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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14.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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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기치가 높이 휘날리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표면 거품을 한 꺼풀 살짝 걷어내면 그 밑에는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원초적 샤머니즘의 세계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귀신들이 존재합니다. 인도네시아 전국구 귀신인 꾼띨아낙(Kuntilanak), 뽀쫑(Pocong), 뚜율(Tuyul), 젱글롯(Jenglot)등은 물론 바나스빠띠(Banaspati), 웨웨(Wewe), 웨돈(Wedon), 꾸양(Kuyang), 끄마망(Kemamang), 순달볼롱(Sundal bolong) 같은 지역구 귀신들도 있습니다. 귀신이 몰려나온다는 말람줌앗(Malam Jum’at)의 유래나 요즘도 가끔 현지뉴스에 등장하곤 하는 학교나 공장에서의 집단빙의현상, 끄수루판(Kesurupan), 그에 대한 이슬람식, 또는 두꾼식 엑소시즘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들입니다. 그 외에도 일무끄발(Ilmu kebal)이라 불리는 총격에도 끄덕없는 금강불괴 신체술도 있고, 여왕의 항구(Pelabuhan Ratu)에 자주 출몰한다는 남쪽 바다의 용왕 니롤로키둘(nyi Roro Kidul)의 일화, 그리고 마술에 힘입어 권력과 명성을 얻은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선은 두꾼(dukun) 얘기부터 꺼내볼까 합니다. 두꾼(dukun)이란 인도네시아의 무당 또는 흑마술사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한국의 무당들이 몸주를 모시는 것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두꾼들은 귀신을 부리거나 속여 의뢰자들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두꾼의 얘기를 제대로 하려면 산뗏(Santet)과 수숙(Susuk) 등의 얘기가 필연적이고, 그러자면 그들이 부리는 진(Jin)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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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술 또는 마법이라는 것이 실존하느냐, 해리포터와 볼드모트의 대결처럼 마술이라는 것이 과연 백마술과 흑마술로 나눌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고 개인적 신념과 확신에 달린 사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기 전에 교통법규와 안전수칙을 미리 배우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섞여 살려면 알고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간접적이나마 제가 몇 년 전에 겪었던 일입니다. 자싱아(Jasinga) 산골의 친척 집에 다녀온 메이네 온가족이 앓아눕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 차도를 보이긴 했지만 메이는 마치 엑스맨의 울베린이랑 한바탕 싸우기라도 한 듯 한동안 얼굴 한복판에 석 줄의 손톱자국 같은 것을 달고 다녀야 했는데 그 당시 내가 보고들은(대부분은 ‘들은’ 것이지만) 것들은 도무지 잘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메이의 엄마는 지금의 메이 아버지와 십대 후반에 재혼하기 전, 14살 때 보고르 산골짝에 시집가 전 남편에게서 얻은 첫아들을 이웃에 맡기고 자카르타로 넘어왔는데, 아들이 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난 뒤에도 그 이웃과 한가족처럼 지내왔습니다. 메이가 둘째를 출산했을 때는 그 이웃의 딸인 ‘얀띠’를 자카르타에 데려와 육아에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얀띠라는 이름의 이 아가씨가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와 순다지역의 시골에서는 딸이 초경을 시작할 무렵인 13-14세 조혼시키는 풍속이 아직도 성행하는데 그것은 빠듯한 살림에 입 하나라도 줄이겠다는 의지와 그렇게 딸을 출가시킬 때 신랑 측으로부터 받게 되는 지참금( ) 수입 때문입니다. 그래서 딸의 결혼을 ‘거래’라고 인식하기 쉬운 신부 측 부모는 사위가 시원찮다고 여겨지면 뒤에서 이혼을 종용한 후 곧 다른 남자에게 다시 지참금을 받고 재혼시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집에 아내를 두고 옆집 또는 옆 동네에서 바람을 피우거나 둘째 아내를 얻어 집을 나가 버리는 본능에만 충실한 무책임한 남자들 탓도 적지 않지만 그래서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예상과는 달리 지방 저소득층만 본다면 어마어마한 이혼율을 보이는 것이고 90년대 전후 자카르타 근교의 일개 공단을 가득 채우는 수만 명의 젊은 여공들 중 대략 반쯤이 아이 딸린 과부이거나 이혼녀, 또는 재혼녀였습니다. 당시 18세가 되던 얀띠 역시 이미 두 번째 이혼수속을 밟으며 세 번째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나’라는 이름의 당시 남편은 수입이 변변치 못한 뚜깡사유르(Tukang sayur), 즉 채소장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었지만 동네에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누리던 두꾼의 아들로서 자신도 나름대로 약간의 술법을 사용하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며 이혼을 목전에 두었던 것을 보면 그 능력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입니다. 순다족 남자들은 아내나 애인과 문제가 생겨 어떤 교착점에 봉착하면 그 돌파방법을 찾기 위해 뭔가 실질적 노력을 하기보다는 대체로 두꾼에게 쪼르륵 달려가 매달리곤 합니다. 귀신의 조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죠. 나나는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 애원했던 거죠.


