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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3. 목요일

마사오

 

 

 

 

 

 

 

요즘 TV광고 중에, 우리 삼촌세대를 풍미했던 '황인용'이라는 걸출한 DJ가 오랜만에 고유의 푸근한 목소리로 등장하는 광고가 한편 있다. 예전엔 아이들이 '과학자'를 장래희망으로 많이 꼽았었는데 언제부턴가 죄다 '아이돌'을 꿈으로 갖게 되었다고 한탄하며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란 기치 아래 현대모비스에서 '영재과학 프로그램- 노벨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그 CF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딱 내 어린 시절 모습과 싱크로율 100%라서인지, 볼 때마다 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된다. (단언컨데, 난 어린 시절을 노멀하게 보냈다. 항간에 떠도는 악성루머처럼, 여탕을 훔쳐보고 댕겼다던가 생리대를 주으러 여자화장실을 누비고 댕겼다는 풍문은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인간적 매력을 시기하는 반마사오 진영의 같잖은 마타도어일 뿐이다.)

 

 

 

 

 

기업의 공익적 사회환원을 손꾸락질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서도, 한편으론 왜 아이들이 과학자 대신 아이돌을 장래희망으로 꼽게 되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숟갈 정도의 찜찜한 감정이 솟는다. 이 사회의 '공돌이' 푸대접은 둘째 치자. 어디 푸대접 받는 분야가 솔까 공돌이들 뿐이랴. 인문사회기초학문 분야 자체가 초토화 되고 있는 게 어제 오늘 뉴스거리는 아니잖은가. 공돌이 푸대접론은 공돌이출신이 다른 지면을 통해 이빨을 푸시고.

 

 

 

 

 

예전엔 기업의 사회적 역할 중에 교육이라는 부분이 있었더랬다. 조또 모르는 어리버리한 사회초년생을 공채로 뽑아다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쓸만한 산업역군으로 키워내는 역할 말이다. 하지만 IMF이후로 '노동 유연성'이 대두되고 이차저차 블라블라하여서 진즉에 옛말이 되어 버렸다. 기업은 더이상 어리버리를 밥값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씩이나 하지 않으며 이미 어딘가에서 지 혼자 힘으로 스펙을 쌓고 '밥값'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재들만을 데려다가 소비한다. 기업이 써야 마땅할 투자자금을 편의점 알바나 식당 서빙을 하며 취업준비생들이 대신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게 시나브로 세상살이의 '룰'(rule)이 되어 버렸다.

 

 

 

 

 

 

 

 

 

 

 

 

 

 

 

 

이 사회에서 평가받는 '부'와 '성공'의 잣대는 또 어떠한가. 온갖 매체에서 너 나 없이 부르짖어대는 '대박 나세요', '부자 되세요'라는 구호에는 행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나, 목적에 대한 고민의 맥락은 전혀 없고 오로지 금전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욕망의 당위만 있을 뿐이다. 왜? 성공해야만 '특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前) 경남도지사 김태호가 도지사 시절 공무원을 가사도우미로 부려먹고 마누라 운전기사로 부려먹고 관용차를 사적(私的)용도로 쓴 특권.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119 긴급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 담당 공무원이 냉큼 도지사 목소리를 알아채야 마땅한 특권. (물론 이 분야 甲인 가카의 서울시장 시절 누린 특권은 귀찮으니까 누락하자.)

 

 

 

 

 

엄청난 액수의 회삿돈을 해쳐먹어도 그간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피땀 흘려 일한 공로를 인정 받아 사면으로 깜방에 가지 않을 특권. 즉, 세상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룰'이라 할지라도 나만은 예외일 수 있는 '특권'. 재미있지 않은가. 종국적으로 '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현재엔 죽자사자 그 '룰'에 순종하고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다.

 

 

 

 

 

훈늉한 과학자가 되어 뭐 빠지게 노력하면 뭐하겠는가. 그 성과가 돈이 된다 싶으면 낼름 치고 들어와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그 과실을 거진 탈취해 가는, '재주는 과학자가 부리고 돈은 회장님이 버는' 기업 할 '자유'를 못 누려 환장한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러한 작금의 세상풍경에 현대모비스는, 나아가 현대는 어떤 행동을 해왔는가. (현대 따까리인 문화일보의 행태를 보라. 가관이다.)

