라져 가는 밈이 되어 버렸다. 대신 사민주의라는 밈으로 변이해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짜잔.


 


그런데 그 공산주의 밈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로 이식되면서 우리 사회만의 특이한 현실에 의해 또 한번의 변이가 일어났다. 남한에서는 자주파네 평등파네 하는 이론으로 변이된 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북한에서는 엉뚱하게도 주체사상이라는 웃기는 기형 밈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공산주의 밈과 종교의 밈이 약간 교배된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 웃기는 주사 밈은 남한으로 다시 내려와 자주파 밈하고 결합을 하면서 점유율을 확 높이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해방/전쟁 이후 무척이나 왜곡되었던 남북관계, 군사독재, 민주화 투쟁, 이런 환경들이 그 혼혈 밈의 전파에 무척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줬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사구체 밈, 그 중에서도 식반론 밈이나 신식국독자 밈 같은 것들은 이게 워낙에 덩치도 크고 졸라 복잡한 밈이라서 일반인들의 머리에는 쉽게 이식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일부 극소수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런 복잡한 밈이 전파되었지만, 학생운동에 참여하던 다수 학생들의 머리 속에는 그 거대한 밈의 부산물들만 이식이 된 것이다. 품성론 비슷한 밈들 말이다. 


 


이 글의 전반부에 나오는 복잡한 사상의 흐름을 이 밈의 관점에 대입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사회는 변했고, 사람들의 정치 수준은 높아졌으며, 운동권의 숫자는 갈수록 쫄아들어 개체수 점유율로는 5%도 안 되는 상황이 와 버렸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져서 대다수의 사람들 머리 속에는 "먹고 사는게 장땡 밈"이 전파되었고, 그 결과 졸라 터프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처먹으면 장땡 밈"이 머리속에 들어 있는 가카가 등장하고, 그 밈을 이식받은 가카의 무리들이 나라를 거덜낼 지경에 빠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FTA 반대 밈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강정을 소재로 하는 환경 밈이 득세를 하고, 청년들 머리 속에는 "시바, 배고파 죽겠어 밈"이 퍼지기 시작하고... 청년당, 녹색당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다 밈들이 뒤에서 조종한 거라니까...


 



사회 현상의 차범근, 밈?


 


그 상황에서 팟캐스트라는 졸라 희한한 방식을 동원해서 "쫄지마 밈"이 급속도로 전파되기도 했고, 총선이 있었고, 밈의 워(War)가 벌어져서 아직은 "먹고사니즘 밈"이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멘붕 밈"이 전파되기도 했던 것이 오늘날의 역사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고립된 일련의 개체집단 사이에 매우 특이한 밈이 아직도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알려져버린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서 말이다. 이런 신기한 일이 있나... 


 


대다수 일반 유권자들은 도저히 머리 속에 넣을 수도 없을 것 같은, 남이 머리 속에 넣고 있는 걸 보기만 해도 멘붕이 올 지경인 그런 기괴한 밈을 공유하는 집단이 하나의 정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자, 사건이 터져 버린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놀란 것이 아니다. 우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다수의 우점종 밈이 기괴한 소수의 밈을 발견하고, 와, 씨바, 이건 진짜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저 밈들을 몰아내고 저들의 머릿속도 장악해야겠다, 하는 경각심을 가지게 된 상황인 거다. 그래서 통진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소동의 본질은 밈 간의 전쟁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아, 물론 밈 자체의 의지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복제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고, 자연의 선택을 겸허하게 기다릴 뿐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밈들의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두둥.


 


다시 말하지만 유전자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 밈 역시나 가치의 우열은 없다. 심지어 어떤 밈이 어떤 밈보다 더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밈일 수도 있다. 밈은 그저 다수의 사람들의 머리에 이식되어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이 자연 선택의 결과이며, 어떤 밈이 우점종이 될지는 오로지 자연선택만이 결정을 한다. 


 


대신, 자연선택의 기준은 엿볼 수도 있을 지 모른다. 


 


유전자의 경우에는 자연선택의 기준은 거칠게 말해서 그 유전자를 담고 있는 개체들, 군집들의 생존가능성이다. 일단 생존을 해야 복제가 되는 것이 바로 유전자니까 말이다. 


 


하지만 밈은 좀 다르다. 그 밈을 담고 있는 개체의 생존가능성도 역시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빨리 복제가 되고 전파가 되는 것이 밈이기 때문이다. 기억해보자. 밈은 교육을 통해 전파되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전파된다. 궁극적으로는 모방을 통해서 전파가 되는 것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복제는 번식을 통한 개체의 증식을 의미한다. 밈의 입장에서 전파는 그냥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밈의 복제에 유리한 상황, 즉 자연선택의 기준은 "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카가 머리 속에 가득 꽂고 있는 "닥치고 말아먹으면 장땡 밈"은 전파성이 매우 부족하다. 사람들 다수가 그런 밈을 받아들인다는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다. 뭐 그런 상황이 오면 개체들이 만드는 궁극의 공동체인 국가 자체가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카밈은 조만간 다시 소수 밈으로 전락할 것이다. 아니라도, 그런 밈을 보유하는 것은 처벌해야 한다는 밈이 많이 전파될 것이다. 


 


당권파들이 머리 속에 꼽고 있는 밈도 소수밈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아니 그냥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정상적인 인간개체라면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패서 전신마비의 위험에 빠트려 놓고도 뻔뻔히 버티는 밈을 머리속에 넣어줄 리가 없잖은가. 


 



 


결국 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이라는 기준이 의미하는 것, 밈의 복제가능성을 높이고 전파성을 높여서 자연의 선택을 받게 만들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바로 민주주의다. 


 



 


뭐 그다지 특별한 얘기도 아니고, 그다지 참신한 얘기도 아니다. 


 


비록 아직은 학술적으로 확증된 개념도 아니고, 그냥 한 진화생물학 전공자인 저술가가 아이디어 삼아 내놓은 개념일 수도 있고, 문과적 메타포에 불과한 개념일 수도 있는 밈이라는 개념으로 정치적 사회 현실을 분석해 본 결과에 불과하다. 


 


그러나 꽤 재미있고 유용한 개념인 밈, 진화생물학에서 파생된 것이면서도 추상적인 문화의 기본 단위를 상징하는 밈이라는 개념으로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을 분석해봐도 답은 명료하게 나온다. 


 


이 사회의 최종 목적지는 민주주의이다. 결국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바다를 향해 밀려가고 있는 수많은 강물들일 뿐이다. 


 


언젠가는 민주주의라는 바다에 도달하겠지. 


 



갈 길, 멀다...


 


 


 


 



정치부장 물뚝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