어느 날 밤 메이는 꿈속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얀띠의 부모 집 부엌에 뭉게구름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문지방 바로 밑 뱀굴에서 뱀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얀띠는 엄마가 아파 부득이 고향에 돌아가 있던 차였는데, 잠에서 깨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된 메이는 얀띠에게 전화해 부엌을 한번 뒤져 보라고 합니다. 영문도 모르고 부엌을 뒤지던 얀띠와 가족들은 메이가 꿈속에서 뱀굴을 보았던 부엌 문지방 밑에서 뭔가를 넣은 헝겊 뭉치가 파묻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모래, 사금파리, 커피가루, 바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건 두꾼들이 저주를 걸 때 사용하는 물건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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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용도는 마치 피뢰침이나 적외선유도미사일의 적외선 발사장치 같은 것입니다. 두꾼들이 저주를 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주를 담은 산뗏(santet), 말하자면 한국전통무속의 ‘살(煞)’의 개념과 비슷한 것을 부리는 진(jin = 한국으로 치자면 귀신과 도깨비 사이 어떤 존재 정도)을 통해 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소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편지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듯이 저주도 자칫 엄한 곳을 치지 않도록 목적지에 몰래 발신장치를 심어 놓는 것이죠. 그게 얀띠가족들이 부엌에서 발견한 두꾼 패키지의 용도였어요.


잘못 날아간 산뗏이 엉뚱한 상대를 쳤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런 사건 중엔 앞서 이슬람 수호전선 FPI 얘기에서도 등장했던 자카르타 주지사 아혹의 일화도 있습니다. 2013년 12월 16일 <까꾸스통신>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갑자기 이상한 병이 발병한 친구를 따라 두꾼을 만나러 가면서 시작된다. 두꾼은 그 친구가 누군가 미지의 경로를 통해 보낸 저주에 맞아 병이 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게 친구와 함께 두꾼을 만난 다음부터 아혹 자신도 드러눕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놈의 귀신이 내 몸에 들어가려 할 때 내 얼굴이 자기보다 훨씬 무섭게 생겼다는 걸 봐버렸던 모양이야’ 아혹은 시청회관에서 지난 목요일 그렇게 말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앞으로 누군가 저주를 실어 보낼 때 그때처럼 주소를 잘못 찾아 배달사고가 나지 않도록 아혹 부지사는 자기 집무실 문 위에 이름표를 크게 붙여 놓기로 했다. (후략)