 

 

 

 

 

 

 

 

 

 

 

 

 

 

 

 

그런 기업에서 작금의 살풍경을 한탄하며 영재프로젝트를 진행한다니,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기업은 역시 기업인가 보다. 사회적 역할에 드는 비용을 되도록 싸게 지불할 방법을 잘도 찾는 걸 보면 말이다. 그나마 공익을 위해 한푼이라도 써 주니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까. 

 

 

 

 

 

병에 걸렸어. 증상이 있어. 그럼 원인부터 규명해야지. 그래야 적절한 치료법이 나오잖겠나 말이다. 오줌을 싸는데 자꾸 고름이 나와. 그럼 대체 이 인간이 꼳츄를 어디에 어떻게 휘두르고 댕겼는지 우선 원인부터 찾아야지. 그리고 그 원인에 맞는 적당한 약을 처방해야잖겠냐고.

 

 

 

 

 

헌데, "어라? 고름이 나오네? 저런 쯔쯧" 혀를 차며 꼳츄 끄트머리에 대일밴드나 붙이고 멘소레담이나 바르고 호호 불어주면 새살이 돋아나 꼳츄 끝이 막히고, 나오던 고름은 요도를 역류하여 똥으로 방출되기라도 할까. 언제까지 큰 틀에서의 삐뚤어진 룰을 바꿔 근본치료를 행할 생각을 않고 상처에 빨간약만 바를 작정인가.

 

 

 

 

 

 

 

 

 

 

 

 

 

 

 

 

 

 

 

더러운 일이 일어났다. 이차방정식도 모르는 (아, 그건 나도 모르는구나.) 암튼, 그냥 어리다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꼬꼬마를 이불 채 업어다가 미친 짓거리를 저지른 또라이가 있다.

 

 

 

 

 

이런 또라이들, 어느날 갑자기 70년에 한번 씩 오는 헬리혜성마냥 느닷없이 나타난 거 아니다. 예전에도 있었고,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있을게다. 비슷한 사건들이 해마다, 철마다 신문지면을 장식했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 피부에 닿는 강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여타 사건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 '사이코'에서 안락한 개인적 공간인 욕실을 피로 물들이며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듯이 범인이 기가 막히게도 가족들이 자고 있는 거실에 침입하여 아이를 납치해 갔다는 그 수법이 우릴 경악케 했다. 부모와 함께 있는 공간조차 실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그 점에 몸서리 치게 되는 것이다.

 

 

 

 

 

그 사건을 필두로, 세상은 온통 '성폭행'이란 키워드에 매몰되었다. 뜬금없이 '주폭과의 전쟁'을 치루느라 불철주야 공사가 다망하던 경찰들이 방향을 바꿔서 '성폭력'이라는 표적을 향해 개떼처럼 달려든다. 재래신문들과 국영(?)방송들은 그 간 소설을 쓰며 갈고 닦아온 문장력을 한껏 뽐내며 소라넷 찜 쪄먹을 야설을 기사라는 이름으로 도배질하기 시작했다.

 

 

 

 

 

 

 

 

 

 

 

 

 

 

 

 

곧 있을 대선에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여당 후보는 어절씨구리 한 타이밍 하며 '사형제도 존치' (실은, '부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잠재적 사형제 폐지국' 취급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를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는 관계로 '잠재적 사형제 폐지국' 지위에 있으므로)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근래의 미국 정치 꼬라지의 예에서 보듯이, '티파티'를 필두로 하는 극우꼴통 네오콘들은 결코 경제를 위시한 정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낙태나 동성애, 진화론 같은 종교, 도덕적 이슈를 주구장창 읊조리며 선명성 경쟁을 할 뿐이다. 그게 종교적으로 순결하고 도덕적으로 순수하다고 자칭하는 서-남부 시골 꼰대들에게 아주 잘 먹히거덩.

