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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02. 목요일

황야의 이리








우여곡절 끝에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에 발맞춰 보수언론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영화 홍보에 애를 쓰고 국회에선 전사자 예우에 대한 규정을 새로 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연평해전 전사자들에 대한 보상과 처우에 김대중 정권의 무성의를 성토한다. 한 여당의원은 전사자들을 개죽음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김대중 정권을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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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인 '제2연평해전' 전사자 여섯 명은 전사자가 아니었다. 전투 중 사망했지만 법률상으로는 전사자가 아닌 순직자였다. 그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대한민국 군인들 모두는 전쟁에 나가 죽더라도 전사자가 될 수 없었다. 그냥 공무수행 중 순직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계기는 월남전 파병 이후 사상자 보상금으로 인해 국가재정 압박을 우려한 국가배상법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제정된 법이다. 그때 제정된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전사자 보상에 대한 규정은 아예 없고 '공무 중 순직한 군인 등의 보상금으로 마지막 급여의 36배를 지급, 사망 시 국가의 잘못이 있더라도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이쯤에서 개죽음 운운한 여당의원의 얘기가 그냥 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국가배상법은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국가배상법을 유신헌법 29조 2항에 못박아 넣어버렸다.(유신헌법을 만든 이는 지금도 권력의 언저리에서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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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아서 보상이 이루어졌다. 순직자 보상금으로 최저 3100만~8100만 원이 지급되었고(357호의 정장, 윤영하 소령이 받은 국가 보상금은 5600만 원이었다) 유족연금으로 매월 38만~86만 원, 보훈연금으로 매월 61만~62만 원이 지급되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보상이 못 되었기에 나중에 국민성금이 합쳐져 도합 3억 5천만 원이 전달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2004년과 2006년에 이르러서야 교전 중 사망한 전사자(군인)와 일반사망인 순직에 대한 보상이 구분된 군인연금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군인연금법에는 전사자인 경우, 2억 원의 국가 보상금이 지급되고 유족연금도 대폭 상승되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천안함 사건의 사망자들이 처음으로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전사자 보상을 받았다. 이때도 국민성금을 거두었고, 성금 가운데 일부를 지휘관들 선상파티에 썼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자 연평해전 전사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명박 정권 때 연평해전 전사자에 대한 보상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었으나 곧 무산되었다. 그걸 영화가 개봉된 지금에 와서 또다시 끄집어 든 것이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분들에 대한 예우를 보여주는 사건은 또 있다. 6.25 전쟁 발발 50년 째인 2000년 6월에 ‘6.25 전쟁 50주년 기념 사업단’이 결성되고 산하 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단’이 조직되었다. 2003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 계획이 짜여서 3년 동안 전사자 유해 781구와 유품 2만 6천여 점이 수습되었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만들어진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이것을 영구 사업으로 전환하여 육군 본부 유해발굴 담당부서가 정규 편제로 전환되었고, 1천여 구 이상의 전사자 유해가 추가로 발굴이 되어 신원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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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이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 정권은 6.25 전사자의 보상금을 5만 환(얼마전 문제가 된 보훈처의 현재 환산 금액 5천 원)을 주어 입을 막았고 군부독재 시절엔 전사자의 목숨값을 그야말로 개값으로 만든 법을 헌법으로 못박았다. 신군부와 문민정부를 거치면서도 이 법을 금과옥조처럼 유지했다. 그들(보수진영)이 종북정권이라 헐뜯던 잃어버린 10년의 정부는 전사한 용사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회적으로 현실적인 보상을 했고 단계적으로 꾸준히 법을 개정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자 시절, 화재로 내려앉은 숭례문을 방문한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 '국민성금을 모아 복구하자'였다. 민주주의 사회에는 규칙과 기준이 있다. 사고를 당했든, 나라를 위해 피흘리며 전사했든 그 규칙과 기준에 따라 보상하면 된다. 


애국을 떠들어봐야 규칙과 기준이 잘못 서 있는 사회는 사람을 개값으로 만들 뿐이다.








황야의이리

@steppenwol


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