다시 메이의 얘기로 돌아가, 그런 예지몽 비슷한 것을 꾸는 메이도 어딘가 신기가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얀띠와 나나의 이혼수속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그 주술물품이 든 헝겊 뭉치를 부엌에 묻어 놓은 것은 나나의 짓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확신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얀띠와 나나 사이에서 낳은 아기가 죽는 사건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얀띠는 전남편에게서 낳은 남자아이가 있었지만 나나의 아기도 임신하고 있었는데 두개골이나 두피가 제대로 덮이지 않은 채 뇌가 드러난 상태로 태어났다는 그 아이는 24시간도 채 되지 못해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그런 끔찍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순다의 산골짝에서는 귀신의 장난이라고 받아들이기 쉬운데 얀띠가족들은 그게 나나와 그의 아버지가 조심성 없는 주술로 귀신들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악마와의 계약이 피와 영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파우스트 같은 소설이나 호러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게 아주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아닌 듯합니다. 무슬림들이 하지 명절이 다가오면 사원에서 소나 염소 같은 짐승들을 잡는 것이나 성서에서 보듯 고대 야훼교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가축들을 잡아 그 피와 고기를 신에게 제사로 바쳤던 것은 신이 소고기나 양고기에 특별한 입맛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속죄를 비는 것을 포함해 신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분명 대가가 따르는 것인데 그것은 내 피와 내 살로 감당해야 마땅하지만 아무쪼록 짐승의 피와 살을 대신 받아달라는 개념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신으로서의 그 레벨은 비록 크게 떨어진다 해도 주술에 동원되는 잡신들 역시 사역의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예전 산드라블럭의 미모가 니콜키드먼을 아직도 압도하던 시절 그 둘이 함께 공연했던 프랙티컬매직(Practical Magic)이라는 영화에서 사랑문제를 들고온 손님에게 ‘당신이 바라는 바를 주의하세요’라며 늙은 마녀가 작은 새의 심장을 바늘로 꿰뚫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그런 식으로 부두교에서는 저주를 시전하기 위해 신선한 닭피를 뿌리는 것이고 2006년 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에서도 마야제국의 대제사장은 제국의 번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피라미드 위에서 태양신 앞에 수많은 신민의 목을 베어 바쳤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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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두꾼들도 그런 귀신들의 속성을 무시하고서는 저주를 시전할 수도, 원하는 바대로 부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사용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닌데 간혹 인색한 두꾼들 또는 초짜 두꾼들이 그런 적절한 대체적 희생 없이 귀신들을 잘못 부리다가 자신이 살을 맞아 죽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귀신을 속여 교묘히 피하거나, 자신에게 수숙(Susuk)을 심거나 강력한 주술을 걸어 살을 튕겨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난 그런 방법을 자세히 모르니 너무 깊이 알려 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런 경우 두꾼을 피해간 살이 꽃히는 곳은 백이면 백, 가장 가깝고 가장 연약한 가족이나 친척이기 쉽습니다. 살이 혈연을 따라가는 겁니다. 나이 지긋한 시골출신 자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가정폭력을 일삼던 메이의 아버지 역시 나름대로 일천한 흑마술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서툰 저주를 시전하려다가 처녀귀신 꾼띨아낙을 집안 거실까지 불러들이고 그렇지 않아도 천식으로 몸이 약했던 막내딸을 거의 죽일 뻔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나의 경우 그와 아버지의 부주의로 튄 살과 저주를 맞은 것이 나나와 결혼한 얀띠 뱃속의 태아였던 것입니다. 얀띠와 그녀의 가족들은 철썩 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물론 난 그렇게 100% 믿지 않습니다. 얀띠의 아이와 같이 그렇게 처참한 상태로 태어났다는 아이의 얘기를 이전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어쩌면 산골짝 허름한 조산소에서 출산 중 뭔가 치명적인 사고가 있었던 것을, 책임져야 마땅할 사람들이 변명을 둘러대며 귀신탓, 두꾼탓을 해댄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얘기에선 내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얀띠네 집 부엌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르바란이 찾아왔고 자싱아에 다녀온 메이의 온 가족이 앓아누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메이는 또 꿈을 꿉니다.