 

 

 

 

 

공주님이 분노한 민심의 식탁에 한방울의 고민없이 '사형제 찬성'이라는 메뉴를 서빙한 것은 딴지 필진들이 지랄맞게 마감을 안지키는 것 만큼이나 매우 자연스런 일인 게다.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기에, 고작 꺼낸 카드가 '불심검문 부활'이란다. 마침 잘 되었다. 촛불 겪어봤잖은가. 속이 뒤집힐 정도로 빨간 물이 듦과 동시에 우매하기 짝이 없는 민중이란 거뜰은 불조심과 더불어 자나깨나 경계해야 할 사회불순세력이므로 '불심검문'이 아니라 그 할애비라도 부활시켜서 항시적으로 감시, 적발하여야 하니까. 그래. '불심검문'이라기 보단 '불신검문'이 맞겠다. 정부가 국민을 못 믿지 않은가.

 

 

 

 

 

 

 

 

 

 

 

 

 

 

 

 

부랄을 떼내겠다는 소리는 그냥 웃고 넘기자. 지들두 가만 있기 뭐하니 그냥 농담삼아 해 본 소리일거야. 이런 문제에 정색하고 논쟁을 벌이는 풍경을 상상해 봐봐. 대한민국이 얼마나 후지고 부끄러워지겠냐. 그냥 웃자.

 

 

 

 

 

자, 이제 맨소레담은 대충 발랐어. 그럼 뭐가 남았지? 아 참, 원인을 찾아야지.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늘상 대처할 방법을 만들고 나서 원인을 찾았잖아. 늘 그래왔는데 새삼스레 뭘.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전혀 없는 것도 문제이고, 더 깊게 들어가면 남존여비 유교잔재도 있고, 뭐랄까,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 자체가 문제야.

 

 

 

 

 

소녀시대가 쭉 뻗은 다리를 흔들어대고 카라나 씨스타가 허리 골반을 미친 듯이 휘적거리는 거는, 보기 좋으니 봐 주자. 한류라고 외국에서 돈도 많이 벌어오잖아. 그럼 만고땡인거지 뭐.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여자애가 tv에 나와 섹시댄스랍시고 웨이브라는 이름의 허리질을 해대는 걸 좋아라 하는 시청자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고. 미니스커트 입었으니 강간 당해도 싸다는 개소리와 논리적으로 똑같은 개소리잖아.

 

 

 

 

 

슬슬 머리가 아프다. 근본적인 원인규명 따위는 너무 오래 걸리고 무식한 국민새끼들이 알아쳐먹지도 못 해. 그럼 표에도 도움이 전혀 안되지. 뭔가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원인을 찾아야 할텐데...음... 낑낑거리며 고민을 하다가 머리를 좀 식힐 겸 컴터를 켰는데 내 컴 하드에 '금강경강론집'이란 이름의 폴더가 눈에 띄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그랬다. 모든 원흉은 '포르노'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70년대에 서구에서 불어닥친 '포르노해방론'은 포르노 그 자체에 대한 찬성이라기보단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일종의 메타포로써 시민인권의 상징 기능을 수행했다. 그런 정치적 논쟁 근처에도 못가보고 그저 포르노를 포르노 그 자체로 소비하는 한국에서 우리는 낮에는 불법, 밤에는 토렌트 해방구의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철 지난 다큐멘터리보다 야동 구하기가 훨씬 쉽지 않은가.

 

 

 

 

 

우리나라 일반정서상, 포르노그라픽 - 속칭 '야동'이라 불리는 컨텐츠를 좋아라 한다는 것을 어디 가서 내놓고 이야기 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물며 나처럼 '동영상감별사'라는 특이하다면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로선 일상사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이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안녕하세요. 상도동 사는 마씨입니다."라고 공손히 이야기해봤자, 뒤따라 붙는 "하시는 일은?"이란 질문에 삼라만상이 스쳐가고 갑자기 엄마 얼굴이 보고 싶어지곤 하니 말이다.

 

 

 

 

 

 

 

 

 

"네에, 일본 포르노 동영상을 장르와 배우에 따라 분류하고 취향에 따라 편히 검색할 수 있도록 평론 및 안내를 하는 직업입니다."

 

 

 

 

 

 

 

 

 

 

 

 

 

 

 

 

라는 멘트를 아무리 교회 청년부 회장같은 표정으로 한다 한들, 박수 받을 일은 그닥 없다.