꿈속에선 무슬림 복식의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나타나 메이를 책망하며 위협했다고 합니다. 나나와 얀띠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요. 꿈에 본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 얀띠에게 전화하여 그 아저씨의 인상착의가 얀띠의 시아버지, 즉 나나의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대목부터는 인도네시아의 싸구려 공포영화 같은 분위기가 좀 풍깁니다. 하지만 완전 뻥이라고 하기엔 그간의 스토리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메이의 외할머니가 나서 저주를 물리치는 의식을 시전합니다. 저주를 푸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 저주를 튕겨 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걸 ‘balikin santet’ 이라고 합니다. 저주를 시전한 사람에게 그 저주를 그대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두꾼들은 자신이 시전한 저주나 주술을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고 얘기하며 자신이 주술이 누구보다도 강력함을 과시하곤 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이미 시전된 저주를 되돌릴 수 없다고 하죠. 하지만 또 주술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병을 낫게 하는 두꾼들도 분명 있습니다. 메이의 외할머니는 외관상 100살은 되어 보이는 70세 정도의 노파인데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이젠 눈도 잘 안 보이지만 손끝에 특별한 능력이 있어 아픈 사람들을 고칩니다. 뒤집혀 있는 태중에 태아의 위치를 바로잡아 주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뼈를 맞추고 염좌를 치료해야 할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반나절 만에 나아 걸어 다닐 수 있게 하는 사이비 의료행위로 평생을 살아왔죠. 대놓고 얘기하진 않지만 그녀 역시 두꾼임엔 틀림없습니다. 집안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두꾼의 비법을 물려받았지만 그 능력은 주변 사람을 도울 뿐이지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빈곤의 밑바닥에서 살았고 지금도 쉰 누릉지를 얻어와 연명하고 있죠. 그분의 인생이 그렇다고 해서 두꾼으로서도 형편없는 것은 아닙니다.



“팔에 뭘 좀 넣어 줄까요”



예전에 한참 술라웨시의 광산지역을 다닐 때 메이가 그런 제안을 해온 적 있습니다. 난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때엔 이해하질 못했어요. 그 말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깊은 산 속 광산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두꾼인 외할머니의 힘을 빌려 내 팔에 뭔가 주술을 걸겠다는 얘기였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솔깃하긴 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종교를 가진 사람인데 그런 외도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 예전에 메이의 외할머니는 메이에게도 같은 주술을 걸었고 그래서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길바닥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아 주먹질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작은 몸집의 메이가 상대방에게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내 엠베서더몰 3층에서 우리 물건을 떼먹은 여자 사기꾼을 잡아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메이의 라이트훅 한 방에 상대방 코가 통째로 날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코피를 폭발하듯 터뜨리는 것을 보고 식겁한 적이 있었습니다. 쿨럭.


아무튼 그 외할머니가 나서 뭔가 모종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후 메이와 가족들의 상황은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메이 역시 가족들과 함께 무슬림 규범에 맞춰 때마다 숄랏에 열심을 쏟으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왔지만 메이의 얼굴에 난 석 줄의 상처는 꽤 오래갔습니다. 물론 나중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요.



“저쪽에서 부린 건 역시 뱀의 영이었대요.”



메이는 누가 들을세라 그렇게 소곤거렸는데 그게 메이가 꾸었다던 자싱아 얀띠집 부엌에 나타난 뱀꿈과 맥락이 닿긴 했지만 난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메이 얼굴의 상처는 세 줄. 그 뱀은 어금니가 세 개 달린 놈이었을까요? 아니면 손톱 세 개 달린 앞발을 가진 코모도 같은 거대한 도마’뱀’의 영이었을까요?


이렇게 저주의 주술을 전문적으로 시전하는 두꾼들을 두꾼산뗏(Dukun santet)이라고 특별히 부릅니다. 이 친구들이 죽음을 부르는 주술을 시전하는 것은 입소문을 통해 매우 은밀하게 소문이 돌고 의뢰도 비밀스럽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현대의 두꾼산뗏들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멋들어진 자기 홍페이지와 블로그를 만들어 대놓고 노골적인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자신을 저주의 대가로 홍보하고 있는 끼 삼버르뇨워라는 두꾼의 홈페이지 대문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저주술 전문두꾼들 중 왕중왕으로 1990년부터 말레이시아, 홍콩, 타이완, 네덜란드 등에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끼 삼버르뇨워의 단골고객들중에는 고위관리나 성공한 사업가들이 많습니다. 그는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101가지 방법의 주술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주술에 걸린 사람들은 연예인, 관료, 정치인, 사업가를 망라해 수천 명에 이릅니다.


끼 삼버르뇨워가 시전한 주술은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음에 이릅니다. 더 늦기 전에 당신의 원한과 분쟁과 미움을 당장 종료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술 서비스는 상대방을 반드시 죽여드립니다.


‘공중의 용 주술’은 주택, 루꼬, 시장 등을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불태워 버리는 주술입니다. 주술을 통해 소송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소송종결주술’도 있습니다. 원거리에서도 주술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당신의 문제를 우리와 협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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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딘가 사기의 향기가 폴폴 풍깁니다.


하지만 실제로 상대방에게 저주를 거는 산뗏주술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시전되고 있고 실제로 그 증거인 듯한 자료들을 이따금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앞에 메이나 아혹주지사의 경우와 같이 병마와 질병을 보내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상대방의 몸 속에 기필코 병을 일으키고 말 못이나 면도날 같은 이물질을 주술을 통해 집어넣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 꽤 오래 산 사람들이라면 어린 소녀의 발에, 또는 누군가의 배와 등에 수십 개의 못과 면도날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병원 엑스레이 촬영결과 확인되었다는 뉴스를 TV나 신문에서 심심찮게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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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두꾼을 찾아가면 몸속에 심어졌다는 이물질들을 빼준다며 손으로 파내기도 하고 대롱을 통해 입으로 빨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환부에 달걀 같은 것은 올려 문질러 달걀로 옮겨오게 하기도 합니다. 그 달걀을 깨보면 안에 쇠못이나 바늘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죠. 수많은 트릭들이 숨어 있으리라 생각되고, 필리핀 등지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그들 중 상당수가 손놀림이 빠른 사기꾼들이라 사료되지만, 실제로 외부 상처도 없이 소화기관도 아닌 특정 신체부위에서 못과 바늘들이 엑스레이로 찍혀 나오는 것을 보면 뭔가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유튜브를 검색해 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꾼이 몸에 심겨진 금속들을 제거치료하는 모습 (진위여부는 보장할 수 없네요)


<리아우뽀스(Riau Pos)>라는 신문에 2013년 9월에 실린 조코위에 대한 기사가 흥미롭습니다. 당시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던 자카르타 주지사였던 조코위를 죽일 목적으로 누군가 두꾼을 사주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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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술 두꾼과 손을 잡고서라도 전 솔로시장이었던 조코위를 넘어뜨리려는 수많은 방법들이 시전되기 시작했다. 미스터리잡지 살림에 실린 바와 같이 반뗀주의 한 저주술 전문두꾼은 조코위에게 저주를 걸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지난 주에 선수금으로 1억루피아를 받았고 주문대로 조코위가 제거된다면 4억 루피아를 추가로 받기로 했음을 인정했다. 귀신부인을 17명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이 두꾼과 살림지가 인터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략)