 

 

 

 

 

과연 '포르노'가 원인일까? 그럼 컴터 하드에 테라 단위로 야동을 쌓아놓고 사는 내 친구 춘배는, 성폭행을 저질러도 테라 단위로 저질렀어야 하지 않으까? 어릴 때 부터 하도 여자를 울려서 친구들이 "나중에 장가가면 딸만 낳아서 딸 가진 애비 심정을 겪어 보라."고 저주(?)를 퍼부었지만 결국 아들만 둘 낳은 웃긴 녀석이긴 하지만,

 

 

 

 

 

총각이라고 속이고 거래처 여직원을 꼬셔서 바람을 피다가 마누라한테 걸려서 죽지 않을 만큼 쳐맞고 간신히 이혼 위기를 모면한 개새끼이긴 하지만, 사기당한 거래처 여직원이 나중에 유부남임을 알고도 그저 한숨 한번 내쉬고 계속 사귀자고 하는 걸 보면 물경 범죄자축에나 끼는 것 같진 않단 말이지.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모자이크로나마 포르노를 촬영, 편집, 배포하는 것이 합법인 일본의 통계를 뒤져봤다. 결과적으론 우리보다 (아동성폭력을 포함한) 성범죄가 낮았다. 하지만 이 통계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일본도 피해자가 신고를 한다던지 등등의 피해사실이 드러나는 일체의 행위를 매우 꺼려하기에 구체적 통계수치에 반영되지 않은 수가 꽤나 많다는 논지였다.

 

 

 

 

 

정치부장 '물뚝심송'님이 미국의 통계를 알려 주시던데, 포르노를 허용한 주(州)와 불법인 주(州)의 성범죄 통계에서 오히려 포르노 합법인 지역의 성범죄율이 낮게 나타났다는 통계였다. 하지만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찾을 순 없었다. 난 영어와 아랍어와 러시아어가 다 똑같아 보여. 내겐 글자라기보단 일종의 문양에 가깝지.

 

 

 

 

 

[caption id="attachment_104763" align="aligncenter" width="546" caption="필자가 말한 그 통계는 아니고 비스무레한 연구결과 - (편집자 주)"][/caption]

 

 

 

 

 

정말 '포르노'가 문제라면, 수간물이나 온갖 SM장르의 최첨단을 선도하는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수컷들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강간하고 돌아댕겨야 하지 않나? 헌데 그런 소리 못들었다. 그저 내가 과문해서냐? 물뚝심송님의 권위에 대충 묻어가자면, 포르노는 적어도 '중요한 원인' 축에는 못들겠다 하겠다.

 

 

 

 

 

그렇다면 아동포르노는? 그건 '야동'이 아니다. 그건 그냥 '스너프'지. 미성년자는 형사처벌에서도 일정부분 면책을 받는다. 그들의 생각이 주체성을 띄기엔 인격이나 여타 경험치들이 여물지 않았으므로 그 선택 또한 책임성에 있어서 불완전하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그러니 별 생각없이 길을 지나던 여자를 뚜들겨 패서 실제로 강간하는 모습을 촬영한 거나 아동포르노나 강제 및 폭력성에 있어 매한가지란 말이다. 한 해 출연료로 수십억 떼돈을 버는 배우가 출연한 '야동'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

 

 

 

 

 

취향을 탓할 생각은 없다. 이해는 안가지만 50이 넘은 할머니 배우가 출연하거나 임산부가 출연한 장르를 좋아라 하는 사람들을 쫓아 댕기며 손꾸락질 할 생각도 없다.

 

 

 

 

 

자신의 법인카드 내역을 노조에 유출했다는 의심만으로 회계부 직원 3명을 1년간 무급명령휴직 내린 MBC 김재철 사장님의 새디스트적 취향 또한, MBC가 회계부 직원 3명에 대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지만 검찰의 압수수색영장이 6차례나 모두 기각될 정도로 혐의 자체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그런 중징계를 내린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인사권 남용이라 욕할 순 있어도 그 독특하고도 낯뜨거운 취향 자체를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손꾸락질을 하고 혀를 차고 욕을 해도 김재철은 김재철이듯이, 땅을 치고 침을 뱉고 똥물을 뿌려도 세상에 차고 넘치는 또라이들이 싸그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하물며 소아성애자는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자)만도 못한 취향이다. 어떻게 소아성애자가 취향일 수 있느냐고 버럭할 사람들이 많지 싶은데, 솔까, 그것도 일종의 취향은 취향이지. 단, 필연적으로 범죄를 동반할 수 밖에 없는 취향이라 문제지.

 

 

 

 

 

아무리 화를 내고 더럽다고 욕을 해도, 그렇게 생겨먹은 새끼가 있는 걸 어쩌라고. 미친듯이 단속을 강화하고 형량을 높여봤자 바퀴벌레 퇴치하듯 깡그리 뿌리 뽑을 자신 있나? 세상은 세스코가 아니잖아요.

 

 

 

 

 

소아성애자를 쉴드 쳐주고픈 마음, 눈꼽만큼도 없다. 하지만 작금의 땜방처리 혹은 대일밴드만도 못한 맨소레담 처방 따위가 그들의 어택에서 우리를 지켜내는데에 대체 무슨 효용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범행을 저지른 꼴통들이 한결같이 '건강한 공동체'의 울타리 바깥에서 삐뚤어져 왔다고 하니 말이다.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온갖 찌질구레한 변태들이든, 우리가 어께에 이고 가야할 일종의 '업'이다. 그들은 있어 왔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어차피 없어질 수도, 없앨 방법도 없는 그들을 내치고 뿌리뽑으려는 미련한 짓이 아니라 우리 품에 거두고 보듬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적은 친구보다도 가까이 두라'는 격언도 있잖은가.

 

 

 

 

 

물론 남의 집 빨래걸이에서 여자 속옷이나 걷어가는 놈을 잡아다가 내 집 안방에서 키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공동체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다면, 폐지 모아 하루를 살아가는 독거 노인네가 변사체가 되어 수개월 간 썩어 문드러져도 모르는 사회에서 벗어난다면, 길거리에 널부러져 숨이 꼴딱꼴딱 하는데도 귀찮은 일 생길까 지나쳐 가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옆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면 층간소음문제 때문이 아닌 그 상대가 걱정이 되어 옆집 문을 노크하는 세상이 되면 100%는 못될 지라도 어느 정도는 그들에게서 우리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세상이 된다면, 더이상 공포를 자극하고 윽박지르고 단속하고 강제하는 정부와 정치인 꼴을 보지 않고 그들에게서 무시당하는 꼬라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제대로 된 대책을 고민하고 우리를 위하는 정부와 정치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육체적으로 강간 당하는 걸 끔찍히 여기는 만큼 정치적으로 강간 당하는 것도 끔찍히 여겨야 정상이 아닐런지.

 

 

 

 

 

이 이야기를 역으로 곱씹는다면, 제 뱃속이나 채우면 모든 게 장땡이라고, 도덕적 결함 따위 눈 감고, 응당 우리가 누려야 할 인권과 자유를 거추장스런 물건인냥 스스로 내팽겨치고, 올바른 역사적 인식은 커녕 제대로 된 국가적 철학과 비젼마저 상당히 의심스러운 분을 지지율 1위에 올려놓은 우리 자신이 죄의식을 갖고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반성과 성찰을 앞세워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동영상인들에게 당부 하나 하자. 니 컴터에 있는 야동, 혼자만 보지 말고 와이프나 애인하고 함께 즐겨라. 내 장담컨데 몇개월 후, "스토리 재미난 거 없어?"란 소릴 듣게 될 것이다. 자식새끼한테만 유출 조심하면 된다. 부끄러워 하지 말자.

 

 

 

 

 

글구 앤 없는 거뜰, 야동이나 쳐보지 말고 밖에 나가서 진짜 사람을 사귀어라. 니가 네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만큼 상대도 널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법이다. 그 후에 다운 받아도 늦지 않다.

 

 

 

 

 

 

 

 

 

 

 

 

 

 

 

 

밤이 늦었다. 얼렁 쳐자라. 이상.

 

 

 

 

 

마사오

트위터 : @masao8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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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