심지어 유도요노 전대통령은 자기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흑마술의 희생자가 될 뻔한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당시 <데일리인도네시아>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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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에서, 유도요노 대통령은 그의 자택에서 ‘호러 영화’ 같은 블랙매직(사악한 마법)을 목격했다며, 자신과 아니 여사가 보고르 찌께아스 자택에 들어온 검은 구름을 퇴치하기 위해 싸웠다고 언급했다. “갑자기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검은 구름이 천정에 고여서 내 침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라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올리자고 했다. 나는 내 방문을 닫고 다른 문을 모두 열어놓았다. 검은 구름이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집에서 떠났다”고 유도요노 대통령이 책에 썼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들이 사는 국가이고 이슬람에서는 마법(magic)을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마법을 쓰는 일이 흔하다. 2012년 퓨 포럼이 실시한 조사에서, 인도네시아 이슬람신자의 69%가 마법을 실제로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디 바유니 자카르타포스트 편집국장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최고지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주술가인 두꾼(dukun)에게 사업, 미래, 결혼 등에 대해 조언을 듣는다”며 "하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중략)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1918년 형법을 개정해서, 블랙매직을 써서 어떤 대상이 병이 나거나 죽거나 정신적 또는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면 최대 5년 징역 또는 3억 루피아의 벌금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추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꾼들, 특히 저주술 전문두꾼들은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때가 찾아오면 그들에 대한 공포가 광기가 되어 폭발하곤 하는 거죠. 1998년 자카르타 폭동 당시 경제적으로 군림하던 화교들을 인도네시아인들이 잔인하게 공격하고 처참히 살해하며 그 재산을 철저히 파괴했던 것처럼 그 폭동으로 인해 수하르토가 하야하고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촉발된 전국적인 인종분쟁과 종교분쟁으로 인해 깔리만탄에선 다약족과 맞붙은 마두라족의 잘린 머리들이 밀림 속에 무수히 효수되고(당시 코린도나 끼데코의 인근현장 출신들은 이 사건들을 보다 실감 나게 얘기해 줄 수 있을 텐데요) 암본과 술라웨시의 빨루(Palu) 등에선 이슬람과 개신교가 충돌하여 많은 교회들이 불타는 동안 수라바야를 중심으로 한 동부자바에선 닌자복장의 일단의 괴한들이 등장해 두꾼산뗏들을 산채로 불태우고 목을 베고 몸통을 오토바이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등 3-4개월 동안 그 일대의 흑마술사 200여 명을 공개처형하는 광란의 나날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극한의 공포는 대체로 파국을 낳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두꾼이나 흑마술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인도네시아도 아닌 일본에서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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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경제>


두꾼들이 사용하는 부적들은 대충 이렇게들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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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과 코란에 대해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처럼 두꾼과 산뗏에 대해서도 얘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만큼 긴 전통을 가지고 있고 광대한 지역과 다양한 인종에 따라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흑마술의 흔적들은 현지인들 동네나 촌구석 산골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바로 우리 집, 우리의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타오라고 한 커피나 차에는 절대 주술이 걸려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뻠반뚜의 방 달력이나 벽면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문자와 도형들, 차량 시트나 소파 방석 밑, 또는 사무실 문 위쪽 공간에서 발견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용기나 헝겊 뭉치들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일까요 직원들이 끼고 다니는 반지나 머리핀엔 두꾼의 손이 닿지 않았을까요? 문제만 생기면 잠시 고향에 다녀오겠다며 찌레본으로 수까부미로, 반유마스로, 인드라마유로 달려가는 현지인들은 거기서 누구를 만나고 오는 걸까요?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면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현지인 사회의 이면이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꼭 저주를 시전하는 두꾼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랑을 이루어 주는 두꾼찐따 (Dukun Cinta), 운수대통시켜 주는 두꾼또겔(Dukun Togel), 큰돈을 벌게 해주는 두꾼퍼수기한(Dukun Pesugihan)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그들이 시전하는 주술의 종류나 방법, 효과들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꼭 얘기했어야 하는 수숙(Susuk 상대방의 호감이나 사랑을 유도하기 위해 주술로 몸 안에 심는 금속이나 보석)이나 두꾼의 주술이 담겨 한 번 사용하기만 하면 천하일색으로 보이게 되는 화장용 분이나 향수,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거나 원하는 정보를 상대방 입을 통해 듣기 위해 음료수를 가장해 내놓는 주술이 담긴 약재 등등 하고 싶은 얘기들은 한없이 많지만 이미 이 글의 길이가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끝까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길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도 흥미롭다고 생각하신다면 다음번엔 인도네시아의 흑마술과 귀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조금 더 열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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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